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와 조광윤..권력장악 공통점, 리더십에선 '옹졸·포용' 차이
입 바른 소리 하는 부하를 가슴으로 품으면 꽤 많은 '충신' 생긴다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데일리한국=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칼럼] 어딜 가나 입바른 소리 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배웠다고 자처하는 이들일수록 리더에게 머리를 숙이고 복속하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리더의 열등감을 자극하기도 한다. 자신이 오랫동안 훈련해온 ‘전문성’의 관점에서 문제를 지적하고 리더에게 개선을 촉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건방지다"며 화를 내거나 "내가 그래서 잘못됐다는 거야?"라며 부하를 다그치기도 한다. 실제로 직언(直言)을 들은 이후에 리더가 부하를 한직으로 전보시키거나 자신과의 소통 선상에서 먼 곳으로 보내버리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특히 한국 특유의 권위주의 문화가 몸에 밴 리더들은 ‘말 잘 안 듣는 똑똑한 부하’들을 괴롭히고 불이익을 주면서 쾌감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큰 인물이 못 된다. 주변에서 좁쌀 같은 성품을 미리 알아보고 떠나가기 때문이다.

맥베스와 조광윤, 작지만 큰 차이

작년쯤 필자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를 주제로 리더의 정당성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맥베스는 원래 스코틀랜드의 장군이었으나 부인과 점술사들의 꼬드김에 넘어가 군사권을 활용해 왕위를 찬탈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맥베스의 권력 장악은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아니라 반란에 그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주변에서 그를 마음으로 따르는 신하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맥베스는 ‘혁명’을 이끌 수 있는 배포와 인덕이 없는 인물이었다. 끊임없는 주변인들에 대한 의심,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분노 등이 부하들의 숙청으로 이어졌다. 그에게는 피를 부르는 정변을 주도한 이후 민심을 다잡기 위한 다양한 포용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맥베스는 주변인들을 끌어안고 다독이기는커녕 ‘오만한 자들은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졌다. 사람들의 마음이 떠나자 철권통치자는 금세 외로워졌다. 그리고 맥베스는 또 다른 반란에 의해 불운하게 삶을 마감해야 했다.

반면에 역사 속 실존 인물인 송(宋) 태조 조광윤(趙匡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가 ‘오만한 부하’들을 얼마나 지혜롭게 다뤘는지 알 수 있다. 하루는 건국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한림학사 왕저가 슬피 우는 모습이 목격됐다. 조광윤은 왕저에게 ‘이 좋은 날 왜 우느냐’라며 물어봤다. 그러자 왕저는 ‘후주의 성군이었던 세종(世宗)이 생각난다’며 새 왕조의 건국자에게 짜증스러울 수도 있는 말을 내뱉었다. 주변의 장군들은 그 자리에서 왕저를 베어버리려 했으나 조광윤은 ‘학자가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으니 내버려 두라’며 말렸다. 조광윤의 ‘관용’과 관련된 또 다른 일화가 있다. 송나라 건국을 도왔던 군사이자 재상 조보가 황제 조광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기안을 올린 적이 있었다. 사전에 여러 번 눈치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결재를 요구하는 조보의 태도에 화가 났던 조광윤은 그 자리에서 서류를 갈갈이 찢어 버렸다. 그러나 조보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종이 조각을 들고 퇴청했다. 그리고는 찢어진 서류를 그대로 붙여 황제에게 수 차례 반복해서 결재를 청했다. 사실상 재상으로서 ‘항명’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느 왕조 같았으면 조보는 사형 감이었지만 조광윤은 신념을 위해 용기있는 태도를 보인 재상의 결기에 감탄하며 ‘재가’를 해줬다 한다. 송 태조의 마음씀씀이는 그만큼 넓었다. 그런 리더십이 있었기에 송나라는 한나라와 당나라 만큼 3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맥베스와 조광윤 두 사람 다 군사 실력자 출신으로 전 왕조를 부정하고 새 나라를 연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왕조 교체 과정에서 숱한 반대파가 있었고, 안정기에 이르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던 점도 비슷했다. 그러나 맥베스는 오만해 보이는 부하에게 옹졸한 태도로 응했고, 조광윤은 죽일 수도 있었을 부하를 관용으로 감쌌다. 이런 ‘작지만 큰 차이’가 한 나라가 3년도 못 갈지, 아니면 300년 동안 이어질지 결정한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지 않은가.

