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형 테러에 중독된 IS의 새로운 조직화 방식으로 전통적 리더십 위기
우리 삶의 심장부로 파고들어온 IS… 대응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펠로우십'
게릴라형 테러에 중독된 IS… 전통적 리더십의 위기
이번 테러에 가담한 20여 명의 용의자 대다수가 프랑스 시민이거나 체류자임을 들어 유럽 사회 내 불평등과 중동 출신 거주민들의 소외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IS는 분배니, 복지니 하는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고결한 철학을 가진 단체가 아니다. 그저 게릴라형 살육에 중독된 막장 조직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전통적 의미의 조직 리더십이 무장 테러를 주도한 IS의 새로운 조직화 방식에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이번 파리 테러에 가담한 사람들 면면을 보면 그들이 정말 ‘확신범’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평소에는 자연스런 ‘이웃’인 경우처럼 움직인 경우가 많다. 가장 먼저 신원이 공개된 29세의 청년 이스마일 오마르 모스트파이의 사례를 보자. 그는 원래 파리 근교 마을에서 주민들과 어울려 살던 젊은이였다. 프랑스 내무 당국은 2년 전 이런저런 인구학적 데이터를 추정하면서 모스트파이를 극단 이슬람주의자로 분류했다. 그러나 그가 지역 사회에서 뚜렷하게 구분될 수 있을 만한 근거를 제대로 찾지 못했었다. 오히려 이웃들은 ‘조용한 청년이 왜 그런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을까’라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 모스트파이처럼 심증으로는 위험분자임이 분명한데, 물증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극단주의자가 프랑스 내에 정말 많다고 한다. 파이낸셜타임즈 통계에 따르면 지하드 조직에 연루된 이들은 약 2,000여명, 그리고 종교적 근본주의 성향을 띈 국민은 3,800명 가량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어떤 동기와 배경으로 그런 상황에 처했는지 제대로 된 데이터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오히려 평소에는 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현대적 개념의 유럽 시민처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IS 같은 게릴라 조직들은 과거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끌던 알 카에다와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지리적 본영(本營)에만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IT 인프라와 네트워크 수단을 이용해 일상적 사회와 일반 국가의 심장부를 숙주이자 ‘가상의 본영’(virtual headquarter)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IS는 유럽과 미국의 정부 당국이 소득 수준, 교육 수준, 종파 가입 여부 등의 정형화된 인구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중동인들의 성향을 추론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조직원을 그럴듯한 ‘배우’로 둔갑시킬 줄 아는 고도의 조직화 방식을 갖춘 것이다. 행정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영토 안에 존재하는 잠재적 게릴라들을 ‘외로운 하이에나’ 정도로 취급했고, 그저 불만덩어리로 가득 찬 트러블메이커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나 11월 13일 밤부터 14일 새벽 사이 벌어진 바타클랑 극장의 살육은 평범한 이웃들이 과격 살인범으로 돌변하는 불측의 상황을 연출했다. 테러리스트들은 매우 가볍게 움직이는 집단이다. 그들은 외부의 지식을 내재화하고 자기들끼리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흡수 역량(absorptive capacity)과 결합 역량(combinative capability)이 출중한 자들이다. IS와 같이 젊은 파괴자들의 범죄 아이디어는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일상과 인프라를 적극 역이용하는 데서 시작한다. 반면에 정형화된 지식과 자원의 우위에 기반해 합리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려던 전통 사회의 리더십은 게릴라 커뮤니티 앞에서 위기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막장 테러’ 대응 리더십은?… '강력한 리더십+펠로우십'
이런 상황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해커 단체 ‘어나니머스’(Anonymous)의 선언이 반갑다. 사실상 어나니머스는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는 어떤 세력이든 자신들의 ‘사이버 테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표방하는 자발적 결사체다. 이들은 특별히 똑 같은 비전과 철학에 기반해 움직이지 않는다. 어나니머스는 구성원들이 공통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저마다 갖고 있는 스킬(skill)과 의지에 기반해 움직인다. 그들은 특별한 리더십이 아닌, 친구되기, 즉 펠로우십(fellowship)의 철학에 기반해 움직이고 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움직임도 있다. 파리 테러가 일어난 다음 날, 미국의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가 파리 인근의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의 지안피에로 페트리글리에리(Gianpiero Petriglieri) 교수에게 특별 기고를 요청했다. 페트리글리에리는 몇 시간 만에 일필휘지로 칼럼을 써 내려갔고, 이 글이 HBR 온라인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페트리글리에리 교수의 칼럼도 확고한 통제권이 아닌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에 기초한 행동을 강조했다. 더 이상의 리더십이 아닌 펠로우십’(Fellowship)이 IS 같은 게릴라 조직이 파고든 현대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통 리더십은 같은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조직이라는 점을 전제했다. 따라서 리더는 확고한 신념과 정치적 기술을 통해 그들 위에 군림할 수 있으면 안정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로가 폭력을 자행할 만큼 차이와 분열이 반복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유형의 리더십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을 묶을 공통된 가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조직이나 사회 구성원 개개인을 ‘방문’하듯 만나고, 그들의 일상적인 시선에 맞춰 대화를 시도하고 정서적으로 교류할 줄 아는 동료애, 즉 펠로우십(fellowship)이 절실하다. 페트리글리에리 교수는 펠로우십의 근간이 ‘호기심’(curiosity)에 있다고 말한다. 자신과 다른 사람, 이질적인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에 대해 흥미롭고 열린 자세를 갖추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 리더들이 흡수하던 잘 정제된 지식들은 ‘막장 행동’을 구사하는 사람들의 케이스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앞으로 의사결정자들은 상식 밖의 사건들을 막기 위해 다양한 이들과 ‘친구되기’를 시도하고, 여러 층위로 존재하는 상황과 정보들을 분석할 수 있어야만 한다.
펠로우십의 또 다른 효과는 연대감(solidarity)이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삶을 누려왔던 이들이 어울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교감과 대화를 위한 도구가 필요하다. 리더는 그들에게 ‘하나가 되라’고 강조하기보다는 함께할 때의 따뜻함과 자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지자들과 활발하게 면대면(face to face) 소통을 즐기며 자유와 신뢰의 기풍을 외치는 젊은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 같은 인물이 대표적인 사례다. 카리스마적 리더십만으로 갈등이 많고 복잡한 사회를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펠로우십만으로 사회에서 일탈돼 막장 테러를 저지르는 세력을 제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치밀한 과학적 분석으로 테러 움직임을 예방하고, 테러에 대해 강력하게 응징하고 대처하는 강력한 리더십도 여전히 필요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탈 세력에게는 테러에 대해선 강력한 응징과 제재가 뒤따를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테러와 도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과 원칙의 리더십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테러가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안적 리더십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강력한 리더십과 펠로우십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천영준 책임연구원 프로필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정보산업공학 석사, 기술경영협동과정 박사- 다음소프트 연구자문역- 합창단 Chantez a dieu, 오페라단 '청 ' 자문위원-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현)/저서 <직장인 4대 비극> <바흐, 혁신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