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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율 명지대 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번 대선에서 세대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잖이 제기되고 있다. 세대간 선호후보가 갈리는 현상이 역대 어느 대선보다 뚜렷하고 강하기 때문에 나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원론에서부터 차근차근 얘기를 풀어가 보자. 정치가 갈등의 해소수단이 될 수 있는가? '아니다'가 정답이다. 사회적 갈등은 완전히 해소될 수 없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머리를 맞대보자. 사회에서 어떤 사람과 갈등을 빚게 될 경우, 그 사람과 '완전한 화해'를 하는 것은 매우 것을 여러분들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만 봐도 정치라는 존재가 사회적 갈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해진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정치라는 존재는 사회적 갈등과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사회에서는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혀 사는 세상에서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그대로 어불성설이 아닌가. 이런 갈등은 대부분 이익과 관련돼 있다. 사회적 갈등이 집단적 차원의 갈등이든 아니면 개인적 차원의 갈등이든, 이익 갈등이 사회적 갈등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얘기다.

과거 산업사회에서의 이익갈등은 대부분 집단적 차원의 이익 갈등이었다. 산업사회의 주요 모순이 노동과 자본 간의 모순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노동자 집단과 자본가 집단의 갈등이 주요한 사회적 갈등으로 자리잡게 된다.

19세기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면 산업화 초기부터 이런 집단적 차원의 이익 갈등이 불거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노동자 연맹(ADAV)이 생겨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다가, 나중에 독일 사민당(SPD)으로 변신하게 된다. 독일 사민당에 대항하기 위해 자본가 집단도 정당을 만든다. 당시 탄생한 자본가 집단의 정당이 바로 중앙당(Zentrumspartei)이다. 이 과정을 보면,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면 먼저 사회적 차원의 이익단체가 발생했다가 추후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회적 갈등 때문에 발생한 단체가 정당으로 바뀌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국가적 공권력을 획득해야만, 자신들 집단의 이익을 보다 잘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원의 공권력 획득은 법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들면, 제도라는 기본틀 아래 상대방에게 제도라는 이름의 규칙을 따르라고 강제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 매력이다.

그래서 서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안이 있다. 사회적 차원의 갈등이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려고 사회적 차원에서 집단과 집단 간 투쟁을 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제도라는 이름의 규칙이 없어 무한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갈등을, 정치라는 이름의 '링'위에 올려놓으면,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기 위해 싸우게 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기 위해 싸운다 해도 이런 경우, 또 다른 '싸움의 규칙'하에서 투쟁할 수밖에 없다. 즉, 정치적 과정은 제도라는 이름의 규칙위에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싸움의 규칙'하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투쟁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규칙 있는 싸움이 되고, 자연스레 무한투쟁은 사라지게 된다.

정치란 결국 갈등 해소를 위한 존재가 아니라 '싸움의 규칙'하에서 투쟁하는 '갈등 축소 수단'이 되는 셈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정치인들 역시 우리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용병임을 알 수 있다. 즉, 우리 대신에 제도권 내에서 우리의 이익을 위해 대신 싸우는 용병이라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정치는 갈등이 있어야만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결코 화합이나 통합을 위한 수단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지금 정치인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일부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사회적 통합을 외치고 있다. 이는 솔직한 태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적폐 청산”을 외치는 쪽이 솔직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적폐 청산은 특정 부류의 집단에는 기분 나쁜 말이지만, 다른 집단에는 필요한 과정이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적폐 청산'이라는 단어가 기분 나쁘게 들리는 집단은, 이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이를 찬성하는 집단은 그 동안 적폐 때문에 자신들의 정당한 이익이 훼손됐다고 생각하는 집단일 공산이 크다.

어차피 정당 혹은 정치 집단이, 특정 사회적 집단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음을 상기할 때 이런 표현은 오히려 자신들의 위치와 입장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요즘에는 사회적 갈등이 세대 간에도 나타나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간단히 도식화하면 20대부터 40대까지는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 경향이 강하고, 50대 중반 이상부터는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성향이 강하다는 얘기다.

이는 상대적으로 젊은 층들은 문재인 후보가 자신들의 이익을 잘 대변할 것이라고 믿는 반면, 50대 중반 이상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더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대 간의 대선 후보지지가 갈리는 '유리현상'은 여론조사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한국일보가 한국 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4월 24일, 25일간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전화 임의걸기 방식을 활용한 전화면접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 21.0%,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살펴보면 20대에서 40대까지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평균 51.45%인 반면, 안철수 후보 지지율은 20.0%에 그쳤다.

50대의 경우에는 50대 중반 이후와 초반 이후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50세에서 54세까지의 경우 문재인 37.7%, 안철수 27.2%인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55세 이상부터는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훨씬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세대 간 균열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대목이 있다.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를 보면, 광주 전라에서 문재인 후보는 55.1%, 안철수 후보는 31.6%의 지지를 얻고 있고, 대구 경북에서 문재인 후보는 19.8% 안철수 후보는 33.1%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누가 지지를 얼마나 받고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는, 이 지역들은 과거 특정인에게 9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선거는 과거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지역갈등은 약해지고 세대간 균열구조는 더욱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세대 간의 균열 구조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 이번 대선부터는 아니다. 지난 총선 때부터 세대 간의 균열 구조가 지역갈등을 앞지르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 사회의 주요 모순이 이제는 지역갈등이 아니라 세대 갈등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의 주요 모순이 지역갈등이 세대 간 갈등으로 넘어간 것은 어쩌면 긍정적 흐름일수도 있다.

