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보수 후보가 뜨지 못하는 치명적인 3대 이유는 ...."

'탄핵 여진의 지속', '보수후보의 연쇄 불출마', '보수 유권자들의 피로감' 세가지가 핵심 이유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선거가 얼마남지 않았다. 여론조사 결과가 하루가 멀다하고 공개되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가장 앞서있고 이를 바짝 추격하는 2위 후보도 같은 정당 소속의 안희정 충남지사다.

여권 후보 즉 보수 진영의 후보로 점쳐졌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연이어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새로운 보수 진영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당선 가능성은 장담하기 힘든 수준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수는 죽었다’는 자조 섞인 넋두리가 보수 진영을 가득 메우고 있다.

반보수 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그리고 정의당 후보의 지지율을 모두 합치면 60%를 넘는 수준이다. 사실상 정권 교체 여론은 커질 대로 커져버렸다.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의 존재 가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보수의 몰락이다.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과거 새누리당 지지율의 3분의 1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자유한국당 유력 후보조차 10%대 지지율을 확보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지난 2012년 미국 보수정당인 공화당 내부는 비상 상황에 봉착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이후 민주당에 정권을 뺏겼고 오바마의 재선을 넋 놓고 바라보아야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고령자가 늘어나면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 심화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현상은 다르게 나타났다.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고령층에서 오히려 진보 성향이 강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2년 11월 실시된 선거에서 거의 대부분의 경합주에서 승리를 거두며 300명 이상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주지사를 역임한 미트 롬니는 오바마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실력에 있어 오바마 현직 대통령에 미치지 못했지만 ‘공화당 디스카운트’가 본격화되며 선거 인심을 확보하지도 못했다.

공화당 출신의 인기 대통령인 레이건 이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고작 4년 단임밖에 하지 못했다. 빌 클린턴의 8년 임기이후 아들 부시 대통령이 8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다. 백인 주류 사회를 대표해왔던 공화당의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보수당의 몰락이라는 평가까지 흘러나왔다. 보수 성향이 강한 존 맥케인과 미트 롬니 후보가 연이어 버락 오마마 대통령에게 패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미국의 정치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고령화되었지만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50대 중반이라도 상당히 진보성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이념적 성향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은 미디어다. 전통적인 신문과 방송외에 각종 사회 연결망이 쏟아져 나오면서 미디어의 성향은 상당히 진보성을 띠게 됐다.

거대 기업의 광고 스폰서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 미디어들의 사회고발적 성격은 더욱 두드러졌다. 미국의 3대 방송으로 자리매김한 ABC, NBC, CBS 등은 인터넷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진보적 성향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탄핵 국면이 정치 사회 전반을 장악하면서 제도권 언론이 진보적 흐름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정 언론사의 태블릿PC에 대한 문제를 탄핵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는 분위기마저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유명 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몇 해전 내 놓았던 설문 결과에 따르면 미국 저널리스트 중에 이념 성향이 중도인 경우가 53%로 가장 많았고 진보는 32%, 보수는 8%에 그쳤다.

비판적이고 사회고발적인 언론의 특성상 보수 후보에 대해 박수칠 미디어는 많지 않다. 다음은 인구 지형의 변화였다. 주류 구성원인 백인의 숫자는 정체됐지만 이민자들의 수는 계속 늘어났고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히스패닉 유권자로부터 70%가 넘는 표를 받았다. 반이민정책을 강력하게 구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의도가 발가벗겨지는 대목이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몰락 이유로 또 꼽을 수 있는 것은 이른바 ‘미국판 강남좌파’ 현상이다. 고학력 화이트칼라층은 전통적인 정치적 가치를 고집하는 공화당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후보들이 보여주는 매력 또한 유권자들이 기대하는 가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변화를 추구하는 화이트칼라들에게 과거를 고집하는 공화당 정책과 후보들의 공약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세력으로 비쳐졌음에 틀림없다.

한국 상황도 2012년의 미국과 다르지 않다. 국정농단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인해 보수는 얼굴을 내밀지 못하는 ‘샤이 보수’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얻었던 51.6%의 보수 향기가 가득한 유권자층은 허물어진지 오래다.

보수가 몰락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탄핵 여진이 지속되는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에도 구속 수사 여부 등 한때 보수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실상 탄핵의 늪에서 보수가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유력 후보들의 연속 불출마로 흥행 동력을 상실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임기를 마무리하기 전인 1년여 전 실시된 여론조사만 하더라도 여권은 반 전 총장과 김무성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차기 대선 후보군에서 야권 진영에 거의 밀리지 않았다. 여기에 황교안 권한대행까지 포함한다면 도리어 야권을 압도하는 기세였다.

그러나 탄핵 불똥은 보수 진영의 유력 차기 대선 후보를 비켜가지 않았다. 반 전 총장, 김무성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그리고 황교안 권한대행에 이르기까지 보수 진영의 유력 후보들은 ‘악’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뒷전으로 물러났다. 홍준표 경남지사만이 거의 고군분투하는 보수진영의 모양새다.

