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권력형 비리는 다시금 발생할 것이니 내각제 개헌도 이제는 고려해볼만"

신율 명지대 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최순실 게이트가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도대체 최순실이 손을 안댄 곳이 어딘지를 찾는 것이 나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을 헤집어 놓고 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는 크게 두 가지의 범죄행위로 요약되어질 수 있다. 하나는 미르재단과 K 스포츠 재단으로 상징되는 정경유착 문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국정농단 문제다.

과거 정권에서도 정경유착 문제는 항상 존재해왔다. 노태우 정권 때도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전 장관의 문제가 있었고, 김영삼 정권 때는 YS의 차남 문제, 그리고 김대중 정권 시절에는 두 아들 문제, 노무현 정권 때는 대통령의 형이자 당시 봉하대군으로 불려졌던 노건평 씨 문제 그리고 이명박 정권 때는 만사형통이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이상득 전 의원 문제가 있었다. 결국 매 정권 마다 예외 없이 정경 유착의 문제가 끊임없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부패 문제에는, 정경유착 이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최고 권력의 친인척이 부패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공통점은 우연이 아니다. 부패론(theory of corruption)에서 보면, 부패는 특정 사회의 문화와 관련 깊다.

예를 들어, 유교문화권에서 나타나는 부패 유형은 대부분 가족주의와 관련 깊다. 즉, 유교 문화권에서는 가족의 개념이 다른 요소를 압도하기 때문에 가족주의적 형태의 부패유형(nepotism)이 나타나는 것이다. 역대 정권의 부패유형이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역대 정권에서 나타났던 부패 유형과는 달리, 이번 사건은 여러가지로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특징으로 대통령이 “몸통”으로 등장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서도 나타났다.

두 번째 특징은 정경유착이기는 하되 국정농단과 동시에 부패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과거의 경우에는 국정농단이 이토록 광범위하게 발생하지는 않았었다. 이 점은 이번 사건을 분석하는 데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이번 게이트에서 국정농단과 부패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 정권의 정책결정이 공적 조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비선에 의해 결정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과거에는 기업에게 특정 이익을 주는 대가로 돈을 받거나, 아니면 당선 축하금으로 돈을 받는 방식이 주된 부패의 유형이었다면, 이번의 경우는 국가의 공조직을 대통령의 비선들이 장악함으로서 지속적으로 기업들에게 돈을 뜯어냈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에 자신들의 '빨대'를 꽂아놓고 지속적으로 국민과 기업의 피를 빨아 마신 셈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특징을 꼽자면 이번 정권의 부패 주도세력은 대통령과 친인척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즉, 최고권력과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닌 이들이 비선 실세로 등장했다는 것인데, 이는 이번 부패사태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형태가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보도를 종합해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와의 관계는 일종의 '유사 가족'처럼 보인다. 즉,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박근령 씨나 박지만 회장과 같은 혈연에 기초한 가족이 있지만, 이들 보다는 최순실 일가와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 보이고, 실제로 이들이 일종의 가족의 역할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가정하면, 이번 역시 유교 문화권에서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부패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번 사건의 특징 혹은 차이점이라기보다는 과거 사건과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과 과거 정권의 사건과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부패와 권력과의 상호관계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권력이 집중됐기 때문에 이런 부패 스캔들이 발생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여기서 왜 권력 집중이 발생하는 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를 흔희들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부른다. 대통령의 권한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제도적 차원에서 보자면, 이런 주장이 맞는다고 볼 수는 없다. 즉, 제도적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 대통령제가 대통령에게 유난히 많은 권한과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렇다.

일단 대통령제를 하는 국가의 상당수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중남미에 분포하고 있다. 즉, 아프리카 국가들의 거의 대부분이 대통령제를 실시하고 있고, 동남아나 중남미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대통령제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보다 잘사는 국가들 중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미국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대통령이 존재한다고 해서 대통령제로 봐서는 절대 안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독일도 대통령이 있다. 하지만 독일 대통령에게 주어진 법적 권한은 거의 없다.