우리나라 지역갈등이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이성계의 훈요십조를 들먹이며 지역 갈등, 지역 편견이 상당히 오래된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하다. 하지만 훈요십조는 후대의 위작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기 때문에,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 지역갈등의 시작을 산업화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정설로 보인다.

즉, 박정희 소장의 군사 쿠데타 이후 시작된 급속한 경제 발전 과정에서, 호남 지역이 상대적으로 소외됐기 때문에 지역 갈등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이런 분석도 일면 타당성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역 갈등, 그리고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은 경제 발전 과정에서의 소외라는 이성적 차원의 설명만으로는 왠지 부족해보인다.

편견이라는 것 자체가 비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편견을 “특정 사안에 대한 적확한 검증 전에 갖는 판단이자 유년기 시절, 그리고 이성이 성숙하기 이전에 갖는 판단"으로 정의했고, 크리스티안 볼프는 '부패한 이성'이 편견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이런 사상적 분석을 토대로 살펴봐도 지역갈등의 원인이 되는 특정지역에 대한 편견은 그 원인이 비이성적이어서 설명 자체가 불가능한 사안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반면 세대 간의 갈등은 합리적 이성적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요즘 상황을 살펴봐도 그렇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극명한 선호를 보이고 있는데, 이들 2030세대의 특정 후보에 대한 선호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과거 17대 대선 당시를 회상해 보면, 당시 2030세대들의 보수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언론들이 떠든 적이 있다.

반대로 18대 대선 당시에는, 이들 2030세대 들이 진보 상향을 띠고 있다는 분석이 쏟아졌었다. 그런데 이런 분석은 틀렸다고 본다. 이들 2030세대들은 단지 반(反)권력적 성향을 보이는 것이지, 이념 편향성을 드러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30세대는 단지 노무현정권 당시 반 노무현 성향을 띤 것뿐인데, 이를 두고 언론들은 젊은 세대들의 보수화 성향 운운한 것으로 그릇된 해석을 내렸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반 이명박 성향을 띠면 진보라는 너울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 2030세대들 중 문재인 지지가 많은 것은 반(反) 박근혜 정서가 표출된 것이지, 문재인 후보의 진보적 성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들 젊은 세대들이 반 권력적 성향을 띠는 것은 지금의 사회구조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자신들이 보고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마디로 젊은 세다가 자신들이야말로 권력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반대로 50대 중반 이상이 반문재인 성향을 보이는 이유도, 이성적 차원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문재인 후보의 이념적 성향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어 반대한다고 본다. 하지만 반대하는 상당수는 문재인 후보의 이념적 성향에 대한 의구심이라기 보다는 문재인 후보가 이념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측면이 짙다.

즉, 이들은 문재인 후보의 적폐 청산과 같은 구호가 지나치게 이념 지향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지금과 같은 경제상황에서 또 다시 이념 투쟁이 사회의 주요 모순으로 등장하게 되면, 한국 경제가 망가질 것을 걱정하기 때문에 문 후보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념적 갈등을 소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이같은 세대 간의 균열 구조가 막연한 편견으로 점철되는 지역갈등보다 훨씬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은 최소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이 비이성적 차원의 소모적 갈등에서 이제는 설명이 가능한 그래서 어느 정도 축소 가능한 이성적 차원의 갈등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사회적 갈등의 '진화'는 우리나라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에서는 사회적 갈등이 없는 게 제일 나은 것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정치는 갈등을 먹고사는 존재이고, 갈등 없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기에, 기왕에 존재하는 갈등이라면 이성적 차원의 갈등이 훨씬 낫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더욱이 편견은 쉽게 없앨 수 없지만, 이성적 근거에서 비롯된 갈등은 정치권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다. 이는 정치권이 제 기능만 잘 하면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 나타나는 세대간 갈등 구조를 무조건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이번 대선은 예기치 않던 대통령 탄핵으로 졸지에 치러지는 대선이다. 하지만, 대선에 임하는 유권자들의 사고 구조, 그리고 거기서 나타나는 갈등 양상을 보면 이번 대선을 반드시 비관적으로 바라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대선을 계기로 지금 불거지는 세대 간의 갈등을 줄이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정치는 현실을 다루는 분야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접근해야지 당위론 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19대 대선도 그런 차원에서 바라보면 의외로 쉬운 선택이 될 수 있음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 신율 명지대 교수 프로필: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민사회 활동과 더불어 정치평론가로 저술 및 방송활동 등을 꾸준히 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다. 2011년에는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에도 등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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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7/05/02 01:00:31 수정시간 : 2017/05/02 09: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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