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 양자 옥타비아누스·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과감한 '나눔', 대중의 마음 잡아

불안정기에 온정 베풀면 상대로부터 감사와 심리적 의지 효과… 일단 대중들 믿어야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데일리한국=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칼럼] <21세기 자본>의 저자이자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가 파리 테러의 원인에 대해 밝힌 의견이 논란거리가 됐다. 그는 IS의 테러는 전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원래 이슬람 근본주의는 중동 지역에 거주하는 빈민들의 전유물이었으나, 최근 프랑스·영국 등의 시민권을 지닌 중동인들이 대거 가담하는 모양새로 바뀌고 있다. 그 이유는 이민 사회 안에서 계속되는 차별과 빈곤, 그리고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이 숨어 있다는 게 피케티의 지적이다. 물론 테러는 그 어떤 원인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IS는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을 주장하는 조직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피케티가 전 지구적인 사회 불안정의 원인이 불평등 때문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또 다른 사례를 짚어보자.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가 얼마 전 자신의 페이스북 소유 지분 99%(450억 달러·52조원 상당)를 사회에 기부하기로 해 화제가 됐다. 그와 아내 프리실라 챈은 얼마 전 딸의 출산을 계기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상당 수의 주식을 양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만약 현실화된다면 매우 큰 규모의 사회공익 활동을 전개하는 조직이 생겨날 전망이다. 물론 주커버그는 자신의 지분을 유한회사(LLC)에 양도하기로 해 약간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연구나 투자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주커버그의 리더십이 의미 있는 이유는 자신이 갖고 있는 영향력의 원천을 기꺼이 사회와 나눔으로써 대중들에게 신뢰감을 준다는 것 때문이다. 지금껏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회사의 조직원들보다 훨씬 많은 보수와 스톡옵션을 받는 것 때문에 눈총을 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별로 비난할 게 없는 내용이다. 주주자본주의에 입각해 회사의 수익 형성에 기여하는 만큼 최고경영자가 보수를 받아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이 항상 합리적일 수 없다는 데 있다. 조직 내의 임금 격차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사회 안에서는 최고경영자들의 천문학적 연봉이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고도로 민감해져 있는 분위기 속에서 주커버그의 지분 쾌척 소식은 엄청난 결단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는 측면도 있지만, 더 크게 보면 대중의 마음을 살 수 있는 나름의 합리적 선택인 것이다.

카이사르 양자 옥타비아누스와 명나라 주원장의 '퍼주는 리더십'

가만 보면 역사 속에서도 불안정기에 ‘퍼주는 리더’가 마음을 얻은 사례가 종종 있었다. 로마의 공화정 말기에서 제정 초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있었던 카이사르는 그의 권력이 정점이 달했을 시기에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별다른 차기 지도자 플랜이 만들어져 있던 상황도 아니어서 카이사르 시해(弑害) 이후의 로마는 상당히 혼잡했다. 그 와중에 사태를 수습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카이사르의 젊고 검증되지 않은 양자(養子) 옥타비아누스(Octavianus)가 해결사로 나섰다. 그는 양부의 정통성 외에 아무것도 물려받을 게 없었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죽음 직후 수일의 장례 기간에 그는 과감한 결정을 하는데, 그것은 카이사르의 유산 전체를 로마 시민 개개인에게 나눠주겠다고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카이사르의 유해를 화장하는 날 군벌 지도자였던 안토니우스의 입으로 ‘전 시민에게 카이사르의 유산 상속을 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기로 했다. 그 무렵 살인자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사실상 황제의 지위에 오르려고 시도했지만, 자신이 공화정의 양심을 걸고 그를 죽였다는 프레임을 확산시키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카이사르의 영결식이 진행되는 날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가 교대로 조사(弔辭)를 읊었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를 사랑했지만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어서 그의 죽음을 기획했다는 논리적 변명을 남겼다. 그러나 안토니우스는 피맺힌 눈물을 흘리며 카이사르가 찔린 군데군데를 보여주고 율리우스 가문의 막대한 재산을 전 시민에게 ‘상속’하겠다는 유언을 발표했다. 그러자 ‘독재자의 죽음’에 내심 시원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시민들조차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했던 리더의 너그러움에 탄복했다. 대중의 관점은 금세 바뀌어 찬탈자 브루투스를 욕하고, 미리 모든 자산을 시민을 위해 유증하려 했던 카이사르를 찬양하는 것으로 분위기가 전환됐다. 양부에게서 아무것도 약속받지 못했던 옥타비아누스는 ‘유언’을 집행했다는 것만으로 군벌 안토니우스와 권력을 나눠가질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도 비슷한 방식으로 천하를 얻었다. 원래 가난한 행려승자였던 그는 홍건군(紅巾軍)에 가입해 의병을 지휘하며 세를 불려나가 원(元)나라를 타도하는 데 성공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주원장이 거병했을 당시 수많은 의병들이 10여 년 간 대륙 곳곳에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의병이 원나라보다 훨씬 민중을 많이 착취한다는 비판까지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주원장은 다른 의병장들처럼 왕을 자칭하거나 지역의 총독으로서 군림하는 대신에 개선하는 곳곳마다 곡식창고를 열고 민중들에게 군량을 나눠줬다. 병사들이 먹을 양식도 부족한 마당에 군중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에 충분했다.

리더들은 자신들이 가장 소중한 자원을 나눠줌으로써 대중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신뢰란 무엇인가? 사회학자 마이어(John Meyer)는 자신이 상대방을 믿음으로써 위험(risk)에 노출된다 하더라도 충분히 그 상황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다. 다시 말해 신뢰는 앞으로 이어질 행동에 대해서도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기에 합리적인 계산만으로 주고받기 어려운 심리적 자원이다. 리더들의 퍼주는 행동은 대중들이 그 이후에 받게 될 편익을 상상하게 만드는 효과를 지녔다. 특히 위기 때일수록 그 성과는 더욱 극대화될 수 있다.

불안정기에 온정 베풀면 감사와 심리적 의지 효과 초래

사실 퍼주는 리더쉽이 쉽지는 않다. 리더 자신도 남을 믿기 어려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의 과감한 결단을 사람들이 기꺼이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안정기에는 누구나 정서적으로 강퍅해져 있다. 그런데 일반인들과 달리 온정을 베풂으로써 마음의 중심을 잡는 리더의 모습은 그에 대한 감사함뿐 아니라 심리적 의지가 되는 효과까지 있다. 언제나 사람들은 믿고 기댈 수 있는 대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지분 기부를 단행한 주커버그는 항상 따뜻한 마음을 갖고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리더임을 자임해 왔다. 지난번 파리 테러 당시 프랑스 국기를 사용자들의 프로필 사진 배경으로 쓰게끔 배려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대중들이 지닌 자발적 참여의 힘을 믿었다. 기술을 통해 사용자들을 더 즐겁게 해주면 그들이 잘 알아서 세상의 변화에 동참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주커버그의 쾌척이 전략으로 보이지 않고, 전 지구인들을 향한 사랑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도, 모든 것이 유동적인 난세(亂世)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이 지니는 일관성 덕분일 것이다.

■천영준 책임연구원 프로필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정보산업공학 석사, 기술경영협동과정 박사- 다음소프트 연구자문역- 합창단 Chantez a dieu, 오페라단 '청 ' 자문위원-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현)/저서 <직장인 4대 비극> <바흐, 혁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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