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태 법무법인 동민 대표 변호사 "정부가 결정한 화해치유재단 해산은 일종의 고육지책"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지혜를 토대로 피해자 중심 원칙 등을 관철시켜야 한다"

이건태 법무법인 동민 대표변호사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이건태 법무법인 동민 대표 변호사]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박근혜정부가 2015년 12월 일본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하고 받은 돈 10억 엔으로 설립한 재단이 정리수순을 밟고 있는 셈이다.

'화해치유재단' 해산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관련 시민단체뿐 아니라 국민 다수가 일본과 재협상을 하거나 합의를 무효화하라고 요구하는데 대한 문재인 정부의 답변이기도 하다.

정부가 국민 다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일본측과 합의할 때 ‘최종적 및 불가역적’이라는 문구를 넣은 탓에 정부로서는 이럴수도 없고 저럴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이와 관련해 아베 일본 총리에게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겠다고 언급했다. 비록 전 정부가 합의한 것이지만 정부 합의를 단번에 뒤집을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문대통령은 다만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하지 못해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며 해산 방침을 시사했다. 한편으로는 합의 파기나 재협상은 없다고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합의의 산물인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는 절차에 돌입하는 '고육지책'을 선택했다.

박근혜 정부는 피해 당사자들이 반대하고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꺼려하는 위안부 관련 합의를 굳이 왜 밀어붙였을까?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선결되지 않으면 일본과의 정상회담은 없다며 대일(對日) 강경 일변도의 외교정책을 구사했다. 2015년 11월 아베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할 때까지 무려 3년여 동안 한일 정상회담이 한차례도 열리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성 대통령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란 듯이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교는 엄연히 상대방이 있는 영역이며, 아베 일본 총리는 역대 일본 총리 가운데 가장 우익 색채가 강할뿐 아니라 민감한 역사문제에 대해 대단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인물이다.

더욱이 당시 국제정세도 미중 대립이 점점 심화되는 형국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호언장담을 할수 있는 형편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미일 협력이 강화되면서 미국이 역사문제에 있어서도 점차 일본 편으로 기울며 박근혜 정부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만 봐도 그렇다.

더욱이 믿었던 중국마저 일본과의 정상회담에 나서고, 중러가 긴밀해지는 상황이 펼쳐지자 박근혜 정부의 대일외교는 점점 외통수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12·28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였다. 법적 책임이 명시되지 않은 수준의 사죄와 10억 엔 출연의 대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종결한다는 취지였다.

이 합의는 지난 25년 동안 피해자 할머니들과 관련 시민단체들이 힘겹게 일궈낸 성과를 한꺼번에 훼손시킨 악재였다.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실상을 실명으로 공개한 이후 재조명되기 시작한 위안부 문제가 거대한 장벽에 봉착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이같은 합의를 밀어붙였다. 결국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박근혜 정부의 소통 부재, 전략 부재, 역사의식 부재가 가져온 '외교 참사'로 귀결됐다.

특히 2011년 8월에 나온 헌법재판소의 결정조차 정부가 준수하지 않았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국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본국에 의해 자행된 불법행위로 우리 국민이 피해를 입은 만큼 일본국이 잘못을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지도록 우리 정부가 해결에 나서라고 결정했다.

이 결정은 설문조사에서 국민이 뽑은 헌법재판소 결정 1위에 선정됐을 정도로 역사적·법률적으로 울림이 컸다. 지난 8월 26일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소 창립 30주년을 맞아 국민 1만5754명을 대상으로 ‘국민이 뽑은 헌법재판소 결정 30선’ 설문조사를 한 결과 ‘위안부 배상 관련 행정 부작위 사건’이 1위를 차지했다.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사건을 제칠 정도로 위안부 문제가 국민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돼 있다는 반증이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과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가장 심각한 여성인권침해 사건이라는 점을 반드시 짚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국의 법적 책임이 인정돼야 한다는 원칙과 피해자 중심으로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원칙이 관철돼야 한다.

아울러 간과해서는 안 될 대목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세계 여성인권문제로 지목돼 도마 위에 올라 있는 글로벌 이슈였다는 사실이다. 2007년 7월 미국 하원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문제 책임 인정 및 공식 사죄 요구 결의’를 채택한 것이 한 예다. 또한 2017년 11월에는 유엔인권이사회가 일본에 ‘성의 있는 사죄, 피해자 보상, 미래세대 교육, 성노예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처럼 사안이 명백하고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역사 문제에 있어 일본은 한국 정부가 책임을 주장해야 할 상대방에 해당된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은 우리가 한반도에서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체제를 구축하는 데 협력해야 하는 이웃국가이기도 하다. 원칙을 관철하면서도 미래를 향해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지난 10월 8일은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나온 해결책이 바로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일본 총리가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다. 역사문제와 미래 협력문제를 분리해 투트랙으로 접근하자는 것이 이 선언의 요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월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제시한 투트랙 접근이 대일외교의 기조라는 점을 강조한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룰 때 피해자 중심의 해결 원칙,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묻는 원칙 등 두가지를 충실하게 실천에 옮기면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녹아있는 지혜를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역사문제는 국제적인 연대를 강화하면서 지속적으로 원칙적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스스로도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자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될 때가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역사문제이인 동시에 세계 여성인권문제라는 점을 깊이 인식해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요구에 화답하기를 기대한다. 일본이 G7선진국으로서 진정성을 갖고 이 문제에 접근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건태 법무법인 동민 대표 변호사 프로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29회)에 합격해 사법연수원(19기)을 수료했다. 1993년 부산지검 동부지청에서 초임 검사로 첫발을 내디딘후 법무부 법무심의관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형사제2부장검사, 인천지검 제1차장검사,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법무법인 동민 대표변호사로 활동중이다. 강직하면서도 겸손해 인맥이 두터운 편이다. 법·제도를 통한 민생(民生) 개선이 관심사이며,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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