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본부장 "야권발 정계 개편 3가지 극복해야, 정당통합은 기업합병과는 달라"

'정치적 목적이 동일해야'-'정당간 리더십 협력해야'-'유권자들의 지지 있어야'

"임기응변식 새판짜기를 위한 군불때기로는 가마솥 밥을 제대로 지을 수 없어"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국정감사가 한창인 여의도에 야권발 정계 개편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다. 대선 이후 정당 사이의 경쟁은 분석이 무의미할 정도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독주 양상이 두드러진다. 고공행진 중인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과 함께 동반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는 여당(민주당)에 맞서야 하는 야당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잰 걸음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당의 경쟁력이자 기초체력인 정당 지지율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선거이후 전체 정당 지지율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안정적인 지지세를 이어가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10%대에 머물러있고 나머지 정당들은 10%선을 통과하기조차 버거워 보인다. 집권여당의 견제 세력으로 몸집 불리기를 해야 하는 야권의 고민은 과거 어느 때보다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정치적 짝짓기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무 준비 없이 두 정당 또는 그 이상이 합해진다고 정치적 영향력이 배가 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시장 논리가 작동한다. 경쟁자가 하나로 뭉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조직 문화가 조정돼야 하고 리더들의 긴밀한 협력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합되었을 때 하나의 회사로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의 인식이다.

한 가족이 되기 전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시장에서 무서운 경쟁자였다. 현대자동차가 장악하고 있던 중형차 시장에 뛰어든 기아자동차의 세피아는 위협적인 판매 증가를 보였다. 기아자동차가 만든 다목적 소형 트럭인 봉고는 한때 날개 돋친 듯 빨려나가 재고가 부족할 정도였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겪으며 기아자동차가 법정관리를 받게 되었고 결국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를 꿈꾸던 현대자동차는 기아자동차라는 막강한 브랜드를 식구를 받아들이며 승승장구했다. 시장 지배력과 함께 ‘규모의 경제’로 국제 시장에서 가치를 재평가받고 세계 5대 카메이커로 우뚝 섰다. 강력한 라이벌인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면서 현대차 그룹의 경쟁력은 몇 배 더 이상 커진 셈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경우처럼 통합 즉 인수 합병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집단 간의 목표가 일치해야 한다.

경영진은 서로 매우 협력적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두 회사를 하나의 성공적인 결합으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인수 합병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실패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서로 경쟁회사였던 다임러 벤츠와 크라이슬러가 합병된 사례가 있다. 합병된 중요한 이유는 경쟁이 가속화되는 자동차 시장에서 대중차를 생산하는 크라이슬러와 고급차를 만들어내는 벤츠가 지배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대감은 한방에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두 조직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미국 vs 독일) 벤츠가 가지고 있었던 세계 최고의 고급자동차 이미지가 깎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거워지기는커녕 불안정한 동거로 보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합병 회사의 이미지는 내리막길을 걷고 말았다. 결국엔 인수금액 360억 달러의 5분의 1 수준인 74억 달러에 결별하고 말았다.

잘못된 결합으로 천문학적인 이별 비용을 치른 셈이다. 정치 세력 간 통합과 연대 역시 기업 간 결합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의도에 불어 닥친 야권발 정계 개편은 정당 지지율에 약일까 독일까. 약이 될지 아니면 독이 될지는 정당 간 통합 또는 연대가 3개의 산을 넘어갈지에 달려 있다.

우선 두 정당 사이의 정치적 목적이 최대한 동일해야 한다. 이념적 정체성이 쌍둥이처럼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지향하는 정책적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정당 사이의 인물 즉 리더십이 협력적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당 사이의 통합 또는 연대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산은 유권자 특성이다. 아무리 통합의 정치적 목적과 리더십 협치가 가능하더라도 지지층들이 외면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야권 통합이 가능해지고 통합 정당의 지지율이 용솟음치도록 하기 위해 넘어야할 첫 번째 산은 정치적 목적이다.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는 연인의 갈등은 이별의 예고 수순이나 다름없다. 같은 배에 올라탔지만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다르다면 한 발짝도 나아가기 힘들다. 정치적 목적이란 단순히 선거 승리라는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중요 정책에 있어 최대한 같은 목소리를 내고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제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군소 정당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약하다. 사실상 공화당과 민주당이 주거니 받거니 경쟁하며 미국 정치를 이끌고 있다. 기본적으로 두 정당의 정치적 목표 즉 정책적 방향은 다르다. 공화당 소속인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에 대해 가장 크게 반발하는 정치 세력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추구하는 이민 정책의 방향과 상충하기 때문이다.

