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이터로 분석한 명절 민심 살펴보면 정치권에 미치는 파워가 실감난다"
추석명절은 지역, 세대, 직업의 벽을 모두 뛰어넘어 개개인의 의견이 종횡무진 개진되는 일종의 '용광로'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일 년 중 가장 풍성한 시기가 추석 연휴다. 오곡이 익어가고 온갖 과일이 영그는 계절이다. 폭염으로 시달렸던 여름이 가을로 접어들며 하늘은 높아지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다.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던 친척들이 모여드는 대화합의 무대인 추석 명절이 훌쩍 지나갔지만 여전히 여운이 남는다. 추석 명절이 민심의 ‘용광로’는 이유는 분명하다. 민족의 대이동을 통해 민심이 뒤섞이는 것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 역시 각도에 흩어져사는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지의 민심을 전하고 나누면서 이미 그같은 민심 혼합현상이 일어났을 터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연휴기간동안 1일 평균 611만명이 이동하고 추석 당일인 24일에는 최대 760만명이 움직일 것으로 분석했다. 짧은 기간동안 인구의 절반 이상이나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는 셈이다. 지역이동이 활발해지면서 특정 지역에 갇혀있던 여론이 움직인다. 평소에는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의미있는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추석 연휴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설날이 연초에 있는 명절이라 한 해의 계획과 서로 주고 받는 덕담의 자리라면 추석 명절은 '평가'의 성격이 짙다. 한 해를 마무리하기 직전에 얼마나 발전이 있었는지 묻게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지역의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한 해동안 잘해 오고 있는지를 알리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특히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의 추석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지난 대선이 탄핵 결과로 5월에 실시되었지만 1987년 직선제 개헌이후 대통령 선거는 4년 주기로 펼쳐지는 12월의 대형 행사였다. 대통령 선거를 100여일 앞둔 추석은 대통령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기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이번 추석 연휴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 선거나 총선을 앞둔 시기는 아니지만 한반도 운명에 매우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2박 3일 일정으로 평양을 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난마처럼 얽힌 북미관계를 복원하는데 있어 문 대통령이 ‘수석 협상가’ 역할을 해 줄 것을 학소고대하고 있다. 남북문제 뿐만 아니다. 지난 지방선거 이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가파른 하락세다. 추석 연휴동안 만들어진 민심은 ‘장터효과’를 발휘한다. 시장에 모인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이 변화된 여론을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경제 지표가 악화되면서 문 대통령은 북한 방문 직전 막다른 골목에 선 모습처럼 비쳐졌다. 지지율이 추가 하락한다면 문 대통령의 개혁 동력은 기로에 서게 된다. 논란 많은 인사 청문회가 동시에 실시되고 있기 때문에 지지율에 미치는 파장은 배가 된다.

문재인 정부 2기 운명이 추석 연휴 민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의도 정치권의 운명 역시 다르지 않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함께 했다. 사실상의 공동 운명체를 의미한다. 자유한국당은 평양정상회담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 연일 견제구를 던지지만 보수층에 미치는 반향은 별로 크지 않다. 문 대통령의 평양방문으로 당장 실익을 얻는 쪽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지난 17~19일 실시한 조사(전국1505명 무선전화면접 및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2.5%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8.3%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어느 정당을 지지하거나 약간이라도 더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본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45.1%로 같은 조사기관의 직전 조사보다 5%포인트 가까이 올라갔다. ‘평양 효과’가 아닐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20%대 지지율을 유지하지 못하고 17.4%로 뒷걸음질 쳤다. 정의당은 8.2%, 바른미래당 6%, 두명의 소속 의원이 특별 수행단으로 평양행에 오른 민주평화당은 2.7%였다. 드러난 수치만 놓고 보면 문 대통령의 평양방문은 집권여당에 호재다. 변화는 시작되었다. 추석 연휴를 관통하는 민심에 따라 정치권은 요동치게 된다. 추석 민심이 정치판을 확 바꾸는 이유는 지역은 물론 세대와 지역까지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추석 민심이 정치권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첫 번째 이유는 ‘지역’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경향 각지로부터 모인 친척들은 특정 지역의 여론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가장 큰 지역 격차를 설명하는 단어가 ‘영호남 지역 감정’이었다. 하지만 이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분석이다. 김대중과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대결 구도가 매우 첨예하던 시대에나 적용가능한 이야기다.

