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국민의당-더불어 사이 고심 속 집권여당 대표에 호남출신

야권성향 수도권- 여권성향 충청·영남 대결 속 범호남권 한 표는 대통령 결정짓는 '한 수'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한국 대통령 선거에 앞서 미국 대통령이 먼저 결정된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전당대회를 치렀고 대선 승리의 전의를 다지고 있다. 전당대회 직후 가파르게 상승했던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율이 주춤해졌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답보인 상황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몇 발짝 더 멀리 달아나고 있다.

미국 CBS 뉴스가 8월 14일(현지시간)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클린턴 후보가 경합주에서 5~9%포인트 트럼프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선 전망치를 분석하는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한 분석모델 결과를 인용해 힐러리 클린턴 당선 가능성이 90%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클린턴 후보의 거침없는 하이킥이다. 마치 현재의 분위기로만 본다면 선거는 하나마나 클린턴의 승리가 예상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어떤 변수나 복병은 없는 것일까.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기존 지지층이다. 소위 집토끼라 일컫는 전통적인 지지 기반이다. 민주당 성향이 강한 주에서 클린턴은 승리를 이끌어 내야 한다. 특히 가장 관심이 쏠리는 지역은 연고가 있는 곳이다. 야구에서도 홈경기는 원정경기에 비해 몇 배나 중요하다. 절반에 이르는 게임수도 그렇지만 팬들의 응원을 먹고 사는 프로경기에서 홈팬들이 보는 앞에서 지는 경기를 펼치면 웬만해선 분위기를 회복하기 힘들다.

힐러리 클린턴도 자신의 출생지인 일리노이주나 자신이 상원 의원으로 당선되었던 뉴욕주에서의 승리는 절대적이다. 물론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콜로라도주 등의 경합주에서도 승리의 깃발을 꽂아야만 한다.미국 선거도 그렇지만 한국 선거라고 예외는 아니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호남이 부상하고 있다. 우선 내년 대통령선거와 그 다음해인 지방선거까지 임기를 이어가는 집권 여당의 신임 대표가 호남 출신이고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여당 대통령 후보들의 경선 과정에서 유형, 무형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짤박’으로 설명되는 이 대표와 대통령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여당 대선 후보 선정과정에서 대통령과 당 대표가 다른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야당 사정은 더 절박하다. 내년 선거이전인 당장에라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호남 민심을 붙들기 위한 첩혈쌍웅을 펼치고 있다.

8월말 예정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어떤 당대표가 선출되느냐에 따라 호남 민심은 요동칠 수 있다. 직전 대선후보였지만 호남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의 손을 아직 들어주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안철수 전 대표의 품안에 호남이 놓여있지도 않다. 호남 민심이 전략적으로 야당의 어느 후보를 선택할지가 주목된다. 과거에는 충청이 큰 선거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충청대망론’이 꿈틀대고 있고 충청 출신 대선 후보가 강력하게 등장한 상황에서 마땅한 지역 출신 후보가 없는 호남이 이번엔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야권 성향이 강한 수도권과 여권 후보로 결집 가능성이 점쳐지는 충청과 영남의 대결 속에서 범호남권 유권자들의 한 표 행사는 차기 대통령을 결정짓는 한 수가 되리라.

먼저 호남 출신 집권 여당 대표의 출현은 호남의 선거 중요도를 부쩍 높였다. 가장 최근의 개각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탕평 인사보다는 친청(청와대 출신 인사 중용)인사를 단행했다. 청와대 출신이 새누리당 대표와 함께 주요 장관직을 도맡아 하고있는 셈이다. 지난 8월 9일 4차 전당대회를 분수령으로 당과 정부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친박’조직이 더욱 단단해졌다.

호남의 새누리당 지지율을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당 대표의 일성은 향후 행보를 어느 정도 예상케 한다. 지역적으로는 호남과 영남을 중심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인 셈이다. 신임 대표는 역할의 중심을 현 정부와 정권의 성공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호남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을 높이겠다는 계획이 공수표로만 들리지 않는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지난 9~11일까지 실시하고 12일 발표한 조사(전국1004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 가중치적용 응답률 21%, 더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호남지역 새누리당 지지율은 7%에 그쳤다. 아직 ‘이정현 당대표 효과’를 들여다 볼 순 없다. 같은 조사기관에서 약 한달 전에 실시한 지난 7월 12~14일까지의 호남 새누리당 지지율(8%)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은 31%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그림1).

