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본부장 "朴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의 운명"

대통령의 거짓말, 정당의 몰락, 퇴진 불가피라는 핵심코드 닮은꼴

닉슨, 신속한 퇴임과 멋진 퇴임사로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거듭나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대통령의 기본 덕목은 도덕성이다. 도덕성은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더욱 그 가치가 빛난다.

1972년 전 미국을 경악시킨 게이트가 불거졌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 닉슨이 ‘워터게이트’에 연루된 것이다. 닉슨 대통령은 누구인가. 1960년 존 F. 케네디 민주당 후보와 역사에 길이 남을 TV토론 대결을 펼친 공화당 후보로 깊이 각인된 인물이 아닌가.

닉슨 대통령은 '개천에서 용'이 된 걸출한 인재 가운데 한명으로 꼽힌다. 캘리포니아주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닉슨은 어릴 때부터 토론을 무척 좋아했다. 케네디 후보와 대통령 선거에서 치열한 TV토론 대결을 펼쳤을 정도로 토론의 달인이었다.

엄청난 수재로 미국 하버드 대학의 입학 허가까지 받았지만 너무 가난해 집근처 시골 대학으로 진학했다. 이후 듀크대 로스쿨을 마친뒤 고향으로 돌아가 정계에 뛰어들며 거목으로 컸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는 부통령으로 활약했다.

한 번의 대통령 선거 재수 끝에 1968년 선거에 당선돼 미국의 제 3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전쟁보다는 평화와 외교를 강조하는 데탕트 정책으로 미국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재선에도 성공하지만 곧 불거진 ‘워터게이트’가 닉슨의 발목을 잡게 된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본질은 '정직성'의 위기다. 경쟁자인 민주당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권력 남용 스캔들로, 이 한 방으로 닉슨과 미국 공화당은 무너졌다.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본부가 있었던 건물이 ‘워터게이트’ 호텔이었다. 닉슨 대통령 주변의 공화당 인사들이 민주당 도청에 개입된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닉슨 대통령은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1974년 8월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단락 시키는 결정적인 증거인 녹음 테이프 이른바 스모킹 건(Smoking Gun)이 등장하자 닉슨 대통령고 결국에는 무릎을 꿇고 만다.

1970년대 미국 정치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워터게이트와 유사한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최순실 게이트가 요즘 대한민국을 온통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두 게이트는 그야말로 닮은 꼴이다. 게이트의 성격은 다르지만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한 후 대통령의 대응 모습은 너무나도 비슷하다. 대통령의 거짓말, 정당의 몰락, 퇴진 불가피라는 핵심 코드를 똑같이 되풀이하는 모습이 마치 쌍둥이 같다.

우선 대통령의 거짓말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핵심은 도청이다. 1972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렸던 닉슨 대통령 캠프쪽에서는 민주당의 대선 전략이 몹시 궁금해졌다. 관심의 장소였던 워터게이트 호텔은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 본부가 있는 곳이었다.

올해 있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와 빗대어 설명하면 트럼프나 힐러리의 선거 캠프 본진이 있는 곳을 말한다. 1972년 당시 미국 경찰이 체포했던 5명의 불법 침입자 중 닉슨 대통령측과 관련된 인물의 신원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닉슨 대통령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지글러 보도담당관은 백악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발뺌을 시도한다. 백악관 측의 일관된 부인으로 자칫 여론은 잠잠해지는 듯 했다. 아마도 닉슨 대통령 입장에서는 관련성을 줄기차게 부정하다보면 탈출구가 생기고 여론도 가라앉을 것으로 착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는 한국 언론처럼 당시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의 특종이 닉슨호를 좌초시키는 결정타가 됐다. 그 중심에는 당대 최고의 기자로 평가받았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있었다. 그들의 보도대로라면 워터게이트의 의혹은 충격적인 사실로 민낯을 드러내야할 상황이었다.

궁지에 물린 닉슨 대통령과 홀더먼 수석 보좌관은 워터게이트를 수사하는 FBI를 저지하기 위해 CIA(국가중앙정보국)를 개입시키기로 결정하고 이를 지시하기에 이른다. 대통령의 국정 농단 행위를 따져 묻고 올바른 길로 보좌해야할 수석보좌관의 작태가 최순실 게이트와 어쩌면 이처럼 닮았을까.

