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신고리 원전 공론화를 좌우할 3大 변수는?"

'배심원단의 공정 선정' '전문가그룹의 객관·이성적 설명' '정부 불개입 원칙'

‘시민배심원단은 공평하게, 전문가 설명은 공정하게, 정부의 불개입은 정의롭게’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핵으로 남북한 양쪽이 화끈거리고 있다. 북한은 평화를 염원하는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의 기대를 저버린 채 핵으로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 사회 또한 핵 문제로 논란이 한창이다. 우리 에너지 자원의 주축으로 역할을 해왔던 원자력에 대한 퇴장 움직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드라이브를 가동하고 원자력 에너지를 대체할 신재생 에너지 시대를 선언하고 나섰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에서 보았듯이 예상치 못한 재난으로 인한 원전의 위험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이전에 우리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원전의 위험은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4분경에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라야 고작 사고가 있었다는 것과 그 이후의 체르노빌과 그 주변 지역의 피해와 관련된 수준이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가 아니었다. 물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역시 원자력 발전소가 문제를 초래한 것이 아니라 대지진에 따른 후속피해였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사고는 정상적인 원자로 가동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실험을 위해 안전 시스템을 해제한 것이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 누출된 방사능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러시아까지 광범위한 피해를 끼쳤다. 역대 최악의 원자력 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소련이 우크라이나를 정치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심각한 사고에 대한 정보가 신속하게 제공되지 않아 피해는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원전 사고나 방사능 피폭으로 죽었는지 알 길이 없다. 당시 사망자 수만 2000명 이상 3000명에 이른다는 추측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체르노빌을 포함한 인근 지역에 대한 오염뿐만 아니라 대기권으로 방출된 방사능 물질이 일정기간동안 북반구 전역을 떠돌았고 지구 생태계를 오염시켰다는 분석이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보더라도 원전 사고가 가져오는 직접적인 피해와 간접적인 피해는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에너지 자원 수입 국가의 입장에서 원자력의 산업 발전에 대한 기여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 2차 대전을 끝장내버린 핵폭탄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기억하는 국가들은 앞 다투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1951년 미국의 아이다호 주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력 발전이 시작된 이래 소련과 영국 등이 원자력 발전 시스템을 도입했다. 1971년에는 마침내 우리나라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국제 유가에 의한 충격(오일쇼크) 극복의 일환으로 원자력 발전을 시작했다.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는 세계 각국들은 지속성, 안전성, 경제성, 핵비확산성에 모든 관심을 쏟아 붓고 있다. 이처럼 원자력은 에너지 자원으로서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지니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원자력을 국가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해야 할지 아니면 중단해야 할지는 국가 정책 방향과 국민 여론이 맞물려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동 중단 결정된 고리 1호기 원전 앞에서 탈원전 선언을 함으로써 한국 원자력 에너지 역사는 중대 기로에 서 있다.

탈원전 여부의 첫 신호탄은 한국수력원자력공사의 신고리 원전 5호기와 6호기의 공론화 조사 결과에 달렸다. 정부와 전문가 그룹의 손을 떠나 공사 중단 상태에 있는 신고리 원전의 운명은 이제 국민의 손에 달렸다. 공론화 조사는 공정성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결과에 승복하는 정치 문화가 존재해야 한다. 공정성을 시비삼고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구조라면 공론화는 현명한 해답을 얻는 과정이 되기보다는 갈등의 씨앗이 되기 십상이다.

신고리 원전 5호기와 6호기의 운명은 이제 공론화 조사에 달렸다. 공론화 조사의 운명은 시민 배심원단의 공정한 선정, 전문가 그룹의 객관적 설명, 정부의 원천적인 불개입이라는 세 가지 변수에 달렸다.

