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인은 여론으로 부터 잊혀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얼마 전에 있었던 포항지역 지진은 대한민국 전체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는 이처럼 놀랄만한 일들이 거의 매일 발생하고 있다. 특히 차기 대선을 향한 정치권의 움직임은 아직 많은 기간이 남았음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다음번 20대 대통령을 뽑는 대통령 선거일은 2022년 3월9일로 아직도 한참 남았지만 정치에 뜻을 둔 야심가들에게는 그다지 먼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대선을 향한 움직임과 직결되는 것이 바로 내년 여름에 치러질 6·13 지방선거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누가 출마하고 누가 이기느냐가 결국 대선 판도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다만 누가 이기느냐 보다 누가 출마하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지자체 단체장이 갖는 특성 때문이다.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는 과거 경기지사 출마를 포기한 적이 있다. 만일 당시 김문수 전 지사가 출마했더라면, 김 전 지사의 당선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그럼에도 김문수 전 지사는 출마를 포기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김문수 전 지사의 경우 경기도 지사 재직시절 업무수행을 잘한 지사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김문수 전 지사는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지사직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 결정을 했다. 정치적으로 더욱 큰 꿈을 꾸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경기도 지사뿐 아니라, 서울시장을 제외한 대선에 출마할 뜻이 있는 모든 지자체 단체장은 대선출마와 지자체 단체장의 역할 수행이 동시에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들이 아무리 지자체 행정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해도 중앙 언론의 관심을 받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행동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은 해당 지역 언론이지 중앙 언론은 아니라는 의미다.

문제는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중앙 언론의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중앙 언론에 자주 등장해야 하는데 지자체장으로 있으면 이 점이 여의치 않다. 서울과 인접해 있는 경기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경기 도지사직을 아무리 잘 수행해도, 경기도 지역 언론들만 관심을 가질뿐 바로 인접해 있는 서울의 중앙 언론은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경기도 지사를 역임했다가 대선에 도전해 성공한 경우가 없다는 점 역시 이런 분석을 뒷받침해 준다.

경기도 지사를 역임했던 손학규 전 대표나, 이인제 전 의원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징크스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직책이 갖는 한계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선에 뜻이 있는 경우, 지자체 단체장 직을 과감히 버리고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서울시장의 경우는 다르다. 서울시장의 경우,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이, 대선에 뜻을 두고 있는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도전해 볼만한 자리다. 서울의 경우, 대한민국에서는 수도라는 상징성 때문에 모든 것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고, 서울시장은 국무회의에 출석할 수 있는 유일한 지자체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타 지방자치단체장과는 달리 중앙언론의 관심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게다가 장관급인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는 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보다 국민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다는 측면에서도 훨신 유리하다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만일 국회의원으로 있으면, 중앙언론으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도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여론에 각인시킬 수 있지만, 여론 지탄의 대상이 되는 정치판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신선한 느낌을 주기는 힘들다.

하지만 서울시장으로 있으면, 행정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음과 동시에 여론으로부터 지탄받는 대상인 정치판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 신선함과 능력을 동시에 보여주며 여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서울시장이 대선 도전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는 이같은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런 측면을 생각하면 이번에 누가 출마하고 누가 출마를 하지 않느냐가, 대선판도와 관련해 중요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우선 서울시장의 경우를 들여다보자. 지금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박원순 시장에게 경남지사 혹은 국회의원 출마 권유설이 나돌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장 하던 사람에게 경남지사 출마를 권유하는 것은 본인에게 대선 도전의 꿈을 접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울시장을 두 차례나 지낸 이에게 경남지사를 권한다면 그야말로 경남의 '지역 유명인사'로 남으라는 얘기나 같기 때문이다.

물론 선당후사라는 명분을 내걸어 더불어민주당이 약세인 지역을 탈환하라고 요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이 대부분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주장을 고지식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국회의원의 경우는 다르긴 다르다. 다만 아무리 중앙정치 무대에서 활동하는 자리라 해도 때 묻은 인사라는 인상을 주기 쉽기 때문에 시민운동을 거쳐 서울시장을 맡고 있는 박원순 시장의 입장에선 이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 것으로 풀이된다. 본인의 깨끗한 이미지가 탈색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두루 감안한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입장에선 당내에서 경남지사나 국회의원 출마설이 나도는 이유를 궁금해 할 것이다. 자신이 당내 주류가 아니라서 흔드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가질 수 있다. 이같은 점을 두루 감안하면 아마도 박원순 서울시장은 3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물론 이는 박원순 시장이 대권 도전의 꿈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아래 하는 말이다.