최근의 상황은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 더 큰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추석 명절에 모인 가족들 중 서울에 살고 있는 친척과 고향 마을을 지키는 있는 친척 사이의 생각은 천양지차다. 일자리, 부동산,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제 등의 주요 현안들은 지역별로 시각차가 뚜렷하다. 수도권과 지방의 교육적 격차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정부가 국가교육회의를 통해 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대학입시 제도 개편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접근 방식은 완전히 엇갈린다. 영호남이 아니라 중앙과 지방 차이다. 여기에 문 대통령의 평양 정상회담이 인사 청문회를 포함한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이슈 블랙홀’이 되고 있지만 먹고 사는 문제는 추석 연휴의 가장 뜨거운 주제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지역을 초월해 모인 친척들이 곳곳에서 무한토론을 벌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의하는 내용도 있을 것이고 공감하지 못하는 주장도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9·13 주거안정 정책에 대한 지역별 반응은 선명하게 달랐다.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를 받아 지난 14일 실시한 조사(전국500명 무선전화면접 및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4.4%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8.2%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강화, 주택담보대출 제한을 중심으로 한 주택시장 안정방안을 발표했는데 부동산 투기 억제와 집값 안정화라는 측면에서 정부의 9.13 주거안정 부동산 대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어 보았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적절하다는 의견은 31.9%였다. 미흡하다는 응답은 39.4%였고 9.13 주거안정 대책에 반대한다는 평가는 5명 중 1명 수준(19.8%)이었다. 지역 여론은 완연히 나누어진다. 서울에서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적절하다’는 평가가 37.7%로 가장 높았다. 미흡하다는 의견은 33.8%였고 반대는 20.2%였다. 그러나 거의 400여 km 떨어진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민심 반응은 정반대였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적절하다는 여론은 17.7%였다. 미흡하다는 응답이 55.2%로 절반을 넘었다.
경남을 중심으로 아파트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면서 지방의 부동산 민심은 도를 넘을 정도로 싸늘해졌다. 지방 아파트의 매매 가격 급락으로 이른바 지방 부자들은 서울 강남 지역을 재테크 수단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흉흉한 소식까지 들린다. 이런 기현상은 추석 연휴 후에 더 심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서울 친척들은 지방 부동산 소식을 접하고 지방의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친척은 서울에서 온 가족들의 이야기에 솔깃해진다.

정부가 재빠르게 주거안정 대책을 내놓았지만 안심하기 이르다. 추석을 관통한 민심이 어떤 종합적인 평가를 내놓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가 없다면 이렇게 지역 초월의 민심이 폭발적으로 만들어 질 수 있을까. 인터넷 공간이나 SNS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와는 전혀 다른 신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추석 민심이다. 지역을 초월한 민심이라 정치권에 던지는 충격파는 몇 배 더 커진다.

추석 민심이 정치권을 확 바꾸는 두 번째 이유는 ‘직업’을 넘어선 힘이다. 추석 명절에는 다양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친척들과 조우하게 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기 업종의 네트워크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거의 주5일 내내 반복적 삶을 사는 직장인들에게 다른 환경을 접하게 되는 경우는 고작해야 친구들과의 모임이다. 그렇지만 대학교 동기들만 하더라도 직업의 성격차가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일의 내용은 다를지라도 비슷한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대기업에 다니고 누구는 직장 다니다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되었다는 정도 차이에 머무른다. 하지만 명절날 만나게 되는 친척들은 다르다. 호프집을 경영하는 사장님도 있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하고 푸드트럭으로 창업을 한 조카도 만나게 된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제와 근로시간 단축제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산업환경에 다양한 영향을 주고 있다. 문제는 직업별로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같은 회사내에서 또는 같은 업종내에서 가지는 인식은 대체로 비슷한 공감대가 만들어진다. 자영업층이 아무리 어렵다고 몸부림을 쳐보아도 일하는 환경이 다른 화이트칼라층(사무직)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속내를 서로 털어놓을 계기조차 없다.

그러나 명절은 다르다. 추석 연휴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무엇이 어려운지를 이야기하다보면 평상시에 털어놓지 못한 갖가지 어려움을 여과없이 나누는 기회가 만들어진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지난 8월 28~30일 실시한 조사(전국1000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13%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대한 평가를 물어봤다.

‘잘하고 있다’는 긍정평가 26%였고 ‘잘 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절반을 넘었다(53%).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경제 평가 점수가 취임 초부터 형편없지는 않았다. 같은 조사 기관에서 지난해 8월 16~17일(약 1년여 전) 실시한 조사에선 ‘잘하고 있다’는 긍정평가 54%로 절반을 넘었다. 부정적인 평가는 고작 17%에 불과했다. 1년 사이에 정반대로 바뀐 모양새다. 전체적인 평가의 변화 추이에 주목하게 되지만 직업별 차이는 더욱 충격적이다. 취임 100일 즈음해 실시했던 정책 평가 조사(2017년 8월 16~17일)에서 자영업층의 경제 정책 평가는 호의적이었다. 잘 했다는 긍정평가 48%, 부정평가 27%였다. 화이트칼라층은 긍정평가 65%, 부정평가 13%였다.

