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한번쯤 숨을 고르면서 신속과 공정의 가치를 잘 버무려 성과 내기를"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 재벌저격수로 불렸던 김상조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취임한 지 벌써 한달 반이 지났다. '김상조 효과'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공정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가운데 공정위 수장이 요즘처럼 뉴스의 중심에 서게 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기대가 큰 만큼 그동안 공정위 활동이 국민적 기대에 미흡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김상조 위원장은 그간 4대 그룹의 불공정거래행위, 특히 일감몰아주기 등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행위 엄단을 비롯해 대형 유통업체와 가맹본부 갑질문제 해결 등 '공정한 경제'라는 국정과제의 한 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전속고발권 손질, 조사절차개선 등 조직의 신뢰 제고와 같은 공정위의 업무와 조직 등 측면에서도 김위원장이 남달리 강력한 혁신 의지를 보여 눈길을 모았다.

이에 업계에선 김위원장이 공정위 기본업무뿐 아니라 조직에 대해서도 이미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나름의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다만 이 시점에서 한번쯤 숨을 고르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관행이나 가맹점 및 대형 유통점의 갑질은 소수 대기업 집단의 독과점 현상과 수직적 거래구조에서 빚어진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몇몇 악질적 사례를 발굴해 제재를 가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인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이뤄지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영세 자영업자 및 일부 가맹점주들에게도 필연적으로 피해가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민들은 공정위의 조직혁신을 통해 신속하고 공정한 사건 처리를 기대한다. 하지만 신속과 공정이라는 두 가치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제재가 강해지는 경우, 신속보다는 공정이 더 중시되는 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김상조 효과'에 의해 유발된 공정위에 대한 을(乙)의 높은 기대가 더욱 높은 장벽에 직면할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25일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공정경쟁을 촉진하고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구축해 공정한 경제의 틀을 마련한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 정책의 상당부분을 공정거래위원회가 담당한다는 점에서 김위원장의 어깨는 무거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공정위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그리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미 상당한 논의가 있었기에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다만 현재까지 발표된 공정위 추진 방안 가운데 참신하다거나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은 별로 없다. 불공정거래관행의 근절, 담합행위 근절,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은 이미 그동안 꾸준히 거론돼 왔던 내용들이다.

우려되는 대목은 바로 ‘누가' 이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껏 나오는 얘기는 공정위가 재벌편을 든다거나, 사건 처리가 너무 지연된다거나, 퇴직자들과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사건이 왜곡된다거나 하는 정도일 뿐이다. 오해에 기인한 부분이 있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부분 즉 공정위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눈감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통계자료를 보면, 공정위가 장관급으로 격상된 1996년 사건처리 실적(경고 포함)은 1068건에서 2015년 4367건으로 약 300% 이상 증가했고, 과징금 부과 건수 및 금액을 보면 1996년 22건, 162억7500만원에서 2015년엔 5889억원으로 약 3600%나 증가했다.

이에 반해 공정위 정원은 1996년 385명에서 2016년 기준 535명으로 150명(약 40%) 늘어난데 그쳤다. 더욱이 사건처리 절차에서도 지속적으로 법 위반혐의 사업자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보완이 이뤄져 사건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시간도 훨씬 길어졌다.

그 결과 민원을 제기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졌고, 이는 국회를 통해 공정위의 업무처리 지연 등의 질타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이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누구’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듯 하다.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절차를 소홀히 할 수도 없고, 개인의 민사분쟁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민원이라고 해서 서면 답변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공정위 업무처리의 현실임을 한번쯤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공정위 내부 직원 증원 의사를 밝힌 김 위원장의 구상은 수긍할만 하다. 다만 공정위 내부 인력구조만 들여다보면 김 위원장이 일부 증원을 한다지만 그 인력은 대기업집단 및 가맹사업자 조사를 위한 것에 그칠 공산이 커 보인다. '을의 눈물'과 직접 관련된 불공정거래행위 근절에 도움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는 이미 수십년간 이같은 업무를 잘 할 수 있는 전문성이 축적돼온 조직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규모와 조직체계로는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인력증원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듯 내부적으로 조직재구성, 업무방식의 변화도 필요할 것이다. 심지어 업무의 일부를 다른 행정부서나 지방자치단체로 넘기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제는 인력 증원을 포함해 공정위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데도 눈을 돌려야 한다. 왜, 어떻게, 무엇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누가’ 하는지 관심을 더욱 큰 관심을 갖고 챙겨야할 때이기도 하다.

3년이라는 위원장 임기는 우리나라 경제를 좀 더 경쟁적이고 시장친화적인 구조로 바꾸기에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정위가 영세 자영업자, 벤처사업자, 협력업체와 같은 을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 못지 않게 '을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독과점적 시장구조 그리고 이와 필연적으로 연결돼 있는 재벌경제에 더욱 큰 관심을 갖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김위원장이 이같은 태도로 나선다면 3년이라는 임기는 준비작업을 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정위가 해야 할 일, 그리고 공정위의 조직혁신 방향 등을 바라볼 것을 기대한다.

김 위원장의 과거 이력이나 지나온 세월을 보면 이러한 기대를 걸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김 위원장이 신속과 공정의 두 가치를 잘 버무려 을의 눈물을 최소화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줄 것을 기대한다.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 프로필

경북대학교 법학과와 同 국제대학원(국제법학)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92년 행정고등고시(36기, 법무행정) 합격후 1994년 공정위 약관심사과 사무관으로 임용된 이후, 하도급총괄과, 전자거래팀, 표시광고과 서기관, 약관심사팀장까지 공정위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6년 두산그룹 전략기획본부 법무실 상무로 자리를 옮긴 이후 2015년 4월까지 경영혁신본부 동반성장지원팀장(전무)으로 일했다. 공정위 업무에 두루 해박한데다 기업과 공정위 이슈에 대해 정통해 이 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최근에는 민주정책통합포럼 상임위원과 문재인 대통령후보 경제산업특보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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