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리서치앤 리서치 본부장 "황교안 前 국무총리의 차기 대권 경쟁력 현주소를 데이터로 분석해 보니 ...."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인은 세력(Power), 미래(Vision), 명분(Cause)의 3가지 경쟁력 갖춰야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배종찬 리서치앤 리서치 본부장] 정치인 중에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누구일까. 단연 대통령이다. 현직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인물이고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다른 어떤 정치인보다 국민들로부터 주목받고 여당을 비롯해 정치권 전반에 직접 또는 간접적인 영향력을 가장 강력하게 행사할 수 있는 말그대로 살아있는 현재의 권력인 셈이다.

그렇다면 대통령 다음으로 주목받는 정치인은 누구일까. 자연스럽게 차기 대권 주자로 관심이 모아지게 된다. 만약 현직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이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매우 낮다면 차기 주자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더 높아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60%를 넘나들 정도로 높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아직 임기 초반이므로 국정 운영을 문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다는 징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주목받는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바로 국무총리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선출직인 대통령이 임명하는 최고위직 공무원이 국무총리다. 행정부의 업무를 총괄하고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보좌하는 동반자나 다름없다. 대통령만큼은 아니지만 국정 전반에 관여하는 폭이 넓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은 대표직 공직자가 국무총리다.

대통령을 대신해 각종 기념식에서 연설을 대신하기도 하고 해외 순방시에는 국가를 대표하는 인물로 예우 받는다. 대통령 부재시에는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역할도 총리의 몫이다. 현재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도 총리 경력을 갖고 있다. 총리 이전에 정치인으로 풍부한 경력을 갖추고 있는 이 대표지만 지난 전당대회에서 총리 경력이 대중적 지지도의 기반이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한국 정치사를 되돌아보더라도 총리 자리는 대권 도전의 길목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원한 2인자’ 김종필 전 총리는 ‘총리’하면 생각나는 인물이다.

1997년, 2002년, 2007년 무려 3차례나 대선 무대에 올랐던 이회창 전 총재도 총리를 역임했었다. 총리 역할을 하며 국민들의 주목을 많이 받았던 인물 중에 고건 전 총리를 빼놓기 어렵다. 고 전 총리는 공직 생활의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20대 중반에 고시에 합격하여 행정부의 중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한 차례, 총 2번이나 총리직에 올랐다. 특히 주목받는 시기가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직을 맡았을 때다. 2004년 3월 12일 대한민국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의결했다.

그때부터 고 전 총리는 헌법에 의거해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의결된 혼란 상황에서 고 전 총리의 풍부한 행정 경험과 정권을 넘나들며 활동했던 경력이 빛을 발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들은 안정적인 리더로 평가했고 ‘행정의 달인’이라는 별명까지 지어줄 정도로 호의적인 평가를 내놓기까지 했다.

권한대행 기간 중에 총선이 있었고 무리 없이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 전 총리는 행정가로서 능력이 탁월했지만 정치인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전북 군산에서 출마한 13대 총선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제 12대 총선에 당선되어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9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과반 넘는 득표를 했었다.

무엇보다 고 전 총리가 더 주목받았던 이유는 대선 후보였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후반, 지지율은 바닥을 쳤고 여당내에서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는 눈에 띄지 않았다. 반대로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명박과 박근혜 두 유력 대선 주자들의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는 시기였다.

여당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대통령 권한 대행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한 고건이었다. 고 전 총리는 리서치앤리서치가 중앙일보(조인스풍향계)의 의뢰를 받아 2006년 5월 9일 실시한 조사(전국700명 면접원에 의한 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7%P 성연령지역가중치 자세한 사항은 보도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바로 오늘이 차기 대통령 선거일이라면 누구에게 투표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본 결과 18.6%로 오차범위내 박근혜(17.4%), 이명박(15.2%) 후보와 삼파전 양상을 보여줄 정도였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의 최종 대선후보로 결정되는 정동영 전 당의장은 이 조사에서 6.3%였다.