엄청난 특권 옹호와 그들의 이익을 수호해주는 닉슨을 보호하기 위해 온갖 은폐 시도를 서슴지 않은 점도 비슷해보인다. 심각한 국정농단 행위에 국민들이 크게 분노했음은 물론이다. 워터게이트 도청사건과 CIA를 동원한 은폐계획에 대해 닉슨은 시종일관 거짓말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 모든 거짓과 부인이 1년여 뒤인 1973년 7월 13일 베터필드 대통령 부보좌관의 증언으로 종말을 고하고 만다. 대통령 집무실의 모든 대화는 자동으로 녹음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국민들이 가장 실망한 대목은 닉슨의 거짓말이었다. 특히 공화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미국의 보수적인 국민들은 그들이 가장 신뢰했던 대통령의 거짓말로 깊은 상처를 입는다.

차라리 워터게이트 사태가 터지자마자 모든 것을 이실직고했다면 닉슨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태도가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박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전대미문의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사태에서 국민들이 더 격앙한 데는 대통령의 태도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일개 ‘강남 아줌마’로 소개되는 최순실과의 수십년간 인연에 대해서도 분을 삭이지 못하지만 더 심한 분노는 대통령의 대응 방식 때문이라는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미증유의 국정마비 상황의 원인 제공자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사과는 충분치 못했고 설득적이지도 못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거짓에 가까운 내용에 기인한다. 최근까지도 비선 농단이 광범위하게 국정 여러 분야에 손을 뻗쳤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권초반 선의에 의한 도움을 받은 것처럼 국민들을 기만했다. 분통한 민심은 결국 촛불민심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에게 도덕성은 기본이다. 부도덕한 국가 최고지도자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정직하지 못한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에게도, 공무원에게도 청렴을 이야기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지난 15~17일 실시하고 18일 발표한 조사(전국1007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적용 응답률24%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대통령의 역대 최저치 지지율이 나온 배경을 질문한 결과 ‘최순실/미르-K스포츠재단’이 49%로 가장 높았다.

치명적인 국정마비 이유로 들린다. 그런데 주목할 부분은 ‘대통령이 정직하지 않다’는 이유가 비율이 높지 않지만 6번째 이유로 꼽혔다(그림1).

(그림1)

갤럽조사의 경우 소수점 표시를 하지 않으나 평가 이유는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의혹이 모두 다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이번 사태로 대통령의 이미지는 ‘정직’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설명되거나 설득되지 않는 의혹들이 태반이다.

그 가지 수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너무 많다. 여러 가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의원 시절부터 있어왔지만 적어도 정직한 대통령이라는 기대는 있었다. 1960년, 존 F 케네디로부터 당한 충격적인 패배 때문인지 아니면 대선이후 나섰던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의 어처구니없는 낙선 탓인지 지나친 재선 욕심으로 인한 도청 의혹과 부도덕성은 닉슨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렸다.

닉슨 인생에 있어 최악의 판단이었다. 도덕성을 잃은 대통령은 미국도, 한국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첫 번째 사과는 가장 솔직하고 충분했어야 했다. 회복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음은 지지층의 몰락이다. 닉슨은 아이젠하워 이후 미국 보수층의 아이콘이 되었다. 가장 인기 많았던 대통령 중의 한사람인 아이젠하워 대통령 밑에서 두 번 모두 부통령직을 수행한 능력 있는 정치인이었다. 어릴 때부터 길러진 토론 능력과 설득 능력으로 보수층의 믿음은 매우 컸다.

1960년 대통령 선거에 실패하고 연이은 주지사 선거에서 낙마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 정권을 내 준 공화당의 유일한 희망은 닉슨이었다. 닉슨이 많은 공화당원들로부터 사랑받은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아이젠하워를 연상시킨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아이젠하워의 정책에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 부통령 닉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지층의 기대는 여지없이 워터게이트 정국에서 무너지고 만다. 보수적인 공화당의 가치를 대변해왔던 닉슨의 부도덕성에 공화당의 이미지도 동반 실추되고 만다. 그렇지만 최대한 반성하고 무한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닉슨은 미꾸라지처럼 상황을 서둘러 빠져나가려는 모습만 보였다.

