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정 미래기술경영전략연구원 대표 " 설비예비율을 15%로 환원하거나 가능하면 10% 정도로 낮춰주는 것이 타당"

이준정 미래기술전략연구원 대표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이준정 미래기술경영전략연구원 대표] 가내 수공업을 기계공업으로 바꿔 준 1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은 증기기관의 발명이다.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이를 터빈 날개에 뿌려 축을 돌리는 원리다.

2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은 '플레밍의 오른손 법칙'에 따라 전자석 코일을 회전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증기발전기 기술이다. 지금도 화력발전소, 가스발전소,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증기를 생산하는 에너지만 다를 뿐 2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증기발전기로 전기를 생산한다.

3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은 전자 및 정보기술을 이용해 발전 및 송전설비를 자동 제어하는 기술이다. 전자제어 및 자동화로 전력품질을 높이고 전력생산효율을 높이는 기술이다. 이제 전 세계 발전 산업체들은 '디지털 전력혁명'으로 4차 산업혁명의 중심축에 서고자 노력하는 추세다.

한전은 최근 에너지기술의 선도업체인 독일 지멘스와 기술협력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기술혁신을 추진키로 했다. 한전이 보유한 우수한 전력설비운영 능력과 축적된 전력 빅 데이터를 활용해 전력산업의 미래혁명을 일으킬만한 전력 플랫폼 사업자로 변신을 꾀하기로 했다.

스마트 가전과 에너지 IoT(사물인터넷)가 연계된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면 다양한 에너지 서비스가 창출되고 에너지가 거래되는 새로운 에너지 생태계가 만들어 진다는 점이 바로 한전이 추구하는 4차 산업혁명이다.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에 의한 의사결정지원 시스템 및 예측분석기술을 발전기술과 결합시킨다는 얘기다. 첨단설비 진단으로 고장이 발생할 확률이 줄어들고, 비계획 설비가동중단을 없애 신속한 복구가 가능해진다. 설비별 정밀 수명모델을 활용해 설비가동효율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누릴수도 있다.

사고를 원천적으로 예방하는 전력계통운영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부하 배분을 최적화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하는 설비가동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전 산업의 4차 산업혁명은 핵심기술인 인공지능, 빅 데이터, IoT기술을 적용해 전력낭비를 없애는 새로운 전력설비 운용 패러다임을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로 평가된다.

발전소 주 기기의 예측관리 시스템을 강화해 보유 발전설비의 가동률을 높이고 전력 수요시장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 비효율적인 예비전력량을 최소화 하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전력산업은 정부의 통제를 받게 마련이다. 발전소 건설계획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전력수급계획'에 의해 결정된다. 아울러 발전 단가의 정산이나 발전량은 한국전력거래소에 의해 통제된다. 시장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상품을 생산해 시장가격에 의해 경쟁하는 일반 상품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전력생산량의 결정권은 한국전력거래소에 있다. 특정시간의 전력수요를 예측해 전기생산량을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생산 규모가 큰 기전발전설비부터 우선 순위를 부여한다. 원자력, 유연탄, 국내탄, 복합발전, 중유 발전의 순이다. 이를 ‘급전계획’이라 한다. 발전 가동시간이 짧은 가스발전은 후순위로 배치해 첨두(peak) 수요에 대응한다. 전력생산이 과잉되면 소비자의 피해가 되기 때문이다.

기상변화에 의존하는 신재생에너지나 소형발전(20MW이하)은 전력생산량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제외된다. 신재생에너지가 급전시스템에 도입되려면 반드시 ESS(Energy Storage System·에너지 저장장치)이 결합돼야 가능하다.

전력수요가 적으면 가스복합발전은 가동할 기회가 없다. 대신에 설비가동과 무관하게 설비용량과 시간 단위로 ‘용량가격’을 지원해 고정비 투자비용을 보상해 준다. 다만 급전계획에 의해 발전량을 통제할 수 없는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발전설비는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전력시장에서는 같은 전기량이라도 발전 원가를 산정해 전기가격을 다르게 적용하는 ‘비용중심 가격제도’를 적용한다. 원자력, 유연탄, LNG, 양수, 신재생 별로 전력거래 단가가 다르다. 한편 전력 입찰 단가인 SMP(System Marginal Price) 결정 과정에서 ‘정산조정계수’를 도입해 과도한 기저발전설비 투자비용을 보존시켜 줌으로써 설비투자 실패가 감춰지도록 전력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발전자회사는 원가절감을 위한 사고방지, 최적설비관리기술에 투자하지 않아도 적정 이익이 보장되는 시스템이어서 결국 과다한 설비를 유지하고 전력예비율을 과다 산정하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원래 발전설비의 전력공급예비율은 15%였다. 그러나 과도한 발전설비 투자로 2017년도엔 26,3%에 이르고 있다. 7차 수급계획에 의하면 ‘22년에는 27.7%까지 상승하게 된다. 문제는 과다한 전력수요 증가를 예상한 수준에 대해서도 과도한 설비를 유지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런 과오는 지난 6차 수급계획부터 전력예비율을 22%로 상승시켰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발전소 정비나 고장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최소 예비율’과 수요 변동 등에 대응하는 ‘수급 불확실 대응 예비율’로 나눠 각각 최소 예비율 15%와 수급 불확실성 대응 예비율 7%로 구성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설비예비율'이란 수급 불확실성까지 포함해 예상치 못한 모든 극단적인 사고에 대응해 전원 공급이 지속되기 위한 보장조건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전력수급전망 및 안정성 평가는 북미전력안정성협회(NERC)가 맡고 있다. 미국을 4개 지역으로 나눠 전력예비율로 14~17%를 권장하고 있다. 동부권 14%, 서부권 13%, 텍사스권 4%, 퀘백권은 12%로 기준선인 15%보다 더 낮다.

