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둔 정당 간 정책 논쟁은 토론·설득 제도의 꽃

모처럼 싹트던 정책 논쟁 이번 총선에선 실종될 우려

여야, 계파 갈등 접고 일자리·복지 문제 등 논쟁해야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데일리한국= 권혁주 서울대 교수 칼럼]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다수결에 의해 운영된다.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 투표를 통해 가장 많은 지지를 획득한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다. 또 지역구에서 다수 득표를 한 후보가 국회의원이 된다. 비례대표 의원 제도도 결국 다수 국민의 지지를 국회 의석수에 반영하려는 제도이다. 이렇게 구성된 국회는 다수결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 그러나 다수결 원칙은 민주주의를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 절차를 규정한 것일 뿐이다. 다수결에 따른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선호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지만 그 선호가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국가적인 현안에 대해 가장 적절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흔히들 다수가 원하는 일이지만 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안이 아니거나 지속 가능한 정책이라 볼 수 없을 때 인기영합주의 혹은 '포퓰리즘'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국민 선호 반영해 좋은 결정 내리는 방법은 토론과 설득

그렇다면 어떻게 민주주의를 통해 올바르고 타당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가? 국민의 선호를 반영하면서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토론과 설득이다. 국민들은 어떤 공공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견해들을 갖고 있는데, 그 의견들이 서로 달라 갈등이 초래되기도 한다. 이같은 의견 대립 속에서 가장 적절한 대안을 찾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며, 그것은 토론과 설득을 통해 이루어진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한 뒤 토론과 설득을 통해 자신의 입장과 적정한 선에서 타협하기도 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빌려 단순한 의견이 아닌 과학적 관점에서 결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처음 가졌던 생각과는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설득 과정이다. 이러한 토론과 설득이 민주주의의 최소한 필요조건인 다수결의 원칙과 결합될 때, 그 나라의 민주주의는 기초가 튼튼하면서도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한다.

그렇지만 성숙한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별도의 제도를 도입하여 토론과 설득을 유도할 필요는 없다. 이미 민주주의 제도 안에 토론과 설득에 필요한 제도들이 고안되어 구비돼 있기 때문이다. 먼저 국회에서 의원들이 법률을 제정하고 개정하기 위해 찬반 토론을 하는 본회의, 상임위원회 회의가 있다. 정부에서는 정부의 결정을 심의·의결하는 국무회의를 비롯하여 차관회의, 정책조정회의 등 다양한 논의 제도가 존재하고 있다.

선거 앞둔 정당 간 정책 논쟁은 토론·설득 제도의 꽃

이러한 토론과 설득의 제도 가운데 그 꽃은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정당 간 정치적·정책적 논쟁이다. 선거 과정을 통해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 후보들이 자신들이 국정 책임을 맡게 되면 어떠한 일을 할 것이고, 나아가 어떻게 국정을 이끌어갈 것인가를 밝히는 자리이다. 자신의 정책이 상대방에 비해 더 좋은 대안이며, 나라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것을 설득하는 자리이며, 토론하는 기회가 선거 정국이다. 국민들은 후보 간 토론을 지켜보며, 때로는 토론에 참여하기도 하며 자신들의 입장을 정하고 그것을 투표로서 표현한다. 이렇게 민주주의는 다수결에 따르면서도 국민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제도로서 역할하게 되는 것이다.

모처럼 싹트던 여야 정책 논쟁 이번 총선에서 실종될 우려

이제 내년 4월13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총선 정국'이 본격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총선 정국에 모두(冒頭)에서 실망스러운 점은 민의를 올바르게 반영하기 위한 토론과 설득의 정책 논쟁이 실종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모두 자신들의 지역구가 어떻게 재조정될지, 공천은 받을 수 있을지에 노심초사하고 있을 뿐 사실상 민생 문제 등 국가적 정책 현안들을 내팽개치고 있는 셈이다.

새누리당은 후보 공천을 둘러싼 친박과 비박 간의 갈등과 경쟁에 더해 '진실한 친박'과 '배반한 친박'을 가려내는 데 급급해 국가적 정책 사안에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새누리당의 친박과 비박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조문 정국을 계기로 '공천 전쟁'을 일단 휴전 상태로 만들었으나 곧바로 다시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재인 대표, 안철수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등 계파의 수장급 정치인들이 지도체제와 공천 주도권을 놓고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는 가운데 국민의 생활고를 어떻게 풀어줄지 관심이 없는 듯하다. 마침 일요일인 29일에도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는 장군멍군식 공방을 벌였다. 안 전 대표가 문 대표의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공동 지도부 구성 제안'을 거부하자 문 대표는 "안타깝다"며 불편한 심정을 표출했다.

그렇다고 그동안 선거 과정에서 정책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0년 교육감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논쟁이 뜨겁게 진행됐고, 이어서 2012년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보편적 복지와 국민 행복, 경제 민주화 등을 화두로 정당 간의 정책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책 논쟁이 반드시 합리적으로 진행됐다고 할 수는 없다. 토론과 설득을 통한 합리적 대안 모색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통해 논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싸움에 그친 경우도 많았다. 토론을 통해 설득과 타협에 이르기보다는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때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토론과 설득을 통해 성숙한 민주주의를 꽃 피우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또 나와 상대방 주장의 과학적 근거와 논리적 타당성을 잘 살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선거에서 공약은 화려하게 내놓고 막상 당선된 다음 내팽개친다면 아무리 좋은 토론과 설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여야, 계파 갈등 접고 일자리·복지 놓고 비전 경쟁해야

한국 경제는 빠르게 기술경쟁력을 갖추며 추격하는 중국과 여전히 멀찍이 앞서가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끼여 있다. 이 와중에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비중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다. 게다가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시름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의 심화로 복지에 대한 수요는 커지는 가운데 누구에게 어떻게 복지 혜택을 제공할 것이고, 그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국가적 현안은 쌓여가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러한 국가적 현안에 대해 정당들은 깊은 연구를 토대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여, 토론과 설득의 장으로 나서야 한다. 국회로 진출하려는 정치인들은 민심에 귀를 기울여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정책으로 반영할 것인지 철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를 민주주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올바른 길이다.

■권혁주 서울대 교수 프로필
서울대 정치학과- 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박사-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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