일반인들도 독일 수상 앙겔라 메르켈은 잘 알지만, 독일 대통령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드문 것은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다. 이는 독일 대통령의 경우, 외국에서 기억하지 않아도 될 만큼 권한과 역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은 전형적인 내각제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을 두는 것은 국가원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에 여왕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이해하면 된다. 즉 수상은 수시로 바뀔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명목상이라도 대통령 혹은 국왕과 같은 상징적 국가 원수를 따로 둔다는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내각제 국가에서도 국가원수로서 상징적 역할만을 수행하는 대통령이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보다 잘사는 국가 중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미국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나마 미국은 연방제 하에서 대통령제를 실시하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제의 권력 집중정도는 우리보다 훨씬 덜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국가들은 대부분이 내각제를 권력구조로 가지고 있는 반면, 저개발 국가의 대표적 권력구조가 대통령제인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부분이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동남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과 같은 이른바 저개발국가의 전형적인 권력 구조가 대통령제인 이유는, 이들 국가 대부분이 식민지를 경험했고, 독립 이후 등장한 정권 역시 독재 정권이었다는 역사적 특징과 관련 깊다.

식민지를 경험했던 국가들이 독재 정권이 발생하기 쉬운 이유는, 식민지 시절, 식민 모국이 강압적 통치를 위해 사회적 분화정도 보다 압도적인 군대와 경찰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즉, 식민 모국은 식민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독립운동과 같은 저항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사회 분화 정도보다 비대한 군대와 경찰력을 의도적으로 키우는데, 독립 이후 등장한 정권들은 자신들의 취약한 정통성을 보완하며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 군대와 경찰력을 그대로 이어받아 활용한다.

이런 과정에서는 권력 분점적인 권력 구조보다는 당연히 권력이 집중돼 있는 대통령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권력이 아주 높은 수준으로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강력한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제도적 측면 뿐 아니라 관습적인 차원에서도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가 실시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대통령제라도 권력 분점이 가능하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여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대통령제는 태생적으로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권력을 분산시키려면 대통령제를 기피한다는 사실은 2차 대전 직후 독일에서 발견할 수 있다. 패전국 독일에 진주한 연합국 측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독일을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알다시피 독일은 두 번씩이나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국가였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연합군 측은,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국가내의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래서 연합군 측은 독일에 의원 내각제를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 말이 요구지 사실상 강제였다.

독일의 의원 내각제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갖고 탄생된 것이다. 이를 보더라도 대통령제에서는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대통령제의 문제점은 권력 집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집중된 권력을 “안정적”으로 임기동안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이는 대통령제의 가장 중요한 근간인 임기제에 의해 가능해진다.

대통령제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흔희들 견제와 균형을 말하지만 이것 말고도 임기제 역시 대통령제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다. 대통령제에서 임기제의 원칙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라는 점에 있다. 그런데 이런 임기제는 대통령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보더라도 그렇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 대통령을 내려오게 할 어떤 방법도 없다. 그래서 국회는 지금 탄핵을 추진하지만, 탄핵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고, 그래서 그 시간동안 국정은 제대로 돌아가기 힘들게 돼 국가에게 상당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면, 그냥 국민들은 무기력하게 바라보거나 아니면 거리로 나가 퇴진을 외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래도 대통령이 버티면 정말 속수무책이 되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권력 집중'뿐 아니라 '반응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데도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만일 지금 이런 문제가 내각제에서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권력자를 갈아 치우면 끝이다. 내각제에서의 권력자는 수상이고 그래서 의회를 해산시키면 자동적으로 수상을 갈아치우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각제는 '정권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로 전이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장치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내각제는 연정 등을 할 수밖에 없어, 대통령제보다 권력 집중정도가 상당히 덜하고, 또 대통령제 보다 여론에 대한 반응성 측면에서도 월등하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웬만큼 부유한 국가들은 대부분 내각제를 권력구조로 선택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아직도 대통령제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치문화를 들먹이지만, 만일 그렇다면 독일도 내각제를 절대 할 수 없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와 똑같이 가부장적 국가관을 가지고 있고, 국가유기체론적인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일은 상당히 성공적인 내각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원점에서 내각제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바뀌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희망은 이제 좀 버려야 한다.

과거 정권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다음번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분명 권력형 비리는 다시금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다. 권력의 집중을 막고 여론에 만감하게 반응하는 권력구조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는 최순실 게이트에도 집중해야겠지만, 개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내각제 개헌도 그중의 중요한 화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 신율 명지대 교수 프로필: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민사회 활동과 더불어 정치평론가로 저술 및 방송활동 등을 꾸준히 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다. 2011년에는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에도 등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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