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여론으로 분석한 충청대망론의 차기 대선 ‘빅뱅 가능성’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검은 링컨’으로 불렸던 버락 오마마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 들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시작은 초라했다.

강력한 경쟁자였던 힐러리 전 상원의원을 따돌리기도 싶지 않았고 전쟁영웅 매케인 공화당 후보와의 싸움은 더 힘들어 보였다.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자신의 필생의 업적이 될 수도 있는 의료보험(일명 ‘오바마케어’)법안을 관철 시켰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오바마 대통령의 소통과 추진력은 그의 임기내내 국정 운영의 핵심 원동력 역할을 해냈다.

취임이후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었지만 특유의 낙관적인 미소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에 미국인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흑인이라는 인종적인 편견과 ‘흙수저’에 가까운 출생배경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낸 그에게 임기 마지막해에도 50%가 넘는 지지율로 미국민들은 화답하고 있다.

부러운 대통령이 아닐 수 없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흑인이라는 인종적인 약점외에도 지역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하와이출신에다 정치적 기반은 미국의 중서부로 불리는 일리노이주의 시카고였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유권자 수가 많고 미국 정치의 전통적인 세력 기반이 만들어진 곳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한 서부와 뉴욕과 보스턴을 구심점으로 하는 동부와 미국의 전통적인 백인 지역 기반이 견고한 남부 지역이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케네디는 동부 출신이었다. 닉슨과 레이건 전 대통령은 둘다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닉슨은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한 반면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냈다.

재임후 활동으로 더 존경받는 지미 카터는 남부의 조지아주 주지사였고, 부시(아들) 전 대통령은 남부의 텍사스주 주지사 출신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남부 아칸소주 주지사를 거쳐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시카고 지역에서 변호사와 법률교육자로 활동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기반은 취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달라진 유권자 지형은 오바마의 손을 들어주었다. 남부와 동부 그리고 서부의 ‘지역 마피아’ 정치에 미국 유권자들은 실망했다. 이에따라 지역에 대한 편견없이 자라 미국의 중서부에서 탈지역, 탈이념, 탈정치를 부르짖어온 오바마의 의 생각은 모든 경계선을 넘어 미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유권자들은 주지사 출신 후보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지역을 뛰어넘는 생각의 파노라마를 펼쳐내고 있는 버니 샌더스, 힐러리 클린턴, 도널드 트럼 프에 열광하고 있다.

한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지금 서울과 광주를, 서울과 부산을 2시간내에 주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역의 현안과 발전을 무시한 채 지역을 볼모로 정치적인 구호에만 치우친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뿐만 아니다. 특정 지역이 마치 특정 정당의 이념 성향과 결코 다르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는 몰염치에 대해서도 유권자들은 사정없이 회초리를 들었다. 지역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충분한 고민 없이 무작정 내놓는 후진적인 정치적 접근에 대해서도 성난 목소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충청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정치적 퇴행의 기록이 영호남 독식의 기울어진 정치사에서 비롯된 것이란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충청이 간다." 단지 지역의 이익만을 그리고 또다른 지역주의라기보다는 탈지역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진보나 보수의 이념에만 매몰되어온 정치권의 접근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강력하다. 영남과 호남의 정당 패권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균열과 변화의 시작을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확인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어느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은 충청의 선택과 결과는 탈이념의 예고편처럼 들린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되돌아보자. 어떤 정책을 얼마나 잘 그리고 제대로 실행해줄 인물인지도 모른 체 투표하지 않았는가. 지역적으로 이념적으로 지금의 영남과 호남처럼 막무가내로 묶여 버린다면 결코 통치능력을 갖춘 대통령을 우린 가지질 못할 것이다.

지역적으로 이념적으로도 어느 일방에 기울어지지 않은 충청의 선택은 정책 우선이었다. 지난 대선에서도 박근혜와 문재인 어느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진 않았다. 3탈(脫) 즉 탈지역, 탈이념, 탈정치를 어느 지역보다 더 유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지역으로 충청이 꼽힌다.

우선 충청 대망론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탈지역이다. 영남과 호남의 지역주의는 붕괴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영남은 보수 정당과 후보를, 호남은 진보 정당과 진보 후보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얼마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우리는 더 이상 특정 정당의 심장, 아성, 텃밭은 없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확인했다. 이번 선거의 특수한 상황에 따른 결과로 치부하는 의견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지역 패권주의는 허물어지고 있다.

