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한반도에 폭풍 전야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고강도의 대응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은 추석 연휴 기간 동안 북한 전역을 축제 분위기로 만들며 내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죽음의 백조’라고 불리는 미국의 최신예 폭격기 B-1B는 북한 영토에 가장 근접한 지점까지 비행하며 북한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당장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 전쟁 직전에 볼 수 있는 긴장감이 한반도 전역에 흐르고 있다.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하지 않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슈퍼파워라고 일컫는 미국과의 대결 구도에서 쉽사리 군사적인 맞대응 카드를 빼 들 수도 없다.

객관적인 전력상 북한은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평가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무모한 충돌을 감행할 경우, UN의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도 국제 사회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북한의 편만 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전면적인 국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으로선 체제 결속이 무엇보다 최우선이다.

자칫 미국과 강대강 대치 국면을 무리하게 이어가다 북한내 체제 반발이나 소규모 폭동이라도 일어나는 경우 김정은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노동당 창건일에 예상했던 도발을 건너뛰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정세로 주춤했던 대북 강경 대응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최근의 ‘북한 리스크’와 관련해 가지는 핵심적인 궁금증은 3가지로 요약된다. 북한이 과연 핵무기를 사용할 것인가. 미국은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 것인가. 중국은 김정은 위원장을 인정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가장 핵심적인 질문에 우리 대한민국의 입장과 선택은 빠져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대상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이다.

북한 땅이 전쟁으로 황폐화되고 다수의 주민들이 사상자가 된다면 이 또한 민족의 불행이다. 북한이야 국제 사회의 공분을 스스로 자초했다지만 우리 국민들은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다. 북한은 동맹국가인 미국과 일본을 위협하고 있으며 국제 사회의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편입되지 않고 있다.

다시 ‘북한 리스크’의 핵심 궁금증으로 돌아가 보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동북아 평화와 미국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되면 미국의 군사적 옵션은 더 이상 옵션이 아니라 유일한 해결책으로 돌변할 개연성이 점차 커지게 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으로 고위직 장성들을 불러 만찬을 하고 사진까지 찍으며 전투 의지를 불태웠다.

우리가 스스로 북한을 비핵화로 만들 가능성과 영향력이 없다면 자국의 안보마저 위협받는 미국 주도의 대한반도 정책은 불가피해 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 폭탄을 현실화하게 될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어떤 대응을 할지 선택하는데 있어 개인과 정부의 판단이 중요하겠지만 더 우선하는 것은 미국 국민들의 여론이다.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업의 생리를 잘 이해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민들의 여론을 무시한 대북 대응을 하기란 애당초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흔히들 미국 대통령은 처음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 바로 그 직후부터 재선 대통령이 되기 위해 각종 여론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1980년 이후 총 5명의 대통령 중 재선을 하지 못한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아버지)이 유일했다. 그만큼 국정 운영에 대한 좋은 평가였겠지만 재선하기 위한 피눈물 나는 노력의 산물이다. 70세가 넘은 고령의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재선 대통령은 트럼프가 강력하게 희망하는 타이틀이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 선택의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생명과 연계되는 중차대한 이슈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결정짓게 하는 미국 국민들의 여론은 지금 어떠한가. 미국 국민들은 북한의 핵무기 사용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미국 국민들은 미국 정부의 어떤 대응을 원할까. 북한 문제 해결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한반도 문제의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야 하는 우리 정부와 국민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예측하기에 앞서 미국 국민들의 여론을 반드시 이해해야만 한다.

미국 국민들의 여론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질문은 과연 미국 국민들이 북한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하는지 여부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미국 국민들은 북한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갤럽 인터내셔널이 한국, 미국, 일본 등을 포함해 14개국 비교조사를 실시한 내용을 보면 미국 국민들의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인식을 확인하게 된다.

