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설 연휴때 마음속 대통령 결정하는 것이 대체적 추세"

설 추석 등 명절이 차기 대통령을 결정하는 3가지 치명적 이유 따로있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잠룡이 나르샤. 여기저기서 대선 출마 소식이 전해진다. 어림잡아 설날을 전후로 예닐곱 명의 출마 선언이 예상된다. 어떤 유권자들은 왜 명절을 앞두고 후보 출마로 난리법석일까 궁금해 한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선 후보들은 주목받아야 하고 가급적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기를 원한다. 인구 대이동이 일어나 세대, 이념, 지역이 뒤섞이는 명절이야말로 대선 후보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 무대가 된다. 서울로 떠났던 가족들이 전라남도 목포로, 경기도 성남에 살고 있는 사촌들이 부산시 국제시장으로 모여드는 명절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과거에는 추석이 가장 중요한 명절이었지만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추석보다는 설 명절이 더 중요해졌다. 앞서가는 후보에게는 쫓아오는 경쟁자들과 격차를 더 벌리기에, 쫓아가는 잠룡들로서는 앞서가는 후보와 간격을 좁히는 데 명절 민심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호남 민심과 영남 민심으로 불리는 선거 여론은 지역적으로 호남과 영남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서울의 강남에서 영남지역 기반을 갖고 있는 새누리당이 선전해왔던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의 강북에서 호남지역 기반인 더불어민주당이 승승장구했던 원인은 무엇인가. 지역 대결 구도는 약화되고 세대 대결 구도가 더 강해졌다고 하더라도 지역 기반은 후보들에게 여전히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명절을 거치며 수도권 민심이 일정한 흐름을 타기 쉽고, 그것은 다시 지방 여론에 영향을 주며 한편으로는 다시 지방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른바 ‘장터 효과’ 또는 ‘민심의 용광로 현상’으로 불리는 명절 민심은 다음 대통령을 결정하는 일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까.

대선 후보의 지지율은 세 가지 변수로 구성된다. 지역, 이념, 세대가 바로 3대 변수다. 명절 기간 동안 지역, 이념, 세대가 뒤섞인다. 과거와 달리 명절이 아니더라도 온라인상에서 지역, 이념, 세대 소통이 가능하지만 경계감 없이 생각을 주고받는 가족과 친지 사이의 대화는 아니다.

특히 SNS 가 익숙하지 않은 50대 이상과 온라인 공간에서 자유로운 20~30대의 본격적인 대화는 명절에나 가능한 일이다. 명절을 통해 어떤 후보는 지역적으로 지지율이 더 올라가고 어떤 후보는 반전의 기회를 만들지 못하는 안타까운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명절이 지니고 있는 특수성(정치적 판단은 명절이 지나고 여론조사에 반영되기까지 1~2주가 더 소요됨) 때문에 당장 지지율에 반영되지는 않는다하더라도 명절 밥상머리에 갑론을박하는 정보는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게 마련이다.

실제로 역대 선거에서 명절 효과가 선거의 결정적인 변수로 작동해왔다. 명절때 지역, 이념, 세대효과는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이었으며, 이번 선거도 명절 민심에 따라 좌우될 공산이 크므로 예외가 되기 어렵다.

우선 지역통합 효과다. 명절은 경향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동 화합의 이벤트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직장이 있고 학교가 있는 수도권으로 모여들었던 국민들이 고향을 찾아 이동하고 며칠 동안 가족의 정을 나누는 자리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의 명절 차례 상에는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정서적으로는 고향의 정치적 영향과 무관할 수 없고 특히 명절 때의 대화 주제가 정치적 의사 결정에 중요한 기폭제로 작용한다.

