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기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 겸임교수(비티엔 대표)

[데일리한국 전문가칼럼 =김응기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 겸임교수] 한반도 현안에 몰입하던 문재인 정부가 고비를 넘기고 탈4강 신(新)남방정책 일환으로 오는 7월 초 인도 수도 델리에서 정상외교회담을 갖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후 필리핀, 인도네시아 그리고 베트남 등 아세안 주요 국가를 방문하면서 신남방정책을 가동해왔다. 하지만 그 이후 여러 현안 때문에 인도 방문이 미뤄져오다가 남북한 이슈가 어느 정도 가닥을 잡으면서 가까스로 7월 방문이 이뤄지게 됐다. 문대통령은 취임 이후 순방에 나섰던 동남아시아 국가 순방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인도방문에서도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거듭된 초청 끝에 대통령의 인도방문이 성사되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훈훈한 합의를 기대하기에는 속사정이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소 늦더라도 문재인정부가 인도에 대한 인식과 정책기조를 면밀히 살펴 상황변화를 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선 인도에 대한 현실 인식이 새로워져야할 필요가 있다. 인도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5월말 서울에서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선을 위한 5차 회담이 열린다는 발표와 함께 회담내용을 알리는 보도자료가 회담 전부터 공개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회담 이후에는 한·인도 어느 쪽으로든 공동보도문은 커녕 이후 6차 개선회담이나 전망에 대한 발표를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주한 인도대사관 소식통으로부터 저간의 사정을 전해들으면서 짐작할 수 있었다. 인도정부 대표단은 한국대표단과 회담 전 인도대사관 내부 간담회에서 한국정부의 현안 인식을 성토하면서 협상 에 기대를 접다시피 했다고 한다. 회담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등의 압박 자세를 취했다는 전언이다. 그런 탓에 현안 논의가 원할하지 못했던 것이다. 5차 개선회담이 부진했던 데는 인도의 내부기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한국의 협상대안 부재가 원인일 수 있다.

2016년 시작된 CEPA 개선협상이 그 동안 중간발표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지지부진해 전임 박근혜 정부 시절 양국정상회담에서 약속된 개선시한인 2017년을 훌쩍 넘긴 것은 물론, 문재인 정부에 와서도 이후 한 발자국도 진전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혼돈 속에 있고 그 와중에 7월 인도 정상회담을 목적에 둔 상황이 됐다.

인도정부의 CEPA개선 협상자세에 적극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한국의 협상창구 주변 이야기가 애초부터 있었던 것만 감안해도 한국을 대하는 인도의 태도가 과거와 비교해 달라졌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도는 한국와의 교역에서 80억 내지 100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언급하면서 양국 교역 상황이 더욱 악화돼 가는 것에 한국의 성의 부족을 비난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인도에 대한 정책적 배려없이 추가요구 사항만 주문하는 한국의 협상태도를 지적하면서, CEPA가 상품교역위주로 개선되면 한국에만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지경에서 개선 논의를 서둘러 이어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온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인도정부가 한국을 동반자로서의 가치평가에서 아직도 타 아시아 국가보다 더 나은 지 그리고 유효한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됐다는 충격적인 언급도 있었다고 한다.

인도측에서 한국을 이전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르게 생각했다기보다 실망했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세계화 시대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위상이 달라진 인도에는 한국을 대신할 옵션이 다양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대적 가치가 저하된 것이다. 동남아 순방국가에서 환대받던 것과 다른 현지분위기가 인도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신(新)남방정책에서 인도를 곁다리로 두면 결코 안 된다 누구보다도 앞선 1990년대에 인도에 진출, 성공신화를 이끌어낸 한국전성시대와 달리 지금의 인도에겐 한국을 대신할 파트너가 다양해졌는데 그중 일본 조커가 있다. 변해가는 인도에 눈을 뜬 한 일본공무원이 2005년에 쓴 "인도를 읽는다!"에 영향을 받은 일본사회는 2006년 NHK방송이 주도해 인도를 심층취재했다. 취재하면서 상상 그 이상으로 변하고 있는 인도로부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생생하게 2007년 1월에 프로그램으로 방영하고 또 책으로도 출간했다.