고 전 총리의 경우를 보더라도 국무총리는 대선 0순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였음을 알게 된다. 최근 국무총리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차기 대권 후보 조사에서 전직과 현직 총리가 부각되는 모양새다.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를 받아 지난 9월 27일~28일 실시한 조사(전국1502명 무선전화면접 및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2.5%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8.1%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진보성향이 강한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지지층과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을 대상으로 ‘범진보진영의 차기 대선 후보로 누구를 선호하는지’ 물어본 결과 이낙연 현 총리가 16.2%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3.7%, 김경수 경남지사가 11.6%였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두 광역단체장보다 이 총리가 조금 더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수치만 다를 뿐 순서는 달라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아 차기 대선 후보들이 본격적으로 거론되지 않는 시점이라 조사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안정적인 총리직을 수행 중인 이 총리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는 호의적임에 틀림없다.

이 총리가 현직이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므로 야권의 대선후보 구도에 더 주목하게 된다. 보수 성향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지지층과 무당층 응답자들에게 ‘범보수 후보 중 차기 대선 후보로 누구를 선호하는지’ 물어본 결과 황교안 전 총리가 28.5%로 단연 1위 였다.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10.7%)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10.6%)보다 약 3배정도 많은 수치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7.9%)보다는 약 4배 정도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황 전 총리는 아직 본격적인 정치 행보의 기지개를 켜기도 전이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의 본선 무대에 올랐던 3명의 후보보다 더 높은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같은 조사기관이 지난 8월에 실시했던 조사결과와 비교하면 약 7%포인트 지지율이 더 늘어났다. 반면에 유승민, 안철수, 홍준표 등 3명의 지난 대선 후보의 지지율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수준이었다.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차기 대선 구도를 논하기는 시기상조다. 그러나 사실상 기반이 붕괴된 보수 야당으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비상대책위 체제에서 조직강화특별위원회를 당 개혁의 선봉장으로 내세웠다. 당장 성과를 평가하기엔 다소 무리한 일이지만 지지층의 시선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풍부한 정치 경험을 가진 손학규 대표체제가 문을 열었지만 이렇다할 변화의 조짐은 감지되지 않는다. 이런 시기에 지난 정부의 총리 출신인 황교안이 보수 지지층을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장 큰 관심사는 황 전 총리가 차기 대선 행보를 할지, 한다면 언제부터 할지에 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은 혁신 동력을 뒷받침하기 황 전 총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비롯해 소위 정치 거물들의 입당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적 결단이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일이지만 황 전 총리의 입당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지만 결과가 더 중요한 분야다. 고건 전 총리는 ‘행정의 달인’으로 성공적인 행정가였다. 정치인으로 잠시 변모를 했지만 끝내 행정 수반인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다. 대통령이 되고 안되고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영원한 2인자’로 지칭되는 김종필 전 총리가 능력이 한참 모자란 인물이었을까. 아니다. 대통령이 되는 정치인에게는 다른 누구보다 세력(Power), 미래(Vision), 명분(Cause)의 3가지에서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고 전 총리는 자신을 본선 후보로 이끌어 줄 정치조직인 세력(Power)이 없었다. 또한 고 전 총리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행정가로서 쌓아온 업적에 대한 후한 점수였다. 만약 고 전 총리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면 국민들의 이상과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줄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미래는 단순히 안정으로만 그려지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안하지만 헤쳐나가야 할 미래(Vision)에 대한 그림이 분명하지 않았다. 대통령 자리에 도전하는 인물에게 명분(Cause)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무엇 때문에 대통령을 하는지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 3가지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보수 지지층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황 전 총리지만 정치적인 선택과 결단을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황교안 전 총리의 대권 도전 선택과 결단은 먼저 세력(Power)에 달려있다. 지난 탄핵 국면에서 순식간에 추락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에 이어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던 보수정당의 기반은 뿌리째 흔들렸다. 하나의 정당으로 거의 20여년 가까이 이어왔던 보수 정치 세력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두 동강 나버렸다. 두 정당의 최근 지지율을 산술적으로 합해봐야 더불어민주당의 턱밑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홍준표 전 대표가 대통령 선거이후 재건을 내걸었지만 지방선거 참패로 본전조차 건지지 못했다.

