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두 가지 시나리오 가능하지만 둘다 피하고 싶어"

신율 명지대 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가 우리를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나는 존중한다" "아마도,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마 긍정적인 무엇인가가 일어날 수 있다" 이 말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화염과 분노”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북한을 비난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하루 앞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대북 제재안을 채택한 이래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도발 행위들이 없었다는 점을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나는 이를 주목하고 인정하고 싶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또 "이것이 우리가 고대해왔던 신호, 즉 북한이 긴장 수위와 도발 행동을 억제할 준비가 돼 있는지와 가까운 장래 언젠가 대화로의 길을 우리가 볼 수 있는지 등의 시작이기를 바란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더구나 이 발언은 아프카니스탄 관련 기자회견에서 본인이 자청해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틸러슨 장관의 이런 발언은 한국으로 총출동한 미국 군 수뇌부들의 기자회견과도 그 맥이 맞닿아 있다.

방한한 미군 지휘부(태평양사령관, 전략사령관, 미사일방어청장)는 패트리엇 미사일을 뒤로한 채 처음으로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은 그 자리에서 “신뢰할 수 있는 군사력이 뒷받침돼야 외교적 대응책도 더 강력하고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외교적 대응이 우선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런 미국의 태도를 보면서 아마도 많은 이들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 북한이 괌에 대한 포위사격을 언급했을 때만 하더라도 미국과 북한은 조만간 한판 붙을 기세였다. 그런데 을지 포커스 가디언 훈련이 시작되고 나서, 미국은 오히려 한결 누그러진 언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협박을 일삼는 북한의 태도는 바뀐 것이 없다. 예를 들어 북한은 지난 22일 판문점 대표부 대변인 담화를 내고 “미제 호전광들이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위험천만한 군사적 도발을 걸어온 이상 무자비한 보복과 가차 없는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그리고 해리스 사령관 등 미군 ‘톱3’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침략전쟁 연습 소동으로 초래될 파국적 후과에 대한 책임은 미국이 전적으로 지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런 태도로만 보면 북한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변하지 않는 언사를 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왜 태도 를 바꾸었는가 하는 것이 의문으로 남는다.

일단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명분을 축적하려는 전략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훗날의 대북 강경 대응을 위한 명분 축적의 단계라는 것이다. 이런 추론의 근거로 지금 미국이 북한에게 가하고 있는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을 들 수 있다.

미국 재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유화적 발언을 했던 지난 23일, 중국·러시아·싱가포르·나미비아 기업 10곳과 북한·중국·러시아 국적 개인 6명을 대북제재 대상에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에서는 북한과의 거래가 많은 단둥(丹東)의 단둥리치어스무역·단둥즈청금속 등 5곳, 러시아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명단에 오른 북한 단군무역회사와 거래한 게페스트-M LLC 1곳이 제재대상으로 지정됐다.

이것을 보면 미국은 북한 핵 미사일 문제에 대해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으며, 계속해서 중국을 압박하고, 이를 통해 북한의 경제적 숨통을 더욱 조이려 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대북 경제 제제를 강화하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한편으로는 외교적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훗날의 대북 강경 조치의 명분을 쌓으려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두 번째 추론은 다름 아닌 미국이 북한의 현 상태를 인정하고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며 관계개선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이런 추론의 근거로는 트럼프의 최측근이라고 알려진 배넌의 '주한 미군 철수론'을 들 수 있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지난 16일 “중국이 북한 핵 개발을 검증할 수 있게 동결시키고 미국은 한반도에서 병력을 철수하는 협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표현에는 북핵 포기가 아닌 북핵 동결이 주한미군 철수의 조건으로 등장하고 있다.

배넌의 주장을 짚어보면 미국 일부 인사들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개발 단계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이에 따라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현 상태로 유지하는 것만이 가능하고, 그래서 동결 정도에 만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중국과 북한의 눈엣가시인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도 할 수 있다.