지난 9월 20일부터 10월 1일까지 실시한 조사(14개국 성인 총17,107명 전화, 온라인 또는 면접조사/한국 조사는 9월 26~28일 전국1006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응답률17%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미국 국민들에게 ‘북한이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지 없다고 보는지’ 물어보았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미국 국민들의 의견은 절반에 육박했다.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응답 35%보다 11%포인트나 더 높았다. 북한의 핵탄두 장착 ICBM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겨냥하고 있으므로 미국 국민들에게 북한 핵무기는 실질적 위협이다. 14개국 조사에서 한국 국민들은 ‘북한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해 미국 여론보다 11%포인트가 낮았다.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하면 ‘북한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긴장감이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수위가 높은 셈이다. 미국령인 괌을 포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사정거리를 늘려가는 북한을 보면서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 반북한 정서가 깊어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대응 의사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만한 여론이다.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 북한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된다면 국민 보호차원에서 국가 지도자는 결연히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 국가 중 하나가 일본이지만 지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혀 다른 관계였다. 잠자는 공룡이었던 미국을 2차 대전의 한 복판으로 소환한 사건이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었다.

아침 기지개를 켜기도 전에 벼락 습격한 일본의 전략은 주효했다. 수많은 군함과 비행기가 폭격으로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군인과 민간인을 가릴 것 없이 인명 피해가 적지 않았다. 진주만 공습이후 일본은 미국이 가장 저주하는 적대국이 되었고 태평양 전선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미국이 최단 시간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훗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터트린 데는 미국 국민들의 여론 영향이 매우 크게 작동했다.

진주만 공습 전만 하더라도 전쟁에 대한 낭만적인 사고를 보였던 미국 여론은 일본에 앙갚음을 해야 한다는 주전론이 확산됐다. 마치 최근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남한산성’의 예조판서 김상헌과 같은 인식 전환이 이루어진다.

자원입대가 늘어났고 일본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는 상징적 사건이 진주만 폭격이었다. 만에 하나 북한이 미국령 또는 미국 본토에 국지적인 도발을 감행하는 경우 미국 국민 여론은 ‘전쟁불사 북한괴멸’쪽으로 급격히 흘러가기 마련이다.

2001년 전 세계인들이 기억하는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미국 국민들의 여론은 삽시간에 악화되었다. 절규와 분노가 여론을 지배했고 인기가 없었던 부시 대통령(아들)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대통령 지지율은 수직 상승했고 테러 조직에 대한 응징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아프카니스탄을 상대로 한 전쟁으로 이어졌고 배후 세력인 오사마 빈 라덴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이처럼 미국 최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의사 판단에는 미국 국민들의 여론이 결정적이다.

미국 국민들의 여론을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 질문은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 위협에 대한 해결책이다. 미국 국민들이 바라는 해결책은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일까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서 주장되고 있는 ‘군사적 옵션 즉 군사력을 동원한 해결책’일까. 미국 국민들 다수의 여론은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 방법으로 모아지고 있다.

갤럽 인터내셔널이 14개국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도발에 대한 대응책’을 미국 국민들에게 물어보았다.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여론이 4명 중 3명인 75%였다. 압도적인 미국 국민들의 여론은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북핵 대응을 선호하고 있다. ‘군사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4명 중 1명인 25%에 그쳤다.

미국 다수 여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적 옵션을 취하는 것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 입장이다. 영화 남한산성의 역사적 등장인물로 비유한다면 전면전 불사를 부르짖은 김상헌과는 반대되는 이조판서 최명길의 태도와 흡사하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높게 보는 미국 국민들이 군사적 옵션에 주저하는 이유는 국내 사정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해 미국이 개입될 경우 자칫 미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수많은 미군 인력의 희생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군수 물자 생산이나 전쟁으로 인한 반사 이익은 제한적인 반면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한반도의 피해와 미국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공산이 크다. 아직도 미국인들의 머릿속엔 베트남 전쟁의 트라우마가 기억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1960~70년대 내내 시달렸던 전쟁이었지만 미국은 결국 공산주의를 뿌리 뽑지도 못했으며 영화 ‘람보’에서 그려졌던 것처럼 전쟁 참전자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회 현상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케네디를 시작으로 포드 대통령까지 어떤 대통령도 베트남 전쟁에 대한 찬사를 듣지 못했다. 미국 국민들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여론이 냉랭했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으로 초라하게 피신했던 인조가 결국엔 최명길의 화친론에 화답한 가장 큰 이유는 백성들의 여론이 주전론을 받쳐주지 못한 때문으로 이해된다. 홍타이지가 이끄는 청(淸)의 정예 기병은 이미 우리 군사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결사 항전에 대한 국민적 의지가 없는 가운데 주전론이 먹혀들어갈 리 만무했다. 인조 역시 사는 길을 택한 셈이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 국민들은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책을 선호하는 여론이 미국보다 낮은 66%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틸러슨 국무장관의 면전에 핀잔을 주며 더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지만 정작 미국 국민들은 군사적 옵션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국정 운영에 위태로울 정도로 낮은 상태에서 극적인 여론 반전을 만들어 내기도 쉽지 않다. 2020년부터는 재선 운동에 더 본격적으로 돌입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군사적 대결구도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틈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더 많은 반사 이익을 가져가는 것이 전략적인 묘책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일본 국민들의 여론은 북한 대응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이다. 일본 국민들은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책과 군사적인 해결책 사이에 국민 여론이 거의 반반으로 나누어져 있다. 조사된 14개 나라 중 군사적 옵션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은 수준이다. 북한의 화성 시리즈 ICBM이 일본 북해도 상공을 넘어 태평양 바다 위에 떨어지자 일본 열도는 공포에 휩싸였었다. 땅으로는 지진의 공포에, 공중으로는 북한 핵 미사일 공포에 치를 떨고 있다.