마지막으로 보수층 몰락은 유권자들의 피로감도 한몫했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때는 보수의 아이콘처럼 여겨졌던 박 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산넘고 물건너 투표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보수적 가치는 실현되지 않았고 끊임없는 정쟁으로 보수유권자층은 많이 지친 것으로 나타난다.

결정적인 순간은 보수정당의 지역기반인 경북지역에 사드가 배치되면서 지역내 소갈등이 전국적인 대갈등으로 증폭되는 양상으로 발전한 대목이다. 자연스럽게 일련의 국정 운영에 대한 보수 유권자층의 피로도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얼마남지 않는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진영이 유력한 대결 구도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보수 몰락의 3대 원인에 대한 해결이 먼저 있어야 한다.

우선 보수 몰락의 첫 번째 원인은 탄핵 여진의 지속이다.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 사태로 말미암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보수의 몰락을 가져왔다. 대통령 지지율이 우선 붕괴됐지만 탄핵 소추가 국회에서 이루어지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두동강 나면서 보수 정당의 지지율은 급전직하했다.

탄핵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는가하면 불과 1년전만 하더라도 40%대 였던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현재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합한 지지율이 채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3월 15~17일 사이 조사(전국1002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한 정당지지도를 보면 새누리당 지지율은 41%나 된다. 현재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20%에 불과했다.

탄핵이 두 정당의 운명을 극적으로 반전시켜버렸다.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조사하고 17일 발표한 조사(전국1004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적용 응답률22% 더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1년여전 20%에 불과했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2배이상 늘어난 46%였다.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온 자유한국당(12%)과 바른정당(4%) 지지율을 합하면 20%조차 되지 않는다.

보수정당 지지율 추이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보수의 아이콘이었던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저주가 보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보수층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보수 결집은 요원해 보인다. 인정상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연민을 갖는 것은 개인적 자유이겠지만 정치적으로 보수의 가치 지향을 강조한다면 탄핵의 여진은 너무 오래 그리고 깊게 지속되고 있다.

대통령의 구속 수사와 관련된 각종 여론 조사 결과를 분석하더라도 대다수 국민은 구속 수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보수내의 입장 정리는 불명확하다. 지역 그리고 세대에 따라 보수층내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후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이 엇갈린다.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하고 있을 때 보수 결집의 시대적 견인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탄핵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의 존재는 보수층의 정치적 입지에 적지 않는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이 보수 몰락의 환경적 원인이라면 보수 붕괴의 다른 원인은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으로 빚어진 위기 국면이라지만 보수 진영에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다.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반영되었겠지만 전통적인 보수 가치로 무장한 경쟁력있고 대중 연설력이 있는 신진을 발굴하는데 보수는 제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 정작 당내에서 유력한 대선 후보를 찾지 못해 현 정부 들어 줄곧 장외 인사인 반기문 전 총장에 대한 구애를 해왔다.

당내 유력 후보였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박 전 대통령과의 알력 때문에 대선 후보로서의 꿈을 제대로 펼쳐보이지 못했다. 돌파력도 추진력도 모두 부족했다. 열악한 보수 진영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반기문 전 총장을 비롯해 보수 후보들이 끝까지 대중적 지지를 얻기위한 부단한 노력을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를일이다. 경쟁력을 꾸준하게 유지해왔던 반 전 총장은 귀국하자마자 밑천을 다 드러내며 중도하차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현 정부들어 여러 차례 정치적 변신을 지지층들이 요구했지만 극적인 반전의 기회들을 끝내 허무하게 떠내려 보냈다. 오죽했으면 수십년 한국 정치의 주역으로 버텨왔던 김 전 대표가 마지막 순간 손에 쥔 별명이 ‘옥새들고 나르샤’일까. 보수내의 외모 담당이라고 지지층들이 농담을 건넬 정도로 매력적 이미지를 지닌 오세훈 전 시장도 지지층들의 기대와는 달리 너무 빨리 불출마를 선언해 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 전 총장 중도하차 이후 보수의 유력 후보로 급부상한 황교안 권한대행도 대선 꿈을 접어버렸다. 결국 일련의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남게된 유력후보는 자유한국당에서 홍준표 지사다. 바른정당 후보들은 아직 낮은 지지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유력 후보들의 연이은 불출마로 흥행동력을 상실한 것이 보수 몰락의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그 현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경선인단은 두 차례 모집에서 총 214만여 명을 기록한 반면 다른 정당들의 경선은 반쪽 흥행에 머물러 있다.

불과 1년여 남짓 전만하더라도 보수 진영 후보들의 경쟁력은 상당했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6월 7~9일 실시한 조사(전국1002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당시 여권후보로 묶을 수 있는 반기문 전 총장(26), 오세훈 전 서울시장(4), 유승민 의원(3), 김무성 전 대표(2)의 지지율을 합하면 36%나 된다. 한편 문재인 전 대표(16), 안철수 전 대표(10), 박원순 시장(6), 손학규(3) 전 대표를 합하면 35%였다.