대다수 대선 후보들이 선거가 있는 해의 명절에 광폭 행보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치열한 대통령 선거에서 명절의 지역적 통합효과는 역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을 기준으로 할 때 약세 지역은 호남이다. 유권자 수(전체 유권자의 약 10% 수준)에 있어서도 그렇고 지역 감정이라는 뿌리 깊은 폐단 때문이기도 하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지역적 열세는 숙명과도 같은 걸림돌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정계 복귀를 한 뒤 1997년 4월 11일 실시된 제 15대 총선에서 김대중 당시 총재가 이끌었던 새정치국민회의는 79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김영삼 정부의 중간 평가 성격이 강했던 탓에 상당히 선전할 것으로 기대 충만했던 선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거의 최대 수혜자는 아이러니하게 3당 합당 구도를 깨고 자민련을 주도한 김종필 전 총재였다. 일종의 호남고립구도가 발생한 때문이었다. 지역 구도 극복은 김 전 대통령의 최대 과제였다. 오죽했으면 선거 슬로건이 ‘수평적 정권 교체’였을까.

지역 열세 극복은 선거 승리의 결정적 조건이었다. 1997년 시시각각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 전 대통령이 꺼내든 카드는 DJP(김대중-김종필-박태준)연합이었다. 지역적으로 호남과 충청 그리고 영남까지 함께 하는 구도였기 때문에 신한국당(선거 임박해 한나라당으로 개명) 이회창 후보를 이길 필승 카드였다.

문제는 유권자들이었다. 여론조사상으로도 DJP연합에 대한 회의적인 분위기가 적지 않았고 정치적으로 지역 유권자들의 성향은 사뭇 서로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JP연합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점차 높아졌다. 지역적으로 호남에 고립돼 있던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지역 열세를 탈피할 절호의 기회였다.

한편, 신한국당의 박찬종 후보 카드가 무너지면서 경선 승리 후 지지율이 급상승했던 이회창 전 총재에게는 악재가 돌출했다. 아들의 병역 문제가 바로 아킬레스건이었다. 지지율이 선거 직전 명절인 추석에 즈음해 급속도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 이인제 전 경기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치명적인 상황이 불거지게 된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중대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유권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직접적으로 주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추석 명절을 통해 DJP연합은 안정감을 더했고, 유력 대선후보의 가족과 관련된 병역 이슈는 일파만파 확산돼 갔다. 민심 대결집의 명절이라는 갈림길에서 DJP연합은 지역통합의 탄력을 받았고, 여권 지지층들은 TK와 PK가 둘로 쪼개지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1997년 추석은 9월16일(화요일)이었다. 한국갤럽의 1997년 대통령 선거 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를 분석하면 추석 명절 이전인 7월 21일 조사(전국1012명 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대세론을 형성했던 이회창 전 총재는 37.9%였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25.5%로 10%포인트 이상 이 전 총재가 앞서 나갔다.

명절을 관통하며 판세는 역전된다. 명절이 지난후인 9월 27일 실시된 조사(MBC의뢰 전국1555명 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2.5%P)에서 김대중 전 총재는 31.9%로 1위 자리에 오른다.

명절 밥상에서 대화 주제로 떠올랐던 이인제 전 경기지사는 명절 이후 조사에서 23.3%로 2위였다. 경선 직후 지지율 급상승을 했던 이 회창 전 총재는 10%대인 17.1%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대선후보지지율(1997년) 김대중 vs 이회창

호남, 영남 그리고 충청이 결합된 DJP연합에 대해 명절 밥상머리 평가는 후했다. 호남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여권 후보와는 비교되는 지역통합효과를 명절 기간 동안 톡톡히 누렸다.

명절을 거치면서 김 전 총재에 대한 호감도는 높아졌고 지역적으로 충청과 영남에서의 지지율이 확대됐다. 연말에 치러진 15대 대통령 선거는 불과 39만여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다.

김 전 총재는 충청에서 이 전 총재보다 43만여표를 앞섰다. 충청 연합이 없었다면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경북에서도 약 14%나 득표를 했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국가 통합은 절실한 과제였고 김 전 대통령은 지역통합효과를 명절을 거치며 검증받았다. 명절이 대통령을 결정하는 '결정타' 였던 셈이다.

다음은 이념 극복 효과다.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친지들은 다양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의사, 변호사 등 이른바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직업을 가진 이들도 있고 제조업이나 식당 등의 자영업에 종사하는 친척과 친지 등 다양하기만 하다. 직업의 다양성 만큼이나 정치적 성향도 제각각이다. 이슈에 따른 입장이 달라지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는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선거가 있는 해의 명절 밥상에는 색깔론 시비가 만만치 않다. 보수적 입장인 친척과 친지들은 진보적 성향의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안보문제에 있어 나라가 괜찮을지 걱정스런 심기를 내비치기까지 한다.

