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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골프를 배운지 2~3년밖에 안된 사람의 레슨충동은 억제하기 힘들다. 구력은 짧지만 웬만한 이론은 꿰고 있는데다 적어도 잘치고 못 치는 것을 눈으로 구분할 줄은 안다. 이런 사람들은 연습장을 훑어봐도 고수는 별로 보이지 않고 이상하게 치는 하수만 눈에 들어온다.

‘나도 얼마 전엔 저렇게 우스꽝스런 스윙으로 볼만 열심히 쳐댔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하수로 보이는 사람의 타석 주변을 서성거린다. 입이 근질근질해서 참기 어렵다. 안면이 있는데다 연배도 아래고 구력이 짧은 경우라면 지나치지 못하고 기어코 입을 연다.

“그런 스윙으로 계속 연습해선 개선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립 잡는 법이나 스윙궤도를 수정해주고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 상대방이 거부감 없이 지적사항을 받아들이면 다행인데 그런 경우는 드물다.

남으로부터 레슨 받는 것에 대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난처해진다.

“내 스윙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고 반응한다면 점잖은 편이고 얼굴 한번 훑어보고 못 들은 척 한다면 무시당하는 셈이다.

심한 경우 “몇 번 스윙하시는 것 봤는데 댁이나 저나 도토리 키재기입디다.”라는 소리도 듣는다. ‘남 참견 말고 당신 스윙이나 제대로 하라’는 핀잔이다.

최근 구력 30년이 다 된 60대의 여성 골프애호가가 중년의 남자로부터 ‘불편한 레슨’을 받는 현장을 목도했다. 요즘은 비거리가 줄고 스윙이 작아져 전성기 때처럼 치진 못하지만 쉽게 보기 플레이를 하고 컨디션이 좋으면 싱글도 하는 분이다.

한 중년 남자가 여성 뒤에서 한참 지켜보더니 레슨을 시작했다. 먼저 아는 체 하며 말을 건네는 것을 보니 초면은 아닌 듯했다.

남자는 아예 큰 누님뻘 되는 여성분을 타석에서 내려오게 해 구체적으로 자세를 교정해주고 시범을 보이는가 하면 원 포인트가 아니라 스윙의 전반전이 것을 강의하다시피 가르쳤다.

여성분은 이 남자의 친절을 거절할 수 없어 “네, 네.”를 반복했는데 남자는 신이 나서 한참 열변을 토한 뒤 자신의 타석으로 돌아갔다.

남자의 스윙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아주 못 치는 것은 아니었으나 남을 가르칠 수준은 아닌 듯했다.

이 여성을 잘 아는 지인들이 궁금해 함께 커피타임을 가졌다.

“열심히 가르치던데 잘 아시는 사이예요? 레슨 받느라 곤욕을 치르시는 것 같던데….”

“언제 한번 스윙을 지적하기에 ‘아 그렇습니까’ 했을 뿐인데 저러네요. 매정하게 거절할 수도 없고 그냥 듣는 척 했지요.”

낚시꾼들에겐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가 꾼들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로 애용된다. 소설가 이 외수 선생이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에 실렸던 글을 낚시전문지에 기고한 뒤 회자되기 시작한 구조오작위론은 장기의 말 이름과 작위의 이름을 원용해 낚시꾼들의 수준을 실감나게 제시해준다.

그는 낚시에 구조오작위의 등급이 있다며 낚시꾼을 초보자인 조졸(釣卒), 좀 안다고 방자해지는 조사(釣肆), 눈을 뜨나 감으나 낚시만 어른거리는 조마(釣痲), 아내를 주말과부로 만드는 조상(釣孀), 낚시에 공포감을 느끼는 조포(釣怖), 그러고도 다시 낚싯대를 잡는 조차(釣且), 낚시를 통해 도를 배우는 조궁(釣窮), 낚시바구니가 아닌 마음속의 바구니를 채우는 남작(藍作), 마음에 자비를 품는 자작(慈作), 마음을 두텁게 하는 후작(厚作), 마음 안에 백 사람의 어른을 만드는 백작(百作), 모든 것을 비우는 공작(空作), 도인이나 신선이 되는 조선(釣仙), 모든 것을 비운 뒤의 성인 경지인 조성(釣聖) 등 14단계로 구분했다.

낚시의 구조오작위(九釣五作慰)를 골프에 적용해 ‘구골오작위(九骨五作慰)’로 패러디한 글을 한 블로그에서 발견했다.

골퍼들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14단계는 아래와 같다.

1. 골졸(骨卒) : 매너와 샷 모두 치졸함을 벗어나지 못한 초보의 단계. 골프채를 든 것만으로 골퍼인체 한다.

2. 골사(骨肆) : 방자한 골퍼의 단계. 가끔 90대 스코어를 내면서 골프를 다 아는 듯 기고만장해 한다. 연습장에서 허풍이 세어지기 시작하며 비싼 값의 장비에 눈독을 들인다.

