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드리그룹 회장, 네팔 대지진 이후 이재민 거처 7만채 건설 약속

'닭고기국물 라면' 성공… "사회에서 축적한 부(富), 사회 위해 써야"

[데일리한국=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칼럼] 네팔은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달러 가치에 크게 좌우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대개 7백달러(약 80만원) 안팎이다. 이런 나라에 들르면 국민소득 3만달러를 바라보는 우리로서는 괜히 우쭐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어설프게 부를 뽐내서는 안 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사람들이다. 관련 조사에서 네팔은 이웃나라 부탄과 함께 국민의 행복감이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히곤 한다. 같은 조사에서 우리는 늘 중하위권에 머무른다.

굳이 정신적 행복감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네팔인들은 자신들의 가난과 곤궁을 결코 남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대신 자족과 공동체 의식을 자부한다. 네팔인들에 그들의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가 아니냐고 힐난해보라. 당장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이곳에는 굶어죽는 사람이 없습니다.” 맞는 얘기다. 대명천지에 아사(餓死) 현장에 관한 뉴스를 접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올해 초가을 네팔을 찾았다. 지진이 빈번할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조차 사상 유래 없는 대지진을 경험한 지 5개월여가 다 된 시점이었다. 지진의 참상은 여전했다. 이 나라가 자랑하는 관광지들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문화유산 7곳 가운데 4 곳이 여전히 복구가 안 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관광객을 수용했다. 관광 수입이 워낙 절실해서였다.

수도 카트만두에는 이재민으로 그득했던 수용소가 더 이상 없다. 하지만 수도를 조금만 벗어나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이런 지역에는 어김없이 지진 피해를 자신의 숙명처럼 여기고 견디는 이들이 있었다. 최빈국의 비참한 재해 현장이라 동정어린 눈길을 보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가도 슬그머니 그 생각을 접곤 했다. 적어도 이 곳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부자가 있었다.

카트만두에서 네 시간여를 북쪽으로 달려가야 하는 오지(奧地), 돌랄갓. 마지막에는 사륜구동 차량으로도 오르기 힘든 거친 진흙길을 20분 이상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이 산악지대에 1천여 주민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이들이 살던 2백여채 가구는 대지진 당시 대부분 파손됐다. 내가 찾았을 때, 이 비극의 현장은 오랜만에 들뜬 상태였다. 네팔 유일의 억만장자이자 아시아 부호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 초드리그룹(CG) 비놋 초드리 회장이 이재민에 무상으로 거처를 지어주고 건네는 참이었다.

내부까지 살펴본 거처는 임시 주택이라기보다는 영구 주택에 가까웠다. 네팔 시골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대나무로 골조를 만들고 흙으로 벽을 쌓아 올렸다. 여기에 양철 지붕을 씌워 마무리했다. 우리 돈으로 7만원 가량이면 지을 수 있는 경제적 건물. 대신 대나무를 대각선으로 세우고 땅에 박아 내진(耐震) 기능까지 더했다. 초드리 회장은 전문가를 동원해 임시 거처를 합리적이고 경제적으로 설계했다. 쉽고 빠르게 지을 수 있도록 매뉴얼화 하기도 했다. 그리고 초드리그룹 직원과 주민이 힘을 합쳐 거처를 세워 왔다.

대지진 이후 초드리 회장이 공약한 거처만도 7만채에 이른다. 자신이 기부한 돈으로 1만채를 짓고, 나머지는 해외 성금을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중국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을 포함한 자신의 부호 친구들이 도움을 주기로 확약했다. 자신의 힘으로 학교 500곳도 세워 지역사회에 기증해나가고 있다. 왜 그는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직접 집과 학교를 지어 대지진 피해자들에게 건네는 걸까? TV 앞에 나와 자신과 회사의 이름으로 구호 성금을 약속하는 편이 훨씬 더 화려해 보이고 쉬울 텐데 말이다. “돈만 내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와 지역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데 도움이 돼야 합니다.” 돌랄갓 임시 거처 증정식에서 만난 초드리 회장의 말이다. 대지진 후 해외로부터 답지한 구호자금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정부를 보면 이해가 가는 말이다.