원전 공론화를 좌우하는 첫 번째 변수는 시민 배심원단의 공정한 선정이다. 시민 배심원단은 신고리 원전 5호기와 6호기의 운명을 손에 쥔 중차대한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마치 여론조사의 표본추출처럼 대표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무작위 추출을 시도한다면 좋겠지만 공론화 조사는 독특하게 특정한 이슈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균형을 이루도록 선정돼야 한다.

일반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공론조사를 실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안의 전문성과 복잡성 때문이다. 신고리 원전의 건설 지속여부는 원전 유지와 탈원전 이라는 상반된 정책 방향과 관련된 지역민들, 그리고 관련된 산업분야 종사들 사이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현안이다. 여기에다 원자력이라는 분야는 운영과 안전에 있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전문적인 설명이 뒤따른다.

그러므로 시민 배심원단으로 선정된 사실상 찬반동수의 비전문가들에게 전문가 그룹이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관련 사안을 일목요연하고 논리정연하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시민 배심원단에서 현안에 대해 충분히 숙지한 후 이해당사자가 아닌 제 3자적 입장에서 합의 가능한 결과를 도출한다는 취지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 배심원단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배심원단 선정 조사에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고는 하나 정책에 대한 태도가 변화무쌍하다면 사실상 중립적 배심원단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원전 지속이냐 탈원전이냐는 정책의 큰 방향설정이라면 몰라도 이미 국민들에게 대통령과 현 정부의 원전 정책 전반에 대한 메시지가 전달되고 난 후이므로 선입견을 원천 배제하기는 매우 힘들어진다.

관련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의 입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지난 11~13일 실시하고 14일 발표한 조사(전국1004명 휴대전화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적용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신고리 원전 5호기와 6호기의 건설 여부’에 대해 물어본 결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41%였고 ‘건설을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은 37%였다.

오차 범위를 감안한다면 신고리 원전 찬성과 반대가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적으로는 더욱 예민하다. 신고리 원전 인근 지역으로 분류되는 영남권 중에서 부산울산경남은 원전 건설 반대 여론이 더 높았다. 그러나 대구경북에서는 오차 범위내이기는 하지만 건설을 계속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 높았다.

신고리 원전 찬반

울주군에 건설중인 신고리 원전을 놓고서 인근 지역의 반응조차 요동치고 있다. 원전 공론화의 첫 단추는 시민 배심원단을 얼마나 공정하게 구성하는가에 달려 있다.

원전 공론화 조사를 좌우할 또 하나의 치명적인 변수는 전문가 그룹의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설명이다.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현안이라 원전 건설 지속과 원전 건설 중단의 입장을 대표해야할 전문가 그룹은 시민 배심원단을 향한 토론에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태도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차가 선명할지라도 배심원단을 대상으로 한 토론에서는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은 삼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전문성을 근거로 토론하지 않으면 전문가 토론을 보고 듣는 시민 배심원단을 정치적으로 선동할 여지가 커진다. 관련 내용의 차별화와 설득력에 따른 설명이 아니라 감정에 치우치면 일종의 정치판으로 변질될 우려가 농후하다.

원전 건설을 계속해야할 뿐 아니라 원자력 에너지의 지속적인 발전 방향에 대해 우호적인 전문가 그룹은 왜 원자력 에너지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원자력 에너지의 대안으로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정책방향부터 지적이 뒤따른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과신을 우선 문제 삼는다. 정부가 원전을 대체할 수단으로 제시한 신재생에너지로는 LNG, 태양열, 풍력 등을 예로 들고 있다.

LNG는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화석 연료보다는 적지만 전기 생산시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가격 변동성 역시 큰 편이다. 재생에너지는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극복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는 송배전 시설을 이용해 즉시 수요자로 전달되어야지 대량으로 충전하지는 못한다는 설명이다.

대규모의 시설 면적을 필요로 하는 태양광과 바람이 강하게 부는 해안가나 계곡이 깊은 구릉지를 선택해야 하는 풍력 발전은 막대한 초기 비용과 경관 훼손 등의 경제적 문제와 함께 환경 파괴 문제라는 도전을 받고 있다. 탈원전의 모델로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을 거론하지만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찬성 입장인 전문가 그룹은 오히려 영국, 일본, 대만이 원자력을 재논의하기 시작한 점과 미국의 재생에너지 연구 축소 배경을 강조하기도 한다.