3. 골마(骨麻) : 눈에 그린과 하얀 볼이 어른거리는 골프의 초기중독 단계. 아내의 바가지도 불사하고 친구, 친지의 결혼식은 안전에 없고 오직 골프만 생각한다.

4. 골상(骨孀) :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아내를 과부로 만들고 아내가 이혼소송을 했는지도 관심이 없고 골프의 홍보대사처럼 행동한다.

5. 골포(骨怖) : 80타 주변을 오르내리며 골프가 안기는 좌절과 아픔을 겪는다. 골프 자체에 공포와 회의를 느끼고 골프가 인생을 망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6. 골차(骨且) : 공포의 대상인 골프채를 잡고 다시 필드로 나선다. 샷이나 매너가 한결 성숙해지고 각 클럽의 용도와 거리감에 익숙해진다.

7. 골궁(骨窮) : 자신의 스윙을 분석하면서 드로우와 페이드를 익힌다. 연습장에서도 훈수하는 방법이 상당히 세련되어 진다. 이븐이나 언더파를 노려보지만 여덟 번은 80대 초반이고 두 번 정도는 70대 후반을 친다.

8. 남작(藍作) : 페어웨이에서 인생의 넉넉한 기쁨을 맛보며 그린 위에서 한없는 겸손함을 느끼고 버디를 위해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내기를 즐기되 사로잡히지 않고 라운드 중 참견이나 훈수를 하지 않는다. 라운드의 대부분이 70대 스코어를 기록한다.

9. 자작(慈作) : 마음에 자비의 싹이 트는 단계. 자연과 한 몸이 되면서 스코어보다는 대자연과 좋은 친구들과의 라운드에 감사한다. 골프를 치면서 자기 자신까지 잊을 수 있다.

10.백작(百作) : 한 번의 라운드에 백 번의 라운드를 경험한다. 그러나 아직도 참으로 배울 것이 많아 골프의 지혜를 하나하나 깨우치는 기쁨에 세월의 흐름을 알지 못한다. 최초의 언더파를 기록한다.

11.후작(厚作) : 마음 안에 두터운 믿음이 깃든 단계. 해탈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고 골프 도(道)의 깊이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다. 연습장이나 필드에서조차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섣불리 골퍼임을 말하지도, 드러내지도 않으며, 행동 하나 하나에 연륜과 무게가 엿보인다.

12.공작(空作) : 모든 것을 다 비우는 무아지경의 단계. 골프를 통해 삶의 진리를 모두 깨달았으며 우주의 신비 또한 거칠게 없이 이해되는 입신의 경지에 거의 도달한 상태. 지나온 골프인생을 무심한 미소로 돌아보며 조용하게 신선이 되는 때를 기다린다.

13.골선(骨仙) : 수많은 골프의 희로애락을 겪은 후에 드디어 입신의 경지에 이르는 깨달음의 세계. 이는 도인이나 신선이 됨을 뜻하며 대승적 시각을 터득하고 나도 없고 골프도 없고 골퍼도 없어지는 무상의 세상이 펼쳐진다.

14. 골성(骨聖) : 무아의 경지로 피안에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 골프를 통해 인간의 희로애락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골퍼의 기쁨과 아픔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구골오작위는 구조오작위(九釣五作慰)론에서 차용했으되 그 깊이는 더욱 오묘함을 느끼게 한다.

아마추어들의 레슨 행위에도 상당한 단계가 있다. 레슨을 받는 쪽이나 레슨을 하는 쪽의 차이는 있지만 옆에서 보면 분명 단계가 느껴진다.

레슨 충동을 억제하기 힘든 2~3년차 보기 플레이어는 하수로 보이는 사람을 가르치려 덤벼들기도 하지만 차원이 달라 보이는 고수를 만나면 상대방이 귀찮을 정도로 원 포인트 레슨을 요구한다. 실제 라운드를 하면서도 고수에게 스탠스, 어드레스에서부터 스윙동작까지 일일이 지도를 요청하는 사람도 있다. 쌓인 경험을 반추해보면 고수일수록 쉽게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원 포인트 레슨을 요청해도 상대방이 소화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대응이 달라진다.

가르침을 수용할 준비가 안 된 사람일 경우 정중히 아직 가르칠 단계가 아니라고 몸을 사리고 구력은 오래 되었으나 뜯어고칠 데가 너무 많은 사람일 경우 레슨프로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기본은 잘 되어 있어 몇 군데만 손보면 금방 효과가 나타날 것 같은 사람의 경우, 그리고 진지하게 가르침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을 때 고수도 마음을 열어 가르침을 전수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같이 맞아도 비를 흡수하는 정도는 바위, 모래, 자갈, 밭, 잔디, 맨땅이 다르듯 골프 역시 배우는 사람의 자세와 능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 깨닫고 나면 남을 가르치려 드는 충동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news@golfhankook.com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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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7/03/20 07:00:48 수정시간 : 2017/03/20 07:0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