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여론의 창'에 비친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대선 경쟁력

'지역-조직-세대'라는 3대 기반 지금이라도 거머쥘 수 있다면 제왕의 절대반지 얻는 격

존 매케인과 존 케리 등 두명의 '존' 미국 대통령 후보가 실패한 이유 반면 교사 삼아야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미국 대통령 선거가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역사상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지 아니면 개인 재산만 10조원이 넘는 부동산 재벌이 세계 최강국의 사령탑이 될지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 아무튼 후보의 자질 논란을 떠나서 이번 대통령 선거는 많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인다.

시계 바늘을 되돌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로 돌아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재선 대통령으로 성공한 오바마의 탄생을 알린 선거였다.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노벨평화상을 거머쥐었다. 당선만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은 셈이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오바마 후보에게 패했지만 공화당의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영원한 ‘대통령감’으로 기억된다. 세계 초강대국의 대통령 후보로 매케인 상원의원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미국 해군 사상 최초의 부자 4성장군이었다.

매케인 자신도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해 베트남 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5년 반 동안 베트남에서 전쟁포로로 잡혀 있다가 1973년 파리 평화 조약에 의해 풀려난 전쟁 영웅이다. 두 차례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고 마침내 2008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 받는데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와 존 매케인을 비교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오죽했으면 미국의 최신예 이지스함의 이름을 매케인 가문을 기념하며 ‘존 매케인호’라고 지었을까. 수없는 훈장과 메달을 받은 존 매케인은 사실상 영원한 미국의 ‘대통령감’이 되는 인물이다. 2008년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를 세라 페일린으로 지명한 것이 옥의 티가 되었지만 그의 지도자 능력에는 크게 흠집이 나지 않았다.

좀 더 과감하게 선거 운동을 했더라면, 전쟁 영웅의 이미지 일변도를 탈피했더라면 매케인은 대통령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참전 용사였던 매케인이 고연령층 유권자뿐 아니라 40대의 중도 성향 유권자층의 표심을 붙들었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얼마나 달라졌을까.

시계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더 안타까운 인물이 등장한다. 현재 미국의 최전방 외교 사령탑인 존 케리 국무장관이다. 한국 국민들에게는 그다지 인상적으로 기억되고 있지는 않지만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인 부시 대통령과 혈전을 치룬 인물이다. 길쭉한 턱이 트레이드 마크이고 많은 미국의 풍자만화나 할리우드 영화의 등장인물로 간접 묘사되기도 하는 인상을 갖고 있다.

특히 축 처진 눈썹과 금발에서 은발로 변한 헤어스타일은 케리 국무장관만의 고유한 캐릭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1943년 생으로 오바마 대통령(1961년생)과는 거의 20년 가까운 나이 차이가 있다. 사실상 아버지뻘이나 다름없다.

존 케리 국무장관의 풍모는 여러모로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연상케 한다. 부드러운 외모에 화려한 스펙을 자랑한다. 존 케리는 미국 초일류 명문인 예일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보스턴 칼리지 로스쿨에서 공부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부지사를 역임한 후 1985년 상원의원으로 중앙정계에 진출했다.

2004년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는 하워드딘 열풍을 잠재우고 대선후보로 지명 받았다. 본선에서의 승부가 문제였다. 많은 이들의 관심은 끌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미국 동부를 벗어나지 못했다. 서부와 중부 그리고 남부에서 케리 바람이 불어야 했지만 결국 부시의 현직 대통령 프리미엄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미국의 유명 여론조사업체인 조그비는 케리 당선을 예상했지만 예측은 여지없이 빗나가 부시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제 68대 미국 국무장관직을 수행하는 내용을 보아도 존 케리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지금에 와서 부시 대통령(조지 W 부시: 아들 부시)과 존 케리 국무장관을 비교해보면 누가 더 ‘대통령감’으로 낫다는 생각이 들까. 미국 유권자들의 생각도 많이 복잡해진다. 이런 역사적 가정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부시 승, 케리 패’로 끝난 선거였다. 절대적인 지역 기반과 통합적인 조직 기반을 가지지 못한 후보의 아쉬움은 태산보다 크고 황하보다 깊은 법이다.

우리 현대 정치사에도 미국 대통령 탄생사에 등장했던 두 명의 ‘존’(존 매케인과 존 케리)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손학규 전 경기지사다.

손 전 지사는 경기지사의 자리에 오른 이후 줄 곧 대선 후보 물망에 오르내렸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으로 2006년 경기도 지사에서 물러난 이후 같은 당의 대통령 경선에 뛰어들 것으로 많은 이들은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와 2007년 대통합 민주신당에 합류했다. 그후 국민경선에 참여했지만 정동영 후보에게 본선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무관의 제왕’ 손 전 지사는 아직까지 대선이라는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는 두 명의 ‘존’과는 다르다.