반면에 사드배치가 중국 관광객을 비롯해 경제적인 부담이 된다면 볼멘소리를 하는 친척과 친지를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후보들은 명절 '장터 효과'를 통해 지지율에 변화를 가져오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지지율에 별다른 변화를 보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이념적 원인에 따라 중도 외연이 확대되지 않는 현상 때문이다.

2002년 제 16대 대통령 선거는 역대 어느 선거와 비교하더라고 잊기 힘든 명승부였다. 선거 판세는 경선 과정부터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먼저 대통령 후보를 선출했던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당선 직후 지지율에 가파른 상승세를 탔지만 얼마가지 않아 이념적 논쟁에 휩싸였고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일격을 당하게 된다.

대부분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의 후보들은 고배를 마셨고 책임은 통째로 노 후보의 몫으로 돌아갔다. 2002년은 한일월드컵 축구의 해였기 때문에 지방 선거 이후에 노 후보가 주목받는 반전의 기회를 잡기는 매우 힘들었다.

이념의 틀에 봉쇄된 상태가 역력했다. 경선과정에서 아내를 둘러싼 이념 논쟁에 대해 ‘마누라를 버리란 말입니까’란 감성 연설로 비판 기류를 한 순간에 잠재운 패기는 더 이상 찾기 힘들어졌다. 대선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추석 명절 직전 ‘사커(축구) 바람’을 타고 정몽준 당시 국회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게 된다.

보수 진영에서는 대선 재수를 하게 된 이회창 전 총재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분위기가 완연했다. 병역 문제 논란은 끊이질 않았지만 다수를 차지하는 보수층 유권자들은 요지부동으로 흔들리지 않았다. 노무현 후보가 반전의 기회를 잡기는 점차 힘들었고 중도 외연 확대를 위한 노력은 이념적 편가르기 현상으로 쉽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추석 전후 민심 동향은 외연 확대와 반전 기회를 모색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노 전 대통령은 추석 명절 이후 지지율 하락을 확인하며 2002년 선거의 최대 이벤트였던 후보 단일화의 길로 가게 되는데 결정적 계기가 명절 민심이었다.

자신을 향한 싸늘한 명절 민심을 발견하고 바로 반전 기회를 찾아나선 덕이 컸다. 2002년 추석은 9월 21일(토요일)이었다. 중앙일보의 역대 선거 조사 DB(조사개요는 나와있지 않음)에 따르면 추석 명절 직후 조사에서 이회창 후보는 34.7%, 정몽준 후보 30.9%, 노무현 후보는 18.5%로 나왔다.

노무현 후보는 명절 민심대로라면 당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진보적인 이념적 틀을 깨고 나와 중도 외연 확대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정몽준 후보 역시 선거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므로 불가피하게 반(反)이회창 전선이 만들어졌다. 명절이후 노 후보 측은 적극적인 외연 확대를 시도하는 이념 극복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중도성향이 강한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이벤트가 불과 대선을 한달 여 앞둔 11월 25일 전격적으로 펼쳐졌다. 단일화 직후 노 후보의 지지율은 수직 상승한다. 중앙일보 역대 선거 DB에 따르면 단일화 직후 노 후보는 42.7%, 이 후보는 35.2%였다.

대선후보지지율(2002년) 노무현 vs 이회창
보수층을 꽁꽁 묶었지만 중도 외연 확대를 명절 민심으로 읽어내지 못했던 이회창 전 총재의 전략부재였다. 명절 민심은 이처럼 지지율 반등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선거에 대한 민심을 객관적으로 읽어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명절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해 후보 단일화의 길로 가지 않았다면 대통령 탄생이 가능했을까. 같은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치적 성향의 가족과 친척들을 스스럼없이 만나고 소통한다는 점에서 명절은 이념 소통의 무대가 되어준다.

