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대 감각교차연구소, 커트러리(테이블 식기)와 음식 가격 상관관계 연구

"무거운 식기에 먹으면 캠핑용 식기로 식사한 사람보다 음식 값 15% 더 낼 용의"

무게는 맛과 연관된 촉각·청각 등에 연쇄 영향… "무조건 무거운 식기로 바꿔보길"

김유진 푸드칼럼니스트
[데일리한국= 김유진 푸드칼럼니스트 칼럼] 가끔 외신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외국의 대학에서는 별의별 연구를 다 하는구나! 몇 해 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뉴스를 본 일이 있다. 이 대학에는 ‘감각교차 연구소’라는 기관이 있단다. 연구원들과 요리사들이 주축을 이룬 조직이다. 그들 중 샤를 미셸이라는 요리사가 ‘식기의 무게가 맛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 결과는 예상 외였다. 사람들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나 쓸 법한 무거운 식기에 먹으면 캠핑용 식기로 식사를 한 사람보다 음식 값을 평균 15% 더 낼 용의가 있다는 게 골자다. 연구진은 무거운 식기는 음식에 관심을 더 갖게 해 음식의 맛이나 즐거움을 더 잘 느끼게 한다고 분석했다.

옥스퍼드대 연구 "무거운 식기에 먹으면 음식 값 15% 더 낼 용의"

이 발표 내용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분석해보자. 감각교차 연구소는 인간의 감각과 요리에 대해 연구하는 곳이다. 식기는 물론이고 온도· 습도·건조 정도가 맛에 미치는 영향도 분석한다. 인간의 오감 즉,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과 맛의 상관관계도 밝히는 곳이다. 그런데 왜 하필 식기였을까? 수식(手食)을 하는 10억 명 정도의 지구인을 제외하고 모든 인간은 도구를 사용해 식사한다. 즉 식기는 요리와 인간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인 셈이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식기의 디자인이나 각도가 아니고 ‘무게’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식기는 부담을 느낄 정도로 무겁지는 않다. 물론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이 발견되기 전에는 무거웠다. 상류층들의 이야기다. 중세와 근대의 서민들은 목기를 썼다. 반대로 윗분들은 무거운 식기를 사용했다. 메디치가의 공주님도 프랑스에 갈 때 겁나게 무거운 포크와 나이프를 싸들고 갔을 게 뻔하다. 선교사들이 촬영한 조선 선비의 간소한 식탁에는 나무로 만든 숟가락과 젓가락이 보인다. 하지만 왕족과 양반 같은 권력의 핵심 세력들은 묵직한 금속 식기를 즐겨 사용했다.

느닷없이 이 연구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왜 하필 무게일까? 미셸이라는 요리사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플라스틱 포크와 나이프를 건네는 친구가 식기의 무게에 집중했을 리 만무하다. 아마도 그가 근무해 왔던 식당들은 꽤 ‘급’이 있는 곳이었겠지. 자연스레 고객의 만족에 대해 더 연구하고 싶었을 테고…. 인테리어나 조명, 음악 같은 분야는 본인보다 더 실력 있는 전문가들이 많으니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추론이 난 재미있다. 연구의 의도를 이해하면 그 결과를 현실에 적용하기 용이해진다.

다시 미셸 이야기로 돌아가자. 연구 주제는 ‘맛에 미치는 영향’이다. 드디어 맛으로 접어든다. 맛은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 오감과 내장의 흡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면 무거운 식기는 어느 감각과 연관이 있을까? 그렇다. 촉각이다. 헌데 촉각이라고만 규정하기에는 걸쩍지근한 구석이 좀 있다. 시각과는 관계가 없을까? 무거운 식기가 작을 수 있을까? 아니다. 무게가 나가는 거개의 것들은 대부분 큼직하다. 돈까스를 써는 칼과 스테이크를 자르는 칼의 무게는 분명 다르다. 청각은 또 어떤가? 무거운 식기는 그만큼 둔탁하고 묵직한 마찰음을 만든다. 포크와 나이프가 부딪힐 때, 접시를 긁을 때, 테이블에서 들어 올리거나 내려놓을 때 다 다른 소리가 난다. 영화 장면도 몇 개 떠오른다. 조용한 레스토랑에서 식기들이 만들어내는 음파가 훌륭한 소품의 역할을 했던 게 기억난다. 대폿집에서 나는 알루미늄 테이블과 스테인리스 젓가락이 만드는 마찰음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 방정맞지 않다. 우리 모두 견공이 아니니 후각에 대한 궁금증은 과감히 패스. 미각은 어떨까? 1인당 7만-8만원이 넘는 레스토랑에서 단 한번이라도 식사를 해본 분이라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깊게 패이고 묵직한 숟가락이 입술과 혀에 닿았을 때의 느낌. 고기 한 점을 나른 포크가 수줍게 빠져나오며 입술을 건드릴 때 바로 그 느낌. 맛은 혀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요리에 따라 식기에 따라 어쩌면 식기가 더 민감하게 감각 기관을 건드리는 역할을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객이 만족하고 납득할 만한 식기 써야…당장 바꿔보라"

슬슬 납득이 간다. 왜 무거운 식기가 맛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는지. 미셸은 미리 가설을 설정했음에 틀림없다. 고품격 레스토랑의 고객이 만족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요소들을 뽑아놓고 이를 검증한 것이다. 무거운 식기는 어찌 보면 인간의 DNA 속에 각인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문학작품, 영화, 드라마, 사진, 그림 등을 통해서 조각모음된 이미지가 잠재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번쩍거리고 큼직하고 묵직한 식기를 보며 반사적으로 상류층의 품격을 공유하는 거다. 동일한 요리를 먹더라도 캠핑장 식기와 무거운 식기는 판이한 감흥을 가져온다. 더 맛있게 느낄 근거가 충분하다. 이런 잠재의식이 판매가격보다 15% 더 지불할 수 있겠다는 용의를 만들어냈다. 무거운 식기로 발생한 15%의 부가가치는 분명 맛과 감각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고 보니 한국 국적의 노포들과 고급 한정식 집 그리고 요정에서도 대중식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묵직한 은수저나 방짜로 만든 식기를 손님들에게 제공한다. 이는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 결과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고객과 공감하려면 내가 관리하기 편한 식기가 아니라 고객이 만족하고 납득할 만한 식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가치가 올라간다. 가벼이 여겼던 식기에 이런 심오한 무의식이 잠재해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당장 바꿔보기를 권한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이라면 앞으로 숟가락·젓가락·포크·나이프 하나 허투로 내지 않을 것이다. 모른다면 모를까 이미 알게 된 사실을 애써 모르는 척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김유진 푸드칼럼니스트 프로필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MBC프로덕션 PD- 공주대·덕성여대 객원교수- 국립중앙박물관 식음료 총괄 컨설턴트- 김유진제작소 대표(현) *<장사의 신> 등 저서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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