사업하기 가장 까다로운 환경에서 대중과 사회 먼저 생각하는 부자

네팔의 초드리 회장은 올해 중반 국내에서도 반짝 유명세를 얻은 적이 있다. JTBC의 인기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네팔인이 자국에서 젊은이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부자라고 잠깐 소개하면서였다. 그 청년은 그 근거로 빈곤국 부호들이 해외로 떠나는 반면 초드리 회장은 부자가 돼서도 조국을 떠나지 않은 점을 꼽았다.

지진 피해 현장에서 만난 그는 사실 그 이상이었다. 대지진이 엄습하던 4월25일, 수도에 있는 초드리그룹 본사 건물도 지진의 여파를 비껴가지는 못했다. 크게 흔들리면서 곳곳에 금이 가 긴급 대피했던 임직원들조차 출입을 꺼릴 정도였다. 당시 지방 출장 중이었던 그는 수도로 돌아오지 말라는 권유를 뿌리쳤다. 많은 국민들의 국외 탈출 행렬에 동참하지도 않았다. 대신 여진(餘震)의 공포가 가시지 않는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동시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어떻게든 살아 있기만 해달라고, 그리고 반드시 연락을 해달라고. 그리고 확인된 피해 현장에 자신의 회사가 만든 식료품을 담은 구호 물품을 보냈다. 회사를 임시로 본사 경비동과 공장으로 옮긴 후에는, 이재민에게 임시 거처와 학교를 지어주는 일에 매달려 왔다.

그는 3대째 네팔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인도계다. 부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가게를 물려받게 됐을 때 그의 나이는 18세.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초드리 가족 사업의 몰락을 점쳤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 세계적 기업인으로 우뚝 섰다. 성공의 계기는 네팔 대지진 현장의 구호 물품으로도 요긴하게 쓰인 라면이었다. 그는 소고기 국물을 주재료로 한 동아시아 라면이 전통적 힌두교 사회인 인도와 네팔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란 데 착안했다. 닭고기 국물을 쓴 그의 라면은 최근까지도 네팔의 대표 수출품이다. 전세계 라면 시장 점유율로도 2%에 가깝다.

그가 일군 기업들은 소비재에서 가전제품, 금융과 리조트 산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업종에 걸쳐 있다. 지역적으로 40여개국에 진출했으며, 출시한 브랜드만 80여개에 이른다. 하지만 여전히 본사는 네팔에 있다. 자신의 회사와 브랜드들을 주저 없이 네팔 브랜드라고 한다.

이제 막 형식적 민주주의를 도입하기 시작한 네팔은 기업을 경영하기에 말 그대로 최악인 곳이다. 초드리 회장으로서도 정부의 지원과 협력이라고는 아예 기대할 수조차 없다. 그런 점에서 그는 그간 정부의 후원을 등에 업은 우리 대기업 집단, 재벌을 부러워한다. 따라서 그가 정부 기능이 무너진 곳에서 정부보다 더 정부다운 역할을 하는 것은 단지 정부에 대한 보은 차원은 아니다(그는 한때 기업 환경 개선을 위해 직접 의회에 뛰어든 적도 있다). 그저 부자와 대중, 대기업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남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내가 벌었다고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회에서 축적한 부라면 그 사회를 위해 쓰여야 합니다. 부자 역시 그 사회의 대중 속에서 부대껴야 합니다.”

네팔을 떠나기 전날. 이 괴짜 부자는 네팔 상황에 대해 다시 호소하기 위해 외신 기자들을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 부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그들은 그간 정부의 지원을 받아왔으면서 정부를 내심 비난해왔다.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으면서도 실제로는 대중을 외면해 왔다. 우리 사회 속에서 성장해왔으면서도 실은 군림하고 지배하려만 든다. 사회와의 공존이나 사회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을 만치 둔감하다. 땅콩 회항과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롯데그룹의 형제 간 분쟁과 삼성의 무리수, 그리고 최근의 기업인 해외 원정도박까지, 지난해 말부터 유독 잦았던 부자 관련 추문은 그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와 마지막 잔을 부딪치며 마음 속으로 외쳤다. 가난한 나라의 특별한 부자를 위해! 이제 나라는 부유할지 모르지만 평범한 부자들밖에는 없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프로필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대통령 직속 동아시아시대위원회 전문위원- 명지대 객원교수-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김방희입니다> 진행- KBS1 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진행- 생활경제연구소장(현) YTN 객원 해설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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