영남에 새누리당의 깃발을 꽂아야만 그리고 호남에 민주당의 어깨띠를 둘러야만 당선이 보장된다는 공식은 더 이상 100% 성립하긴 어려워졌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의 재선과 정운천(전주 을) 후보의 당선을 어쩌다 일어난 해프닝으로 이해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각 정당이 얻은 비례대표 정당별 득표를 보면 새누리당은 부산과 경남에서 40%대에 머물렀다.

특히 부산에서는 간신히 40%대를 턱걸이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압도적인 투표로 밀어주었던 민심과는 확연한 온도차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수도권은 선거에 따라, 후보자에 따라 변동성이 매우 큰 지역이므로 어느 정당이고 할 것 없이 안정적인 선거 전략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은 서울에서의 ‘야권 분열’에만 집중하다 선거 패배를 자초해버렸다.

새누리당이든 더불어민주당이든 아니면 제 3당의 지위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국민의당마저도 특정 지역의 기반만으론 국회 과반을 확보하거나 대통령 당선을 통한 정권창출이 힘들어 지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어느 특정 지역 세력에도 편승되지 않는 지역적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는 충청권 마음을 잡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당비례투표 결과를 보더라도 충청에서 세 정당은 어느 한쪽으로 힘이 쏠리지 않은 체 황금비율의 경쟁 구도에 놓여있다. 세 정당의 득표율 차이도 크지 않다. 전체적으로는 야권이 우세하지만 제1당은 새누리당이다. 전국 의석수로는 더불어민주당이 1위 정당이지만 충청에서는 그래도 새누리당이 근소하게라도 우세한 결과였다 (그림1).

다음 대선을 겨냥하는 정치 세력이라면 자신들의 지지 기반위에 최우선적으로 올려놓아야할 ‘신의 한수’가 바로 '충청'이다. 충청권 인사가 출마하든지 아니면 대통령 후보 결정에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든지 결정적 역할을 충청도 유권자들이 해낼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탈이념이다. 지역주의 이상으로 더 오랫동안 우리 정치권을 지배해온 형식 논리가 이념이다.

보수성향 유권자들은 선거 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보수 정당을 선택해왔고 진보성향 국민들은 정당의 경쟁력이나 수권 가능성 등의 현실적 문제는 깊이 따져보지 않고 진보정당을 선택하기 십상이었다.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서도 대통령이나 정당을 선택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왔다.

영남은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정치적 결정이 많았고 호남은 진보적인 의사 선택이 뚜렷했다. 그러다보니 공당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다양한 의사가 반영되기 보다는 소위 진영논리에서 정책과 법안에 대한 취사선택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는 반대로 최근 들어 우리 국민들의 전반적인 취향은 어떤 극단적인 선택보다 이념적으로 중도적이고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보편타당한 결정을 더 존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에도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지만 다음 대통령은 국정교과서, 대북이슈, 각종 사회개혁 과제 등 이념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많이 다룰수 밖에 없다. 어느 한쪽의 이념적 색깔이 강하게 드러나는 경우 경쟁력은 약해지게 된다. 권위적인 시대에는 어느 한쪽의 이념이 강하게 드러나더라도 지지층만 결집하면 지역주의까지 곁들여져 패권이 가능했으나 제 20대 국회의원 총선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앞으로 정국 상황에서 일방적인 보수 또는 극단적인 진보는 환영받기 어렵다.

사안에 따라 이념적 태도는 변하겠지만 집단적인 충청권의 이념성향은 중도에 가깝다는 사실을 지표로도 확인하게 된다.

리서치앤리서치가 2014년 9월 2~4일 실시한 이념성향 조사(전국1046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응답률13.2%)에서 응답자 개인의 이념 성향을 가장 진보적인 경우 0부터 가장 보수적인 10까지로 물어본 결과, 충청은 5.08점으로 가장 중간에 위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평균은 5.38점으로 다소 보수화된 사회 현실을 반영한 결과임을 감안할 때 다른 어떤 지역보다 더 중도적인 이념을 가진 지역으로 분석된다.

새누리당의 지역 기반인 대구경북은 5.81점으로 가장 보수적이었고 호남은 4.95점으로 가장 진보적이었다(그림2).

이념 사다리로 가장 중앙에 있는 충청권은 특성상 진보도 보수도 어느 쪽도 아니다. 이념적 분포에 따른 지역 결집력은 일상적으로 떨어지겠지만 그 확장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평균에 가깝게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중도를 중심으로 진보와 보수에 이르기까지 넓게 확장된 분포를 보여 준다.