한국 정치 현실에서 단기필마로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어 성공하기는 어렵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폭발적인 국민들의 여론을 등에 업고 대선에 뛰어들었던 이인제 후보도 고배를 마셨다. 든든한 정치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성공 바람을 타고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던 정몽준 후보는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충분한 정치 조직력의 부재가 계속 발목을 잡았고 결국 단일화 자리를 노무현 후보에게 내주고 말았다. 황 전 총리가 계속 자유한국당의 입당 러브콜을 받고 있지만 지금의 입당이 약일지 독일지는 자유한국당이 충분한 세력(Power)인지 여부를 판단해보면 될 일이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지난 16~18일 실시한 조사(전국1002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13%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물어본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응답자의 절반 가까운 45%였다. 자유한국당은 13%였다. 30%포인트 이상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전체 지지율도 중요하지만 자유한국당의 경쟁력 평가는 핵심 지지층인 보수층, 대구경북, 60대 이상에 달려있다.보수층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39%, 더불어민주당은 27%였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자유한국당 24%, 더불어민주당 31%, 60대 이상에선 자유한국당 22%, 더불어민주당 34%였다.

자유한국당 지지층의 핵심 지표를 보더라도 당의 세력 경쟁력은 충분치 않다. 세력으로 평가받을 정도라면 절반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결과는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진보층, 호남과 수도권, 2030세대에서 보여주는 경쟁력과는 천양지차다. 영향력 변인 분석으로 볼 때 자유한국당의 세력(Power)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황 전 총리가 입당을 선뜻 결정하기 힘든 속사정이다.

황 전 총리가 대권 도전 결단과 선택이 당장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미래(Vision)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를 분석해 보면 인물이 만든 업적과 성과보다는 미래의 기대감이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문회 스타출신이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이 대권 승리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당시 서울시의 중요 정책이었던 청계천 사업과 버스중앙차로제는 결과적으로 많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단체장을 역임하지는 않았지만 ‘선거의 여왕’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나름 정치적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된다면 대한민국을 얼마나 잘 이끌어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현상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국회탄핵 이후 더 곤두박질 친 이유도 지나친 기대감에 따른 충격적 대실망으로 풀이된다. 지금 황 전 총리는 대권 도전을 바로 선언하고 당으로 들어갈 충분한 미래(Vision)가 만들어져 있는 것일까. 현재 분석으로는 안정적인 총리였다는 점 외에 미래 경쟁력이 투영된 지지율로 보기 어렵다. 알앤써치가 데일리안의 의뢰를 받아 지난 21~22일 실시한 조사(전국1008명 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6.2%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차기 주자로 누구를 지지하는지’ 물어보았다.

이낙연 현직 총리가 포함된 조사이므로 황 전 총리와 이 현 총리의 이른바 ‘전현직 총리 영향력 비교’를 시도했다. 보기 후보들 중에서 이낙연 총리는 전체 14.8%, 황교안 전 총리는 12.4%였다.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황 전 총리의 핵심 미래 경쟁력이 될 지표층인 가정주부층, 대구경북, 60대 이상 응답자 층을 기준으로 비교해봤다.

보수 성향이 강한 가정주부층에서 이 총리 17.2%, 황 전 총리 12.9%였다. 대구경북지역 응답자에서 이 총리 9.4%, 황 전 총리 26.6%로 나타났다. 60대 이상에서 이 총리 14.3%, 황 전 총리 17.2%였다.

황 전 총리의 미래 경쟁력이 반영돼야 할 핵심 지표층에서 이낙연 현 총리의 경쟁력과 비교해볼 때 대구경북 지역을 제외하고는 황 전 총리의 우세로 보이지 않는다.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를 하는 유권자 성향을 감안할 때 황 전 총리의 미래(Vision) 경쟁력은 현 시점에 충분치 못하다. 그저 괜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 정도 미래(Vision) 경쟁력으로 특정 정당 입당을 결정하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왜냐하면 현재 지지율은 안정적인 총리직 역임에 따른 ‘인지도 효과’이지 미래(Vision) 기대감에 대한 전망적 영향력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황 전 총리가 정치적 결단과 선택을 하기 어려운 세 번째 이유로 명분(Cause)이다. 꼭 대통령 선거에 나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결정의 순간이 아니더라도 명분이 필요한 일은 수두룩하다. 명분은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 첫 단추를 채우는 출발점이다. 명분 없는 결정은 대중이 받아들이기 어렵고 설득력도 없다. 대통령 선거에 나가는 인물이 보여주는 명분은 대권 의지와도 연결된다. 강력한 권력 의지는 명분에서 비롯된다. 왜 대통령이 돼야하는지, 왜 서울시장이 돼야 하는지 등 정치적인 도전과 결단의 순??명분을 세우지 못한다면 이후 일정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다르지 않다.

