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는 역사·안보 딜레마, 미·중 갈등 등 '3중 복합 딜레마'에 처해 있다

최상 시나리오는 동아시아에서 다자적 안보공동체 출현… 3단계 연계 전략 펴야

성공적 수행은 ‘동아시아 평화·번영 공동체’ 수립, ‘휴전 체제’ 해소로 이어질 것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데일리한국=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칼럼] 한중일 정상회의가 11월 1일 열린다. 3년 만의 일이다. 이를 앞뒤로 한중 정상회담과 중일 정상회담도 개최되며, 한일 정상회담도 11월 2일에 열릴 전망이다. 한일 정상회담도 3년 만의 일이다. 중단되었던 두 개의 외교 채널이 가동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3년이나 중단되었던 그 간의 경위를 생각하면 회의의 실질적·구체적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향후 구축될 지역 질서에서 3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커다란 그림을 확인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반면 3년 동안 이 지역에서는 중·일 간에 국력의 역전이 일어났고, 미·중 간에 세력 전이가 일어나면서 지역 질서가 급격하게 변했다. 그 때문에 3국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는 더 복잡해졌다. 이를 아울러 생각하면 3년의 손실은 더 커 보인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한국 외교가 일궈낸 성과

사실 한중일 정상회의는 한국 외교가 일구어낸 소중한 성과 가운데 하나이며, 한국 외교가 국제적 활동 공간을 확대해나가는 데 훌륭한 자산이 되어 왔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1999년 마닐라에서 열린 제3회 '아세안+3'회의에서 한중일 3국의 정상이 만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바로 직전의 제2회 '아세안+3' 회의에서는 한국이 동아시아경제협력비전그룹의 창설을 제안했던 바 이것은 동아시아공동체 논의의 출발점을 이루는 획기적 제안이었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동아시아에서 다자간 협력의 틀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창출해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2008년부터는 한중일이 따로 정상회담을 갖기 시작했고 여기에서도 한국은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2010년 제주도에서 개최된 제3회 회의에서는 의장국인 한국이 주도하여 협력비전 2020을 채택했고, 2011년에는 서울에 한중일협력사무국(TCS)을 설치하여 중일 사이에서 적극적 협력유도자의 역할을 자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외교적 자산을 두고도 냉각된 한일관계의 여파로 한중일 정상회담을 개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큰 외교적 손실이었다. 한일관계뿐 아니라 중일관계에서도 역사·영토 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커진 탓이었지만, 갈등하는 현안이 있을수록 더 자주 만났어야 했다.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한중일 정상이 3년 만에 만남의 자리를 갖기로 한 데에는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한국의 외교 당국에 박수를 보낸다.

한일관계를 돌아보면 아쉬움은 더 커진다.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는 해이다. 그러나 여러 지표에서 한일관계는 2011년을 정점으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역 질서의 급격한 변화라는 외부 환경을 공유하고, 저출산·고령화 등의 난제 속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공동 과제를 안고 있는 양국의 협력 필요성은 더욱 증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위안부 문제를 핵심으로 하는 과거사 문제에 더해 지난 9월에는 일본에서 안보법안이 강행 통과됨으로써 양국관계를 풀어가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한국 외교의 '3중 복합 딜레마'

일본의 안보법안 통과로 한국은 '3중의 복합 딜레마'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첫째는 역사와 안보의 딜레마이다. 과거사 문제를 포기하기에는 안보적 유인이 약하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 해결에 걸리는 시간을 염두에 두면 안보 문제는 단기적이고 임박한 문제여서 한국 정부는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라도 안보 문제에 대한 논의 구조를 마련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둘째는 가장 널리 공유되고 있는 딜레마로서 대북 억지력 강화와 일본의 한반도 개입 가능성 제고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른바 ‘양날의 칼’론으로 북한 문제로 인한 남남 갈등에 더해 한일 간 안보 협력을 둘러싼 남남 갈등도 일어날 태세다. 셋째는 일본의 안보법안 통과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고 있는 딜레마이다. 즉 미·중 사이의 딜레마다. 한일 간 안보 협력은 양호했던 한중 관계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으로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역사 마찰이 심화되어 한국이 중국 입장으로 경사되고, 미·중 대립이 중·일 대립으로 격화하는 가운데 한국이 미일 동맹에 적대적인 북·중·러 협력 구도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시나리오이다. 최악은 아니라도 피해야 할 시나리오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전통적인 대립 구도가 부활하는 것이다. 반면 최상의 시나리오는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로 군비 관리의 필요성이 증대하여, 동아시아에서 군비 관리를 위한 다자적 안보공동체가 출현하는 시나리오이다. 한국 외교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 최상의 시나리오가 현실성을 띠도록 노력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한국 외교의 3단계 순차적 연계 전략

이를 위해 한국 외교에 3단계의 순차적 연계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는 역사와 안보 협력의 ‘역’ 연계 전략이다. 일본의 안보 역할 확대를 역사 문제에서의 우려 해소에 연계시키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위안부 문제와 안보 협력 이슈의 분리 병진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지역 내부의 도전 과제와 미래로부터의 도전 과제, 가령 에너지와 환경, 질병과 재해 등의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포괄적인 안보 협력 속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미래가치를 공유하는 가운데 과거사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한일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개선을 연계하는 전략이다. 한일관계와 동시에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연계하여, 북일관계 개선으로 나아가게 하는 전략이다. 이것은 남북한과 일본을 각각의 꼭지점으로 하는 핵심 삼각형의 안정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로써 일본의 한반도 개입 가능성을 낮추면서 일본의 안보 역할 확대를 북한의 안정화 요인으로 활용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셋째는 핵심 삼각형과 배경 삼각형 연계 전략이다. 둘째 단계에서 시도한 핵심 삼각형의 안정화 속에서 한일관계를 강화하고, 이를 지렛대로 삼아 미중러를 꼭지점으로 하는 배경 삼각형의 안정화를 이루는 것이다. 즉 한일관계를 매개로 하여 한중일, 한미일 삼각관계 속의 미중관계를 안정화하고, 한러일 삼각관계를 발전시켜 러시아를 지역의 안정화 요인으로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다.

3단계 해법의 성공적 수행은 군비 관리, 경제 협력, 평화 구축의 ‘동아시아 평화·번영 공동체’ 수립으로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이는 또한 남북한이 극도로 대립하는 ‘휴전협정 체제’ 해소로 이어질 것이며, 그 결과 일본의 안보법안의 실질적 폐기로 이어질 것이다. 어려운 길이라 해도 한국 외교는 이 길을 선택하고 걸어갈 수밖에 없다. 한중일 정상회담과 이를 계기로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이 이러한 외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프로필
서울대 외교학과, 서울대 외교학 석사, 도쿄대학 국제정치학박사- 도호쿠대학 법학연구과 교수-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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