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일 갈등, 역사·영토 문제보다 G2 패권 경쟁이라는 외생적 요인이 더 작용

'코리아 패러독스'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하기 위해 한일 간 협력은 필수

중국은 미국을 동아시아 일원으로, 미국은 중국을 G2파워로 인정하도록 설득해야

구범모 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편집자 주= 구범모 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28일부터 일본 도쿄 뉴오타니 호텔에서 열리는 한일협력위원회 합동총회에서 '한일 미래의 과제와 협력'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합니다. <데일리한국>은 구 전 교수 측의 동의를 얻어 발제 요지를 칼럼 형식으로 게재합니다. 구 전 교수는 "미·중 패권 경쟁으로 경제적 상호의존과 사회·문화적 교류 심화에도 불구하고 정치·군사적 갈등은 깊어지는 '아시아 패러독스(Asia paradox)' 현상 중 우리나라는 가장 강한 '코리아 패러독스'(Korea paradox)를 겪고 있다"고 진단한 뒤 "한국과 일본이 불화를 끝내고 협력해야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아시아 안보 공동체 형성을 위해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여 미국과 중국이 공진화(共進化)의 길을 가도록 인도해야 한다"면서 동아시아 지역공동체 수립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한편 한일협력위원회는 1969년 발족된 민간 기구로 한일 국회의원, 재계 인사, 문화계 인사 등이 참여해 매년 합동총회를 개최하며 양국 간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데일리한국= 구범모 전 서울대 교수 발제 요지 / 정리= 김종민 기자] 이명박정부 이래 한일 관계가 협력과 공존보다는 대립과 갈등 관계로 가고 있는 데에는 내생적 요인과 더불어 외생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역사·영토 문제가 내생적 요인이라면, 미국과 중국이라는 G2 강대국 간의 패권 경쟁은 외생적 요인이다. 이같은 복합적 요인들로 한일관계의 균열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 경쟁을 벌이기 전까지는 한일 관계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면서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충실한 동맹이자 동반자였다. 그런데 중국의 부상으로 동아시아에서 세력 전이(power shift)가 일어나면서 미국은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동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또는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미국 주도로 재편하려는 '재균형'(rebalancing) 정책을 펴면서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일어나면서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요동치고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는 갈등의 바다가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대응을 했다. 중국의 부상 이전에는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미국의 관용의 폭은 넓었다. 미국은 한국과 중국 간의 무역·투자·인적 교류에 대해 관대했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올라서자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에 대해 역외균형자로서 군사비용을 부담하고 미국의 MD(미사일방어) 체제에 동참하여 중국을 견제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큰 무역과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협력적 동반자 관계에서 적대적인 견제자로 갑자기 돌아설 수 없었다. 한국은 한미동맹과 한중관계를 병행 발전시킨다는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중적이고 소극적 전략을 채택했다.

반면 일본과 중국의 긴장의 파고는 높아졌고 이는 다시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미일동맹의 강화는 전후 '보통국가'로의 복귀를 원하는 일본의 소망을 실현시켜 주었다. 전승국이자 동맹국인 미국은 일본 자위대의 정규 군대화, 집단자위권 행사를 허용했고, 일본 자위대의 해외 작전 수행을 용인했다. 지난 4월 27일 미·일 외교-국방장관회의는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중국과 분쟁을 빚고 있는 '센카쿠 제도가 미일안보조약의 대상'이라는 조항을 삽입시켰다. 이 같은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와 미일동맹의 격상은 한국에 대한 일본 아베 정부의 태도 변화를 가져와 과거사, 위안부 등 한일 간의 현안에 대한 타협을 어렵게 하고 양국 관계를 냉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중 패권 경쟁으로 한국은 경제적 상호의존과 사회문화적 교류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정치, 군사적 갈등은 깊어지는 '아시아 패러독스' 현상 중 가장 강한 '코리아 패러독스'를 겪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아시아 안보공동체 형성을 위해 한일 간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먼저,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여 미국과 중국이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의 길을 가도록 인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선적으로 두 강대국이 서로에게 느끼는 안보 딜레마를 해소시켜 주어야 한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는 우려를 갖고 있고, 미국은 중국이 미국을 아시아로부터 배제하려 한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러한 양국이 느끼는 안보 딜레마를 해소하는 좋은 방법은 '동아시아 지역공동체주의'(East Asian regionalism)를 수립하는 제도주의(institutionalism)인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공동체를 수립하기 위해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을 동아시아의 일원이라는 '대동아시아주의'(Greater East Asia)를 경제적인 관점에서부터 수용하도록 한국과 일본이 합심해 나서서 설득해야 한다. 아울러 중국이 대동아시아주의를 양보하는 것과 교환하여, 미국은 중국을 실질적인 G2 파워로 인정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을 G2로 부상하지 못하게 '봉쇄'함으로써 발생하는 중국의 안보 딜레마를 해소시켜 주는 전략적 타협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동북아 질서의 안정자·동북아 세력 간의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같은 한미동맹의 역할 전환(role shift)에 대한 한일 양국 간 합의와 협력도 필수적이다.

■ 구범모 전 서울대 교수 프로필
경북 예천 출생 -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서울대 대학원, 미국 코넬대 대학원 수료 - 제9, 10대 국회의원 - 서울대 문리대 교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 - 경남대 북한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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