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는 이용의 대상이지 추종의 대상은 아니다"

"우리(국민)가 정치를 뒤따라가는게 아니라 정치가 우리 앞에서 뛰어가도록 만들어야"

신율 명지대 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소통의 사전적 정의는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혹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다. 오해가 없이 잘 통하는 상태를, 소통이 잘 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오해 없이 잘 통하기 위해서는 자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대화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듣고 역지사지 해야만 '잘 통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

만일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뜻을 말하기만 하거나, 상대의 말은 듣지 않으려 한다면, 이는 소통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경우, 상대는 일종의 요식행위를 위한 들러리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한다. 최근 열렸던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 보면서 느낀 소감이다.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인 2017년 3월 “생각을 달리하는 정당과도 대화와 타협을 하겠다”며 “여야정 국정협의체 상설화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출발점이다. 이번에 처음 열린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실천 의미도 있는 셈이다.

이번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일단 형식적이라도 여야정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눔으로서 정책 추진이나 정치 현안에 대한 상대의 이해를 구하는 자리였다는 점이다. 일단 여야와 대통령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후한 점수를 줄만 하다. 어쩌면 이자체가 국민들이 가장 바라던 그림일수도 있다.

미국은, 특정 정치현안에 대해 의회의 협조가 필요할 경우, 대통령이 직접 야당 의원들 대다수에게 전화를 돌리고 입장을 설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행위는 단순히 야당의 협조를 얻어 대통령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추진하려한다는 의미보다는, 야당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야당에게 존재감을 준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다. 아무리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다고 해도 카운터파트인 야당이 있어야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궤멸시키거나 파멸시켜야 할 적(敵)은 결코 아니다. 국정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파트너일 뿐이다. 만일 야당을 파멸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면, 그때부터 얘기는 복잡해진다. 야당이 적이면, 야당을 지지해서 선거 때 야당에게 투표했던 유권자도 궤멸의 대상으로 자리매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여 정치권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이런 사고방식은 사회속으로 전이되기 쉽다. 아울러 이런 식의 이분법적 사고가 사회로 퍼지게 된다면 사회는 양분될 공산이 크다. 이같은 양분화는 원활한 국정 운영에 심각한 장애요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정치권이 스스로를 절대선이라고 생각하는 편협한 사고, 그래서 상대를 제거해야 할 악으로 생각하는 극단적 사고를 가질 경우, 그 해악은 일차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측에게 돌아간다. 문제는 2차적으로는 국민들에게 그 폐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와 같은 협의기구는 필요하다. 더욱이 이런 식의 협의체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다 보면 정권에 대한 이미지가 상승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정권이 독선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협의를 통해 일을 해결한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줘, 야당 지지자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야권 성향의 지지자는 있는데, 지지 정당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 더욱 더 그렇다.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번째 회의의 오찬 메뉴는 탕평채였다고 한다. 탕평채란 조선 영조 때에,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의 음식상에 처음 올랐다는 데서 유래한 음식이다. 4색 당파들을 모아놓고 잘 해보자는 의미에서 나온 이름인 탕평채는 녹두묵에 고기볶음과 데친 미나리, 구운 김 등을 섞어 만든 묵무침이다. 필자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지만, 그 음식의 유래에서 볼 수 있듯이 화합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다만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화합과 타협은 결이 다른 용어라는 점이다.

