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문재인 정부가 영국의 적기조례와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신중한 검토 필요한 시점"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전문가칼럼 =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에피소드1 : 중세유럽(프랑스)에서 사람들이 숲 속을 걷다가 독사에 물려죽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프랑스 국왕은 독사의 수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국민들에게 독사를 잡아서 정부에 가져오면 보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약 2~3년이 지난 후에도 독사에 물려 죽는 사람의 수에는 변화가 없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 프랑스 국왕이 조사를 해보았더니 프랑스 농촌에서 농부들이 뒷마당에서 독사를 키우고 있음을 알게됐다. 즉 독사를 잡아오면 정부가 보상을 해준다고 하니 숲속에서 독사를 잡기 보다는 독사를 집에서 키워 오히려 돈벌이에 나섰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숲속의 독사는 줄지 않고 독사에 물려죽는 사람의 숫자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셈이다.

#에피소드 2 : 19세기 중반 영국 정부는 당시 늘어나고 있던 자동차를 규제하기 위해 적기조례(Red Flag Act)를 발표했다. 1865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선포하여 1896년까지 존속했던 적기조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대의 자동차에 3명의 운전수를 태워야 하며, 그 중 한명은 낮에는 붉은 깃발 그리고 밤에는 붉은 등을 가지고 자동차에 앞서 55m 앞을 뛰어가면서 뒤에 자동차가 온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당시 최고 시속 40km였던 자동차의 최고속도를 6.4km이하로 제한하고 특히 시가지에서는 3.2km로 속도를 제한했다. 이러한 규제를 적기조례(Red Flag Act)라고 부른다.

적기조례

왜 이런 우스꽝스러운 법이 영국 정부에 의해 시행되었을까? 당시의 주요 교통수단은 마차였는데 자동차의 보급으로 큰 피해를 보게 된 마차협회가 영국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해 신산업에 불리한 규제를 만들어냄으로써 마차 산업을 보호하려 하는 과정에서 이런 기형적인 법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마차협회는 자동차를 ‘말 없는 마차(horseless wagon)' 라고 부를 정도로 마차 우선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즉 모든 관점이 마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새로운 산업으로 대두되고 있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비우호적인 것은 물론 반감이 매우 컸었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적기조례라는 괴이한 법이 태어났던 셈이다.

적기조례는 1865년 시행 후 30년 뒤인 1896년에 폐지됐으나 이미 영국 자동차 산업은 위축될 대로 위축된 상태였으며, 프랑스 및 독일 등 다른 나라의 자동차 산업은 일치감치 본궤도에 오른 후였다.

이러한 두가지 사례를 든 이유는 이 비슷한 상황이 21세기 한국에도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신산업이 대두되고 확산되려는 상황에서 정부가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산업을 규제하는 움직임을 보인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드론 산업이 지난 수년간 외국의 해당산업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케이스도 유사 사례로 보인다. 평창 올림픽 때 개회식과 폐회식을 아름답게 만들어준 드론 퍼포먼스를 보면서 어떤 이들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었을 터이다. 또 일부는 한국의 기술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평창올림픽 개·폐막식

그 당시 약 1,200개가 넘는 드론을 동시에 하늘에 띄워 그토록 멋있는 장면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려면 클라우드 컨트롤 기능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시에는 이를 맡아줄 한국의 드론기업이 없어 미국 인텔사가 결국 그 일을 담당하게 됐다고 한다.

한국의 드론 기술은 시작은 괜찮았으나 여러 가지 규제 때문에 다른 국가에 비해 발전 속도가 뚝 떨어졌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세계 드론 시장의 약 70%는 중국 기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미국 등 타 국가 기업들의 몫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드론에 대한 한국의 규제 내용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선 드론을 띄우려면 국토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드론이 공중촬영을 하려면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게다가 그러한 인가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는 것 또한 문제다. 아울러 인가가 제대로 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다 그 시간도 상당히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드론 강국 중국의 경우는 어떨까. 중국에서는 드론 회사가 스마트폰으로 관련 인가 신청을 하면 짧은 시간 내에 처리가 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드론 산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다. 아쉬운 것은 상당한 수의 드론에 대한 동시다발적 운용은 이미 우리나라도 수년 전에 개발한 기술이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겨울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 기업이 아니라 미국 인텔사에 그 업무를 맡겨야 할 정도였으니... 다른 나라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 우리는 느릿느릿 걷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바로 '규제'에 있음이 명확해졌다. 우리나라와 선진국은 규제의 기본 방향부터 다르다. 즉 우리나라의 규제는 포지티브 시스템(positive system)이지만 미국 등 선진국은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을 사용하고 있다.

포지티브 시스템은 ‘원칙적 금지’와 ‘예외적 인정’을 기본으로 한다. 즉, 기본적으로 금지를 원칙으로 하되 특별한 경우에만 인정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반면 네거티브 시스템은 ‘원칙적 허용’과 ‘예외적 금지’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즉, 기본적으로 허용을 원칙으로 하되 특별한 경우에만 금지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처럼 정부 규제의 방향이 다를 경우 그 규제를 받는 산업에서 성과가 벌어지고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드론 산업의 예를 들었지만 우리나라의 포지티브 시스템(positive system) 때문에 많은 산업에서 '정체'가 일어나고 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지난 십 수년간 정부가 바뀔 때마다 규제 축소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규제의 개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국가의 규제가 강하지 않은 골프 및 바둑 분야 등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여러 가지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이것이 국민의 생활과 국가경제를 위한다는 명분은 있지만 혹시 19세기 중반 영국의 '적기조례'와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 조하현 교수 프로필 :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 금융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경제가 사회현상 뿐 아니라 정치적 흐름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경제의 광범위한 영향력과 다채로운 파급효과에 대한 분석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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