그에게 ‘박한 인사고과’ 주면서 즐거워하지 말라

연말이다. 바야흐로 내년의 직원 연봉과 회사에서의 존립 여부를 결정짓는 ‘인사고과’시즌이다. 마침 여러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맞물려 2015년 연말의 인사고과는 더욱 직장인들에게 깊게 와 닿는 이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조직의 인사고과만큼 매우 주관적인 평가 방식도 없다. 직원이 자기가 한 만큼 적어내고, 정말 그만큼 달성했는지 확인하여 최종 점수를 주는 회사들도 있지만, 부서장들이 ‘논공행상’ 식으로 점수를 부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얼마 전 필자도 어느 국내 대기업의 과장급 사원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본의 아니게 10월 말에 새 조직으로 이동했는데, 자신을 영입한 부서장이 오래된 부하들부터 챙기겠다며 ‘고과를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능력과 관계없이 예의상 챙겨주는 ‘B’를 받았단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서장이 무심코 날린 ‘술 한잔 하자’는 카톡 메시지에 제대로 응하지 못했던 것, 회사에서 조금 더 공손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게 화근인 것 같았단다. 직장인의 참된 충성은 성실한 태도와 업무 성과를 바탕으로 보여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인관계가 더 중시되는 현실, 놀랍지 않은가.

그 뿐만이 아니다. 어느 부서장은 팀원들의 고과와 관련된 내용을 일부러 몇 사람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전권’(全權)을 은근히 강조하기도 한단다. 그 이유는 어차피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피력하기 위해서다. 안타깝게도 그는 오후 2-3시면 복도 한 구석에서 후배 사원들이 모여 서로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하게끔 원인을 제공한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어쩌다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콘텐츠를 이야기하는 ‘오만한 사원’에게는 칼침을 날리는 옹졸함을 보인다. 회식에서는 ‘우리 조직의 열정이 땅에 떨어졌다’며 자기만의 개탄으로 주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자기 눈에 오만해 보이는 부하를 자기만의 원리원칙으로 죽이는 상사는 영원히 충성을 받을 수 없다.

‘옷 벗어도 마음 좋게 만날 수 있는 관계’를 상상하라

그런가 하면 반대 사례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임원들의 대규모 퇴직을 주도한 기업의 전직 상무 한 사람을 만났다. 그도 열심히 한다고 노력은 했지만 좋지 않은 업황과 경기 문제로 2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임원 재취직이 어렵다는 시대에 공교롭게도 그는 작년에 옷을 벗고 올해 협력업체의 대표이사로 부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부하 대하는 방법에 대한 경험담이 놀라웠다. 항상 ‘꼿꼿한 부하들을 대할 때마다 자신이 임원 직함을 떼게 되고 나서도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어른이 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는 것이다. 일은 잘 하지만 따르는 맛이 없는 부하, 도저히 눈치라고는 없는 부하 등 많은 아랫사람 케이스가 있었지만 결국 떠나올 때는 자신이 ‘큰 선생님’으로 존경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단다.

그는 조직에서 눈엣가시처럼 보이는 부하가 생겨날 때마다 퇴근길에 ‘한 두 번 더 생각해 보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쌓은 인덕은 나중에 갑을(甲乙) 관계가 바뀌고 나서도 그가 존경받을 수 있었던 기반을 제공했다. 모든 리더들이 ‘계약직’화된 지금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충성심이 절실한 시대다. 오만한 부하를 한번 더 가슴으로 품고 이해하라. 아마 다른 자리로 이동하거나 떠나올 때에는 꽤 충신(忠臣)이 많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천영준 책임연구원 프로필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정보산업공학 석사, 기술경영협동과정 박사- 다음소프트 연구자문역- 합창단 Chantez a dieu, 오페라단 '청 ' 자문위원-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현)/저서 <직장인 4대 비극> <바흐, 혁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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