인물 경쟁력에 있어서만큼은 세간의 일반적인 기준을 훌쩍 넘어선다. 손학규 전 지사는 최고 학벌에 세계적인 명문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명문 사립대 교수직까지 역임했다.

한일협정 반대 시위를 시작으로 1979년 부마항쟁 당시 경상남도 마산에서 계엄사령부에 체포돼 온갖 구타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결코 굽히는 법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진보적인 정신과 교육자의 양심적인 행동이 잘 어우러진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형으로 각광받았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대선후보’로만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인물의 경쟁력과 대중적 영향력은 구분된다. 좋은 후보가 반드시 당선되지는 않는다. 유권자들은 옳은 것, 좋은 것보다는 강한 것, 뚜렷한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손 전 지사는 분명히 인물 경쟁력을 지니고 있지만 대중 동원력과 영향력에서는 계속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대통령감으로 보기에도 어딘가 2% 부족해 보인다. 대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통령 후보는 지역 기반, 조직 기반, 세대 기반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손 전 지사에게서 이 세 가지 절대카드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대통령 후보로 직접 나서든 아니면 다음 대통령을 결정짓는 킹메이커로 자리매김을 하든 3가지 카드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어느쪽 목표도 힘들어 보인다.

먼저 지역기반이다. 지역감정을 볼모로 한 지역 패권주의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갈린다. 정치적 이익을 목적으로 다른 지역과 대결구도 이른바 지역감정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후보가 특정 지역으로부터의 압도적인 지원과 후원을 받지 않고 당선을 기대한다는 것 또한 설득력이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을 역임한 후 수도권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호남과 충청 그리고 PK지역으로부터 지역 기반을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영남과 충청권의 지지를 등에 업고 역대 최다 득표를 이끌어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역 기반은 말할 것도 없다.

손 전 지사의 지역 기반은 어디인가. 수도권 출신에 경기지사를 역임했지만 수도권에서 영향력은 다른 후보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정계 은퇴 선언 후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에 칩거하고 있지만 호남 영향력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뛰어넘지 못한다.

지역별로 따져보면 어느 한 곳도 1위를 차지하거나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 못하다.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지역 기반은 출신지 또는 정치적 배경으로 상징될 수 있는 유권자들의 인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손 전 지사의 경우, 어느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지 뚜렷하게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리서치앤리서치가 MBC의 의뢰를 받아 지난달 29~30일 실시하고 31일 발표한 조사(전국1000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할당추출 응답률16%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여야를 망라해 거론되는 대선 후보들 중에서 누구를 지지하는지 물어본 결과, 1위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으로 31.6%였다.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은 전국적으로는 2.3%였는데 경기와 인천지역에서는 1.9%에 그쳤다. 경기도와는 하등 직접적인 연고가 없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가 오히려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그림1
인천을 포함하고 있다고는 하나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역 지지율이다(그림1). 어느 한 곳 특별히 강세인 지역도 없고 호남에서마저 4.5% 지지율에 그쳤다.

흔히 손 전 지사와 호남의 관계에 대해 아주 적극적인 선호관계에 있는 것처럼 평가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금 더 나은 수준에 불과하다.

경기지사를 역임했고 퇴임직후 전국적인 이목을 집중시킨 ‘손학규의 민생대장정’을 거침없이 이어나갔지만 지지율에는 별다른 반향이 없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호남 맹주로 자리 잡은 건 더더욱 아니다. 결국 자신의 고유한 지역 기반이 없는 유목민(노마드)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치적 다양성의 측면이라면 노마드도 칭찬받을 일이지만 절대적인 지역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 대선 후보에게 ‘노마드 정치’는 치명적인 악재에 지나지 않는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다 잡은 토끼를 놓치는 우(愚)를 범했다. 전국 득표에서는 앞섰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불과 몇 십표 부시 후보에 뒤지는 바람에 당선의 영광을 놓치고 말았다.

결정적인 패인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의 평가가 뒤따르지만 가장 쓰라린 패배는 고향인 테네시주에서 불거졌다. 부시의 동생인 젭 부시가 주지사였던 플로리다주에서 패하더라도 자신의 고향인 테네시주만 승리하면 당선의 월계관은 부통령 출신인 고어 후보 차지였다. 하지만 안방을 놓친 고어 후보는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손 전 지사의 정치인생에서 경기도는 특별하다. 지사를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4번의 국회의원 당선을 모두 경기도에서 만들어냈다. 앨 고어의 테네시가 손 전 지사에게는 경기도인 셈이다. 경기도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2006년의 민생 대장정을 지사 재임 기간 동안 활동했던 경기도 지역으로 국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역사는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전 지사가 경기도에서 더 탄탄한 지역 기반을 다지지 못한데 고개가 갸우뚱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정치적 주인이 정해진 거나 다름없는 영남과 호남 그리고 충청을 아무리 두드려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손 전 지사가 대권 꿈을 이루려면 지역기반이라는 절대 카드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두번째로 손 전 지사가 붙들어야할 절대 카드는 조직 기반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대선 행보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내용처럼 절대 반지를 찾아가는 길고도 먼 항해의 여정이다.