원전 찬성 입장인 전문가들은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 있어 기능적으로 효율적인 원자력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에너지 자원으로서의 원자력에 대한 매력은 긍정적인 여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전기를 얻기 위해 원자력 발전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물어본 결과 찬성 의견이 59%로 반대 응답(32%)보다 두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원자력 발전 이용

1971년 이래 한국사회에서 에너지 자원 독립을 기대해온 만큼 원자력 발전이 기여해 온 점은 인정하는 여론이다. 그러나 한시라도 빨리 탈원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원전 반대 입장에 있는 전문가의 견해는 상반된다. 탈원전에 공감하는 전문가들은 원전의 안전성을 최우선시하고 있다. 공사 중단에 놓여있는 신고리 원전 5호기와 6호기를 비롯해 전체 원전 중 총 10기가 인구 과밀지역에 밀집되어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고리 인근 불과 수십킬로미터 내에 무려 400만명 가까운 인구가 밀집해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원전 반대 입장에 있는 전문가들조차 원전이 갖고 있는 여러 장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체르노빌처럼 그리고 후쿠시마처럼 인재이든 아니면 천재이든 한 번 발생하면 원전의 모든 장점은 수포로 돌아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신고리 원전 5호기와 6호기를 중단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우리 국민들의 여론 또한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큰 편이다. 한국갤럽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가 안전하다고 보는지, 위험하다고 보는지’ 물어본 결과 ‘위험하다’는 의견이 54%였고 ‘안전하다’는 응답은 32%로 나타났다.

특히 신고리 원전 5호기와 6호기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구경북에서는 위험인식과 안전인식이 거의 팽팽했고 부산울산경남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안전하다는 인식보다 26%포인트 더 높았다.

원자력 발전소 안전여부

전문가들의 견해는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게 엇갈려 있어 접점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므로 공론화 조사에서 전문가 집단의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이 매우 중요하다. 자칫 서로간의 감정선을 자극하며 격양된 분위기로 시민 배심원단을 향한 토론이 진행되는 경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공론화의 취지를 찾아보기 힘든 사태를 초래하게 된다.

원전 공론화 조사를 좌지우지하는 세 번째인 마지막 변수는 정부의 불개입 원칙이다. 대통령이 탈원전 의지를 천명한 직후라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줄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공정한 시민 배심원단이 선정되고 전문가 그룹의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설명이 유지된다면 최종적으로 필요한 원칙은 정부의 불개입이다. 물론 공론화를 추진하는 이유에서 알 수 있듯 정부는 불개입을 너무나도 당연한 원칙으로 인식하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원전을 위해 오랜 시간 공론화를 추진했던 유럽의 사례나 최종적인 결정에 법적 의미 부여를 강화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부친 경우와는 엄연히 다르다. 원자력 발전의 최대 논란으로 부상한 신고리 원전 5호기와 6호기 건설 잠정 중단 직전 문 대통령의 탈원전 의지는 더욱 강력하게 국민들에게 전달된 바 있다. 한국갤럽조사에서 신고리 원전 건설관련 찬성과 반대를 물어본 결과 전체로는 찬반이 팽팽하지만 문 대통령 지지층에서는 ‘원전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는 응답이 훨씬 더 높다.

신고리 원전 정치적 입장

대통령 지지층들의 의견을 좇는다면 이미 답은 나온 거나 다름없다. 반면에 신고리 원전 건설이 찬성 결과로 나온다면 문 대통령의 탈원전 의지는 퇴색하고 만다. 대통령 지지층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정책이 뒷전으로 밀리는 결과가 달가울 리 만무하다.

