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교수 "정치공학과 권력구조 그리고 정계개편의 바람직한 방향을 위해 정치권이 국민에게 객관적이고 충분한 정보 제공해야"

신율 명지대 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요새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정계개편 논의가 활발하다. 사실 정계개편이라는 주제는 보수들만의 관심사는 아니다.

진보진영 역시 '통합'이라는 화두는 중요한 과제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예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국민의당 도움 없이는 그 무엇하나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아예 국민의당과 다시 합치자는 목소리도 더불어민주당 당내에서 새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보수정당도 사정은 비슷하다. 자유한국당 역시 바른정당 의원들의 도움 없이는 뭔가 해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정치환경에 놓여 있다. 정계개편 논의가 활기를 띨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처럼 명확하다.

여야가 추진하는 정계개편에도 차이는 있다. 보수정당의 합당 혹은 연대는 진보정당들의 합당 혹은 연대보다 더욱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꿰뚫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먼저, 보수 정당들은 지금처럼 분열된 상태로 있었던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과거에 자유선진당 혹은 국민중심당과 한나라당으로 분열된 경우도 있긴 했지만, 이는 충청권에 기반을 둔 정당과 영남권에 기반한 정당으로 나뉘어졌다는 차원에서 지역기반의 상이함이 분열의 주된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보수진영이 노선 차이 혹은 특정 계파 청산문제 때문에 갈라졌다. 이것도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이런 식의 분열이 보수 진영 입장에서는 전혀 익숙하지 않을뿐 아니라 매우 생경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두 번째로 들 수 있는 부분은 보수 진영의 분열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문에 불거졌다는 점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단순히 대통령을 내려오게 만든 사건이 아니라, 보수 진영 전체를 궤멸 수준에 처하게 만든 '핵폭탄급' 사안이었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자 보수진영은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고, 정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분열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보수진영이 아직도 정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전통적 지지층마저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태를 헤쳐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자유한국당처럼 한쪽으로 쏠린 노선으로 가는 것이 정답인지, 아니면 바른정당 처럼 중도 보수노선을 걷는 것이 정답인지 모르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옳다고 우기는 현상이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 보수진영의 고민은 바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보수진영의 통합은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반면 진보진영쪽은 조금 양상이 다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연대 혹은 통합은 상대적으로 쉬워 보인다. 그 이유는 이렇다. 우선 진보진영의 '이합집산의 역사'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진보 정당들은 수없이 분화됐다 합치는 역사를 거치며 성장해왔다. 단적인 예로, 지난 2007년 대선 당시에는 각 계파간의 이합집산 때문에, 넉 달 정도 되는 시간동안 정당 이름이 수없이 바뀌기도 했다.

당시 필자는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세번 정도 사회를 맡았었는데 정당들이 이름을 워낙 자주 바꾸는 통에 정당명이 헷갈려 애를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정당간 이합집산이 이 정도로 잦았고, 정당 이름이 수시로 바뀔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도 진보 진영내 이합집산의 역사는 꽤나 길고 꾸준히 이어져왔던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지금과 같은 분열 상태가 진보진영으로서는 결코 낯선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주 '익숙하게' 현 상황을 타파할 개연성도 그만큼 높아 보인다.

두 번째 이유는 현재 집권세력은 바로 진보진영이라는 점이다. 현재 권력을 갖고 있으면 아무래도 여당 쪽으로 힘이 실리게 마련이고, 야당들보다는 쉽게 통합이나 연대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지금처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선 더욱 더 그렇다. 바로 이런 이유때문에 진보진영의 통합 혹은 연대 노력은 보수 진영보다는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그렇게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내년도에는 지방선거뿐 아니라 개헌문제도 걸려있기 때문이다. 개헌이라는 것은 모든 종류의 정계개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수 있는 큰 이슈다.

개헌은 권력구조 개편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정당이 어떤 권력구조를 선호하느냐가 정치권의 이합집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권력구조는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 그리고 의원내각제 정도다. 물론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권력구조도 있다. 이른바 '대체제'가 그것인데, 이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섞어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대통령제를 하다가 상황이 안좋아 지면, 의원내각제로 바꾸는 정치체제다. 하지만 이는 이론상으로만 존재할 뿐, 이런 권력구조를 실제로 가진 나라는 없기 때문에 제외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세 개의 권력 구조 가운데 무엇을 선호하느냐는 지금의 정치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정당이 다음 번 대선에서 집권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를 선호할 것이고, 다음 번 집권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정당은 대통령제를 선호할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추론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제를 선호하되 4년 중임제 대통령제를 선호할 공산이 커 보인다. 반대로 보수 진영 정당들은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개헌이라는 화두는 정계개편의 또 다른 변수로 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변수가 등장한다. 바로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대해 야망을 갖고 있는 비중있는 정치인들의 존재다.