마지막으로 명절이 차기 대통령을 결정하는 치명적인 이유는 세대 확산 효과다. 500여만 대의 차가 움직이고 3000만여명의 국민들이 대이동하는 명절은 모든 세대가 한데 어울리는 장이 된다. 갓 태어난 아기부터 최고령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세대간의 벽이 허물어진다.

평소에는 주로 또래 집단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명절만큼은 가족들과 격의 없는 대화 공간이 만들어진다. 서로 관심있는 이슈에 대해 공감하기도 하고 시각차가 있음을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안보, 경제, 문화 등 다루어지는 주제도 더 다양해진다. 출산, 육아, 노인 복지 뿐만 아니라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인만큼 다음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다.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졌고 국민들은 수차례에 걸쳐 광장에서 지도층의 각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로 민심을 알려왔다. 광장에는 초중고등학생들을 비롯해 가정주부 그리고 노인들까지 세대를 초월해 하나가 됐다.

명절은 촛불 장소를 가정으로 이동한 ‘민심 집결지’ 역할을 한다. 올해 명절은 국정 마비 사태를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대선 후보 검증을 강하게 묻고 있다. 특히 국가 안보나 경제와 관련된 이슈에 대한 세대 확산 현상은 명절을 통해 두드러진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한 이유 중에는 세대를 막론하고 공감의견이 우세했던 ‘무상급식’ 이슈가 있었다. 재원 마련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먹는 문제에 대해 예민한 유권자들에게 명절 밥상 최대 토론꺼리가 되었다. 안보 관련 위기 관리 문제는 더 크고 넓게 세대를 지배한다.

진보 성향이 강한 20대일지라도 개인의 생명과 재산과 관련된 안보 이슈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 선거를 일 년여 앞둔 2006년 추석 명절은 야당인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를 결정짓는 변곡점이 됐다. 당시 유권자들의 관심은 여권 후보보다 두 명의 유력한 야권 후보를 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의 대표였다. 당내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2006년 초에 불기 시작한 고건 전 총리 바람은 잦아들었고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전 시장 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하는 때였다. 대선 일 년전 추석 명절을 앞두고 박근혜 당시 대표가 앞서가는 추세였다.

청계천, 버스중앙차로제 업적 등으로 이 전 시장이 주목받고 있었지만 보수층을 결집해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한 박 대표의 위상은 대단했다. 2006년 지방선거 승리로 박 대표는 탄력을 받았다. 박 대표는 50대 이상, 보수층을 중심으로 지지율이 견고했다.

반면 이 전 시장은 30~40대, 중도층, 서울과 수도권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지지층을 확보해두고 있었다. 두 사람의 팽팽한 대결은 2006년 추석을 기점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2006년 추석은 10월 6일(금요일)이었다. 2006년 7월 5일 북한은 함경도 무수단리 미사일 기지에서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한다.

추석을 불과 3개월여 앞둔 시점이었다. 리서치앤리서치의 2006년 6월 조사(전국700명 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7%P)의 여야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박 대표는 29.3%로 이 전 서울시장(18.4%)을 10%포인트 이상 앞서 나갔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 이슈가 명절 밥상머리를 지배한 이후인 10월 19일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서 이 전 서울시장은 30.5%로 30%대를 돌파한 반면 박근혜 대표는 22.4%로 20%대 초반으로 물러선다.

연말인 12월 조사에서 북한 미사일 대응 위기 관리 능력이 부각되면서 이 전 시장은 34.5%?박 대표와 약 15%포인트 가까운 격차를 내며 단독 질주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대선후보지지율(2006년) 박근혜 vs 이명박

세대구분 없이 명절 차례상에서 개인의 생명과 국가의 안전을 이야기하며, 서울시장과 대기업 CEO를 경험한 이 전 시장쪽으로 민심은 쏠렸다. 명절 가족 평가단이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을 시도한 셈이다. 관심 이슈는 모든 가족들의 이야기 주제가 된다는 점에서 명절의 세대간 확산 효과는 보통 때와는 엄연히 구분된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까. 이번 명절에 가장 많이 묻게 되고 듣게 될 말이다. 함께 묻게 될 말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다시피 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이다. 국민들은 앞날에 불안하고 먹고 살 일에 앞길이 막막하다. 이번 명절에 가족들 다수가 안심하고 기대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인해 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해진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서 있는 국민들에게 차기 지도자는 매우 중요한 존재로 다가온다. 정치가 마비된 탄핵 정국에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정치 경제적 충돌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또 다시 유사한 국정 유린과 리더십 농단의 상황이 초래된다면 대한민국은 영영 국제사회의 미아가 되어버리자 않을까 두렵다.