만일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번 더불어민주당 내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전국적 차원의 인지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오산이다. 여론은 생각보다 쉽게 모든 것을 잊게 마련이다. 이는 다른 정치인들의 행동에서도 쉽계 이해되는 대목이다.

정치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여론으로부터 잊혀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론으로부터 잊혀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하려한다. 선거에서 실패하면 또 다시 도전하고, 당내 지도부에 도전하고, 이슈를 계속 만들려고 하는 이유도 바로 잊혀지지 않기 위한 지난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은 대다수 정치인들이 여론이란 쉽게 잊혀진다는 냉철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안희정 지사 역시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 지사의 경우, 다시 충남지사직에 도전하기 보다는 중앙정치 무대에 나서는 것이 대권 도전을 위해서는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함께 지난 대선 과정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인물 중의 하나는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이재명 시장의 경우는 지난번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높였다. 게다가 TV 예능 프로그램까지 출연하면서 자신의 인지도를 더욱 높이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 약발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대권 도전에 뜻이 있다면 새로운 도전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재명 시장은 경기도 지사직에 도전하려는 생각이 있는 것으로 언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성남 시장이나 경기도 지사나 중앙언론으로부터 관심을 받기란 쉽지 않다.

이재명 시장은 청년 수당이라든지, 아니면 성남시민 중 출산한 여성이라면 무료로 산후 조리원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정책 등,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지속적인 여론의 관심을 끌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그 역시 경기도 지사직에 도전하기 보다는 중앙 정치무대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 장래를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여론이 많다.

이재명 시장이 살아온 과정에서 나타는 불굴의 투지와 그의 뛰어난 감각 그리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중앙 정치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하고 빛을 발할 것으로 관측된다.

야권으로 눈을 돌리면 원희룡 제주지사와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떠오른다. 현재 이들 두 사람이 가장 주목받을 수 있는 야권의 지자체장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지사직 재도전 여부 역시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다.

경기도 지사나 제주도 지사나 중앙 정치에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들이 만일 대권 도전 의사가 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만족해서는 안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들은 이재명 시장이나 안희정 지사와는 달리, 중앙 정치무대에서 상당한 인지도가 있었다. '남원정'으로 상징되는 개혁세력이 있었고, 또 남경필 지사의 경우 지난 번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을 통해 나름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들 역시 다시금 중앙정치 무대로 복귀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까지는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대선 잠룡들의 행보와 지방선거의 연관성을 짚어봤다. 이번에는 당위론적인 접근도 필요할듯 하다. 당위론적으로 보면 지자체 단체장으로서 행정경험을 쌓으면서 대권도전을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행정 경험이야말로 대통령이는 자리의 직무 수행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을 봐도 그렇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 전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 같은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의 대통령들은 주지사로서의 경력을 갖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지방 정부에서의 행정경험이 대통령직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뿐 아니라 지역주민의 평가가 전국차원의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대한민국의 경우, 지역주민의 평가가 전국적 평가로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 분위기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는 다르다고 할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지방행정을 잘할 경우, 중앙부처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으로서의 중요한 능력이 검증됐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증명한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지방에서의 경험이 전국적 차원의 평가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이는 대통령으로서 행정 경험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아니면 지방행정을 과소평가한다는 소리를 들을 가능성도 배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문제는 있다. 지방 행정을 과소평가해도 문제이며, 대통령으로서 행정 경험과 능력을 과소평가해도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현행 대통령제 하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히려 지자체 단체장으로서의 평가가 대선후보로 결정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런 시각이 언제 바뀔지는 알수 없지만 이같은 시각의 변화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신율 명지대 교수 프로필: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민사회 활동과 더불어 정치평론가로 저술 및 방송활동 등을 꾸준히 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다. 2011년에는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에도 등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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