역대 대통령들이 내세운 명분이 좋은지 나쁜지 상관없이 대통령을 선택한 유권자들에게는 뚜렷한 메시지로 전달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하자마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외국으로 떠난 김 전 대통령은 다시 정계에 복귀하고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며 명분을 내세웠다. 바로 ‘수평적 정권교체’였다.

경상도 정권의 독점으로 점철된 한국 정치사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충분한 명분을 갖춘 ‘신의 한수’였다. 황 전 총리가 내세울 명분은 무엇일까. 명분을 논하기 이전에 황 전 총리는 가능한 환경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총리직을 수행했던 것만으로 명분이 확보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권력의지로 해석 가능한 명분이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이전 정부에 대한 ‘잔상(殘像)현상’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데이터 분석도구인 빅카인즈 시스템을 이용해 대통령 권한 대행을 끝낸 직후부터 최근까지 관련 기사에서 나타난 황 전 총리의 이미지 분석을 시도해봤다. 약 1년 5개월 동안 황 전 총리와 가장 많은 관련 연관어는 ‘국무총리’라는 단어였고 가장 밀접한 인물은 박근혜였다.

현재 드러난 이미지로 분석할 때 황 전 총리의 이미지는 지난 정부와 결별하기 힘든 지경이다. 지난 정부의 이미지가 아닌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 의지가 있는 인물의 이미지는 좀처럼 확인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연결고리를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하지 않고선 명분의 ‘명’자를 내걸기조차 힘겨워 보인다. 빅데이터 워드 클라우드 분석결과 명분 상관성이 있는 이슈나 인물은 잡히지 않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전 정부의 ‘잔상 현상’ 수준이 매우 높다. 이런 환경에서 특정 정당에 들어가 전면에 나서는 경우 보수 진영내의 반대 세력과 촛불 혁명의 적폐 청산을 강조하는 진보 진영의 공격을 감당하기는 버거울 것으로 보인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인물은 우리나라의 국무총리격인 미국의 부통령 앨 고어였다.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고어 부통령은 민주당 지지층뿐만 아니라 미국 일반 유권자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잘 생긴 외모에다 8년간의 부통령직 수행을 통한 안정감은 대선 승리 가능성을 높이는 필살기로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 공화당 부시 후보의 승리였다. ‘정보 고속도로(Information Highway)’의 상징 인물이었던 고어 부통령은 개혁의 혁신과 아이콘으로 여겨졌지만 대통령 선거에서는 석패하고 말았다.

좋은 이미지와 안정적 경험을 갖추고 있는 현직 부통령이 왜 패했을까. PVC(Power세력, Vision미래, Cause명분)기준으로 분석해보자. 엘 고어 후보는 민주당이라는 핵심 지지층이 있었다. 그렇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선거결과 전체 득표에서는 고어가 이겼지만 미국의 선거인단 선출식 투표제도에서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다. 고어 후보는 이기는 선거에서 큰 득표차로 이겼지만 꼭 이겨야할 경합주 박빙 승부처에서 지고 말았다.

즉 미국의 50개 주별로 골고루 세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미래(Vision) 기대감도 흔들렸다. 클린턴 대통령은 후보 당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분명했다. 레이건과 부시(아버지) 대통령 등 노익장을 자랑하는 공화당 출신의 집권이후 유권자들은 세대교체 의향이 강해졌다. 아칸소주 주지사 출신의 클린턴은 미국의 미래가 되었다. 그의 정책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미국 유권자들의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백인 일색의 미국 사회에서 유색 인종 출신의 대통령은 백인 유권자들마저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고어 후보는 서툴렀다. 자신의 심볼 마크나 다름없는 미래 환경 정책을 내동댕이치면서 선거 승리는 물건너 가버렸다. 고어 후보는 부통령직 수행 내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청정 환경’을 강조했다.

유엔이 주도하고 있는 기후 협약을 가장 전폭적으로 후원한 인물 또한 앨 고어였다. 지구 온난화를 고발하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다큐멘터리는 고어의 입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오죽했으면 대통령 자리에 오르지 못했지만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을까.