거리상으로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사정권에 놓인 미국이나 직접 당사자인 한국보다 일본 국민들의 대북 대응 태도는 더 공격적으로 비쳐진다. 중의원을 해산하고 이달 22일 중의원 선거를 치루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 심폐소생은 북한 핵으로부터 출발했다. 각종 국내 스캔들로 총리직을 맡은 이후 곤혹스러운 환경에 봉착했던 아베 총리의 위기 탈출은 북한 핵 덕분이었다. 대북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수직 상승했고 전문가들은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아베 세력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취약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때리기’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강경한 북한 대응 태도는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동맹 국가인 일본 국민들의 여론은 미국 국민들만큼은 아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자칫 ‘북중관계’ 대 ‘한미관계’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기준이 아니라 ‘북중관계’와 ‘미일관계’가 중심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의 마음을 결정지을 미국 국민들의 여론은 중국에 대한 생각이다. 김정은 위원장을 핵무기 개발에 매몰돼 있는 위험한 인물로 미국 국민들은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군사적 옵션을 원하지 않는 것 또한 미국 국민들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미국 국민들은 어떤 해법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 중 미국 국민들이 박수를 쳐주는 대목은 어느 곳일까. 미국 국민들의 여론을 종합해보면 북한 문제 해결의 최종 종착지로 중국을 선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미중간의 정상회담(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북핵 문제로 금세 관계가 틀어지고 말았다. 북한 핵문제 해결에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지만 더 큰 이유는 고질적인 대중 무역적자에 있었다. 미국은 매년 천문학적인 대중 무역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제조업은 붕괴되었고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 주머니가 탈탈 털리고 있는 모양새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이 보기엔 중국의 무역 흑자가 마치 부당 이익처럼 보일 법하다. 왜냐하면 환율에 있어 미국이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중국은 값싼 임금을 기반으로 자동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품시장에서 미국 마켓을 압도하고 있다. 중국을 향한 미국 기업들의 불만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시점에 트럼프 대통령이 거침없이 포문을 열었다.

가뜩이나 무역 불균형으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만들어져 있는데 미국을 위협하는 북한을 제어하지 않는 모습에 대해 폭발한 상태다. 미국의 여론 조사 기관들이 실시한 각종 조사에서 중국에 대한 이미지는 악화일로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퓨리서치 센터에서 미국을 포함한 총 38개국을 지난 2월 16일부터 5월 8일까지 실시한 조사(총41,953명 전화 또는 면접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0%~5.7%P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미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호감이 44%, 비호감이 47%로 비호감이 높은 수준이었다.

미국의 동맹이자 중국에 대한 견제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일본 국민들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비호감이 무려 83%나 되었다. 같은 조사에서 우리 국민들이 중국에 가지는 비호감 역시 61%로 매우 높은 편이다.