그 이후 계몽된 일본정부와 기업 그리고 사회가 인도와 다방면에서 교감을 넓혔다. 그 결과 오늘에 이르러서 일본의 인도 진출은 내용과 외형에서 한국을 크게 앞질러 인도에 세워진 기업단위가 2017년 12월말 기준 약 4800여개이다. 이에 비해 먼저 진출한 한국은 인도가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21세기 이후엔 정부, 기업 그리고 일반사회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인도를 상대로 비하하거나 주저하더니 현재에 이르러 인도시장에 세워진 한국기업단위는 서비스업종 및 자영업 수준을 망라해도 최대 500여개 정도로 일본과 비교해 크게 뒤떨어졌다. 더군다나 최근 진출을 시작하는 중국에 비해서도 차이를 보이는 형편이다.

뿐만 아니라 인도를 높게 평가하는 세계 시선이 늘어가는 상황인데도 한국은 경쟁국에 비교해 뒤처짐에 대한 경각심은 커녕 이미 존재했던 인도조직마저 축소시키고 폐쇄하고 있다. 기업에도 일부 있겠지만 정부단체 조직에서 더욱 심했다. 이런 분위기가 과거정부에서였고 다행인 것은 문재인 정부는 공약으로 아세안을 겨냥한 신(新)남방정책을 세우고 이에 인도를 포함시켰다.

그렇지만 우려되는 바는 인도를 대상국에 더한 것에 그치고 인도가 만만치 않은 대상이라고 그저 곁다리로 두고 아세안 위주로만 정책을 펼치는 패착을 해선 안 된다. 최근 발족된 정부기구와 산하 조직에서 인도를 포함한 신(新)남방정책기구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인도 전문가 없이 운영되는 등 인도를 곁다리로 두는 실정을 보면 이런 염려가 단지 기우만이 아니다.

아세안보다 우선할 수는 없어도 인도를 후 순위에 두지 말고 동등한 비중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인도는 한국경제에서는 물론 “Act East’를 앞세우고 아시아로 나선 인도가 만들어 내는 국제정치관계에서도 비중이 크고 또 계속 커진다는 명백한 사실 때문이다. 인도를 단일 정책대상국으로 봐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최소한 신남방정책의 축으로 ‘아세안 플러스 인도’라는 미래비전으로 명실상부하게 다루어야 한다.

인도는 피할 수 없는 상대, 일방적 시장으로만 대해서 안 되고 포괄적 동반자로 여기고, 인도를 중시하여야 함은 정책논리에서도 그렇지만 대하는 마음자세에서도 그래야 할 것이다. 최근 한·인도 양국은 각종 통상관계 논의에서 각자 입장만을 고집하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현안타결에 대한 의지 여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데, 목마른 이가 먼저 우물판다는 격언대로 한국이 우선적으로 인도에 대한 스탠스에 변화를 줘야 한다.

글로벌 수출시장을 추구하는 한국 형편에선 인도가 넥스트차이나, 세계 2,3위 거대시장으로서 우리에게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필수 대상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중요한 점은 인도를 오로지 점령하여야 할 시장으로만 대해서는 안 된다.

시장으로서 비교우위에 있는 우리가 직접적인 교역의 이익을 취할 수밖에 없겠지만 국제지역정치 구도에서는 인도에 대한 직접적 지지를 표명하는 것까지는 당장엔 어렵겠지만 최소한 한국에 우호적 지지를 기대할 수 있을 정도의 친인도적 중립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 인도가 그렇게도 갈망하는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한국의 반대적 무반응 태도에 대해 인도정부 내에서도 불만이 적지 않다.

이 까닭에 이후 각종 통상협력에서 한국이 우선시되지 않고 일본이나 기타 아세안 국가 등으로 인도의 관심이 옮겨지고 있다. 결국 한국기업의 시장점유에 대한 인도의 방해 또는 타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인 비우호적 조치로 인한 손해는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게 된다.