환경 분야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고어였지만 정작 2000년 대통령 선거 때는 환경을 전면에 내세우지 못했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경제 타령’으로 고어의 대한 미래(Vision)기대감은 가라앉아 버렸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의 힐러리 클린턴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인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으로 백악관에서 8년 동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경험은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큰 무기였다. 상원의원을 역임했고 여성문제를 주도하는 정치적인 역량과 정무적인 감각을 갖춘 경쟁력 있는 후보였다. 그렇지만 미국 역사상 최초의 부부 대통령은 탄생하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선거에서 전폭적으로 지지한 민주당 지지층들이었지만 힐러리 클린턴 지지층은 완전체가 되지 못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상징이자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막판까지 힐러리와 경합했던 버니 샌더스 후보의 지지층들은 힐러리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온전한 세력(Power)이 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이 가장 취약했던 부분은 명분(Cause)이었다.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 힐러리 클린턴으로부터 미국 유권자들은 완성도 높은 정치 거물이란 이미지외에 차별적인 권력 의지를 읽어내기 어려웠다. 남편에 이어 미국 사회의 주류 엘리트 여성 정치인이 대통령 자리를 노린다는 점만 부각되는 꼴이었다. 형편없는 경제 상황에 찌든 중서부(러스트벨트) 백인 남성 유권자들은 힐러리 클린턴의 교과서적인 논리에 식상한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가장 경합주가 많은 미국 동부와 중서부의 러스트벨트에서 힐러리는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앨 고어의 석패와 마찬가지로 힐러리는 전체 득표에서 트럼프보다 앞섰지만 말이다. 힐러리가 명분(Cause)으로 내세운 구호는 ‘Stronger, Together(강하게, 더불어)’였다. 얼핏 좋은 구호로 판단되지만 정확하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 매우 애매모호하다. 반면에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명분으로 볼 수 있는 슬로건은 전달하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인물이나 한국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는 잠룡이나 기본 원칙은 다를 리 없다. 대통령직에 대한 도전만큼 중대한 결단과 선택은 최소한 PVC(세력 미래 명분)기준으로 측정할 때 충분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가구만 과학이 아니라 정치 역시 과학이다. 선거는 한발 더 나아가 정밀과학이다. 선거 승리는 이보다 더한 초정밀과학이 동원된다. 막연한 판세 읽기와 상황적 정치 노림수로 손쉽게 들어 올리는 상아탑이 결코 아니다.

3가지 기준인 세력, 미래, 명분으로 볼 때 황 전 총리가 특정 정당에 들어가는 정치적 선택을 하고 대권 도전을 가속화시키기엔 시기상조다. 지금 정치판에 뛰어든다면 이전 정부의 악몽 같은 기억에서 자유롭지 않은 국민과 정치권의 날선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당장에라도 입당해 당 대표에 도전하면 힘든 여정을 통해 다음 대선에 도전할 엄청난 내공이 쌓인다는 일각의 훈수가 있는 줄 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다. 물 밀 듯이 몰려오는 내부와 외부의 공격을 감당해 내기엔 세력, 미래, 명분이 너무 미흡해 보인다.

명량해전에서 단 13척의 배로 대규모의 왜군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의 전략에 근거 없는 무개념은 찾아보기 어렵다. 명량의 물살을 이해하고 적은 함선수로 많은 적군을 물리치는 미래(Vision)형 전략을 놓치지 않았다. 병사들 숫자에서 절대적으로 분리한 상황 타개를 위해 민간인들이 나가 싸우도록 명분(Cause)을 만드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기댈 곳 없는 보수 진영의 희망처럼 떠오른 황 전 총리의 운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단하기 어렵다. 아무리 객관적인 분석이 있더라도 감정에 지배받는 주관적인 정치적 판단을 통제하기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낙연 총리의 향후 정치적 행보를 감지해 내는 것 역시 ‘정치 소설’을 쓰는 수준을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총리’하면 떠오르는 김종필 전 총리의 말이 대통령을 꿈꾸는 전현직 총리들에게 '쓰지만 몸에 좋은 보약'이 되면 좋겠다.

“정치는 봉사하는 일이며, 항상 국민 편에 서서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항상 국민을 호랑이와 같이 무섭게 생각해야 하며, 국민을 쉽게 보면 정치는 실패하게 된다.”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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