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평창 이후'를 걱정하지 않으려면 각국의 의도를 정확히 읽고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한의 국가원수인 김영남이 대한민국 땅을 밟는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북한 고위급대표단을 이끌고 오는 9~11일 사흘간 한국을 찾는 것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김영남은 북한의 '명목상의' 국가 원수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다. 북한의 유일 권력 김정은이 김영남을 올림픽 고위급 대표단의 단장격으로 우리나라에 보낸 것을 보면, 북한도 이번 올림픽을 일종의 '기회'로 보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우선 북한은 자신들도 '보통국가'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장(場)으로 올림픽을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외국처럼 명목상의 국가원수를 보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은 올림픽을 미국과의 접촉 기회로 활용하려는 구상을 하는듯 하다. 즉, 김영남을 보냄으로서 미국의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와 급(級)을 맞춰, 기회가 되면 미국과의 접촉을 시도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북한의 의도는 김영남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김영남은 국제사회의 제재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인물이다. 그래서 미국이 북한과의 접촉을 원할 경우,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인물이다. 미국과 접촉하려는 북한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의도는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구상과 교집합을 이룰 수도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올림픽을 계기로 북한과 미국간 조우가 이뤄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미북회담을 진전시켜 북한 비핵화의 전기를 마련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던 '한반도 운전자론'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려는 포석도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북한 1인 권력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 부부장을 방한 고위급 대표단에 포함시킨 것은 북한이 이번 평창 올림픽을 정책 변화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이 평창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할 것이라는 소식이 나온 것과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김여정 방남 소식이 우리측에 통보된 것은 우연치고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문제는 그같은 구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생각이 관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포기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면 미국은 결코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핵과 미사일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복잡하게 꼬일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지금 여당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 동결을 전제로 대화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의견은 상당히 위험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북한 스스로 자신들이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호언하고 있으며, 미국도 북한이 핵은 완성했고, ICBM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는 마당에 핵 동결을 전제로 대화하라는 것은 자칫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그런 의도로 그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그같은 함정이 숨어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여당이 명심해야 할 것은 또 있다.

2017년 12월 30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2017년 11월 29일 5쪽 분량의 이행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의 천안함 어뢰 폭침 사건에 대응해 2010년 5·24조치를 취했으며, 이에 따라 한국 영해에서 북한 선박 운항을 포함해 북한 선박과의 '선박 간 이전', 남북 교역 등이 금지된 상황이라고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부분을 보면, 지금 만경봉호로 우리나라에 온 북한 예술단 본진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현재 이들이 만경봉호를 타고 오는 것을 사실상 묵인한 셈인데, 이는 우리 정부가 국제적 차원의 '대북제재 이행'의 사례로 꼽은 5·24 조치를 위반하는 모양새가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통일부도 이 점은 인정하고 있다. 통일부가 "우리 대북제재 5·24 조치가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입항을 금지하고 있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5·24 조치의 예외조치로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올림픽이라는 큰 행사를 위해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그럴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북한이 만경봉호를 타고 우리나라에 온 이유가 지금의 제재 국면을 테스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제재 국면을 흔들어 보겠다는 의도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국제사회 제재 분위기 속에서 우리 정부가 상당히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질 수도 있기에 더욱 그렇다.

여기에 대해 통일부는 "2013년에도 나진-하산 물류사업을 국익 차원에서 5·24조치의 예외사업으로 인정한 바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2013년의 5·24 조치와 지금의 5·24 조치는 전혀 다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즉, 2013년도에는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국제 사회의 제재 국면이 없었던 반면. 지금은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2013년도의 5·24 조치는 남북관계의 의미를 가진 조치라고 할 수 있는 반면, 지금의 5·24 조치는 우리 정부가 유엔 대북제재 이행 보고서에서 제재 사례로 들고 나올 정도의 국제사회의 제재조치의 일환으로서의 파악되는 조치라고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올림픽 이후를 생각한다면 이같은 예외 허용이 과연 우리의 외교적 입지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앞서 언급한 우리의 의도가 성공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남북 관계의 진전이 지금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부터 시작된 위기를 극복하는데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긍정적인 의미에서 문제가 풀리게 될 것이다.

