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위 참여 경력 김종인, 더민주 '얼굴' 로 내세운 건 "역사 아이러니"

안철수 신당도 한상진의 '국부' 발언 혼선 등으로 정체성 차별화 실패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중도보수' 비전 제시 실패· 계파 대립에 매몰

박태우 고려대 연구교수
[데일리한국= 박태우 고려대 연구교수 칼럼] 대한민국이 산업화·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발돋움해야 하는 국격 상승의 기로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모순 투성이의 정치 담론과 국론 분열로 국가적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정당 정치의 정도에서 벗어난 담론과 막말들로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잦은 이합집산을 하면서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음으로써 정치의 원칙과 신의는 땅에 떨어졌다. 선거에서 선택해야 하는 유권자들을 더욱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야 정당의 정체성 상실과 유권자들의 혼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온 한국 양당 체제의 모순이 국회선진화법을 정점으로 극명하게 노출되고 있다. 2016년도 1월의 정치권 움직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지수는 아마도 대한민국 국회 개원 이래 최악의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야당은 스스로의 모순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치 혼돈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친노·친문세력이 당권을 접수한 이후 비노·호남 세력이 중심된 탈당 러시로 정당 정치의 기본적 기능마저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 여당에선 친박과 비박의 계파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여야 양측에서 국가이익과 명분보다는 계파와 이익이 우선되는, 정치 아닌 정치로 흐르고 있다. 한국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대한민국 정치의 불행이다. 정당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특정 인물 중심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후진국형 정치다.

정당(政黨)이란 비슷한 정치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국가경영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면서 집권을 지향하는 집단이다. 유권자들의 다양한 이해를 수렴하고 대변하는 정당의 순기능을 잘 수행하기 위해선 지금처럼 지역 패권 구도와 계파 패권 구도의 포로가 되기보다는 정치적 가치를 중심으로 지지 기반을 넓혀가는 건설적인 경쟁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국보위 참여 김종인, 야당 '얼굴' 기용은 "역사 아이러니"

건설적 경쟁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의 정체성(identity)을 잘 구현할 수 있는 정당의 지도자들이 당의 전면에 나서고, 민주적으로 당을 운영해야 한다. 정체성에 맞는 민주적 리더가 평상시와 선거 때에 당의 비전과 노선, 정책을 제시하면서 유권자들을 설득하면서 지지 기반을 확대하고, 의석을 확보해가야 한다. 국민들의 합리적 선택 기준도 정당과 지도자의 노선과 정책이어야 한다.

그런데 80일 앞으로 다가온 4·13총선 정국의 전개 과정을 보면 이같은 선진 정당 정치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여야 정당들은 여전히 폐쇄적인 지역 민심을 기반으로 계파 대결을 하는 구시대적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정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리더들이 총선 정국의 총사령관이나 간판 역할을 맡음으로써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가령 1980년 신군부가 설치한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참여했던 김종인 전 의원이 '민주개혁 세력 중심의 전통 야당'을 자임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선대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정체성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시중에선 "광주항쟁 당시 국보위에 참여했던 사람이 야당의 얼굴을 맡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란 얘기도 나온다.

안철수·김한길 의원 등 비노그룹·동교동계를 중심으로 '국민의당'을 비롯한 신당을 추진하고, 호남 등 야권의 주요 지지층이 더불어민주당과 신당으로 양분되는 것은 정체성과 정책보다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는 후진적 정치의 모습이다. 특히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과거 12·12사태와 5·17 사태를 주도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국보위 참여 논란에 휘말리면서 경제민주화 이론가의 장점을 희석시키고 야권 내부의 갈등을 만드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광주의 5·18정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호남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하는 더불어민주당은 군사정권 출범 과정에서 국보위에 참여한 김종인 선대위원장의 정체성 문제로 앞으로 많은 우역곡절을 겪게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의 과거 경력이 당이 중점적으로 추구해온 민주화·인권 등의 가치와 정면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신당도 정체성 차별화 실패…'국부' 발언 혼선

비슷한 맥락에서 안철수 신당인 '국민의당'과 새누리당의 지도부도 정체성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독단적인 운동권식 당 운영으로 건전한 야당 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명분으로 탈당한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당도 아직까지는 더불어민주당과 차별화되는 당의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영입된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등이 국민의당이 추구하는 새로운 야당상과 중도개혁 노선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유권자들은 차별성을 읽지 못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중도진보 성향의 교수 출신이고, 윤 전 장관은 새누리당 출신인데 이들의 성향이 당의 노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 단지 야권의 파벌 싸움에서 밀린 세력이 당을 나와서 친노 패권주의 문제점만 지적하면서 호남 민심을 상대로 구애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 더 부각되고 있다. 한상진 위원장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國父)라고 말했다가 이 발언을 사실상 취소한 배경에 대해 깔끔하게 해명된 적이 없어서 더욱 정체성 혼란을 빚고 있다. 외교안보 현안과 쟁점 법안 문제에 대한 국민의당의 입장이 무엇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더불어민주당과 구별되는 낡은 진보 청산과 부패 청산의 아이템이 아직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 '중도보수' 비전 제시 실패·계파 대립 매몰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도 국정운영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모습과 개혁적 보수 노선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당의 주요 기반인 영남 민심을 더 다지는 행보, 야당과 강성 노동계에 대한 강한 비판 등이 주요 선거 전략으로 비치고 있을 뿐이다. 당내의 친박·비박 대결 구도에서 참신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좋은 인재를 영입하면서 정국을 주도하는 여당의 새로운 리더로서 이미지 메이킹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명분론에 집착해 ‘전략 공천은 없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구사함으로써 오히려 스스로 도그마에 빠지고 있다. 새로운 도전이 몰려오는 21세기 한반도의 분단 국가 대한민국의 집권여당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 형성에 실패하고 계파 싸움의 희생양이 돼가고 있다. 왜 자신이 대한민국의 '중도 보수' '개혁 보수'를 대변하는 집권당 대표로서 적합한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정체성 확립 차원에서 실패하고 있다.

정당 정치의 핵심은 우선 당의 정강·정책과 노선에 부합하는 진성당원 및 국민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정치 철학을 잘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을 당의 대표주자로 선출해 내세우는 것이다. 또 당의 노선과 철학에 맞는 후보자들을 공천해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이를 기반으로 합리적인 의정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의 순기능을 강화하고 국가의 역동성을 강화하면서 정치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초석을 닦을 수 있다.

지금처럼 여야 정당 모두 지역 패권주의, 계파 패권주의에 함몰되어 상생의 정치가 희생되고 정치적 역동성이 사장되면 그 역기능이 정치 외의 모든 영역으로 파급된다. 그렇게 되면 정치인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정치 역기능의 피해가가 되어 나라의 미래는 매우 어둡게 된다. 대한민국이 바로 이러한 어두운 그늘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서글픈 일이다. 이제는 유권자들이라도 나서서 각 정당들이 정체성에 맞춰 움직일 수 있도록 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게 정치 혁명으로 가는 조그만 출발점이다.

■박태우 고려대 연구교수 프로필
영국 헐대학(The Univ. of HULL) 정치학박사- 통상산업부·외교통상부 외무관 근무- 대만국립정치대학 국제대학 방문학자(현)-주한동티모르명예영사(현)- 고려대 지속발전연구소 연구교수(현)- 방송 정치평론가(현)- 푸른정치연구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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