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행 법무법인 동안 대표변호사 "길을 만들고 함께 걸어야 새로운 시대도 열린다"

법무법인 동안 조민행 대표 변호사.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조민행 법무법인 동안 대표변호사] 우리 민족에게 8월은 치욕과 기쁨이 교차하는 달이다. 1910년 8월 29일 소위 ‘한일병합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종말을 고했고, 이후 혹독한 36년 일제 식민지를 거쳐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기쁨을 맛봤다. 국권 상실과 해방이 모두 8월의 염천에 이뤄졌다. 올 여름은 남북을 불문하고 한반도 전체가 찜통처럼 뜨거웠다. 서울 최고 기온이 40도에 육박하고, 그 춥다는 중강진도 수은주가 40도를 넘었다고 한다.

4월 남북정상회담과 6월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 간에 속시원한 뉴스가 나오지 않아서 더 더웠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남북관계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관세청은 지난 10일 국내 반입이 금지된 북한산 석탄과 선철을 불법으로 들여온 혐의로 국내 수입업자와 이들이 운영하는 법인에 대하여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또한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전 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 간부 김 모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여름이 온 것은 아니다’라는 서양 속담처럼 두 차례 정상회담만으로 단박에 한반도에 평화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했다.

필자는 광복절을 앞두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왔다. 서울과는 다르게 블라디보스토크는 간간이 비가 내리고 제법 선선했다.‘동방을 지배하라’는 의미를 가진 이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숙연함이다. 이 지역은 구한말과 일제 식민시기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의 피난처이자, 나라를 되찾자는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이범윤, 최재형, 이상설, 안중근 선생, 그리고 이름 모를 독립 운동가들이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를 거닐며 고향을 그리워했고, 현재‘독수리 전망대’가 있는 언덕에 올라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독립운동의 결의를 다졌을 것이다.

이곳에서 8월 14일 현대글로비스와 러시아 물류기업 페스코(FESCO) 사이에 업무협약서가 체결되었다. 페테르부르크 현대자동차 공장에 공급되는 자동차 부품 64FEU(1FEU는 40피트 컨테이너 1개)를 실은 정기 급행 화물열차(블록트레인)가 국내 최초로 블라디보스토크역을 출발했다. 부산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갈 때는 현대글로비스가 선박을 이용해 운송을 하고,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기차로 가는 운송은 러시아 기업 ‘페스코(FESCO)'가 담당하는 운송체계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중간 기착지 없이 화물을 직송해 운송 시간을 최대한 단축한다. 기존 해상운송의 경우 43일(약 2만2000㎞)이 걸리는 반면에 이 블록트레인을 이용하면 22일(1만600km)로 단축할 수 있다. 그날 출발한 기차는 자작나무숲을 지나 서쪽으로 쉬지 않고 초원을 달려 며칠 후면 바이칼 호수를 지날 것이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하였다. 문 대통령은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 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한다”며 “이 공동체는 우리 경제지평을 북방대륙까지 넓히고 동북아 상생번영의 대동맥이 되어 동아시아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바야흐로 철도가 남북화해협력을 넘어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건설의 중심 테마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지난 4월 남북정상은 일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남북은 지난달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 북측 연결구간에 대한 공동점검을 벌였고, 이달 말 북측 구간 공동조사를 앞두고 있다.

동해선과 경의선을 연결하자는 것은 끊어진 길을 단순히 잇자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반목과 질시로 멀어진 남북 사이에 상호 이해와 대화의 통로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남북 간 철도와 도로의 연결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시작이고, 우리 민족 앞에 놓인 대도약의 신호탄이다.

9월이 오면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하고, 우리 민족은 1948년 남북 분단 이후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남북한은 물론 정전협정 당사국인 미국, 중국과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거쳐 종국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발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1953년 이후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간다는 것은 사실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1,300여 년 전 북방초원을 석권했던 돌궐제국의 재상이었던‘ 투뉴쿠크’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리는 듯 하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기필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현재 한반도에는 남북을 불문하고 오직 두개의 정치세력만 존재하는듯 싶다. 물론 지나친 이분법적 시각일수도 있다. 하나는 한반도에서 남북이 서로 철옹성을 쌓고 적대시하며 살자는 세력.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남북 화해 협력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길을 닦고 이 길을 유라시아대륙으로 확대하자는 세력.

투뉴쿠크의 경고를 귀담아 듣는다면 우리는 당연히 성을 쌓는 대신 길을 닦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철도, 도로 연결은 올해 안에 착공식을 갖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국무총리실이든 국토교통부든 정부는 즉시 ‘동아시아철도공동체’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바람이 분다. 가을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남북 간에 쌓은 '성'을 허물도록 하자. 그 대신 흙길도 좋고 철길, 바닷길도 좋으니 우선 길부터 내자. 하늘 길까지 열리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을 따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담대하게 발걸음을 내딛어보자. 길을 열고 그 길을 걸어야 새로운 시대도 열리지 않겠는가. 다만 우리 모두 함께 걸어야 그 길이 '대도(大道)'가 될 것이다.

■ 조민행 법무법인 동안 변호사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근무했고, 사법시험도 통과해 현재 법무법인 동안의 대표 변호사로 재직중이다.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남북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새로운 세계를 여는데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한반도종단철도(TKR)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돼 남북경협과 북방경제협력이 본격화되는 날을 꿈꾸는 '실천적 이상주의자'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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