지역 정당인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남 민심은 특정 정당에 쏠려 있지 않다. 8월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28%였고 국민의당은 27%였다. 어느 정당도 과반은 고사하고 30%선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예산과 탕평 인사로 이 지역의 민심을 이 대표가 잡을 경우 상황은 예측하기 힘들다. 약속대로 20%정도의 지지율을 확보한다면 이 대표에 대한 위상은 당내에서 당분간 위협하기 힘들다.

지역 기반과 대통령의 신임을 독차지한 당 대표의 차기 대선 후보에 대한 영향력은 묻지 않아도 명약관화해진다. 이 대표가 예상대로 친박계에서 지지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지원하든 아니면 공언한대로 차기 대선 후보의 문턱을 낮추어 경쟁구도를 확대하든 이정현 대표의 손에 달렸다. 그는 호남 출신이다.

다음으로는 야당 상황이다. 전당대회 과정을 지켜보면 더불어민주당의 호남상륙작전은 더욱 간절하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에 참패한 후 지역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 절치부심해 왔다.

문 전 대표는 총선과정에서도 그랬지만 총선 이후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 전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과 함께 호남 전역을 누비며 민생행보에 나서기도 했었다. 추미애 의원은 호남의 며느리를 자처하고 있고 이종걸 전 원내대표는 친노에 등돌린 호남 민심을 대변할 적임자라 주장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장 출신인 김상곤 당대표 후보는 호남 출신이다.

정권 교체가 목표인 야권으로서는 호남 민심을 압도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급선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정통성을 잇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도 호남의 압도적인 지지 없이는 대통령 당선은 불가능했었다. 행정구역상으로 호남의 유권자수는 타 지역에 비해 얼마 되지 않지만 호남을 고향으로 하고 있거나 호남 정서 또는 호남 정서를 기반으로 한 인구는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훨씬 많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기점으로 광주 그리고 호남이 한국 진보운동의 보금자리로 영향을 준 이력은 지역적 한계를 훨씬 뛰어 넘는다. 어림잡아도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 정도는 넘는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지율을 합할 때 약 40%가 되는데 이 중 핵심지지층은 호남을 기반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즉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유력 대선 주자가 영남 출신이라고 해도 두 당의 지도부만큼은 호남 정서를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경쟁하고 있지만 야권단일후보나 야권 지지층의 전략적 선택이 작동된다면 호남의 선택은 분산되기 보다는 당선가능성이 높은 한 후보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호남 지지율은 나누어졌지만 결국 문 후보로 사실상 단일화 되었을 때 호남 민심은 문 후보를 선택하지 않았는가.

지난 총선에서 다수의 국민의당 소속 후보가 광주, 전남 심지어 전북까지 당선되었지만 여전히 지지율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총선 직전인 지난 4월 11~12일 조사에서는 국민의당 지지율이 37%로 활짝 웃었다. 그러나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이 불거진 시점의 조사(6월 7~9일)에서는 국민의당 지지율이 31%로 주저앉았다. 더불어민주당보다는 지지율이 앞서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급기야 당내 총선관련 의혹이 심화되는 시점(7월 12~14일)의 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36%)과 국민의당(24%) 지지율이 역전되어 버렸다(그림2).

어쨌거나 호남 민심을 사로잡기 위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경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 지역이 수도권도 충청권도 영남도 아닌 야권의 아성 ‘호남’이라는 사실이다.

호남은 지역적인 캐스팅 보트 역할 이외에 차기 대선 후보 인물 개인에 대한 선택의 비중이 커졌다. 호남 출신의 유력한 대선 후보가 없기 때문에 호남을 비롯해 전국에 퍼져있는 호남 출향인들의 선택 폭도 그만큼 넓어졌다.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행정구역상 호남에서는 호남 출신 정동영 후보를 9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지원했었다.

그러나 많은 호남 출향인들이 살고 있는 수도권에서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당선자의 득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도권 득표와 비교하면 뚜렷한 차이였다.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시 여론조사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결과의 호남 지지율과 비교하면 지금 이 지역에서의 압도적 후보는 없다. 8월 차기 대선후보 조사(9~11일) 결과 호남에서 문 전 대표는 22%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다른 후보와의 차이는 오차범위 내 수준에 그쳤다. 안철수 전 대표가 19%로 뒤를 이었고 반 총장이 16%였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9%였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7%에 그쳤다(그림3).