요약하자면 북한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중국 때리기에 미국 여론도, 일본 여론도, 한국 여론도 박수를 쳐대는 형국이다. 11월 한국, 중국, 일본을 모두 방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구상에 ‘중국 때리기’만 담겨있진 않다. 닉슨 대통령 재임시 외교 사령탑 역할을 담당했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중 빅딜’을 조언한바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빅딜설 내용이야 말로 이제는 국적불명의 콩글리쉬에서 어느덧 전문 용어가 되어버린 ‘코리아 패싱’의 의미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주도권을 미국이 인정해 주고 미국을 향한 북한의 핵 위협을 차단하는 해결책을 댓가로 받는 G2국가의 거래를 의미한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 수 십 년간 이념갈등, 남남갈등을 겪어오면서도 북한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은 우리에겐 청천 벽력같은 소리다.

영화 남한산성은 뛰어난 작품성을 갖추고 관객 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김윤석과 이병헌이라는 두 걸출한 배우의 명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긴 상영시간마저 짧다고 생각들 정도다. 그러나 인조가 삼전도에서 머리를 세 번이나 땅에 부딪히며 신하국의 예우를 보인 역사적 사실은 두고두고 치욕적이다. 봉림대군과 김상헌 모두 청으로 끌려가 숱한 고초까지 당하지 않았는가. 물론 백성들이 당한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다.

청나라로 끌려가 온갖 수모와 짐승 같은 취급을 당하며 나라답지 못한 조선의 백성으로 당한 고통은 누가 보상이나 해주었겠는가. 영화 남한산성의 교훈은 영화의 극적 구성과 감성적인 관객의 반응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임진왜란으로 전 국토가 유린되는 고통을 당하고도 반성하고 대비하지 못한 치욕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조를 비롯한 당대의 지도층들은 결코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6.25 전쟁이라는 전대미문의 동족 간 전쟁을 경험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다시 한 번 전쟁의 불길에 휩싸인다면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 있겠는가. 병자호란에서 조선은 없었다. 이른바 ‘조선 패싱’이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조정은 무능력했고 백성들은 무능력한 지도자들만 바라보며 생존을 기대했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었던 동북아 정세를 이해하는 지도자는 아예 없었고 오로지 주전론과 화친론 두쪽으로 나뉘어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는데 급급했다.

말이야 조선이라는 나라였지 명나라와 청나라의 세력 다툼에 ‘조선 패싱’의 치욕을 당한 거나 다름없었다. 지난 30여 년간 북한은 핵 개발을 통해 우리의 생존을 옥죄어 왔지만 어느 정부도 단호한 의지와 용기로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위기를 해소하지 못했다. 통탄할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한국 외교와 안보가 희비쌍곡선을 그리고 있는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 스스로 국가 안보와 외교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궁색한 안보 상황으로 몰려있는 상황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책임 없이 트럼프 대통령 때리기에 바쁜 모습이다. 미국 국민들에게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비판과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지만 트럼프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트럼프의 행보를 마치 코미디언의 몸 개그나 심심풀이 땅콩 수준으로 웃고 넘어가면 안 될 일이다.

군사적 옵션으로 섣불리 몰아갈 일도 아니고 근거 없이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책을 자신할 일도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결정짓는 3가지 여론을 잘 읽어야만 한다. 우선 미국 국민들은 북한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해 매우 불안한 편이다. 그렇다고 당장 군사적 옵션을 선호하고 있지도 않다.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해결책으로 미국 국민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직접 무력 수단을 동원해 해결하기 보다는 중국에 대한 압박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 미국 국민들의 민심을 잘 읽어 대응해야 한다. 한편으론 미국 국민들의 여론 중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계층과 미국 공화당 지지층의 여론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공화당 지지층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이고 여론조사에서 전체 의견과는 달리 훨씬 더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엇보다 미국과 미국 국민들의 이익을 최우선한다. 이익을 최우선하는 국가지도자가 다른 나라의 이익과 다른 나라 국민들의 요구에 우선 반응할 리 없다.

미국과 북한이 대결하는 구도라 우리의 역할은 찾기 힘들다는 설명은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힘들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의 베스트셀러 제목은 ‘넛지(Nudge)'다. 넛지의 뜻은 자극을 통해 긍정적인 행동을 이끌어 내는데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마음을 자극하는 건 미국 국민들의 3가지 여론이다. 우리 정부와 우리 외교 안보 라인은 어떤 넛지가 가능한지 궁금해진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본 기사의 저작권은 한국미디어네트워크에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입력시간 : 2017/10/13 15:14:07 수정시간 : 2017/10/13 15:14:07
AD

오늘의 핫이슈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