수많은 난관에 부딪힐 때 일으켜 세워주는 역할은 결국 주변 사람이다. 미국 대선후보였던 두 명의 ‘존’인 존 매케인과 존 케리도 결국 거대 조직을 구축하지는 못했다.

매케인은 공화당 내에서 소수 의견을 내기 일쑤였고, 명문 군인 집안의 대쪽 같은 이미지가 사람이 모여드는데 방해가 되기도 했다. 케리는 재혼 배우자의 엄청난 재력과 최고 학벌의 법조인 출신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소탈한 하워드딘의 세력까지 흡수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손 전 지사에게 조직은 어떤 의미일까. 정당 지지층으로 해석할 때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소속돼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물론이거니와 전 소속이었던 새누리당에서도 조직력은 그디지 강하지 않았다. 국민의당은 말할 것도 없다.

손 전 지사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한다면 기대됐던 무당층에서도 별다른 꿈틀거림이 없다. 사람은 너무 좋은데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는 상도동계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동교동계가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사모가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전심전력한 조직이 있었다. 박 대통령 역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 그룹이 든든했다.

그렇다면 손 전 지사에게는 누가 있는가. 리서치앤리서치의 지난 5월말 조사에서 지지하는 정당 성향별로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여야)을 분석해본 결과, 손 전 지사는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2.2%, 더불어민주당 3.2%, 국민의당 3.1%, 정의당 2.5%로 나타났다. 정당 지지층만으로 분석하면 손 전 지사가 어느 정당 후보가 될지, 어느 정당 후보로 나올 때 경쟁력이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림2
이와 달리 유력 대선 후보들의 조직 기반은 뚜렷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새누리당에서 절반이 넘는 55.4%의 지지를 받고 있고 문 전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41.6%의 호응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 대표는 국민의당 지지층의 10명 중 4명 정도 수준인 38.5%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다(그림2).

정당이라는 조직 기반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유력 대선 후보인지 아닌지를 갈라놓고 있다. 당의 대표까지 역임했지만 든든한 배경이 되는 조직 기반은 만들어지지도 존재하지도 않은 모양새다.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한때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에 결국 무릎을 꿇은 결정적 이유도 민주당내 조직이 약하다는 점이었다.

후보를 지명하는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슈퍼 대의원과 경선 조직 지도부는 민주당 사람이다.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의 사람도 많고 힐러리 대선 후보 자신은 오바마 민주당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했다.

아무리 성향이 혁신적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조직 대결의 벽을 뚫기 힘들다는 교훈을 2004년 하워드딘의 사례에서 충분히 깨우칠 수 있다.

버니 샌더스가 애당초 민주당 출신이라면 이번 민주당 경선은 초반에 샌더스쪽으로 기울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기대했던 캘리포니아 경선마저 완패한 샌더스에겐 조직이 없었다. 단순히 바람은 있었을지 몰라도.

손 전 지사가 대통령이는 마지막 꿈이 있고 그 꿈을 좇아 갈 생각이라면 조직 기반 없인 계획조차 세우기 힘들다는 점을 절감해야 할 듯 싶다.

마지막 세번째로 손 전 지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절대 카드는 세대 기반이다.

끝까지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만 버니 샌더스 바람의 진원지는 진보적인 젊은 세대다. 이들은 진보적 사회주의자인 샌더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하고 환호한다. 그들의 고민과 걱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해결할 방안을 찾아가는 샌더스 후보에 공감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동질감을 공유하기도 한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서울시장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된 배경에는 40대 화이트칼라가 있었다. 그들은 이 전 대통령의 시장 시절 업적에 주목했다. 청계천과 버스 중앙차로제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출퇴근 버스 이용의 편리함에 큰 관심을 보이는 화이트칼라 계층에 설득력 있는 성과로 무게있게 다가왔다.

특히 2030세대와 5060세대의 가교 역할을 하는 40대에 대한 공감 능력이 얼마나 확보돼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세대 기반이 분명한 후보일수록 최근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로서의 진가가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를 전후로 당의 전면에서 물러나있는 문재인 전 대표의 경우, 직전 대선후보였다는 특수성?함께 정치적 성향에 따라 2030세대의 유권자 기반을 잘 챙기고 있다.