군웅할거의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적어도 대세론을 만들려면 지지율이 40%수준은 되어야 한다. 대선 투표율이 가까워지기 전까지 호남에서 피 튀기는 경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결국 호남이 어떤 인물을 선택하느냐 그리고 선택한 인물에 90%가 넘는 몰표를 던져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호남 출신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호남의 선택은 그래서 더 절대적이다.

한국 정치에서 호남에 대한 정의는 영남의 반대 의미가 강했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격돌, 김영삼과 김대중의 격돌 구도 속에서 지역 감정은 흘러넘쳤고 주워 담기가 어려웠다. 영남패권이라는 표현도, 수평적 정권 교체라는 의미도 그래서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새 탈지역 현상은 가속화되고 우리 선거에서 이념 성향 그리고 연령대별 투표 경향이 더 중요한 의미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호남의 정치적 부상은 더 각별하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한 영남 주도의 한국 권력 지형에서 호남은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인물을 배출했다. 수평적 정권 교체와 참여 정부의 틀은 세웠지만 뿌리 깊은 영남주도의 한국 정치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지는 않았다. 다양한 분화를 통해 호남정치에도 변화의 바람이 찾아오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호남 지역 정당의 패권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라는 두 개의 권력으로 나누어졌다. 여기에 전북에서도 전남에서도 새누리당의 보수 정당 깃발을 꽂는 결과가 나타났다(정운천, 이정현).

무조건 밀어주고 막무가내로 끌어주는 정당의 역사는 사라지고 있다. 호남의 정서를 제대로 대변해 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새로운 정당이 나선다면 그 정당이 가장 사랑받을 가능성마저 열려있다.

최초의 보수여당 호남출신 당대표가 지금에야 탄생한 것은 어쩌면 우리 정치사의 부끄러운 족적이다. 공당이 특정 지역의 그리고 특정 계파의 영향력에 매몰되고 점철되어온 역사라면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정현 당대표의 탄생은 대통령 임기 후반을 걱정하는 새누리당 당원들의 결집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 보수 정당의 음지에 가려져 왔던 당원들의 합리적인 조정 능력으로도 보인다.

말그대로 정치적 험지인 고향땅(19대 순천곡성 지역구,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지역구 조정으로 곡성이 제외됨)에서 이 대표가 압도적인 사랑을 받은 건 ‘호남의 힘’으로 해석된다. 야당도 언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알 수 없다. 지난 대선 패배이후 호남 지역 및 호남 정신을 대변하는 야권 지지층들은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해왔다. 이념철학의 재정립, 계파의 철저한 혁신, 중도외연 확대였다.

호남 유권자들의 희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야당의 결과는 분열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쪼개졌고 호남 민심도 두 동강이 났다. 그러나 사드배치와 관련한 민심에서 읽을 수 있듯이 계기만 마련된다면 호남 표심은 다시 하나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선택했던 호남의 정권 교체 의지는 크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 후보들은 호남에서 유의미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 이전의 어떤 선거보다도 더 중요해졌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부통령이었던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다 잡은 승리를 부시에게 내줬다. 자신의 지역구이자 고향인 테네시주와 경합주인 플로리다주의 패배는 뼈아팠다. 특히 자신의 지역적 기반이자 정치적 고향인 테네시주의 실패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꼭 사수해야할 고지를 내준 꼴이나 다름없다.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성웅 이순신은 1593년 임진왜란 중 사헌부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 하여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역시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며 호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의 정치적 의미와 당시의 국방 안보적 차원의 해석은 일치하진 않겠지만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이해는 시대를 초월해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호남은 식량자원의 보고이고 우리 문화의 젓줄이 되고 있다.

국회의장에서부터 주요 3당의 지도부 구성에서 호남 출신의 약진은 우리 정치 변화의 중요한 전기가 되고 있다. 다수당인 집권 여당의 당 대표는 여권 차기 대선 선택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야당은 호남의 선택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차기 대선 후보들은 호남의 판단이 대선 과정에서 야권 단일화에 가장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호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나교. 질박한 전라도 사투리가 우러나온 영화 곡성의 명대사다. 내년 대선을 향해가며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호남이 중헌디, 호남이 중허다고.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