공론화조사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부지불식간에 대통령과 정부의 의중이 시민 배심원단과 전문가 그룹에 영향을 준다면 그 결과에 국민 공감대를 끌어내긴 힘들다. 어쩌면 공론화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정부의 불개입 원칙일지도 모르겠다.

신고리 원전의 ‘판도라’ 상자는 몇 개월 후에 열린다. 열린 판도라 상자에 대한 반응은 어떻게 나타날까. 지난 연말 개봉된 영화 ‘판도라’는 원전의 무시무시한 위험을 보여주었고 관객들에게 인상적인 경고를 날렸다. 400만 명이상 관객몰이를 한데는 영화의 완성도가 높은 이유도 있겠지만 우리 국민 앞에 놓인 예민한 이슈를 다루었다는 데서도 이유를 찾게 된다.

지진 발생으로 원전 폭발 그리고 국가 비상 재난 상황에서의 컨트롤 타워 부재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탈원전을 강조하는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가 영화의 내용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인구 밀집도가 높은 남동부 지역을 상상한다면 영화 속의 상황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자원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신재생 에너지 비율을 단기간에 급격히 끌어올리는데 대한 반론 또한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최악의 상황만을 가정한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에 대해서도 안전성, 경제성을 강조해온 전문가 집단에서는 수긍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하고 가동하는데 따른 오염물질 발생이나 환경 훼손 문제 발생도 함께 고려되어야할 사항이다.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발전시켜온 원천 기술 상실 가능성에 대한 걱정도 제기된다. 미국의 기술력으로 처음 원전을 도입했던 1971년과 달리 지금은 원전 기술 선진국에 속하는 한국이 되었다. 총 23기 중 22기를 가동 중에 있고 에너지 비율의 약 30%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자원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이 간과되거나 무시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원자력 발전 앞에 놓여있는 의사 결정은 간단치 않다.

특히 정부나 전문가 그룹의 결정이 아니라 신고리 원전 5호기와 6호기의 운명은 시민 배심원단 즉 국민의 손에 달린 셈이다. 방법은 공론화를 통한 조사다. 신고리 원전 건설 여부뿐만 아니라 탈원전에 대한 운명까지 거머쥔 공론화 조사의 책임은 막중하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한 공론화 조사의 운명은 ?가지 변수에 달렸다. 먼저 시민 배심원단의 선정이 공정해야 한다.

시민 배심원단은 다른 사람의 정치적 의사결정에 휘둘리거나 정치적인 환경에 지나치게 순종적인 성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자신의 주관적인 의사 결정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타인이나 전문가의 발언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면 배심인단 배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전문가 그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치적인 입장은 원천적으로 배제돼야 한다.

사례와 근거를 통해 원전의 찬성 이유와 반대 이유를 매우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배심원단에게 설명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정부의 불개입 원칙이다.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접근만 없다면 불개입이라고 단언할지 모르겠지만 간접적으로라도 영향을 받는다면 불개입의 원칙과는 어긋난다. 공론화 조사의 순기능만을 최대한 부각시켜 가장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도록 해야 한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이다. 인류의 불행과 희망의 시작을 상징한다고 한다. 판도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상자를 열었다가 질병, 전쟁, 가난, 증오 등 인류가 경험하는 모든 불행의 씨앗을 싹틔우고 말았다. 그러나 희망만은 상자 속에 남겨두지 않았는가. 공론화 조사의 판도라 상자는 몇 개월 후면 열리게 된다. 공론화 조사에는 무승부가 없고 승부차기도 없다.

찬성과 반대의 길로 엇갈리고 승자와 패자가 있게 마련이다. 얼마나 갈등을 잘 봉합해 낼지가 또 다른 과제다. 문 대통령의 연설 중에 가장 잘 알려진 문구가 ‘기회는 공평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이다. 바로 공론화 조사에 딱 맞아떨어지는 설명이다. ‘시민배심원단은 공평하게, 전문가 설명은 공정하게, 정부의 불개입은 정의롭게.’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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