지난 대선이후 이념적 피로도가 커진 유권자들의 투표 심리를 이해할 때 탈이념적 인물과 세력에 대한 호응도는 높아진다. 실제로 충청권과 유사한 이념적 방향을 선택한 국민의당은 이번 선거에서 ‘대박’을 터트렸다. 충청권이라는 행정구역상의 지역을 떠나 충청권의 정서와 이념적 성격을 표방하는 후보라면 ‘대박’의 전주곡은 미리 써둔 셈이다.

마지막으로 충청권 대박 가능성의 이유는 탈정치에 있다. 영남과 호남이라는 우리 정치사의 낡은 지역 구도를 탈피하고 충청권 특유의 경쟁력이 실려 있어야 한다.

충청이라는 기회의 땅에는 이념이라는 낡은 무기보다는 ‘정책’이라는 오랫동안 검증된 신병기가 적합해 보인다. 국정교과서나 국회선진화법 등 정쟁적 이슈는 결코 충청권에 솔깃한 이슈가 되지 못한다. 그동안 너무 오랜 기간동안 영남과 호남은 정당의 패권주의에 휘둘려 제대로된 정책적 평가나 검증이 유권자들로부터 시도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면에 정치구도상 상대적으로 척박한 환경에 놓여있었던 충청권에서는 끊임없이 정책적 노력을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요구해 왔다. 그 결과 성과를 얻어 낸 것이 행정중심복합도시와 지역별 각종 혁신도시의 건설이다.

누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각종 선거 결과는 충청권에서 절대 맹주를 만들지 않았다. 과거 김종필이라는 불세출의 지역 리더가 있었지만 무한정 지속되진 않았다. 그 뒤를 이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배출되었지만 그 세력이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오래지 않았다.

충청권에서의 압도적이고 폭발적인 후원은 시간도 내용도 제한적이었다. 오히려 지역적으로 더 가까운 이회창 후보를 선택하지 않고 2002년에는 노무현 후보를 ‘수도이전’ 찬성이라는 명분으로 선택하지 않았는가.

20대 국회의원 총선에서도 전국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이 제 1당이 되었고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압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충청은 이번에도 역시 달랐다.

전체 의석 중 14석은 새누리당에 돌아갔고 더불어민주당은 12석에 머물렀다. 수도권 결과와는 온도차가 있고 국민의당이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지 못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거둔 성적표임을 감안할때 아무튼 전국 민심과는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많아 보인다.

역대 총선결과를 토대로 할 때 충청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전국적으로 과반 의석 달성이 힘들었다(그림3).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충청권 결과는 2석 차이에 불과했다. 전체 선거결과로도 과반 정당은 없었다.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적 정서를 볼 때 이미 지역 정치를 통해 정책적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고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온 ‘충청권 대망론’의 기대감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이 지역 출신인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그래서 1997년 대선에서 폭발적인 지지율 상승의 추억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역시 아직 출사표도 던지지 않았지만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충청이 간다." 아니 오히려 기대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 맹주로 군림했던 김종필 전 총재는 ‘총청도 핫바지론’으로 충청 민심을 송두리째 끌어안기도 했다. 누군가 충청 민심을 제대로 붙들어 정치적으로 주도해 나간다면 지금의 정국 구도상 충청권내의 돌풍에만 머무르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지역주의에만 기댄 정치인들의 농단에 휘둘리지 않는다. 특정 정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될 거라는 부질없는 기대감은 이번 총선에서 부산, 광주 등 여기저기에서 처절하게 허물어졌다.

특히 제 3정당인 국민의당의 선전은 기존 정당 특히 영남과 호남 기반에 매몰되어온 기존 정치권에 대한 엄중한 '녹색 경고'였다. 국민의당을 선택함으로써 민의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국민은 호랑이처럼 무섭다. 여론을 잘 살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일갈했던 김 전 총재의 과거 발언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국민의 마음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수도권 민심마저 지역과 이념 그리고 무능력한 정치를 건너 뛰어오는 충청권 대망에 화답할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역대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커졌다.

비주류인 자신의 처지를 뛰어넘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대통령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충청 대망론’ 역시 충청이라는 단순한 지도상 한 지역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지역주의와 이념갈등에 상처 입은 국민들을 보듬는 치료제로서의 의미 부여가 된다면 그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충청 대망론’이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채널이 되기 위해서는 ‘충청 대망론’이라고 쓰고 ‘국민 대망론’이라고 읽을 수 있는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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