하지만 가장 최근 자영업층에서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긍정평가는 22%였고 부정평가는 64%였다. 자영업을 하는 3명 중 2명은 정부의 ‘경제 정책’이 잘못됐다는 평가로 나타났다. 전반적인 부정 평가에도 불구하고 화이트칼라층은 41%가 긍정적이었고, 42%는 부정적이었다.
자영업층 관련 경제지표가 악화되면서 정부정책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 역시 내리막길이다. 평소 다른 직업계층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친지 그리고 친척들의 한바탕 속사정을 듣게 되는 한마당이 추석 명절 연휴다.

경제 현안에 대한 입장이 전혀 다른 자영업층과 화이트칼라층이 언제 어디서 의견을 함께 나누겠는가. 문재인 정부 2기 들어 여당도 야당도 이구동성으로 경제를 강조하고 있다. '무항산 무항심'. 바로 먹고 사는 문제가 정치판을 덮고 있는 최대 이슈다. 자영업층과 화이트칼라층의 민심이 뒤섞이는 추석 연휴야말로 정치판을 확 바꾸는 도화선 역할을 한다.

추석 민심이 정치판을 확 바꾸는 세 번째 이유는 민심도 ‘세대’도 초월한다는 점 때문이다. 직계 가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또래집단과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집단이기 때문에 여론의 큰 변화는 없다. 추석은 사뭇 다르다. 아직 기저귀를 차고 옹알이를 하는 갓난아기부터 100세 가까운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한데 어울린다. 민심의 용광로이면서 세대의 도가니가 추석 명절이다. 세대를 초월하여 경계심을 풀고 생각을 나누는 기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추석명절은 친척과의 만남이기 때문에 뜬금없이 쏟아내는 훈계에도 감정적 반응을 가급적 자제하게 된다. 어떤 이슈가 세대를 초월해 등장할까. 다른 어떤 이슈보다 세대인식이 다른 주제가 ‘남북관계’다. 예상하지 못하는 많은 변수가 발생하는 주제가 ‘남북관계’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석 연휴를 코앞에 둔 지난 18일 평양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가졌다.

능라도의 5.1 경기장에서 집단체조를 보고 난후 7분간의 문 대통령 연설은 우리 역사 최초이기도 하지만 그 감동은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평양 순안 공항을 떠나 삼지연 공항을 거쳐 백두산 천지에 오른 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천지를 배경으로 한 사진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이 되었다. 파격에 파격을 거듭한 평양방문이었다. 아직 여론 반응이 다 모아지지 않았지만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과 평양공동선언은 그 자체로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다.

tbs의 의뢰를 받아 리얼미터가 평양정상회담 둘째 날까지의 여론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직전조사보다 약 6%포인트 껑충 올라간 59.4%로 나타났다. 평양 정상회담의 모든 일정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더욱 올라갈 가능성까지 열려 있다. 지난 지방선거 직후 80% 가까이 치솟았던 지지율이 40%대 후반까지 곤두박질쳤던 문 대통령 지지율이었다. 40%대 초반을 넘나들던 부정평가는 33.8%로 내려왔다.
지지율이 더 하락한다면 각종 개혁 공약은 동력을 상실하고 만다. 특히 악화된 여론은 추석을 통해 더욱 심화될 공산이 컸었다. 평양정상회담이 추석 연휴 기간 동안 도미노처럼 무너질 위기에 처한 대통령 지지율을 심폐 소생시킨 형국이다.

하지만 세대간 인식차를 완전히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비핵화에 대한 온도차는 존재하는 만큼 추석 밥상머리에서 민감한 토론은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갤럽이 지난 8월 말(28~30일) 실시한 자체조사에서 남북관계 대한 세대간 평가는 차이가 분명했다. 전체적으로 ‘잘하고 있다’는 평가 58%로 압도적인 편이었지만 50대는 53%가 긍정적이었고 37%는 부정적이었다.