다만 이들은 각 정당의 구도와는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속한 정당은 권력 분산형 권력구조를 선호하지만, 정권쟁취를 꿈꾸는 정치인 당사자들은 대통령제를 고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표현해 '내가 다 먹으려고 하는데, 그것(권력)을 나눠먹으라고 하니까 정당과 대선 주자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갖는 상황이 올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차이 역시 정계개편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즉, 이들 정치인들은 저마다 대통령이 될 꿈을 갖고 있어 대통령제를 선호하지만, 정작 당은 권력 분산형 개헌을 선호할 수 있고, 뿐만 아니라 보다 손쉽게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유력 대선후보가 존재하는 쪽과의 연대 혹은 통합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정당도 자강파와 통합파로 나뉘게 되는 것이고,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호남지역 의원들과 친 안철수 계 의원들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불거지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각 정파마다 권력구조에 대해 생각이 제각각이고,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인 정치인들은 모두가 대통령제를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서로 자신이 대선후보가 되려하기 때문에 정계개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바로 이런 '현실적' 이유때문에 내년 개헌 때 권력구조를 바꾸기도 정계개편을 하기도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다만 한 가지 가능성은 분명히 보인다. 각 정당의 대선 예비후보들이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고 하더라도, 각 정당 소속 의원들이 객관적으로 당선 가능성을 말해 주고, 예비 대선후보들이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게 된다면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 중 일부는 차선책을 선택하고, 권력 분산형 권력구조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와야 하는데 대선까지 아직 기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걸림돌이다.

한마디로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대선까지의 시간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것도 여의치는 않을듯 싶다.

그럼에도 각별히 주목해서 볼 대목이 있다. 한 국가의 권력구조를 바꾼다는 것, 그리고 정계개편을 한다는 것은 매우 중차대한 과제라는 점이다. 특히 권력구조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경제 사회적 환경이 달라질 수 있고, 그 결과에 따라 국가의 명운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논함에 있어 각 정당의 정치공학적 셈법이 난무하고, 또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들의 자기중심적 사고가 권력구조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결국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권력구조의 선택이 불가능하다는 데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한마디로 국민과 국가는 빠지고, 그 대신 정치공학적 이기주의만 난무한 상태에서 권력구조를 선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특히 정당을 정치인 개인의 야망 충족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그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그래서 판세를 정확히 읽는 혜안이 필요하다. 지금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정당들은 입으로는 다당제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사회적 다양성을 제도권에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다당제가 시대적 요구라는 논리를 편다.

다만 이런 주장은 그 정당 소속의 예비 대선주자들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논리적 모순이다. 4년 중임제든 5년 단임제든, 대통령제를 고수하자면서 이런 주장을 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국가들이 대부분 양당제로 운용된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미국뿐 아니라 한국도 역시 비슷하다. 또 다른 대통령제 예를 들고 싶기는 하지만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국가 가운데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는 거의 없기 때문에 필자는 일단 미국과 한국을 대통령제 운영 국가로 예시한 것이다. 아울러 대통령이 있다고 해서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국가로 오해하면 곤란하다는 점도 강조하고자 한다.

독일도 대통령이 있고, 오스트리아도 직선으로 뽑은 대통령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권력 구조는 의원내각제다. 대통령은 그냥 국가원수로서의 상징적 지위만을 누릴 뿐 실제 권한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들 국가는 왜 실권도 없는 대통령을 두는 것일까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의원내각제에서 실권은 수상이 갖는다. 하지만 수상은 실권자라 하더라도 임기를 보장받지 못한다. 물론 의원내각제에서도 수상의 임기는 법적으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항목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치르면, 수상의 임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임기가 보장'된 국가원수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만일 그 나라에 국왕이 존재한다면 그가 상징적 국가원수로서 역할을 하면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대통령을 뽑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내각제를 하게 되더라도 대통령을 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 우리나라도 국왕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존재한다고 모두 대통령제 국가가 아니듯 내각제라고 해도 대통령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각제 국가는 연정이 대부분 필수적이며 그런 이유 때문에 다당제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영국은 예외다. 영국은 양당제적 성격이 강하면서도 내각제를 운영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을 제외하고, 대다수 의원내각제 국가들은 모두 다당제 국가들이다. 반면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국가들이 몰려있는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중동 국가들을 보면, 대부분 양당제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유력 대선후보가 없는 정당은 대통령제 하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그래서 대통령제를 말하면서 다당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일종의 코미디라고 볼수도 있다. 이런 사실 역시, 유력 정치인들이 권력구조와 정당체계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쟁취 가능성에만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 정치권도 근본적으로 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입으로만 국가와 국민을 외치지 말고 진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정치인들도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민들도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요건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권력구조와 정계개편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국민들에게 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 현재 우리 국민들은 막연한 편견을 갖고 있을 뿐, 권력구조나 정계개편 등에 대한 객관적이고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중차대한 결정을 제대로 해야 한다면, 객관적이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바로 정치권의 의무다. 정당은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무한하다.

■ 신율 명지대 교수 프로필: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민사회 활동과 더불어 정치평론가로 저술 및 방송활동 등을 꾸준히 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다. 2011년에는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에도 등재된 바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