이보다 높으면 발전설비 투자비와 용량 요금이 증가해 비효율적이고 낮으면 긴급 수급비용이 증가해 비효율성이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발전 설비량과 발전방식을 6개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시나리오 별로 제안하고 있다. 뉴질랜드도 5개 시나리오를 가상해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유럽은 34개 국가가 단일 전력망으로 연결돼 있어 개별국가보다 유럽 전체의 공급 안정성이 중요하다. 국가별로 과다하게 투자된 설비를 줄이면서 설비예비율을 2025년에 15%로 맞추고 있다. 그렇지만 영국은 설비예비율을 9%로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2016년도에 전력시스템 구성에 관한 세 가지 규정을 법률로 통과시켰다. 전력시장법, 예비용량 법령, 그리고 에너지 전환의 디지털화 법이다. 독일은 에너지산업의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국가이다. 정부가 전력가격을 정하지 않고 시장참여자들의 참여로 가격이 유연하게 결정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부하관리, 전력생산, 에너지 저장을 시장참여자들이 자율적으로 시장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정부는 전력가격이 폭등하더라도 전력시장에 개입하지 않는다. 두 번째 정부는 배전망을 계획하고 확정해서 전국이 일정한 전력단가를 유지하도록 하는 조치를 하지 않기로 했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전력 단가가 형성되다가도 전국에 분산된 발전설비가 지역 간 차이를 줄이는 경쟁을 하게 된다고 본다. 발전소의 네트워크 병목현상에 대처하고 송전망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투자를 하고 있으며 예상치 못한 극단적인 이벤트에 대비할 예비용량을 확보하기로 했다.

예비설비는 전력 시장에 속하지 않는 발전소만을 포함한다는 조건으로 전력시장에서의 경쟁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설비예비전력을 별도로 예치한 발전소 규모는 최대전력수요(최대 전력부하)의 5%인 4.4 GW 규모로 입찰을 받아 보유할 계획이다.

시장에 참여한 발전사는 설비예비율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정부는 이 예비설비유지비를 전력단가에 합산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전력설비 예비율은 전력발전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15% 정도를 적정 수준으로 삼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 텍사스 4%, 독일 5%, 영국 9% 등과 같은 수준은 못 된다 해도 22%는 과잉투자의 책임을 회피하고 에너지 기술 관리나 설비관리를 포기한다는 의사표현이다.

한전이 추진하는 에너지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조금이라도 실현된다면 사물인터넷 기술이 적용된 디지털 플랫폼이 형성돼 수요관리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모든 발전사설비들은 센서들을 통해 예방 정비가 가능해지므로 가동률을 최대한 높일 수 있게 된다. 가정과 상가마다 스마트 그리드가 연결돼 정확한 전력수요 변동을 예측할 수 있다.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결합돼 모든 발전설비를 분산 관리할 수 있게돼 예비설비 비용이 필요없는 수준까지 기술발전이 가능해지게 될 것이다. 제조공장들도 스마트 공장으로 탈바꿈해 에너지 절감기술이 상식화 될 것이므로 에너지 소비량이 극감하게 될 것이다. 2020년대가 되면 온 국토가 에너지 4차 산업혁명의 혜택을 누리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이런 한전의 기술개발 전략이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검토하는 주무부서에는 미처 통보가 되지 못한 것 같다. 적어도 10년 이후의 에너지 기술을 지금보다 낮게 보는 전력수급계획으로는 국민을 설득시킬 수 없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설비 예비율을 적어도 5차 전력수급계획과 같은 수준인 15%로 환원하거나 가능하면 10% 정도로 낮춰주는 것이 타당하다.

2020년대는 스마트 도시, 스마트 공장, 스마트 그리드 세상이 된다고 모두가 믿고 있다. 지금 예상하는 에너지 절감기술들만 해도 최대 전력수요량을 낮추고 첨두(peak) 수요발생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부디 8차 전력수급계획에는 좀 더 과감한 미래 에너지 비전이 반영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이준정 미래기술전략연구원 대표 : 미래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이 뛰어나 '미래탐험가'로 불린다. 성균관대학교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 재료공학과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POSCO그룹 연구소장과 지식경제부 기술지원(금속부문)단장을 역임했으며, 서울대 재료공학과 객원교수로 활동했으며, 미래기술전략연구원 등을 운영하며 과학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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