마찬가지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새누리당 후보로 나올 가능성이 높게 전망되고 유력한 경쟁자가 당내에 없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5060세대의 선호가 더 명확해졌다.

지난 5월 리서치앤리서치의 조사 결과를 세대별로 분석해보면 반 총장은 60대 이상에서 44.6%로 가장 높았다. 문 전 대표는 30대에서 오차범위내 차이지만 26.1%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 적어도 두 자리 수 지지율은 되어야 세대 기반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림3
이 조사에서 손 전 지사는 모든 연령대에서 5%미만이었다(그림3). ‘손학규 바람’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견고한 세대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어느 연령대에서도 버니 샌더스 바람처럼 ‘민생 대장정’ 바람을 몰고 올 세대기반이 엿보이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2006년 손 전 지사의 ‘민생 대장정’은 행동하는 지식인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좋은 세대 기반 모멘텀이 되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충분한 소통이 부족했다. 오늘날처럼 사회관계망(SNS)이 발달하지도 않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의미있는 행동이었지만 대통령의 조건으로 폭넓게 깊숙이 국민들의 마음속 구석구석까지 다가서는 데는 실패했다는 얘기다. 빨리가기 보다는 더디더라도 함께 가는 ‘민생 대장정’이었더라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터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절묘한 타이밍이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역사로부터 얼마든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진시황의 서거이후 중국 대륙은 혼란에 빠져들었고 유방과 항우의 맞대결을 통해 어지러움은 정리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 혼란의 와중에도 유방은 전쟁에서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한 치도 놓치지 않는다. 반면에 항우는 거침없이 부상하는 유방을 제거해 후환을 없애야 한다는 천하제일책사인 범증의 말을 전혀 새겨듣지 않았다. 홍문(鴻門)에서 충분히 유방을 없앨 수 있었지만 실기(失機)하고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패배의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항우는 차라리 사정이 나은 편이다. 천하를 삼분지계(三分之界)할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 두었던 한신은 불세출의 책사 괴철의 혼신을 다한 조언마저 뿌리쳐 버리고 유방을 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신은 유방의 부인인 황후 여치에 의해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되지 않았는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다. 아무리 좋은 뜻도 그 꿈을 펼쳐야 하는 적시(適時)에 꺼내놓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손 전 지사의 나이도 어느덧 일흔을 향해 가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아직 자신의 기반이 만들어져 있지 조차 않은 상황에서 정치판의 급변 상황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한국정치에서 손 전 지사는 학자로, 국회의원으로, 장관으로, 단체장으로, 공당의 대표로 보여줄 건 거의 다 보여줬다고 본다.

이제는 모아온 내공을 어떤 모습으로든 국민들에게 쏟아 붓고 종합적인 평가를 받아야 하는 시점이다. 강원도로, 전라남도 어디로 칩거하는 은둔정치를 어서 끝내야 유권자들의 제대로 된 평가가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국민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들어야 자연스레 귀를 쫑긋 세우고 들을 노력을 하게 된다.

손 전 지사의 지역 기반이 어디로부터 출발하고 어떤 대한민국의 미래를 꿈꾸는지 이해하기 쉽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배경이 되는 고향 효과(Hometown Effect)를 감안한다면 경기도에서 유의미한 영향력이 필요하다.

조직 기반도 예외가 아니다. 당 조직의 기반 또한 반드시 챙겨야 할 절대 카드다. 한나라당으로부터 민주당으로 옮겨왔다는 원죄(原罪)론이나 민주당내에서 친노와 친문에 밀린 세력이라는 비주류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조직 기반은 필수적이다.

최근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로부터 적극적인 영입 구애를 받는 점도 그렇다. 특정 정파에 매몰되지 않고 확장성이 크다는 의미 부여도 있겠지만 그만큼 자신의 조직이 없음을 방증하는 장면이다.

대통령을 향해 가는 인물에게 세대 기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특정한 계층의 아이콘이 돼야만 주변에서도 더 특별한 관심을 보내오게 된다. 안철수 대표는 IT업계의 상징으로 많은 청년세대들의 관심을 모아오다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 부상하지 않았는가.

앞으로 손 전 지사가 어떤 선택을 하던 지역 기반, 조직 기반, 세대 기반이라는 3개의 절대반지를 갖춰야만 대선 후보로서도, 킹메이커로서도 제 구실을 손색없이 할 수 있울 것이다.

십수 년 간 손 전 지사는 끊임없이 대한민국 ‘대통령감’으로 거론돼 왔다. 이제 더 이상의 머뭇거림은 없어야 한다. 마지막 선택의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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