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위 사태로 K-pop에 대견함 느끼며 동시에 "우리에게 무엇인가?" 의문

"볼거리는 있는데 내용은 없어"… "만주족처럼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도"

서구 작곡가 많고, 가수 국적 따지지 않아… "우리의 혼이 담겨 있어야"

박장순 홍익대 영상대학원 교수
[데일리한국= 박장순 홍익대 영상대학원 교수 칼럼] 대만 출신의 나이 어린 여가수 쯔위 문제로 국내외가 시끄럽다. 한 인터넷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든 것이 발단이었다. 소속사인 JYP와 당사자인 쯔위가 서둘러 대중국 사과문을 발표했고, 새로 선출된 차이잉원 총통 당선자를 중심으로 대만이 이에 강력히 항의하면서 국제적인 정치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하게 되었다. K-pop에 얽힌 이런 복잡한 국제 정세를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어느 새 K-pop이?’ 하는 대견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K-pop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쯔위 사태로 본 K-pop…"우리에게 무엇인가?"

세계 젊은이들은 K-pop하면 '후크송, 일사불란한 군무, 훤칠한 키, 잘 생긴 외모, 가창력, 패션 스타일, 메이크업' 등 20여 개의 단어를 떠올린다. 이것이 K-pop밈(meme·비유전적 문화요소 또는 문화의 전달 단위)이다.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은 이 밈들로 인해 K-pop을 사랑하게 된다. 밈은 복제자다. 이들 밈이 팬들의 뇌에서 뇌로 복제·확산되면서 오늘의 화려한 K-pop 왕국이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밈은 유전자형과 표현형으로 나뉜다. 유전자형은 뇌 속에 복제·저장되어 있는 정보나 생각이고, 표현형은 이것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그런데 20여 개의 K-pop밈을 보면 거의 모두가 표현형에 해당한다. 세계 젊은이들이 K-pop을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K-pop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 즉 K-pop의 밈 표현형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밈 표현형이 밈 유전자형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기 때문에 K-pop이 밈 유전자형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밈 표현형이 겉으로 드러난 표피적이라는 이야기는 밈 유전자형 또한 표피적이라는 것이다.

"표피적 느낌…만주족처럼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도"

많은 전문가와 네티즌들이 K-pop에 대해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서울대 음대 민은기 교수는 한 일간지 칼럼에서 “음악의 힘은 볼거리가 아니라 내용인데, K-pop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경희대 국제대학원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K-pop에 대해 “흥겹지만 표피적인 느낌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다가는 17세기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처럼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경고도 덧붙인다.

네티즌들의 댓글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자유, 젊음, 평화, 사회 풍자, 전쟁 반대, 자본주의 비판 등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서구 팝송과 달리 K-pop은 핵심이 없고 맨날 사랑·이별 타령뿐이다. 가수들의 성형이 너무 심하다. 목소리보다 얼굴이 더 중요한 듯 대형 포스터에는 자극적인 의상만 눈에 띤다. 일부 가수를 제외하고는 스스로 작곡하지 못한다. 노래 속에 온통 기계음만 들린다. 가사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춤이 마치 성욕을 표현하기 위한 말초적 수단처럼 보인다. 퍼스낼리티가 없는 모두 똑같은 얼굴과 춤사위, 메시지가 없는 공허한 지껄임, 가사 등 철학 부재의 문화가 만들어낼 역기능에 우리의 자손들이 후일 고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전문가들보다 더 직설적이고, 냉혹한 비판들을 쏟아낸다. 이처럼 K-pop의 표피적인 밈은 K-pop의 내용 부재·철학 부재를 의미하고, K-pop의 심각한 정체성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과연, K-pop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한국 대중음악임을 증명하려면…혼이 담겨 있어야

K-pop밈의 활발한 복제 성공은 쯔위와 같이 나이 어린 외국의 소년소녀들이 가수의 꿈을 안고 한국을 향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되어 실제로 가수로서의 꿈을 실현하기도 한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될 자격에 국적의 차별은 없다. K-pop의 ‘노래’ 밈 가운데 세부 밈으로 ‘서구적 팝 스타일’이라는 밈이 있다. 왜 K-pop이 우리 대중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서구적 팝 스타일’이라는 밈을 갖게 되었을까?

대중문화 평론가 이문원이 <코리안 쿨>의 저자 유니 홍과의 인터뷰에서 “케이팝을 만드는 작곡가들은 한국인이 아니에요. 유럽인들이죠. 특히 스웨덴이다. 케이팝은 유로팝에 바탕을 두고 있죠. 유럽 사운드의 영향은 일렉트로닉과 테크노 뮤직 쪽이죠.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한 특성이 두드러져요”라고 K-pop의 스타일이 서구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렇다면 서구 작곡가에 의해 쓰여진, 그래서 운명적으로 서구적 밈 표현형을 가질 수밖에 없는 K-pop, 그리고 이를 노래하는 가수들의 국적도 문제가 되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K-pop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물론 이를 K-pop의 개방성, 글로벌리즘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전 세계가 하나의 공동운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최소한 그 심연에는 우리의 혼이 K-pop밈의 유전자형으로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밈 표현형으로 드러나 최소한 K-pop이 한국의 대중음악이라는 것을 남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만주족의 신세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쯔위 사태가 K-pop의 정체성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요즘이다.

■박장순 홍익대 교수 프로필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미국 알리안트 국제대 연출 석사, 서강대 영상학 박사-EBS 편성기획 차장·PD, KBS미디어 국제사업부장, 위성방송 스카이 겜TV 대표이사, 부산콘텐츠마켓 공동집행위원장- 홍익대 영상대학원 교수(현) 국제미래학회 미래한류문화위원장(현) 한국방송비평학회 학술담당 부회장(현)/<한류학 개론> <전환기의 한류> <한국 인형극의 재조명> 등 저서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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