문화교류에 있어서도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 국토면적의 33배이고 남한인구의 22배 이상인 인도에서 여느 아시아 국가처럼 일방통행 한류전파에만 급급하다면 이는 패착이다. 힌두 근본주의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현 인도정부의 힌두문화 정책과 상충되는 한류에 집착하는 것은 인도관계에서 스스로 발목 잡히는 역방향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인도는 동남아에서 일고 있는 한류 효과 그대로 기대할 수 없는 독특한 이해가 필요한 별정지역이다. 인도 동부에 쓰나미가 발생해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 손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한국정부의 금전적 구호를 거부했다. 한국은 인도가 원조를 받아야 할 상대가 아니라는 이유로 여태까지 한국정부의 공적원조가 들어간 사례가 없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감성적 요소인 문화에서도 한류전파를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는 역발상으로 인도가 펼치는 힌두문화 글로벌 정책에 호응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이후 한국문화전달에 훨씬 전략적이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 특히 인도에선 그렇다. 1년 전 일본의 정부단체가 인도 뉴델리 인근 신흥도시인 구르가온에 ‘카레를 알게 해줘 감사하다’라는 거리간판을 세워 카레의 본고장 인도인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의 의도된 연출 때문인지 인도 내 특급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 등에서 스시와 벤또 등 일본음식이 점차 유행하고 있다. 문화 자부심이 강한 인도에 대한 문화진출 전략은 여느 국가와 다르게 인도를 우선 인정하는 가운데 동행되어야 효과적이다. 포괄적동반자 기조로 상호 호혜적 태도로 대해야 한다. 시장의 성격을 살펴보면 인도는 거대한 시장임은 틀림없으나 직접 수출하는 것으로만 이를 누리겠다는 발상은 21세기 인도경제 성장이후에선 옳은 전략이 아니다.

수출 일변도로 드라이브 한다는 것은 시대상황에 맞지 않은 단편적 판단이며, 덤핑 과세로 비관세 장벽이 추가되는 등 상대방을 자극하는 2등 전략이다. 인도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Make in India’에 동승, 인도의 천연자원, 인적 및 문화자원을 활용하면서 인도경제도 고용과 생산유발효과를 주면서 인도를 매개로 세계화 진출이란 실익을 나눠야 한다.

2010년 여느 자유무역협정(FTA)보다 먼저 실시되는 과정에서 제한품목에 묶였으나 이후 타국 FTA에서는 개방된 제품들은 CEPA개선협상 이전에라도 선제적으로 수용하는 등 상품교역에서 인도 요구에 대한 긍정태도로 여건을 원만하게 조성하고 이후 투자진출에 필요한 한국의 요구가 관철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서비스 분야에서도 과민할 필요가 없다.

기득권을 지닌 한국 내 일부에서 반대한다는 것을 이유로 타국에 이미 개방된 항목을 인도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 인도는 우리 대신에 선택할 대상이 아시아에서도 중국과 일본 등으로 여럿이겠지만 우리로서는 인도 외에 그만한 정도의 시장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를 인정하고 주어야 할 것은 과감히 내어주는 포괄적 동반자와의 상호 호혜적 태도로서 현안인식이 결과적으로 대(對)인도 전략에서 총체적 플러스를 가져올 것이다.

남북, 남미 그리고 남북미 관계에서 상대의 입장과 필요를 이해하고 그에 우리의 이해와 요구를 절충하는 운전자 역할을 이끌어가는 문재인정부 외교쾌거의 경험을 과거 정부의 인도무지 내지로 인해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구도로 변질된 한·인도 관계를 개선 발전시키는 데에도 적용해야 한다. 촛불로 세워진 새로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인도 전략에서의 기대이다.

■ 김응기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 겸임교수. 비티엔 대표 프로필

1991년이후 인도와 무역업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인도경제의 성장과정에 직접 참여했고, 이를 바탕으로 인도경제와 한국관계에 대한 인사이트를 대학 강의, 경제단체 및 기업 세미나 그리고 언론 칼럼을 통해 일반에 알리고 있다. 28년 비즈니스 현장에서 축적된 직접 경험으로 형성된 인도시장 노하우로 한국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의 인도진출에도 도움을 주는 활동과 함께 기업인은 물론 일반인의 인도이해를 도울 '인도 출장 가이드. 2018'을 비롯, 4편의 책을 저술(공동집필 포함)하는 등 국내에서 손꼽히는 인도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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