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대선 비교…"워싱턴 정치인만 아니면 OK"라는 미국 공화당 분위기, 한국과 유사

미국 대선후보 경선에선 '외부 인사 영입 ' 없고, 예비후보들 경쟁적으로 이념성 부각

우리나라의 '안철수 현상' '반기문 현상'… 일견 현명한 선택이지만 정당정치 근간 위배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데일리한국= 손병권 중앙대 교수 칼럼]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의 당내 경선이 예상 밖으로 재미있게 전개되고 있다. 민주당에선 애초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압승이 점쳐졌었다. 그런데 국무부 이메일 대신 개인 이메일을 사용한 점을 비판한 언론에 대한 미숙한 초기 대응, 그리고 호감도와 신뢰도가 점점 하락한다는 여론조사 등 유권자와의 스킨십 부족 등에서 시비가 걸리면서 클린턴 후보가 한때 고전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 반사이익으로 자칭 사회주의자인 샌더스 후보의 인기가 한때 가파르게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대강 클린턴 후보 쪽으로 대세가 기울어가는 모양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쪽은 공화당이다. 부동산 재벌이자 정치 문외한인 트럼프가 진작부터 선두로 질주하더니, 파리 테러 사건 이후 인기가 더 올라가고 있다. 이민자나 무슬림 미국인에 대한 반복적이고 거친 혐오 발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또 다른 후보인 카슨은 은퇴한 신경외과 의사로서 선거에는 단 한 번도 출마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카슨은 자주 말실수가 있어도 로키(low key) 전략으로 유권자의 호감을 사서 당내 경선 2위를 달리고 있다. 이들과는 꽤나 지지율이 떨어져 있는 현직 상원의원인 플로리다의 루비오와 텍사스의 크루즈가 각각 3, 4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한때 1위를 고수할 것으로 예견되었던 젭 부시 전 플로로다 주지사가 큰 격차로 멀리 떨어져서 5위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

요즘 미국 공화당 경선의 교훈…"워싱턴 정치인만 아니면 OK"

이런 미국의 상황은 2012년 한국 대선이나 앞으로 있을 한국 대선과 견주어서 몇 가지 비슷한 점도 있고, 또 대조되는 점도 있어서 흥미롭다. 이런 점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다 보면 과연 어느 나라의 정당이 더 ‘똘똘한’ 정당인지 가늠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선 비슷한 점을 보자. 한국과 미국을 불문하고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거의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나 카슨 등 비정치권 후보가 자질 시비와 거친 언사 혹은 말실수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경선에서 1, 2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워싱턴 정가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가히 '워싱턴 정치인만 아니면 OK (anything but Washington beltway) 현상'이라고 부를 만하다. 정치권이 민생을 도외시하고 이념에 매달려 치고받고 싸우면서 연방정부 폐쇄 조치나 만들어내니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곱게 볼 리가 없을 것이다. 그 반사이익이 무명의 두 후보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정치권 혐오 현상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쟁과 이념 대립, 당내 주도권 다툼으로 만신창이가 된 여의도 정치를 국민들이 좋아할 리 없다. 그러나 보니 지난 대선 때에는 '안철수 현상'이 등장했고, 지금은 각 정당이 임기도 마치지 않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경쟁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카슨이 쌍둥이 분리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쳐 상당한 명성을 얻으면서 전국 순회강연자가 되었듯이 안철수 당시 후보는 컴퓨터 백신프로그램 개발로 이미 저명 인사가 된 지 오래됐다. 또 반기문 사무총장은 세계 외교관으로 한국 위인전의 명단에 올라 있다. 다수 국민들은 2011~12년 당시 안철수 후보에게 환호했다. 그리고 지금은 반기문 사무총장을 국민이 싫어할 리 없고, 그를 포함한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는 늘 그가 기성 정치인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이념 성향 강한 당원 지지 받아야 하는 미국 대선후보 경선의 장단점

