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딜러 규제법, 게임중독법 등 '유위'(有爲) 정책은 창업 의욕 꺾는다

미국 실리콘밸리, 독일 등에선 인재 모으고 자금 지원하면 스타트업 육성

한국에선 벤처 지원하다가 끌어내리는 경우 많아… 분권화·무위 정책 필요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데일리한국= 천영준 연세대 책임연구원 칼럼] 전국시대 제(齊)나라에 신도(愼到)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제 선왕(宣王)의 정치고문으로 맹자(孟子)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과 토론하며 국가를 이끌어가기 위한 이론을 만드는 법가(法家) 학자였다. 전국시대에 가장 명성이 높은 학파는 단연 유가(儒家)였다. 그들은 왕도(王道) 정치를 주장하며 천재적인 능력과 덕성을 겸비한 군주가 능수능란하게 나라를 이끌어가는 모델을 꿈꿨다. 그러나 신도의 입장에서 유가의 리더십 이론은 ‘꿈’에 불과했다. 인간의 능력은 불변의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환경에 직면했느냐에 따라 각각 다르게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능수능란한 리더가, 다른 상황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가진 사람일 때도 있는 법이다. 따라서 신도는 리더가 과도하게 개입하여 규제하는 체제가 아니라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일하는 사회를 말했다.

한편 신도는 ‘무위’(無爲)라는 도가 철학의 개념을 빌려왔다. 전국시대는 남을 속이고 자원을 가로채는 ‘유위’(有爲)의 시대였다. 지배계급이 민중을 상대로 무리하게 세금을 징수해 전쟁을 일으키고 토목공사를 하는 ‘약탈 경제’였다. 민중도 자신들을 착취하는 지배층을 믿을 수 없어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녔다. 나라를 움직이는 여러 정치 파벌 간의 내전(內戰)에서도 희생되는 사람들도 백성들이었다. 가렴주구를 참을 수 없었던 이들은 과감하게 거주 조건이 좋은 다른 나라로 떠났다. 그런 과정에서 망한 나라들이 위(衛)나라와 진(晉)나라였다. 신도는 법과 원칙의 일관성을 강조하면서 시장과 민중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는, 품격 있는 국가 운영 방식을 강조했다.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상앙, 한비자(韓非子) 같은 이들이 각 나라에서 법가(法家) 철학을 집대성해 자신의 리더와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유위'(有爲)의 한계 지닌 헤이딜러 규제

얼마 전 어느 온라인 자동차 경매 업체가 의원 입법으로 폐업 위기에 내몰렸다. 투명하지 않은 중고차 시장의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나섰던 서비스 '헤이딜러' 이야기다. 원래 중고차는 허위 매물과 사고 차량을 그럴듯하게 바꿔 고객에게 판매하는 경우가 허다한 상품이다. 경제학자인 조지 애컬로프(George Akerlof)는 복숭아나 자두 등과 섞어 파는 관행이 있는 레몬의 이름을 빗대 ‘레몬 시장’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중고차나 허위 상품 등이 범람하는 업계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온라인 자동차 경매 회사인 헤이딜러는 산업 구조의 한계를 일종의 기회로 인식하고, 모바일 환경에서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중고차 정보를 공유하고 판매할 수 있는 장(場)을 열었다. 문제는 규제였다. 지난 2015년 12월 28일 국회는 특정 기업이 3300 m2 이상의 주차장, 200 m2 이상의 경매실을 확보하지 않으면 중고차 사업을 할 수 없도록 규제했다. 사실상 온라인 경매 서비스의 시장 진입 가능성을 막은 것이다. 뒤늦게 국토교통부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진화에 나섰지만,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진흥 국가’가 이런저런 장벽을 만든 사실은 두고두고 충격으로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가 ‘유위’(有爲)의 자세를 버리지 못한 케이스인 셈이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유명한 ‘게임 중독법’이다. 지금 이 법안은 철폐됐지만, 역시 모바일 게임과 관련 콘텐츠를 중요한 창조경제 원동력으로 제시하는 국가에서 소비를 제한하는 법률이 논의된다는 사실이 사회 전반에 충격을 줬다. 한 쪽에서는 게임의 글로벌화와 O2O(online to offline)과 같은 시장 확대를 외치면서, 다른 쪽에서는 마약이나 기타 중독물과 비슷한 위험이 있는 대상으로 규제한다는 사실이 문제가 됐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과연 이 정부가 게임을 성장 동력으로 삼을 의지가 있는가?”

