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의 주인공, '화성 정복자'란 의식으로 버텨… NASA 국장의 '대리인' 성향과 대비

오너 경영의 두 얼굴은 혁신 주도, 투명성 저해… 길게 내다보는 전문 경영인 자세 필요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데일리한국= 천영준 연세대 책임연구원 칼럼] 영화 마션이 누적 관객 수 450만 명을 동원하며 가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전형적인 미국식 개척 정서와 또 하나의 영웅 스토리로 무장한 작품이라는 인식도 있지만, 지구로부터 8천 만 km 떨어진 곳에서 살아남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지친 현대인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준다.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는 식물학 박사학위를 지닌 우주인이다. 동료들과 함께 화성 탐사 연구를 하던 도중 엄청난 폭풍 속에 홀로 낙오된 그는 31일 치 식량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간다. 그는 그나마 산소를 응축하고 있는 기지 속에서 자신의 ‘생존 연구’를 영상 일지에 기록해 가며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친다. 와트니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화성 현지에서 흙을 퍼다가 기지 속으로 날라 감자를 재배하는 한편 먼 곳까지 ‘여행’을 하며 1997년 발사됐던 패스파인더 위성을 찾아 지구의 나사(NASA)와 교신할 방법을 찾는다. 와트니가 갔던 길 하나하나가 우주인들에게는 새로운 시도이자 혁신이다.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와트니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동기 부여를 한다. ‘나는 화성의 정복자다!’라며. 굳이 말하자면, 자신이 화성의 주인이자 새로운 연구를 개척한 오피니언리더라는 믿음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 '마션' 의 주인 의식과 대리인 의식… '화성 정복자'란 의식으로 버텨

그런데 와트니의 주인 의식은 관료주의와 효율성으로 점철된 NASA 국장의 처신과 묘하게 대비된다. 국장은 보수적인 미국 의회로부터 NASA의 예산을 지키기 위해, 또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와트니와 관련된 이슈를 서둘러 덮어버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화성 탐사대가 귀환하기도 전에 서둘러 그의 죽음을 발표하고, 모두가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화성 탐사 실패’를 잊어버리기를 소망한다. 남아 있는 인원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 없다는 나름의 합리적 선택도 국장의 '대리인'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JTL, 즉 미 제트엔진 연구소에서 와트니가 화성에서 살아남기 위한 식량을 공급하는 로켓을 개발하는 데 매우 미온적으로 반응한다. 지구로 돌아오기 전에 화성 탐사대에게 보급선을 도킹시켜 다시 보내는 전략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국장은 와트니의 생존 소식이 전세계 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면서부터 그를 구하는 것이 오히려 자기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게 된 인물이었다.

따지고 보면 와트니도 주인이라기보다는 대리인에 가까운 인물이다. 국가가 그의 특수한 지식과 역량을 인정해 화성을 탐사·연구하도록 위임받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외롭게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대적 현실이 그를 주인에 가까운 사고로 재무장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자리나 성과 기반 인센티브 따위에 신경 쓸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마션은 ‘불가능 속에서 가능’을 찾는 원동력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조직 속에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월급쟁이 경영자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 사회 전체의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마션’의 국장처럼 대리인들이 혁신과 실험에 저항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성과에 민감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전문 경영인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데 매우 보수적인 사회에서, 그들은 ‘가만 있으면 절반은 한다’는 사고에 빠지기 쉽다. 놀라운 시도를 통해 회사의 퀀텀 점프를 유도하기보다는, 기존에 쌓아 올린 성과를 까먹지 않기 위한 실수 없는 경영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

오너 경영의 두 얼굴… 혁신 주도 탄력, 경영 투명성 저해

가만 보면 과거와 다른 경영 패러다임을 제시해왔던 기업인들은 거의 오너들이었다. 예를 들어 최근 소통 경영으로 주목받고 있는 동국제강의 혁신 주도자는 현재 옥중에 있는 장세주 회장의 친동생인 장세욱 부회장이다. 재벌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장 부회장의 특이한 이력은 보수적인 철강업계에 새로운 조직관리 방식이 대두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CEO가 무작위로 연락한 여러 부서 직원들과 함께 차를 마시는가 하면, 회사의 파티션을 없애 직원들이 계급에 구애받지 않고 수평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새로운 자리 배치 방식에 적응하지 않는 부서를 모니터링하는 방식도 재미있다. 전담 조직원들이 각 부서를 돌며 혁신 규정을 지키지 않는 관리자들에게 ‘부장님 또 이 자리에 앉으셨네요’ 라는 큐(cue)를 주며 웃음을 동반한 변화를 유도한단다. 위계서열에 입각한 효율주의, 관리주의 관행을 중시하는 철강업계의 기존 문화에서는 좀처럼 시도되기 어려운 혁신이다. 만약 장 부회장이 오너 가족이 아니었더라면 변화는 금세 난관에 부닥쳤을 것이다.

현대카드의 디자인 경영을 이끌고 있는 정태영 사장도 오너인 정몽구 회장의 사위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상당수 권한이 그에게 위임돼 있다. 물론 면세점 경쟁을 둘러싸고 ‘그만 둘 수도 없는 오너의 어려움’을 고백했던 어느 유통사 대표처럼 책임의식 또한 강할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금융업계의 분위기를 새로운 문화로 변화시켜 나가는 정 사장의 경영은 오너 일가의 강력한 신뢰와 권한 이양 없이는 실현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서비스 선택제’를 도입했던 모 증권사의 CEO는 업의 본질을 거스르는 변화를 시도하자마자 내부 저항에 부딪혔고, 결국 계약에 의해 보장받은 임기까지만 자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세간에서는 오너 일가의 관심에 의해 발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대쪽 자세’를 유지하게 된 것이 사실상 좌절의 원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오너 일가는 혁신을 과감히 추진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의 경영 주도는 경영의 불투명성과 권위주의 등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오너 경영의 두 얼굴인 셈이다.

'전문 경영인 대세 시대'…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시각 필요

그러나 앞으로 전문 경영인 위주 관리 방식은 좀 더 확산되어 갈 전망이다. 특히 조직 경영의 이해관계자가 다양해질수록 체계화된 운영을 위해 소유와 경영을 구분하려는 관행이 확대될 것이다. 다만 이들의 과감한 혁신 주도를 위해 오너를 비롯한 주주들이 보장해줘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단기적인 수익성 위주의 접근을 지양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지현 연세대 경영대 교수와 크리스티나 팡 뉴욕대 교수가 세계적인 학술지 ‘전략 경영 저널’(Strategic Management Journal)에 발표한 연구가 인상적이다. 조직 구성원들이 저마다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을 가정해 봤을 때 실제보다 약 5-10%가량 성과를 부풀리는 경우가 오히려 장기적 경영 성과에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보다 더 달성 수준이 포장되면 경영 성과가 훨씬 떨어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교수와 팡 교수의 연구는 지나치게 단기적으로 수익성과 조직 성과 기여 수준을 평가하는 관행이 혁신을 오히려 저해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대리인들이 좀 더 신뢰에 입각한 행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당장 자신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더라도 중장기적으로 꼭 필요한 투자와 혁신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

■천영준 책임연구원 프로필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정보산업공학 석사, 기술경영협동과정 박사- 다음소프트 연구자문역- 합창단 Chantez a dieu, 오페라단 '청 ' 자문위원-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현)/저서 <직장인 4대 비극> <바흐, 혁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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