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조선업 위기는 내부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

경영진과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해양플랜트에 대한 고찰 부족

구조조정은 내부인사 보다 컨설팅 전문가 등 외부인사에 맡기는 것이 효과적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전문가 칼럼=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국내 조선업이 생존의 기로에 서있다. 조선 빅3(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가 지난해 8조 5000억 여원의 적자를 내면서 인력감축, 자산매각 등 ‘구조조정’ 압력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한국은행을 통해 부실기업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하고자 하는 ‘한국형’ 양적완화 정책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도출하지 못한 상태다. 조선업이 위기를 맞이한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 1위를 독주하던 국내 조선업계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에는 다양한 대내외적 원인이 혼재돼 있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박 수주가 급격히 감소한 데 이어, 2014년 말부터의 저유가기조로 에너지 기업들의 해양플랜트(해저에 매장된 석유, 가스 등을 탐사, 시추하는 생산설비) 발주 연기, 취소가 이어져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게 됐다.

실제로 지난해 조선 빅3 적자 중 해양플랜트 손실이 7조원 이상으로 사실상 손실의 대부분이 해양플랜트로 인한 것이다. 또한 일본의 엔저정책(아베노믹스)으로 일본 조선업의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강화되고, 중국 조선업 기술의 빠른 성장과 저가 공세도 한국 조선업계를 위협하는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

이같은 대외적 요인이야말로 경기변동에 매우 민감한 조선업을 불황으로 이끈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적 요인은 곪아가는 조선업 내부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 '기회'이기도 하다.

첫째, 경영진과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는 현재 고의적인 분식회계여부를 가려내기 위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2015년의 영업손실 5조 5천억 원 중 약 2조원은 2013년과 2014년에 이미 반영됐어야 할 손실임에도 전 경영진이 이를 의도적으로 누락한 것인지에 대해 중점적인 조사가 진행중이다.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수사를 통해 경영진 및 대우조선해양의 관리감독을 맡은 산업은행 소속 임원진의 책임이 확인된다면 대주주 지분 소각 및 이익금 환수 등의 방법으로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다.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정확한 진단없이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붓고, 불법 행위에 대해 눈감아주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둘째, 신산업으로 여겨지던 해양플랜트에 대한 고찰이 부족했다. 물론 해양플랜트가 기존의 선박사업보다 그 단가가 3~5배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인 것은 확실하다. 아울러 국내 조선업계가 앞으로 구조조정을 통해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에는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하며 부가가치가 높은 만큼 그 위험도 크기 때문에 리스크 측정 및 관리 또한 필수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기술력이 부족한 상태임에도 연구개발을 소홀히 함으로써 인도가 지연되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막대해지게 됐다.

유가 하락에 대해서도 충분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유가가 폭락하면서 에너지기업들이 고비용을 들여 해양플랜트 사업을 지속할 유인도 적어져 앞으로의 수주도 기대하기 힘든 형국이 돼 버렸다.

이처럼 조선업 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하지만 지난 십수년간 거대해진 조선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더욱 확실해 보인다. 따라서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하게 생겨날 고통 분담의 주체와 그 명분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세상에는 사양산업도 없고 성장산업도 없다. 사양기업 그리고 성장기업이 있을 뿐이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재도약할 가능성과 힘이 있는 기업과 그렇지 않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기업을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옥석을 가려내는 것이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구조조정은 해당산업 내부 인사들 보다 컨설팅 전문가 등 외부인사들에게 맡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GE구조조정 등 외국의 여러 성공 사례에서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외부 전문가들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과감하고 신속하게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미래의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과정에서 정치적 간섭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객관적 잣대로 진행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조조정, 경기침체 등으로 인한 인고의 시간을 잘 버틴다면 경기가 다시 좋아졌을 때 조선업은 분명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제품주기 사이클에 따라 임금이 저렴한 중국으로 조선업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조선기술을 보유한 나라이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기후변화협약, 강화되는 국제해상기구의 환경기준의 흐름과 함께 하는 에코십(eco-ship),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등의 고부가가치 선박에 초점을 맞춰 전문기술 인력과 연구 인프라 육성에 힘을 쓴다면 조선업은 다시 전성기를 구가할 것이라 믿는다.

금번의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 향후 대내외적 상황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튼실한 근육을 키우는 것이 관건이다. ‘위기’(危機)는 ‘위험할 위(危)’와 ‘기회 기(機)’의 합성어이다. 이처럼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지금이야말로 변화해야 할 시점이며, 변화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 조하현 교수 프로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 , 연세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경제학 학·석사)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 박사,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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