반면에 대통령과 여당의 핵심 지지기반인 30대는 남북관계를 ‘잘하고 있다’는 평가 66%, ‘잘 못하고 있다’ 평가는 20%대에 그쳤다. 문 대통령 취임 6개월경의 조사(2017년 10월 31일~11월 2일)에서 세대차는 더 극명했다. 전체적으로는 ‘잘 했다’는 긍정평가 45%였고 부정평가는 32%였다. 남북관계가 지금과 비교하면 좋지 않을 때였다. 세대간 차이는 두드러졌는데 30대는 54%가 긍정이었고 50대는 41%였다.
50대가 전통적인 보수 성향에서 많이 벗어나 ‘신진보세대’라는 평가까지 얻었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보수성은 명백히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석 밥상머리에 앉아 솔직담백한 대화를 나누면 숨길 수 없는 게 이념적 성향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세대차는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평양방문으로 이번 추석 연휴는 친척 가족들이 만날 때부터 헤어질 때까지 북한 스토리로 가득 채워질 가능성이 안 보아도 비디오다. 여의도 정치권도 추석 연휴를 가로지르며 만들어지는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에 따라 일전을 불사해야 할 처지다.

대통령과 여당이 요구하는 ‘판문점 선언’에 대한 비준(평양공동선언으로 비준의 범위는 더욱 구체화됨) 요구를 차일피일 미루기도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세대간 이념 간극이 전면 충돌하는 추석 연휴야말로 하반기 정치판을 확 뒤집어 놓게 된다.

설날 명절과 추석 명절은 엄연히 다르다. 한 해의 시작과 마무리라는 점에서도 다르지만 설날보다 훨씬 더 많은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무대라는 점도 다르다. 시시콜콜히 가족들의 안부와 친척들의 안녕이 더 궁금해지는 명절이 추석이다. 추석의 정치적 의미가 더욱 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대를 초월하고 지역을 초월하고 직업을 초월하는 추석 민심은 정치적인 변화의 바로미터가 되어 왔다. 이명박과 박근혜 두 후보가 첨예하게 경쟁하던 한나라당의 대선 구도는 경제가 가장 큰 화두였다. 두 인물의 불꽃 튀는 라이벌전은 2006년 추석을 지나면서 승부가 일단락됐다.

2006년 추석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단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추석 민심이 가져온 더 큰 변화는 2002년 대통령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대통령 선거의 실패이후 절치부심했던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거침없는 대선 행보를 이어나갔다. 대세론을 몰아가던 참이었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의 큰 물결을 거역하지 못했다.

2002년이 어떤 해였는가.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는 히딩크 매직을 보았고 전무후무한 월드컵 4강의 자리에 뛰어 올랐다. 이 여세를 몰아서 대선후보로 급부상한 인물이 정몽준 전 의원이었다. 그러나 여름을 지나며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주춤했고 이회창 후보쪽으로 기울어지는 판세였다. 반전의 흐름은 추석 민심으로부터 출발했다.

두 후보는 반 이회창 전선으로 이어졌고 민심은 단일화를 요구했다. 결국 추석민심을 바탕으로 단일화 과정을 거쳐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의 대항마로 결정된다. 노 후보의 지지율은 수직 상승했고 결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추석민심은 놀랍고 무섭다. 이번 문 대통령의 평양방문 직후 민심은 남북관계 확대에 긍정적이다.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를 받아 지난 19일 실시한 조사(전국501명 무선전화면접 및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4.4%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8%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보조를 맞추면서 북한의 비핵화 이전에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결과 ‘남북 교류, 협력 확대’에 대한 찬성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찬성 58.6% vs 반대 29.1%).

다만 여론 대결은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다. 추석 연휴가 이미 끝났기 때문에 곧바로 민심에 변화가 오기도 하고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 민심이 변하기도 한다. 연휴 기간동안 하루 평균 약 600만~700만명이 이동하는 추석은 그야말로 민심을 변화시키는 용광로인 셈이다. 다른 휴일과 절대적인 차이는 규모와 영향력이다.

추석 직후의 민심은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하다. 민심에 따라 대통령의 공약 추진 여부가 결정되고 집권 여당의 ‘20년 장기집권 플랜’이 공수표인지 치밀한 계획인지 평가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야권은 어떤 정치개편을 해야하는지 또는 말아야 하는지 나름의 청사진을 얻게 될 터이다. 추석 명절은 여론형성에 이토록 중요한 의미가 있디. 지역, 세대, 직업의 벽을 모두 뛰어넘어 개개인의 의견이 자유롭게 종횡무진 개진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이 추석이라는 '용광로'를 통해 쏟아내는 말들을 귀담아 듣고 실천에 옮기는 바로미터로 삼기를 기대해본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더욱 실감날 것이다.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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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8/09/28 15:23:25 수정시간 : 2018/09/28 15: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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