그런데 한국과 미국이 다른 것도 있다. 우선 미국의 경우 소위 ‘외부 인사 영입’에 의한 경선이란 매우 드물다. 요즈음과 같이 당원 중심의 예비선거(프라이머리) 제도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에 전당대회를 통해서 후보를 뽑던 시절에도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서 대선후보를 선발한 적은 2차대전 종전 이후 사실상 없다. 딱 한 번 예외가 있다면 1952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영웅인 아이젠하워를 영입한 사례일 것이다. 예비선거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에는 거의 대부분 기성 정치인 혹은 정치적으로 야심이 있는 인물이 제 발로 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진검 승부를 펼치고, 그 와중에서 희극과 비극을 만들어내온 것이 미국 대선 후보 선출 과정이다.

이렇게 정당별 예비선거를 통해서 전국을 순회하면서 당원의 심판을 통해서 후보가 배출되다 보니, 양극화가 극도로 심해진 1990년대 이후 각 정당의 대선후보 예비선거는 그 이전에 비해 더 경쟁적으로 자신의 이념성을 부각시키는 경향이 커졌다. 예비선거에는 열성적이고 극단적인 이념 성향의 당원이 많이 참여하는데, 이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후보로 당선될 수 있기 때문에 경선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극단적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2012년 원래 온건중도 성향의 후보였던 공화당의 롬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공화당 경선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가 멕시코계 이민자를 '강간범'이라고 부르고 무슬림 미국인에 대한 강제주민등록제를 언급하는 등 극단적인 언사를 내뿜어도 이에 환호하는 이념화된 열혈 당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루비오나 크루즈 등 정치인 후보는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인기 있는 트럼프의 발언을 비판하는 것은 곧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인데, 이를 루비오, 크루즈, 부시 등 기성 정치인 어느 누구도 꺼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대선후보의 본선 경쟁력보다는 정당 내에서 맹위를 떨치는 열성 당원의 열정과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예비선거에서 더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자질은 부족하더라도 이념적인 후보가 상당 기간 인기를 누리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인물이 설령 최종적으로 대선후보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예비선거 과정을 거치면서 당선되는 대선후보는 극단적 후보를 지지한 당원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으며, 상대적으로 보다 이념적인 정책 공약을 내걸게 된다.

한국의 '안철수·반기문 현상'…현명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정당정치 근간 위배

그런데 우리 정당의 경우는 이와는 다르다. 이전의 '안철수 현상'과 지금의 '반기문 현상'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즉 우리의 경우 각 정당은 여론조사 결과 나타난 국민 지지도와 당선 가능성을 먼저 보고, 특정 인물이 정당에서 성장한 인물이 아닐지라도 국민적 지지도만 높으면 그를 후보로 영입하려고 서로 경쟁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지금 공화당에서 나타나는 트럼프 현상에 비교해볼 때 한국 정당이 일견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이는 정당과 당원이 그들의 정당 이념과 정책에 맞는 후보를 선발하거나 아니면 이런 인물을 길러내고 배양해야 한다는 정당정치의 근간에 위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물이 먼저이고 정당이 뒤따르면, 인물이 탈이 날 때 정당은 공중 분해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국 여론조사로 정당 대선후보 선발의 기준을 잡겠다고 하면, 여기에는 여론 상종가 인물이 있는 것이지, 지지자와 당원을 위한 정당 고유의 설 자리는 없어지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 정당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밖으로 애원하는 러브콜에 앞서 국민에게 제시할 수 있는 차별화된 정책을 구비하고, 열띤 당내 토론과 소통 구조를 확립하여 인물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선 때마다 반복되는 ‘인물 대망론’만큼 정당정치의 발달을 위해서 경계해야 할 것은 없다. 아래에서부터 지지를 받아 성장하는 인물을 키워낼 수 있는 정치인 양성의 능력과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의 방법을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성숙한 한국 정당정치의 발달에 매우 긴요하다고 하겠다. 당장 ‘똘똘한’ 정당보다는 내내 ‘야무진’ 한국 정당을 기대해 본다.

■손병권 중앙대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 서울대 정치학석사- 미시간대 정치학박사-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현)- 한국정치학회 총무이사, 한국 정당학회장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