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베스핀글로벌 상임고문 "우리들의 미래는 새로운 것들만을 위한 세계는 결코 아니다"

"새로운 것들과 오래된 것들이 조화롭게 공생하는 그런 행복한 미래를 함께 그리고 만들어 나가자"

김현곤 베스핀글로벌 상임고문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 김현곤 베스핀글로벌 상임고문 ]

새로운 것들의 파도와 세상의 변화

우리 주변은 온통 새로운 것들로 넘쳐난다. 상점에는 매일매일 신상품이 들어온다. 옷, 책, 음식, 가전기기 할 것 없이 분야를 망론하고 새로움이 넘쳐난다. 더 새로운 것을 동경하고 선호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오래된 것들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헌 옷과 헌 책은 버려지고, 오래전에 즐겨먹던 음식도 잊혀져간다. 오래된 가전기기와 도구들도 최신기능을 탑재한 신제품들에 밀려 버려지고 사라져간다. 이렇게 헌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세상도 변화한다. 그래서 상전벽해, 천지개벽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10년만 지나면 세상은 확 바뀌어 버린다. 돌이켜 보면, 20세기말에서 21세기초에 걸친 지난 20여년간의 세상 변화가 특히 그랬던 것 같다.

변화의 대표적인 예를 한번 들어보자. 디지털기술의 활용이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아날로그 도구들의 사용이 크게 줄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하루 5시간 가까이로 늘면서, 야외에서 하는 활동이나 종이책을 읽는 시간은 채 1시간도 안되게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뉴스도 모바일을 통해서 보고,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차원은 다르지만 사람 자체에 관해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고, 한때 산업발전의 역군이었던 50대와 60대는 무대 뒤로 밀려나고 있다. 그런데 항상 새로운 것만이 좋은 것일까? 오래된 것에 숨어있는 가치를 새롭게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2. 오래된 것들의 반격

새로운 것도 좋지만, 오래된 것도 새로운 것만큼 좋을 수도 있다. 오래된 것이 새롭게 태어나 가치를 재조명받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고전이 그 대표적인 예다. 새로운 책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고전은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어떤 고전들은 새로 나오는 책들보다 훨씬 더 많이 읽히기도 한다.

디지털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아날로그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디지털기술이 세상을 삼켰다고 할 정도로 디지털은 사회 곳곳에 확산되어왔다. 사람들은 유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24시간 연결되고, 편리하고 새로운 수많은 디지털기기들과 디지털기반 서비스에 둘러싸여 24시간을 생활하고 있다. 이제 디지털은 우리들의 일상생활 그 자체가 되고 있다.

그러나 무한정 디지털만 추구할 수는 없다. 넘치면 흘러내리게 되어 있다. 쓰다쓰다 질리면 새로운 것, 색다른 것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디지털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을 넘어 사라져가던 아날로그의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필자가 최근에 읽은 <아날로그의 반격>은 디지털의 풍요 속에서 재탄생하는 아날로그의 르네상스를 아주 잘 소개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아날로그의 르네상스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최전선은 놀랍게도 아날로그세계와 정반대인 디지털세상을 가장 앞서 주도해온 실리콘밸리가 될 것이라고 한다. 놀랍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수긍도 간다. 아날로그를 넘어 디지털이 거의 전부이던 시대를 또다시 넘어서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혁신적인 융합을 통해 미래세상이 새롭게 펼쳐질 힌트를 제공해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3.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오래된 비밀

사라져 없어져버릴 것만 같았던 오래된 것들이 왜 다시 주목을 받게 되는 걸까? 디지털에 밀려 구식으로 느껴지기도 했던 아날로그의 르네상스는 왜 일어나는 걸까? 이제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 보고 답을 찾아보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언뜻 생각하면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대조적인 개념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젊은이와 고령자도 왠지 모르게 대립적인 키워드로 느껴진다. 정말 그럴까? <아날로그의 반격>의 저자 데이비드 색스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디지털이냐 아날로그냐 하는 이분법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디지털이 양이라면 아날로그는 음이다. 디지털이 낮이라면 아날로그는 밤이다. 양과 음이 같이 필요하고, 낮과 밤도 다같이 필요하다. 낮만 존재하고 밤이 없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지루하고 피곤할까?