지금 일부 언론들은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며, 한반도의 위기 국면에서도 전환점이 마련되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보도내용에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한반도 위기의 본질은 남북 간의 긴장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 대 국제사회라는 대결구도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거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과 같은 북한 도발에 의해 한반도 위기가 발생했다면, 이번 올림픽에서의 남북 단일팀 구성이나 공동입장과 같은 이벤트가 한반도 위기를 완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가지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조금 다른 차원에서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간의 화해 국면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게 만드는데 징검다리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우리만 이상한 모양새에 빠지게 될 확률이 높아보인다. 지금 우리는 남북화해 분위기에 도취돼 있을 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가 미국과 북한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문제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은 이런 북한과는 결코 대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미국 펜스 부통령의 언급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펜스 부통령 측은 이번 올림픽에 오는 이유가 "미국의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더구나 미국 측은 북한과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해달라고 우리 정부에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은 북한과 마주치기조차 싫다는 의미다.

또한 펜스 부통령은 평창을 방문하기 이전에 먼저 천안함 추모비를 탈북자들과 함께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번 북한에서 무참하게 고문을 받고 결국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모도 동행한다. 이는 북한 인권 문제를 지적함과 동시에 북한이 얼마나 무자비한 도발을 일삼는 집단인가를 강조하는 행보로 보여진다.

펜스 부통령은 미군 부대도 방문할 예정인데, 여기서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올림픽은 매우 잘 치러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며 “내 생각에는 곧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냥 쉽게 넘길 수 없는 말이다.

여기에 일본까지 가세하는 분위기다, 일본 아베 총리는 이번 올림픽에 오는 이유가 위안부에 합의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확실히 표명하려 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 말고도 북한 문제에 대한 미일 동맹의 확고함과 대북 강경 제재에 대한 미일의 확고한 공조를 과시하게 위함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결국 우리 정부의 의도대로 미국과 일본이 움직이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는 상황이 이렇다는 점을 감안해 무조건적으로 북한의 요구에 응하는 모습은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북한은 자기들 마음 내키는 대로 '통보'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알려왔다. 북한은 현송월이 오는 날짜도 마음대로 바꾸며 우리 측에게는 한마디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도 않았고, 금강산 남북합동 문화제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그리고 이번 북한 예술단 본진이 만경봉호를 타고 온다는 사실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런 북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이유를 묻지도 않았고, 만경봉호 이용에 대해서도 곤란하다는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았다. 단 한번, 금강산 합동 문화제 취소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을 뿐이다. 만일 이런 것들을 감내하는 대신, 북한을 움직여, 북한으로 하여금 핵 포기 의사를 밝히게 하고, 그래서 미국과의 회담자리를 마련할 수 있으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의 초석을 마련하지도 못하고, 북한의 일방적 행동만을 용인한 꼴이 된다면, 외교 무대에서 우리의 입장은 상당히 곤란해질 뿐 아니라, 미국에 또 다른 불신의 빌미를 제공해주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해 할 말은 해가면서 북한을 다뤄야 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 할 말은 하며 미국의 신뢰를 얻는데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은 그 어느때 보다 미국의 신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이른바 “코피 작전”이라는 단어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고, 중국군 30만 명이 북중 국경에 집결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외교는 지금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우리의 입장을 미국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미국의 행동에 반영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허락 없이는 한반도에서의 무력사용은 결코 안된다는 것은 선언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지금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문제를, 한반도 혹은 동북아의 세력 균형을 파괴하는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더 그렇다.

지난 번 하와이에서 있었던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소동은 비록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현재 미국인들이 북한의 미사일과 핵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바로 '신뢰'밖에 없다.

지금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에 전혀 이상이 없고, 한미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만 이상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 외국의 언론들은 '평창 이후'를 걱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교의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이다. 평시 같으면, 외교 방향을 중간에 수정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을 제대로 잘 잡아야 한다. 외교는 자신만의 의도대로 절대 풀릴 수 없다. 상대가 있는 다자간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게임에 참가하는 모든 국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의 이익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는 이같은 외교 원칙에 충실한지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평창 이후'를 걱정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 신율 명지대 교수 프로필: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민사회 활동과 더불어 정치평론가로 저술 및 방송활동 등을 꾸준히 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다. 2011년에는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에도 등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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