정치를 논할 때 우리는 화합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런데 정치라는 단어와 화합이라는 단어는 생태학적으로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 서로 다른 용어다. 정치란 분명 이성에 입각한 권력적 현상이다. 반면 화합이라는 것은 감성적 차원도 포함하는 용어다. 그래서 화합이라는 단어 대신 정치에서는 타협이라는 용어를 써 야한다. 타협이라는 것은 감성적 차원보다는 냉철한 이성적 차원의 계산에 의해 도출될 수 있는 것이다. 정치란 계산적 행위이기 때문에 '정치판에서는 타협은 있어도 화합은 없다'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설마 정치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독자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불과 15년 전만 하더라도, 정치학 개론 시간에 정치란 무엇인가를 학생들에게 물으면, 국가와 국민을 위한 행위라고 답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요새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대답을 하는 학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라는 것이 권력적 현상이라는 사상은 이미 근대 초기부터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정치를 국민과 국가를 위한 행위라고 바라봐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다. 정치인들이나 정당 관계자들은 "국가를 위한다" "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때문이다.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걸핏하면 국가와 국민을 거론하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이들이 권력을 잡거나, 잡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거라는 제도에서 이겨야 하고, 선거에서 이기기위해서는 국민들의 지지와 환심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거의 습관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당들은 모두 이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성적 차원의 용어인 화합이라는 단어는 정치판에는 어울리기 어려워 보인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들은 예외없이 정권을 잡으려고 한다. 이는 정당의 존재이유이기에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는 '위기감의 공유'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자칫 이런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가는 비난의 화살이 정치권 전체로 쏟아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어느 정도 공감대라고 형성돼 있다는 의미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 고용세습 의혹 국정조사, 특별재판부 설치 같은 핵심 쟁점에서는 여야간의 의견을 전혀 좁힐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면, 문 대통령이 "판문점선언의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꼭 처리됐으면 좋겠지만 서두르지는 않겠다"고 언급한 대폭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더불어민주당의 원내 비준동의 추동 움직임이 종전보다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나타내는 동시에 야당의 입장을 어느 정도 고려했다는 의미 부여도 가능해 보인다. 향후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의 운영은 과연 순탄할수 있을지 여전히 궁금하다.

첫번째 여야정 회의는 분명 나름의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아무래도 여야 모두 첫 회의부터 삐걱거리고 잡음을 낸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여야정 두번째 회의가 개최될 수 있을까. 두 번째 회의가 열릴지 여부를 내다보기 위해서는 정치공학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 선에서 유지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만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요즘처럼 계속 떨어진다면, 야당들의 목소리는 당연히 커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두번째 회의는 열리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릴 공산이 커 보인다.

이런 상황이 전개될 경우, 야당들은 괜히 들러리 서줘 청와대의 면을 세워줄 필요는 없다는 나름의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을 듯 싶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한다는 것은 경제 문제가 그만큼 풀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야당들은 현 정부의 경제 실책에 얼떨결에 엮이게 되는 것을 경계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적 추론은 자유한국당의 지리멸렬한 지지율이 계속돼도 가능하다. 대통령의 지지율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동반 추락한다 해도 자유한국당은 오히려 선명성을 더욱 내세워 회동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답보상태지만, 대통령의 지지율이 다시 오르는 상황을 상정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두 번째 회의는 열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청와대가 어느 정도의 지지율을 유지해 국정 주도권을 계속 쥘 수 있느냐 여부가 두 번째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개최 가능성을 결정하는 실질적 바로미터라는 점이다.

이런 정치공학적 접근 외에 대한민국 정파들이 진정으로 타협할 자세가 돼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는 것도 향후 전망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서로 타협하는 자세를 갖기 위해서는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역지사지를 할 수 있어야만 상대에게 어느 정도 양보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계산이 가능하다.

문제는 역지사지할 능력이나 생각이 없다면, 이런 협의체는 다시 열리기 힘드는 점이다. 이처럼 역지사지하는 태도는 모든 정파에 필요하다.

정파들이 어떤 계산을 하든, 국민의 입장에선 정치권이 타협하며 합의를 도출해 지금의 경제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다만 국민들이 정치를 감성적 차원의 당위론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국민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이 만들어지도록 정치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당위론적으로 정치를 파악하면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뿐이다.

정치는 이용의 대상이지 추종의 대상은 아니다. 우리 국민이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만 정치를 국민 앞에 복속시킬 수 있다. 지금 우리(국민)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은 정치를 뒤따라가는게 아니라 정치가 우리 앞에서 뛰어가도록 만드는 일이다. 정치인에 대한 취사선택권은 투표라는 제도를 통해 국민이 고스란히 쥐고 있기 때문이다.

■ 신율 명지대 교수 프로필: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민사회 활동과 더불어 정치평론가로 저술 및 방송활동 등을 꾸준히 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다. 2011년에는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에도 등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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