닉슨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우리의 경우, 민정 수석에 해당되는 존 딘 백악관 법률자문을 경질한다. 그리고 의회가 추진한 특검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특별 검사를 임명하는 법무장관을 새로 임명한다. 지명 받은 콕스 특별 검사와 상원조사위원회(일종의 국정조사) 모두 닉슨 대통령에게 녹음 테이프 제출을 요구하는 소환장을 발부한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은 소환을 거부하고 법무장관으로 하여금 소환장 취소를 명령 내린다.

그러나 법무장관은 닉슨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하고 사임해 버린다. 란케르즈하우스 차관을 후임 법무장관으로 임명하지만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하고 또 사임해 버린다. 갈 때 가지 가보자는 심산이었을까. 보크 법무차관보를 임시 법무장관대리도 임명해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1973년 11월에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라는 유명하고도 치졸한 변명으로 국민들에게 대실망을 안겨준다. 결국엔 녹취 증거자료가 제출되지만 중요 증거 부분이 이미 인멸된 뒤였다. 이러한 일련의 태도가 보수층의 닉슨에 대한 지지율 급락으로 이어졌다.

사실상 국정 마비에 가까웠다. 미국 갤럽 역대 대통령 지지율 분석에 따르면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1530일에 해당하는 1973년 3월 29일부터 4월 1일까지의 조사결과 지지율이 57%나 된다. 같은 기간의 오바마 대통령 지지율보다도 높다.

하지만 사임 직전인 취임후 2014일 무렵인 1974년 8월 1~4일의 조사 결과 닉슨 지지율은 24%였다. 같은 기간의 오바마 대통령 지지율은 41%나 된다. 트루먼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의 같은 기간 지지율 중에서 가장 낮았다. 공화당 지지층의 50%가 지지했지만 미국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한계를 절감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그림2).

(그림2)

닉슨 대통령은 24%의 지지율임에도 불구하고 탄핵의 심판에 놓였고 사임을 선택했다.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은 6%의 지지율만으로도 들끊는 탄핵의 물결에 휩쓸려 가버렸다. 역대 대통령 최저치인 5% 지지율에도 깊은 반성과 통렬한 책임을 지지 않는 박 대통령의 모습에 보수층마저 혀를 내두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나면 보수층의 동정론을 엎고 지지율이 반등한다고 억지 주장을 부리지만 국정 농단 사태에 체면마저 꺾여버린 동정민심은 쉽사리 돌아오지 못한다. 현재는 보수층 몰락을 두려워하는 ‘셰임(Shame) 박근혜’ 상태다.

단지 내 선택과 주장이 소수의 그것이라서 제대로 바깥에 말을 하지 못하는 ‘샤이(Shy) 박근혜’와는 천양지차의 현상이다. 아무리 보수층일지라도 현재 대통령의 여론인식 상황에서는 비호해줄 명분도 엄호해줄 동정심을 끌어내기조차 어렵다. 닉슨 대통령도 워터게이트가 불거지기 전만 하더라도 공화당 지지층들의 절대 신임을 받았다.

1973년 워터게이트가 본격 등장하면서 보수 성향의 공화당 지지층들마저 무너지는 현상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사과문과 담화문 발표에서 검찰 수사를 성실히 받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평소 법과 원칙을 강조했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수차례 강조했던 박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를 계속 지연시키고 검찰의 대면 수사를 외면하는 행태는 보수층의 큰 불만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보수의 가치는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고 경제적 기반을 강화하며 법치주의에 근거한 헌법 정신을 강조하는데 있다. 국가 공권력을 사조직으로 탈바꿈시켜 마치 일개 패거리 권력으로 전락시킨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보수층의 반응은 지표상으로 냉담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최순실게이트와 워터게이트의 공통점은 퇴진 불가피한 상태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닉슨도 최초의 현직 대통령 사임이라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1974년 3월 1일 대배심은 닉슨을 기소하지 않는 공모자로 지명하게 된다. 닉슨은 사법 방해, 권력 남용, 의회에 대한 모욕으로 하원에서 탄핵가결되었고 상원의 탄핵 판결이 있기 전 스스로 사임을 선택한다. 1974년 8월 8일 닉슨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본인이 더 이상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음을 선언하고 다음날 정오에 대통령직을 내려놓았다.