창조 위해 ‘무위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창업 생태계 정책의 모범으로 삼는 대상은 실리콘밸리다. 그런데 이 지역은 전통적인 산업 진흥책과 규제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한국과 전혀 다른 풍토에서 만들어진 벤처 클러스터다. 원래 반도체 기업들이 다수 입주해 있다가, 산업의 급격한 전환이 오면서 IT/소프트웨어 기반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콘텐츠나 디바이스를 생산하는(픽사, 애플 등의) 지역으로 바뀐 곳이다. 산업 수명 주기의 전환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토양을 바꿔 온, ‘무위’(無爲)의 공간이다. 인적 구성도 매우 다양하다. 과거 스탠포드나 버클리와 같은 인근 지역의 연구 중심 대학에서 공부한 이들을 중심으로 한 경영진, 동부 지역 소재 기업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은 금융가 등이 모여 고유의 분위기를 형성해가는 곳이다.

요즘 뜨고 있다는 독일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이나 베를린 지역의 스타트업 클러스터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형성되고 있다. 독일은 한때 제조업 강국이었으나 2000년대 초반부터 대부분의 산업 시설이 공동화되면서 경제 시스템 자체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자 2010년부터 독일 정부는 게임이나 각종 콘텐츠와 관련된 SW 창업을 장려하면서 여러 국가 출신 스타트업들을 ‘초청’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제후들이 그랬던 것처럼 각 나라에서 인재를 불러 모아 ‘자금은 지원해줄테니 알아서 생태계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는 식이다. 국가가 일일이 창업 지원 심사를 하고, 적정 기간이 지나면 ‘알아서 졸업하고 투자받으라’고 강요하는 모습이 아니다. 사업이 조금이라도 커질 만하면 각종 규제나 사회적 논쟁의 주인공으로 등극하는 것도 실리콘밸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잘될 만하니 잘됐고, 그 다음부터는 기성 기업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사업 초창기에는 벤처 지원이다 창업 진흥이다 하면서 무조건적 지원을 아끼지 않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끌어내리기를 한다. 지속성과 생명력이 없는데 창조가 가능할까? 이제는 ‘무위’를 바탕으로 한 다양성 정책에 좀 더 관심을 가질 때다. 국가가 산업을 진흥할 수는 있어도, 지도하던 시절은 지났기 때문이다.

분권화된 생태계 개념에 관심 기울여라

우리가 또 고민해야 할 것은, 창업 생태계가 어떻게 하면 분권화된 상태에서 자생적으로 굴러갈 것이냐에 대한 것이다. 대부분의 창업 선진국은 분권화 전통이 발달한 나라들이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등은 한 테두리 안에서 살았던 세월이 200-300년이 채 되지 않는 국가들이다. 그만큼 지역 산업의 독자성이 강하고, 내수 기반 경제를 조성할 수 있을 만큼 수요도 풍부하고, 다양한 편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다르다. 600년이 넘게 중앙 집권적 전통이 강한 국가에서 시장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데 나름의 한계가 있다. 기업보다 정부 쪽이 인적 자원이 훌륭한 것도 구조적인 문제다. 특히 정책의 대상이 큰 기업이 아니라 갓 만들어진 스타트업이면 정부 의존도가 심해진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창업 선진국들의 분권화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유위가 아니라 무위의 철학을 지녀야 한다.

■ 천영준 연세대 책임연구원 프로필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정보산업공학 석사, 기술경영협동과정 박사- 다음소프트 연구자문역- 합창단 Chantez a dieu, 오페라단 '청 ' 자문위원-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현)/저서 <직장인 4대 비극> <바흐, 혁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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