각각 4명의 후보를 더했을 때 대등한 수준이다. 안철수 전 대표가 중도 성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수 진영 후보자들의 경쟁력이 더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1년여가 흐른 최근의 변화는 보수 몰락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실시하고 17일 발표한 조사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지사만으로 50%를 넘는다. 안철수 전 대표와 이재명 시장까지 합하면 범야권 후보들은 7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경선이 진행될수록 홍준표 지사의 지지율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번 다자대결 조사에서는 2% 지지율에 불과했다.

보수 및 진보 후보 지지율 추이

보수 후보들이 일반적인 경선 레이스와는 달리 연쇄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보수층의 선거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오죽했으면 보수 후보가 아닌 안희정 지사가 보수층 유권자층에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으며 ‘보수 후보 몰락’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보수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전반적인 보수 유권자들의 피로감이다. 탄핵 국면으로 샤이(수줍은) 보수가 아니라 국면 자체가 어이가 없는 ‘쉐임(Shame 창피함) 보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보수 전체가 일종의 타도 대상, 기득권 세력으로 비쳐지면서 정치 전반에 대한 피로감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보수 유권자들의 특성상 미국이 주도하는 ‘사드 배치’에 대한 찬성 여론이 매우 높게 나타나는 반면 대통령 선거 후보에 대한 관심과 지지는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하다. 즉 안보나 경제에 있어 보수의 가치를 수호하는 이슈에 있어서는 여전한 관심과 주장을 보여 주지만 대선 후보에 대해서는 거듭된 실망감으로 피로도가 매우 높아보인다.

일종의 ‘내가 이러려고 보수가 되었나’ 자괴감이 든다는 반응이 급속도로 나타나고 있다. 현 정부 초반만 하더라도 여론조사에서 스스로를 보수로 판단하는 현상이 강했지만 탄핵을 고비로 급속히 줄어드는 추세다. 물론 조사에 응하지 않는 유권자층 특히 보수층이 있겠지만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조사 기준으로 보수의 전체 파이마저 줄어드는 양상이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월 12~14일 실시한 조사(전국1005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표집된 표본중 이념적으로 보수라고 응답한 자는 328명이었다. 이에 반해 진보라고 응답한 자는 229명으로 100명이나 차이가 났다. 그러나 가장 최근 자료인 올해 3월 14~16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보수라고 응답한 자는 264명이었고 진보라고 응답한 자는 370명이나 되었다.

보수 및 진보 응답자 수 추이

1년여 만에 전세가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탄핵으로 보수 아이콘인 박 전 대통령이 몰락하고 책임 요구에 대한 응답없이 보수 정당이 두동강 나면서 전반적인 보수 유권자들의 피로감이 극대한 된 탓으로 풀이된다. 공식적으로 보수라고 말하는 자체가 개혁의 대상으로 내몰리며 ‘보수 몰락’을 가져온 것으로 분석된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남지 않았다. 누군가는 대통령 탄핵이 보수와 진보의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지만 탄핵으로 말미암아 보수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좁아진 현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보수는 절대 부패, 진보는 절대 정의로 규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보수, 진보, 중도는 개개인의 유권자가 독립적으로 보장받는 개인의 가치다. 보수라고 잘 못된 것도 아니며 진보라고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다. 물론 진보라고 종북적인 것도 아니며 보수라고 해서 무조건 애국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이념적 구분이 있는 이유는 민주주의의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어떤 정치적 의사표현도 할 수 없는 북한에서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 점에서 보수, 진보, 중도의 다양한 이념의 균형있는 발전은 사회적 경쟁력을 키우고 보다 열린사회로 가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철학이다.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을 기억하고 있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할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보수 대통령이었고 공화당 출신의 전형적인 백인 사회를 대표하는 지도자였지만 그렇다고 결코 반대 세력의 이익과 가치에 대해서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지도자였다. 강경 일변도의 국방 정책을 추진할때도 민주당의 협력과 이해를 우선했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공감하지 않는 국민들에게도 할 수 있는 모든 소통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수없이 많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국민들에게 호소했고 정책 메시지는 분명했으며 자신의 국정운영으로 오는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일관성을 잃지 않았다. ‘스타워즈 계획’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공산권을 무너트렸고 ‘레이거노믹스’로 미국 경제 재부흥의 서막을 열었다. 결코 이념에만 머물렀다면 많은 성과를 기대할 수도 없었고 수십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미국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대통령이 되기 힘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가 얼마나 이념적으로 유연한 대통령이었는가 하면 임기 초반 존 힝클리에게 저격당해 병원으로 실려가는 침대에서 의사에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은 공화당원인가, 민주당원인가.’ 정색을 하고 답을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담당 의사를 재치넘치는 유모로 긴장을 풀어준 일화였다. 이념적으로 지나치게 수구적이거나 지나치게 혁신적이면 서로 다른 반대쪽을 바라보기 힘들지 않겠는가.

탄핵의 여진, 보수후보의 연쇄 불출마, 유권자들의 보수 피로감 등이 결합돼 보수진영은 좌초하고 있다.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국민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보수의 역할을 요구해온 내용의 실천이 보수 회복의 첫걸음이다. 당장 눈 앞에 닥친 대선만 보면 대답은 한결같다. 보수가 몰락하고 있다. 날개없이 추락하고 있어 언제쯤이나 다시 떠오를지 현재로선 예단조차 어렵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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