통합이나 연대 모델은 미국보다 유럽에서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네 번 연임에 성공한 메르켈 총리는 연립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단독으로 과반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국가 운영 방향을 함께 하는 정치 세력 간 연대가 이루어지게 된다.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기독민주당과 기독사회당 연합부터 연대 세력인데다 지난 총선에서 과반 달성에 실패하면서 연립 정부 논의는 더욱 복잡해졌다. 정당 간의 단순한 짝짓기가 결코 아니다. 정책에 대한 상호간의 이해가 있어야 하고 정당 리더들은 다른 정당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한국 정당사에서 수많은 정치 세력간 합종연횡이 있어왔지만 결합이 오래가지 못하는 데에는 정치적인 목적 함수가 일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승리를 위한 정치 공학적 결합에 급급했다는 의미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치면 지지율이 오를까.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하면 더불어민주당과 대등한 대결구도가 펼쳐질까.

정치적 목적을 기준으로 분석하고 전망한다면 장밋빛 시나리오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국정감사를 휘감아 도는 가장 뜨거운 이슈는 현 정부의 적폐 청산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차이다. 정당의 입장은 지지층들의 생각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에이스리서치가 뉴데일리의 의뢰를 받아 지난 21~22일 실시하고 23일 발표한 조사(전국1011명 유무선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3.3%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활동과 관련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정치보복이란 견해와 불법과 부정을 바로잡기 위한 활동이라는 견해’ 중 어느 의견에 더 공감하는 지 물어보았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국정 운영의 기본 철학은 적폐 청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통합 또는 연대하려는 정당 지지층들의 적폐 청산에 대한 인식차가 크다면 정치적 목적은 일치되기 어렵다. 가장 유력한 통합 또는 연대 후보로 떠오른 정당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다. 국민의당 지지층 중 다수인 61.3%는 적폐 청산을 ‘불법과 부정을 바로잡는 것’이라는 견해에 공감했다. 반면에 통합 대상으로 강력하게 거론되는 바른정당 지지층에서는 절반 이상이 ‘과거 정권에 맞춘 정치보복 성격’으로 적폐 청산을 이해했다.

두 정당의 지지층 사이에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 대한 인식차가 뚜렷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특히 지지층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완전히 다른 목소리를 낼 리 없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되돌아보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구성원들은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도 달랐고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이해하는 수준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정치적 목적을 일치시키지 않고 통합하는 경우, 1 더하기 1이 반드시 2 또는 그 이상의 성과를 내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칫 두 정당의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지 않게돼 당내 불협화음으로 치닫게 되고 지지율도 제자리걸음을 맨돌게 마련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는 마당이라 원하지 않는 통합은 더 큰 세력으로 옮겨가려는 지지층 이탈만 가져올 뿐이다.

통합된 정당의 지지율이 단순한 두 정당의 지지율 합계보다 훨씬 높아지는 추가 상승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는 왜 하나의 정당으로 거듭나려고 하는지 정치적 목적이나 눈높이가 최대한 동일시돼야 한다.

또한 정당 사이의 통합이나 연대가 희망한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은 인물의 조화다. 두 개 이상의 정치 세력이 하나의 세력으로 통합하거나 연대하려면 각 정당의 얼굴이 되는 인물 간에 긴밀한 협력이 존재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하나의 정당이 되기 위해서 호남이라는 지역적인 공통점외에도 정당의 리더들이 상대 정당의 리더들과 협력적이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하나가 되려면 정치적으로 더 이상 더불어민주당 소속은 아니지만 절대적인 영향력을 쥐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당과 관계에 매우 적극적이어야 한다. 심지어 내각 인사를 하는데 있어서 국민의당의 의견을 반영하고 정책 연대를 시도하는 등 연립정부 구성에 준하는 배려가 있어야 했다. 국민의당 또한 여소야대 지형에 놓여 있는 국회에서 청문회를 비롯해 새 정부 조직 구성과 각종 대통령 핵심 공약 법안에 대한 전폭적인 이해와 지원이 뒤따라야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2015년 당 대표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앙금이 남을 정도의 혈전을 치렀다. 2012년 대선에서 사실상 후보 자리를 내놓고 문 대통령을 도왔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을 만류하는 문 대통령의 손을 뿌리친 바 있었다. 얼마 전 실시된 독일 총선에서 네 번째 총리 자리에 오른 메르켈 총리는 기독민주당과 기독사회당 연합을 유지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여왔다.

연정 대상인 정당의 리더들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 왔다.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들과의 유기적인 관계는 조직 관리의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야권에서 통합이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는 정당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다. 국민의당의 가장 상징적 인물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대선후보였고 현재 당 대표인 안철수다. 바른정당 역시 믿거나 말거나 당을 대표하는 인물은 대선후보였고 전당 대회를 앞두고 자강론을 밀어붙이고 있는 유승민 의원이다.