명절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정상적인 시기라면 설날 명절 보다는 추석 명절이 대선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크다. 대선 투표일에 더 임박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핵 심판으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치밀하게 후보를 검증할 시간적 여유는 더 없어지고 말았다.

명절을 앞두고 속속 후보들이 출마 선언과 출정식 소식을 알려오지만 철저히 따져보기 힘든 일정이다. 명절은 냉혹한 평가가 이루어지므로 후보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회가 되기도 하고 위기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대통령 지지율의 핵심은 지역, 세대, 이념이다.

세 가지의 핵심 변수가 종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완전히 뒤섞이는 현상이 명절을 통해 일어난다. 후보들은 짧은 연휴기간이지만 국가 통합, 이념 극복, 세대 소통의 능력을 이 기간을 통해 보여줄 수 있고 보여줘야만 한다. 자유와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최고의 소통가(Great Communicator)를 통해 모두가 하나 될 때 가능해지고,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게 될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는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책임으로 지금 이순간 리더 없는 배에 올라타 표류하는 상황이 됐다. 이번 명절에는 과연 어떤 이슈가 지역을 막론하고 세대를 초월해 이념과 상관없이 가족들의 관심사로 떠오를까.

설 명절을 앞두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는 대선 후보들에게 국민들이 가장 기대하는 자질은 경제, 외교안보, 인사, 소통, 도덕성이다. 막연히 좋아하거나 지지하는 후보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캐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기반위에서 국민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포용적 리더십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명절날 가족들이 주고받는 미소처럼 넉넉하고 너그러운 인성을 갖춰야만 국민들은 공감하게 된다. 아울러 대선주자와 관련된 의혹과 논란들은 낱낱이 밝혀지고 소명돼야 한다.

반기문 전 총장의 가족과 관련된 의혹과 함께 유엔사무총장의 경력을 가진 인물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되는지 명절 밥상에서 다뤄질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 뭔가 불안해보인다는 인식 또한 명절 대화 주제에서 비켜가긴 어려워 보인다. 문재인 ‘인사 1호’로 알려져 있는 표창원 의원이 주도한 ‘풍자 그림’ 국회 전시회는 논란의 태풍이 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의 주변인 효과(후보 주변인의 논란으로 인해 후보자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를 감안한다면 누드 그림으로 대통령을 풍자한 국회 전시회는 두고두고 문 전 대표에게 부담이 될 전망이다. 중국의 진 나라가 망하는 혼란기에 유방이 제국을 통일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국민을 위하는 지도자의 마음'이다. 항우는 삼국지의 여포와 비교될 정도로 ‘전쟁의 신’에 가까운 인물이었지만 국민을 위하는 마음은 없었다. 천하를 유방, 항우와 삼분지계 했던 한신은 책략에는 귀신같은 존재였지만 국민을 위하는 마음은 찾기 어려웠다. 전쟁에 있어서도 책략에 있어서도 두 영웅보다 못했던 유방이 천하를 제패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백성을 위하는 지도자의 마음이었다.

단지 지지율을 쫓아 명절 행보를 한다면 그들에게 국민의 마음은 환호하지 않는다. 인디언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지지율을 쫓아 빨리 가려고 한다면 대통령 자리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좋은 대통령을 뽑기 위해 국민들은 처절하게 후보들을 살펴야 한다. 영국 총리를 역임했던 윈스턴 처칠의 명언으로 명절 인사를 대신한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 명절 민심이 '마음속 대통령'을 결정한다. 유권자 스스로 명절때 받은 느낌과 흐름에 기반해 '투표할 대통령'을 마음속으로 콕 찍어 정한다는 뜻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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