MS의 CEO 사티아 나델라도 저서 <히트 리프레시>에서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 AI시대를 맞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계와 인간, 인공지능과 인간노동을 대립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결코 그럴게 아니라는 것이다. 기계와 인간은 대립할 존재라기보다는 협력할 대상이라고 본다.

이런 관점들을 종합해보면,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오래된 비밀은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대립적인 관점이 아니라 통합적인 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래된 것들이 가진 매력적인 가치에 기초해서, 새로운 것이 가진 효용과 융합하거나 새로운 것이 가진 한계를 보완하는 통합적인 관점에 있다. 그것이 디지털과 아날로그, 인공지능과 인간노동, 젊은이와 고령자 모두의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오래된 비밀이다.

4. 오래된 것들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물밀듯 밀려오는 새로운 변화 속에서 그동안은 대립과 갈등의 이미지가 부각되어 왔다. 21세기의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오래된 것들이 새로운 것들에 밀려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아날로그는 디지털에 밀려 있었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간노동의 암울한 미래상이 강조되어 왔다. 젊은이와 고령자가 제한된 일자리를 두고 대립할 수밖에 없는 비관적인 이미지가 지배해왔다.

그러나 이런 어두운 이미지는 우리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대립적 고정관념 때문이다. 이제는 긍정적이고 통합적인 새로운 관점을 견지할 때다.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밤과 낮 모두가 필요한 것처럼,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아날로그와 디지털, 인간노동과 인공지능, 고령자와 젊은이가 각각 새로운 가치를 지니고 함께 꽃피울 수 있도록 하는 통합적 관점을 지향할 때다.

다행히 최근 비즈니스와 서비스의 현장에서도 이런 노력들의 움직임과 성과가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이 따라가기 힘든 감성적이고 감동적인 느낌, 체험, 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아날로그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의 도움을 받아 더 스마트하게 업그레이드된 아날로그 제품과 서비스도 많아지고 있다. 사라질 것 같았던 종이신문이 칼럼과 오피니언 중심으로 재편되어 품격있고 질높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디어로 재탄생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노동도 마찬가지다. 대립적으로만 보면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늘어나는 일자리, 줄어드는 일자리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통합적, 융합적 관점으로 보면 인공지능과 협력하는 일자리, 인공지능을 보완하는 일자리, 인공지능을 좀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일자리, 인공지능이 하기 힘든 일자리 등 일자리의 새로운 틀 모색이 가능하다.

젊은이와 고령자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대립적으로 보면 일자리의 레드오션만 존재한다. 고령자가 일자리를 얻으면 젊은이의 일자리 수가 그만큼 감소할 것이라는 가정이다. 그렇지만 통합적으로 보면, 서로 협력해서 가능한 새로운 일자리를 얼마든지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젊은이의 일자리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고령자만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 수 있다. 관점을 바꾸고 블루오션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만 가지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래된 고전처럼 세월을 견디어낸 모든 오래된 것에는 새로운 것만큼이나 매력적인 나름의 가치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미래는 새로운 것들만을 위한 세계는 결코 아니다. 관점에 따라, 만들기에 따라, 오래된 것들의 새로운 미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새로운 것들과 오래된 것들이 조화롭게 공생하는 그런 행복한 미래를 함께 그리고 만들면 좋겠다.

◇ 필자 소개 : 김현곤 베스핀글로벌 상임고문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친뒤 일본 쓰쿠바대학교에서 사회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 부원장을 역임했으며, 미래학회 부회장으로 활동중이다. 현재 베스핀글로벌 상임고문으로서,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특임교수를 맡고 있다. 지난 30년간 IT와 미래사회를 연구해왔고, 현재는 고령사회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인생 르네상스 행복한 100세>, <미래 만들기> <모든 비즈니스는 서비스로 통한다> 등의 저서를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부지런하고 발이 넓은데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춰 '미래 디자이너' 또는 '사회 디자이너'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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