두 인물은 정치적으로 찰떡궁합인가. 임기응변식 새판짜기를 위한 군불때기로는 가마솥의 밥을 제대로 지을 수 없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데이터 분석 도구인 빅카인즈로 대선 다음날인 5월 10일부터 통합 논의가 본격화되는 시점을 포함한 10월 26일까지 ‘안철수 유승민’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여 분석한 결과 두 인물이 동시 등장하는 기사보도 트렌드는 유의미한 수준으로 추출되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 직후 대선 평가와 관련해 두 인물의 노출량이 많았지만 정작 통합을 위한 협력 수준으로 이해할만한 리더들간의 협력적 이미지는 만들어지지 않은 결과다. 6월 이후 일일 노출 빈도가 불과 몇 건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밑 접촉 또는 비선을 통합 협상이라는 전략적 해명을 내놓을 진 모르겠지만 현대 정치에서 유권자들 그리고 특히 지지층들에게 보이는 이미지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통합 효과에 있어 중요한 ‘인물의 조화’로 해석해주기엔 매우 미흡하다.

‘소통의 왕’으로 불렸던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이 ‘오바마 케어’ 관련 법안 통과를 위해 문지방이 닳도록 공화당 유력인사들을 만났던 ‘인물의 조화’와 비교한다면 한참이나 부족하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 통합 논의가 들끓었지만 결과적으로 급격히 열기가 식어버린 데는 ‘인물의 부조화’도 한몫했다. 넘어야할 될 산을 넘지 못한 결과였다.

마지막으로 당 대 당의 통합에서 뛰어 넘어야할 가장 중요한 산은 ‘지지층의 특성’이다. 말하자면 합당 또는 연대하는 정당 지지층들의 저항이 없어야 한다. 정치적인 목적을 하나로 조정하고 정당의 리더들이 상호 협력적이라고 하더라도 지지층들이 반대하면 통합의 효과는 사라진다. 1997년 대통령 선거 승리의 일등 공신은 DJP연합의 성공이었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 구도에서 보수까지 포용한 ‘DJP연합’은 선거 승리의 발판이 됐다.

그러나 선거 당선에 크게 기여했지만 정치연합이 붕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물의 협력(김대중+김종필+박태준)만을 어렵사리 하나로 만드는데 성공했을 뿐 정치적 목적이나 지지층들의 이해는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정당간 통합의 대상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고 향후에도 두 정당의 통합 가능성은 열려있다. 하지만 통합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지지층들이 수용할 만한 통합 공감대가 만들어져야 한다는데 있다.

정치적 목적과 인물의 협력은 피상적이나마 불꽃이 붙었지만 지지층들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싸늘하다. 리얼미터가 TBS교통방송의 의뢰를 받아 지난 24~25일 실시하고 26일 발표한 조사(전국1001명 무선전화면접 및 유무선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5.3%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어느 정당간의 통합이 가장 바람직한지’ 물어봤다.

10명 중 4명 정도는 모든 통합에 반대한다는 입장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선거에서 여러 후보가 출마하고 토론회를 지켜보았던 ‘유권자 선택의 다양성’을 그대로 지켜달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보수대통합으로 이야기되는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은 17.1%였고 호남 세력의 통합으로 일컬어지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의 통합’은 16.3%, 가장 가능성을 높게 보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간 통합’은 13.9%에 그쳤다.

이번 조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당장 우리 국민들은 정당간 통합 논의에 호의적이지 않다. 최근 여의도 정치권을 들었다 놨다했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간 통합’에 대한 선택은 15%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지층별로 분석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민의당 지지층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48.6%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른정당 지지층에서는 국민의당 지지층보다 낮았지만 35%가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통합’을 원하는 결과로 나왔다. 지지층들의 의지로 풀이한다면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지지층들 사이에 통합 저항감이 가장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지만 지금의 지지층들 반응을 기준 삼는다면 통합의 추진 동력으로는 역부족이다. 통합이라는 태산준령을 넘어서기 위해 지지층들을 하나로 묶는 지혜가 뒤따라야 한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두 조직 이상이 하나로 되는 통합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더 큰 목적과 이상을 위해 하나로 힘을 모으는 의지는 충분한 정치적 가치가 있다. 통합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목적이 분명하고 서로 다른 조직의 리더들이 협력적이어야 하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훈훈해야 한다. 지금은 한 가족이 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아무런 진통없이 통합이라는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니다.

두 회사 모두 국제 시장을 겨냥할 때 한국산 자동차라는 브랜드 파워의 한계와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에 대한 공통의 문제 인식이 있었다. 현대차가 법정관리에 놓인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후 두 회사를 차별적인 리더십으로 대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은 어려웠을 법하다. 경영 전반에 걸쳐 합병당한 기아자동차와 합병 주체인 현대자동차의 운영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었다.

