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문·안·박 체제' 제안과 안철수의 역제안 모두 실망… 야권 '시계 제로'

"난국 극복할 역량 못 보여주고 협량의 공방만"… 참신한 인사로 과도기구를

민추협 등 함께 만든 '양김'의 경쟁 속 협력 배워야… '필사즉생' 정신을 기대

정장선 전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
[데일리한국= 정장선 전 국회의원 칼럼] 최근 야당의 상황은 결국 우려하는 상황으로 가려나 보다. 요즘은 야당에 대해 비난도 않는다. 비난을 넘어 걱정하는 지경이 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비난만 하던 사람들도 이제 좀 좋은 소식이 없나 한다. 오랜 가뭄에 비를 학수고대하듯 말이다. 지지자들은 막바지에 높은 분들이 자기 희생과 정치력을 발휘하여 이 어려움을 이겨내지 않을까 하는 가느다란 희망의 실을 부여잡고 있었다. 과거에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안철수 두 야당 대주주의 핑퐁을 보면서 이 가느다란 끈마저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는 탄식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야당 대주주 문재인·안철수의 핑퐁 게임에 실망

지금 두 대주주는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다. 작금 국민이나 당원들이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체제'를 만드느니, 전당대회를 언제 여느니 보다 두 사람에게 더 기대하는 것은 야당이 처한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그 과정이었다. 두 사람은 지금 야당을 만들었고,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많은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큰 일을 하겠다는 포부를 가진 사람들이어서 뭔가 다른 행동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나가지 않을까 국민이나 지지자들의 기대를 모아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두 사람의 모습은 이 난국을 헤쳐나갈 과감한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그저 협량의 정치적 공방을 주고받는 정도였다. 참으로 실망스럽고 아쉽기만 하다.

'문·안·박 체제'에 대한 구체적 복안도 없이 제안한 것도 그렇고, 문 대표의 제안에 대해,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을 감안하더라도 11일 만에 내놓은 대답도 기대에 어긋났다. 안철수 의원의 '혁신 전당대회 개최'라는 역제안에 문 대표는 하루 만에 또 사실상 거부의 뜻을 보였다. 당원과 국민을 사이에 두고 핑퐁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만나도 여러 번 만나야 했다. 그리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만나고 또 만나 서로의 생각을 좁혀야 했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불신을 완전히 털 수는 없지만 노력했어야 했다. 상대방의 말을 먼저 들어보고 내 생각을 말하고, 내가 먼저 양보하고 또 상대방에게 양보도 요구했어야 했다. 이런 가장 중요한 절차들이 없었다. 이런 정도 수준이었다면 오히려 두 사람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 나은 것이고, 억지로 봉합해 사사건건 대립하는 것보다 솔직한 모습을 보인 것이 다행이라고 여기는 게 차라리 좋았지 않았느냐는 생각도 든다.

야당이 10·28 재보선 패배 후 그나마 재건할 골든타임을 놓쳐 무엇보다 아쉽다. 그사이 최고위원들은 '봉숭아 학당'과 같은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고, 각 계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배경으로 하는 거침없는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마치 고삐 풀린 말처럼 뿌연 먼지를 몰고 다녔다. 이 갈등은 앞으로 어떻게 언제까지 전개될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야당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은 총선이 4개월 조금 넘게 남은 촉박한 상황 속에서도 얼마나 갈등이 심화될지 어떻게 선거를 치룰 것인지 '시계 제로'라는 데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양김의 역할과 역량에 대한 회고가 넘쳐 났었다. 두 사람도 오류가 있었지만 재평가를 이리 받는 것은 민주화를 이루었고 대통령까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을 양김에 비유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지만 참고는 해야 할 일이다. 지금 어려운 야당을 재건하고 총선에서 일정 성과를 내어 정권을 재창출 해내야 두 사람도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두 사람으로는 안돼!”라는 탄식만 들리고 황금같은 짧은 시간마저 허비하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야당이 회생하려면 지도자 희생해야…'양김'에서 배워야

양김은 성격도 다르고 살아온 과정도 달랐으며, 서로 불신도 컸지만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함께 결성하여 군부정권에 대항하면서 야권 통합의 기틀을 만들었다. 또 이를 기반으로 1985년 신민당을 창당하여 민한당을 제치고 제1야당이 됨으로써 민주화도 이루고 야당이 되살아날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다. 이것이 지금 야당에게 주는 교훈이다. 야권 일부에서는 "이번 총선은 어차피 어려우니 사실상 이대로 가고 선거 후 야당을 재편하여 대선에서 잘하면 된다"는 말들도 한다. 그러나 이는 한심한 발상이다. 한번 신뢰를 잃으면 되찾기가 어렵고, 이를 주도할 만한 사람도 야권엔 눈에 띄지도 않는다. 지금도 최선을 다하면 개선할 여지가 있음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야당에 애정을 갖고 있는 국민들에 대한 배신이다. 또 허약한 야당을 자초함으로써 여당이 독주하도록 하는 것 또한 불행한 일이다.

야당은 지금이라도 '회생'(回生)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특히 지도자들의 '희생'(犧牲)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도 시간은 있다. 문재인 대표는 즉각 대답하기 보다는 광범위하게 의견을 들어보아야 한다. 아직 그에게 시간이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본인이 아무 욕심도 없음을 알리면서 야권 전체를 통합할 방안을 보여주어야 한다. 대표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이를 매개로 야권이 하나로 통합할 큰 그림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참신한 인사들로 과도기를 이끌 중간 기구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문 대표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가 되지 않을까?

지금과 같이 핑퐁 게임을 계속하면 야당은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질 못할 것이다. 두 사람에게 획기적인 야당 회생 방안을 기대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현실적 예감 속에서도 좀 진부한 듯한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의미를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정장선 전 의원 프로필
중동고, 성균관대, 연세대 행정학 석사- 16,17,18대 국회의원(경기 평택 을)- 열린우리당 정책위부의장- 국회 지식경제위원장- 민주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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