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쿡방 인기의 본질과 그 미래에 대한 분석

'먹방'에서 셰프들의 요리 오디션 거치며 '쿡방'으로 진화

수혜자는 식재료 기업… 지겹기 시작한 쿡방의 변화는 불가피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데일리한국= 문정훈 서울대 교수 칼럼] '쿡방'의 출발은 '먹방'이었다. TV를 통해 연예인들이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보다가 인터넷에서 그 레스토랑이 어디인지를 알아낸다. 그리고 다음 주말에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 연예인이 느꼈던 그 맛을 나도 느낀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그 연예인과 동일한 사회적 정체성을 나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외식업체는 매출을 올리고, 방송매체는 시청률을 올리며, 소비자는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며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이것이 먹방의 자본주의적 본질이다. 그리고 쿡방의 출발점이다.

먹방, 요리 오디션, 그리고 쿡방

그 즈음에 해외에서 유행하던 경연대회, 오디션 포맷을 가진 요리 방송들이 한국으로 들어온다. ‘마스터 셰프’가 대표적 사례이고 이어서 ‘한식 대첩’이라는 한국화된 프로그램도 제작되기 시작했다. ‘올리브 쇼’에서는 요리사들이 ‘셰프’라는 멋진 단어로 재포장되어 나와서 서로 경연대회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실력있는 스타 셰프들이 탄생하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쿡방의 꽃이 피기 직전의 꽃망울이 여물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꽃망울을 쿡방의 꽃으로 터뜨려낸 것은 실력있는 스타 셰프들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 뭐 먹지?’에 출연한 요리 초짜 신동엽,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집밥 백선생’에 출연했으나 조리사 자격증도 없는 백종원, 또한 ‘삼시 세끼’의 이서진과 차승원과 같은 사람들이 실질적인 쿡방의 꽃을 피워낸다. 신동엽과 이서진은 칼질도 제대로 못하는 요리 초보이며, 차승원은 의외의 놀라움을 던져주었으나 역시 아마츄어이다. 백종원은 외식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지만 그가 방송에서 보여준 요리는 멋진 셰프들의 특별한 레시피와는 거리가 먼 설탕과 조미료가 들어간 그리 썩 팬시하지 않은 요리들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이들의 요리가 쿡방의 열풍을 몰고 왔다.

쿡방의 스타…제이미 올리버와 백종원

영국의 스타 셰프 제이미 올리버의 쿡방을 보면 백종원의 쿡방과 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 일단 비싼 재료는 쓰지 않는다. 비싸거나 구하기 힘든 재료는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대체한다. 어려운 레시피는 쓰지 않고 복잡한 조리법도 없다. 모든 요리는 15분 내에 끝낸다.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는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10여년 전 영국의 쿡방 돌풍을 일으켰다. 전 세계에서 가장 요리 못하고 안하는 영국인 주부들은 제이미 올리버의 방송에 열광하며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15분만 뚝딱하면 꽤 먹을 만한 요리가 나온다. 특히 제이미가 강조하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가정 음식을!’이라는 것을 수행함으로써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반면에 백종원의 쿡방에 가장 열광하는 한국인들은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한국 아저씨들이었다. 백종원의 쿡방은 쉽다.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신동엽은 더하다. 심지어 칼질도 제대로 못하고 요리의 기본도 모른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에이, 나도 신동엽 보단 더 잘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된다. 언론 자료에 의하면 지난 여름, 이러한 쿡방 열풍에 한국 남성의 67%가 주방에 요리를 하러 들어갔다고 한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남성 고객의 채소 구매가 급증하였고, 특히 소스류의 매출이 급증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아빠표 요리 솜씨에 고통(?) 받고 있다. 요리를 잘 안하고 외식에 주로 의존하는 한국의 1인 가구들도 쿡방 열풍 이후 집에다 재료들을 사놓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제이미 올리버와 백종원은 집 밥 돌풍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설탕에 대한 견해는 다르다. 제이미 올리버는 설탕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백종원은 적당히 쓰는 것은 문제 없다고 이야기한다. 백종원이 너무 많은 설탕을 쓴다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참고로 유로모니터 통계 자료에 의하면 작년 영국은 1인당 하루 설탕 섭취량이 93.2그램이고, 한국은 1/3수준인 30.8그램이다. WHO는 설탕 50g을 하루 권장량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좀 더 먹어도 된다는 뜻이다.