합병되기 전 프라이드, 아벨라, 콩코드, 캐피탈 등 좋은 품질의 차를 개발 및 생산해왔던 기아차였다. 여기에다 2005년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하여 직선의 단순함을 극대화하며 지금과 같은 호랑이코 디자인 돌풍을 일으켰다. 대대적인 광고와 효과적인 세계 시장 공략으로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기아차가 달리는 모습을 도로위에서 보게 된다.

현대차의 관심과 배려가 없었더라면 기아차는 현대차그룹의 효자 브랜드가 되기보다 천덕꾸러기로 전락했을지 모를 일이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난관을 극복하고 결실을 맺은 좋은 통합의 사례라면 벤츠와 크라이슬러의 통합은 실패작이었다. 유럽의 명가인 고급차의 대명사 다임러 벤츠와 리 아이아코카로 설명되는 미국 자동차의 명예 회복 아이콘 크라이슬러의 합병으로 다임러 크라이슬러라는 새 이름이 생겨났다.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당시 세계 자동차 시장 제패를 ‘사업적 목적’으로 꿈꾸었을지 모르겠다. 두 회사의 리더들은 자신들이 가장 협력적인 파트너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도 독일의 벤츠와 미국 크라이슬러의 합병으로 새로운 모델이 탄생하면 세계 시장을 제패하리라는 낙관적인 전망으로 충만했을 법하다.

그러나 결과는 최악이었다. 독일과 미국의 문화 차이는 결코 하나의 조직으로 빛을 보지 못했고 양 회사의 경영자층의 알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갔다. 크라이슬러 신차에 벤츠의 플랫폼을 사용하면서 어설픈 모델이 양산되었고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졌다. 합병 후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벤츠는 크라이슬러 지분을 사모펀드에 거의 내버리듯이 넘겨 버렸다. 불행한 통합이었다.

사업의 목적도 달랐고 두 회사의 리더들은 물과 기름처럼 인물의 조화는 없었다. 소비자들은 어울리지 않는 두 형제의 만남을 축복해주지 못했다. 정치도 기업처럼 목적이 존재하고 조직의 운영에 리더의 역할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기업이 소비자라는 최종적인 평가자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정치는 유권자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선 승리를 위해 많은 정치적 비난과 야유 속에 ‘3당 합당’을 결행했다.

대통령 자리가 최종적인 목표라면 분명 성공적인 역사였다. 그렇지만 정치공학적인 이해관계에 의존한 통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의원 내각제를 정치적 목표로 내걸었지만 이마저 지켜지지 않으면서 3당 합당은 파행을 거듭했고 임기 후반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급속도로 좁아졌다.

잘못된 만남은 그저 헤어지고 마는데 그치지 않는다. 많은 후유증을 가져온다. 3당 합당의 결과로 대권은 가져갔지만 그 후 통합이 깨지면서 임기 후반 연속적인 선거 패배와 노동법 날치기 통과 파동 등의 우여곡절 끝에 전대미문의 IMF 경제 위기에 시달렸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5명의 대선 후보 모두에게 관심을 가졌다. 대통령 자리는 하나지만 한자리에 올라가기 위한 다수의 경쟁은 국민들에게 바람직했다.

수많은 예비 아이돌 후보 중에서 불과 10여명만을 최종적으로 데뷰시키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전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이 과정을 거친 아이돌 그룹이 가요 차트에 돌풍을 몰고 오는 사실만으로 경쟁적 통합관계가 매우 이상적인 모델임을 알게 된다. 국민들은 정치권의 이해를 앞세워 당을 쪼개고 합하는 일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국민들의 고민과 숙제를 더 잘 들어주고 풀어주기 위한 통합과 연대라면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통합 논의가 한껏 달아올랐다가 잠잠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통합다운 통합, 연대다운 연대가 되기 위해서는 3개의 산을 넘어가야 한다. 통합 대상들 사이에서 정치적 목적은 최대한 일치시켜야 하고 각 리더들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일원인 것처럼 조화로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산은 바로 유권자들이다. 새판짜기에 각 지지층들이 환호하는 통합이라야 생명 연장 프로젝트가 가능해진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매우 높고 단독 질주를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50% 에 육박하고 있어 야권입장에선 지방선거를 대비한 경쟁력 확보가 지상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무르익지 않은 환경에서 통합 논의를 도모한다면 결코 내년 선거에도 이롭지 않다. 야권 통합이 지지율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오로지 통합을 준비하는 정당의 진정성과 의지에 달려있다. 나침반은 끊임없는 떨림으로 올바른 방향을 찾아간다고 한다. 지지층들이 과연 무엇을 소망하고 있는지 기업 합병의 사례와 국내외 정당 통합의 역사에서 반드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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