국민들에게 탄핵으로 쫓겨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보다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는 대통령으로 남길 더 원했던 것이다. 미국 공화당 유권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역대 대통령 중의 한사람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부통령을 지낸 닉슨이었다. 탄핵 대통령이 된다면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명예까지 실추하게 된다는 수치심도 하야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셈이다.

박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는 시민들의 촛불 민심에, 탄핵에 돌입하는 야권과 이에 동조하는 일부 집권여당 의원들의 성난 함성에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CBS김현정의 뉴스쇼’ 의뢰로 지난 16일 실시하고 17일 발표한 조사(전국525명 전화면접/스마트폰앱/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4.3%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13.4%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박 대통령의 향후 거취’에 대해 물어본 결과 ‘자진 사퇴’ 의견이 53.7%로 나타났다. ‘탄핵해야한다’는 20.2%였다. 같은 조사 기관의 직전 조사보다 ‘자진 사퇴’ 여론은 10%포인트 이상 늘어났지만 탄핵 여론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그림3).

(그림3) 11월 9일(좌)과 16일 여론 추이 비교. 리얼미터·CBS김현정의 뉴스쇼 조사

여론조사에 나타난 국민들의 마음은 국론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탄핵이 아니라 대통령의 ‘자진 사퇴’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비선 실세 국정 농단의 끝은 어디일까. 자고 나면 새롭게 사실이 폭로되고 해명되지 않는 의혹으로 떠들썩한 사회 분위기에 97년 IMF 외환위기를 떠올리는 국민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외교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미국은 제 45대 대통령으로 ‘미스터 불확실성’으로 불리는 트럼프 후보를 선택했다. 미국 우선주의로 취임과 더불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폐기를 선언예정이고 한미FTA의 앞날도 순탄치 않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당선인 신분인 트럼프를 만나기 위해 뉴욕의 트럼프 타워로 날아갔다. 페루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회의에 정상들과 사전 교분이 전혀 없는 황교안 총리가 참석해 정상회담다운 만남도 제대로 못해보고 돌아왔다. 한국은 전례가 없는 각종 위기와 시련에 직면해 있다.

민주적인 투표로 선출한 대통령이 국민들의 동의없이 비선 실세의 농단에 국정을 소홀히 한 책임은 단순한 사과문이나 검찰 수사만으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주변의 수많은 관련자들이 국기문란으로 구속되거나 체포되어있는 상태마저 대통령에겐 부담이 되고 있다.

닉슨은 그를 밤낮으로 도왔던 참모들이 한두 명씩 감옥으로 가는 상황을 맞이하며 침통해 했다. 워터게이트로 닉슨이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상대 후보에게 결정적인 오류를 범하지도 않았다. 직권남용과 의회 모독으로 물러나는 닉슨의 뒷모습이지만 퇴임사만큼은 많은 미국 국민들의 마음을 울렸다.

‘임기가 끝나기 전에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저는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은 온 시간을 직무에 쏟을 수 있는 대통령과 온 시간을 직무에 쏟을 수 있는 의회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은 더욱 그렇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평화, 대내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없는 번영을 위해서 전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에 내 개인의 무고를 증명하기 위해 몇 달 씩 싸움을 계속하게 되면 대통령과 의회 모두의 시간과 관심이 그곳에 거의 모두 빼앗길 것입니다.’

이같은 내용의 닉슨 퇴임사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는 다시 국민의 마음속에 멋지고 훌륭한 대통령으로 되살아났다.

게이트의 성격은 다르지만 대통령과 주변사람들의 대응 방식에 있어 ‘최순실게이트’와 ‘워터게이트’는 닮아도 너무 닮았다.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의 말이 일치하지 않는 점, 보수층과 소속 정당이 무너져 내리고 있고 사임을 하느냐 탄핵을 당하느냐는 기로에 선 상황까지 비슷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세계 최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닉슨은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그가 힘든 결단을 내렸을 때 비로소 미국은 평온해졌다. 1994년, 닉슨이 1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를 뒤따라 서거했을 때 많은 미국인들은 그를 위로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5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함께하며 그를 위로했다. 최순실게이트와 워터게이트는 닮아도 너무 너무 닮았다. 닉슨과 박근혜라는 사람만 제외하고.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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