만일 미국 내에서 이런 분위기가 보편화 돼있다면, 우리로서는 가장 끔찍한 상황이 도래하는 셈이다. ICBM과 핵을 보유한 북한을, 주한미군이 없는 우리 자력만으로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나리오도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만일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할 능력을 가졌다면, 미국의 입장에선 북한을 건드릴 수 없고, 그래서 대화에 나서 그들의 요구를 일정 수준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선, 미국 본토의 안전이 서울의 안전보다 중요하다. 즉, ICBM과 핵무기 덕분에 북한은 아시아 국제관계의 게임 체인저가 되고, 게임 체인저가 되기 때문에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고 판단되면 미국의 최선의 전략은 북한을 달래는 것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은 현 수준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동결시키는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특히 ICBM의 실전 배치를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적극적으로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군 수뇌부 그리고 틸러슨 미국무장관의 유화적인 대북 발언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북한에 대한 경제 제제의 강화는 대북 협상을 앞둔 일종의 카드로 사용하려 하기 위한 조치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다.

우리의 입장에선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추론 가능한 시나리오 모두를 피하고 싶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미국이 북한에 강경한 조치를 할 것이라는 차원에서 한반도 전쟁을 우려할 수 있는 상황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전쟁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언급을 상기하며 이런 시나리오의 현실화를 부인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대한민국의 국가원수로서 분명히 옳고 당연한 말이지만, 문제는 전쟁을 막기 위해 우리가 취할 마땅한 방도가 없다는 데 있다. 또 일부는 대화를 통해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현실적으론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정은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리비아의 가다피의 최후를 본 이상, 절대 핵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북핵 해결 방식을 두고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이라는 용어를 자주 언급했었다. 즉, 리비아가 핵 개발을 포기했던 방식을 북한에 적용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다피가 사망했다는 사실은 역으로 김정은으로 하여금 핵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사례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대화로 북핵과 미사일의 해법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진게 현실이 된듯 싶다.

여기서 또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바로 경제 지원과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전제로 한 북핵 포기다. 그런데 북한의 입장에선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는 오히려 ICBM과 핵무기만 있다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경제 지원도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담판을 지을 때, 얼마든지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은 핵과 ICBM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선 북한에 모종의 조치를 취하려 할지도 모른다.

두 번째로 언급한 추론은 전쟁 가능성은 없지만, 우리의 입장에선 전쟁 못지않게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미국이 핵을 가진 북한을 인정하고 현 상태에서 동결하려 한다면, 북한은 그야말로 핵 강대국의 반열에 들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당사자로서의 한국의 입지와 역할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됐을 때, 북한은 우리에게 “핵을 가진 강대국끼리 대화하겠다”고 한국을 대화상대에서 제외해버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북한이 대화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이는 곧 한반도의 평화를 의미하기 보다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의 우리의 주도권을 북한에게 빼앗기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단기적으로 전쟁의 위협은 사라지지만, 남북관계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더구나 주한 미군까지 철수하게 되면 우리의 입장은 더욱 곤란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지금 대한민국을 둘러싼 상황은 그만큼 엄중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우리에게 다행인 점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아주 높다는 점이다. 국가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대통령 지지율마저 낮다면 이는 정말 큰일이다. 왜냐하면 대통령에 대한지지 여론은 곧바로 통합과 일치단력된 모습으로 이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지지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국제 관계 속에서 우리의 위상과 한반도 당사자로서의 우리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한다.지금 이 시기를 놓치게 되면, 앞으로의 상황은 더욱 험난해 질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8월 위기설, 9월 위기설 같은 설(說)에 휘둘리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최소한 당장 무력분쟁이 한반도를 덮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아직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분명히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 신율 명지대 교수 프로필: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민사회 활동과 더불어 정치평론가로 저술 및 방송활동 등을 꾸준히 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다. 2011년에는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에도 등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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