쿡방에 미소 짓는 이는?…식재료 만드는 기업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가치를 만들어내면 그것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쿡방이라는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낸 가치의 정당한 댓가는 누가 가져가고 있을까? 이에 미소 짓는 이는 누구일까? 영국 쿡방의 원조인 제이미 올리버는 자신의 쿡방에 연계하여 다양한 식재료, 소스, 주방 기구들에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달아서 출시하였으며, 폭발적인 매출과 함께 전 세계적인 비즈니스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영국 쿡방의 승리자는 단연 제이미 올리버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쿡방의 승리자는 누구인가? 백종원인가? 높은 시청률을 올린 방송국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단서는 필자가 이 글에서 이미 언급했던 방송 프로그램들이 어떤 방송국에서 송출되었는지를 보면 찾을 수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방영하고 있는 MBC를 제외하고는, 모든 쿡방은 TvN과 O‘live라는 케이블 채널이다. 이 두 채널의 오너가 누구인가? 바로 CJ이다.

이 모든 쿡방은 CJ의 철저한 기획 하에 만들어진 아주 고도로 세련된 CJ의 마케팅 전략이다. 쿡방이 문화적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게 되면 사람들은 요리를 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다면 설탕이 필요하고, 밀가루가 필요하며, 또 맛있게 튀기려면 전분이 필요하고, 다양한 소스가 필요하다. 요즘 도대체 누가 소스를 직접 끓여서 만들까? 누구나 구매하게 된다. 이런 식재료를 만들어내는 대한민국 넘버원 기업이 어디인가? 바로 CJ이다. 쿡방에 맞추어 집에서 요리를 하려면 우리는 마트에 가서 이런 식재료를 구입해야만 한다. 혹, 이런 쿡방의 열풍에 나도 한번 요리하겠다고 결심하시고 이런 식재료들을 구매하신 적이 있으신가? 지금 바로 찬장을 열고 한번 브랜드를 확인해 보시라, 과연 어떤 기업의 설탕, 밀가루, 전분, 소스 들을 구입하였는지. 그래서 우리나라 쿡방의 승리자는 CJ이다. CJ는 쿡방으로 ‘식재료’라는 산업의 파이를 크게 키워놓았다. CJ가 그 가치를 만들어 냈으니 CJ가 그 정당한 댓가를 받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겹기 시작한 쿡방의 미래는?

이제 쿡방이 지겹기 시작한다. 그만 좀 봤으면 좋겠다는 의견들도 나온다. 먹방에서 요리 경연대회를 거쳐 발전해 온 쿡방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갈까? 혹자는 지금 ‘냉장고를 부탁해’가 ‘옷장을 부탁해’로 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먹방’에서 ‘옷방’으로 아예 변모해나갈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다른 예측으론 TV 브라운관을 벗어나 인터넷 방송으로 넘어가며 좀 더 노골적인 쿡방으로 변모해갈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TvN의 나영석 PD가 제작한 ‘신서유기’는 규제가 많은 TV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 던지고 인터넷 방송으로 나갔다. 인터넷으로 매체를 바꾸면 좀 더 자유로운 형태의 제작이 가능해진다. ‘신서유기’에서 나왔던 것처럼 욕 빼고는 다 내보낼 수 있다. 맥주, 소주, 심지어는 담배까지 다양한 브랜드에 대해서 인터넷 방송에서 논할 수 있다. 혹은 이 쿡방의 트랜드가 실제 최고 수준의 레스토랑의 주방을 다루는 리얼리티 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소비자들의 기대 수준이 올라가면서 이제는 ‘진짜’ 주방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켜줄 방송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게 무엇이든 인간의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놀고 싶다는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즐겁게 즐기면 된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 프로필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현), 서울대 Food Biz 랩 연구소장(현), 전 카이스트 경영과학과 교수.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노는 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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