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민심의 3가지 핵심 코드..짧은 기간 광범위한 세대·지역·직업 간 소통 가능

2006년 추석은 이명박-박근혜 지지율 역전 계기..1997년 추석 거쳐 이회창 추락

이번 한가위 민심은 새정치연합과 신당 중 어느 쪽이 잡을까?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칼럼] 한가위는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각별하다. 풍성한 오곡이 있고 과일, 해산물을 비롯해 먹거리가 넘치는 명절이다. 풍요를 기원하고 조상들에게는 이런 풍성함을 선사해준 데 대해 감사를 차례상으로 표시한다. 추석의 백미는 무엇보다 온 가족의 모임에 있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분화는 더욱 급속도로 이루어졌고 일년에 한두 번 명절날 모이는 자리 이외에는 함께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추석 민심은 한국 정치사에서 크고 작은 변천의 전환점이 되어왔다.

2006년 추석은 이명박-박근혜 후보 지지율 역전의 계기

지난 2007년 대선은 본선보다 예선이 더욱 흥미로웠다.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진 정치 환경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당 대표의 대선 레이스는 손에 땀을 쥐듯 팽팽했다. 2006년 지방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거침없는 하이킥을 해나가던 박 대표에게 대선은 손에 잡힐 듯 했었다. 그러나 2006년 초반만 하더라도 좋은 승부가 되리라 예상했던 민심은 추석을 기점으로 이 전 시장 쪽으로 기울어졌다. 여기에 몇 가지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2006년 추석은 10월 6일 금요일이었다. 앞뒤로 2년 간은 9월에 추석이 있었고 10월에 추석이 있는 해는 2001년 이후 5년 만이었다. 2006년 7월 5일, 북한은 함경도 무수단리 미사일기지에서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했다. 추석 전이었다. 남북관계가 좋을 것으로 점쳐졌던 노무현정부였지만 미사일 발사로 남북 긴장은 고조되었다. 차기 대선후보 경쟁에도 지각 변동이 일어났는데 추석 명절이 도화선이 되었다. 미사일 발사로부터 추석까진 약 3개월의 시간이 있었지만 대선후보 지지율엔 급격한 영향은 추석을 관통하면서부터 작동한다. 일종의 추석 현상이 발생한 탓이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국가적 안보 위기 상황으로 연결되었고 차기 대선후보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국가 위기 리더십’과 ‘안보 리더십’이 집중 부각되었다. 지금이야 박 대통령의 안보 리더십에 대해 결정적이거나 치명적인 약점을 발견하기 어렵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대체적인 추석 민심은 여자보다는 남자 대통령이 안보 위기 리더십 측면에서 더 나을 것 아니냐는 판단이 우세했었다.

제17대 대통령선거를 1년 앞둔 2006년 리서치앤리서치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전국700명 유선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7%P)를 분석해 보면 6월까지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선전하고 있었다. 특히 6월 지방선거를 한나라당의 승리로 이끌고, 선거 유세 중 불의의 피습을 당하며 지지층들의 성원은 절정에 달할 정도였다. 2006년 6월 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30%에 육박하는 29.3%의 지지율로 이 전 서울시장의 18.4%에 비해 10%P이상 앞서나갔다. 그러나 북한 이슈가 도화선이 되고 추석 민심이 쐐기를 박는 역할을 해버린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7월 5일) 이후인 8월 조사에서 이 전 서울시장은 25.1%였고 박 대표는 22.1%로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으로 변하게 된다. 아직까지는 박 전 대표의 완전 열세 국면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추석이었다. 추석(2006년 10월 6일) 이후 실시된 리서치앤리서치의 조사(10월 19일)에서 이 전 서울시장은 30.5%로 30%대에 진입하면서 22.4%에 머무른 박 대표와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연말(12월) 무렵 이 전 시장은 34.5%로 박 대표(20.7%)와 15%P 가까운 격차를 벌리며 추격을 불허한다(그림1). 추석을 중간에 놓고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거의 변하지 않은 반면 명절 여론을 안고 이 전 시장은 지지율이 두 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사실상 추석 민심이 대통령을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2006년 추석 민심을 조금이라도 선제적으로 효율적으로 준비했더라면 박 대통령의 당선 운이 더 빨리 찾아오지 않았을까.

추석 민심은 왜 선거의 향방을 바꿔놓는가?

선거의 향방을 바꾸어놓는 추석 민심 현상은 무엇인가. 추석이라는 명절의 핵심 코드를 이해한다면 왜 이토록 추석 민심에 집착하는지, 신경을 써야 하는지 쉽게 해답을 얻게 된다. 우선 추석은 모든 민심이 한데 뒤섞이는 민심의 용광로가 된다.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밥상 위에 오른다. 추석은 연초에 있는 설날과 달리 주로 성과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나눈다. 나라 살림은 어떠했는지, 자녀들의 취업이나 학교 진학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가 다루어진다. 퇴직 무렵에 있는 친지 분들께는 정년 연장이 가능한지, 정년이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도 묻게 된다. 사업을 하고 있는 친척들은 올해 성과가 있었는지, 힘든 점은 무엇이었는지, 내년 전망을 어떨지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시사 토크’ 보따리가 풀어지기도 한다. 주로 덕담을 위주로 새해 복 많이 받기를 염원하는 설날과는 다른 풍경이다. 추석이 일상적인 모습과 다른 차이는 바로 짧은 기간 광범위한 세대·지역·직업 간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추석을 주목하는 3대 코드이다. 선거에서 지지율을 변화시키는 핵심 변수이기도 하다.

3대(代)가 함께 모이는 추석 밥상은 세대 간 소통의 자리

우선 세대 간 소통이다. 추석은 온 가족이 모이는 자리이다. 할아버지부터 갓 태어난 손주에 이르기까지 3대 또는 4대 이상이 모이는 자리가 된다. 차례상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교육, 취업, 노후, 복지 등 가장 중요한 정책들에 대한 세대 간 의견을 공유하게 된다. 지지하는 정당에 따른 정치 성향 차이뿐 아니라 연령에 따른 차이는 최근 더욱 두드러진다. 가족들이 모여 정치 그리고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특정 인물에 대한 선호가 확대 또는 축소되기도 한다. 2006년에는 세대 간 소통이 이루어지는 추석을 거치면서 40대를 중심으로 이 전 시장에 대한 선호가 더욱 커졌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던 이 전 시장의 인생 성공 신화가 추석 기간 회자되었고 몇 세대를 넘나들며 공유되었다. 추석을 거치면서 세대 간 민심 변화는 2006년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역대 가장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펼쳐진 박근혜 후보,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의 3자 대결은 추석 밥상을 통째로 뒤덮었다. 지지하는 후보를 두고 부모와 자식 세대 간에 갈등까지 빚어지는 불상사가 전해질 정도였다. 2012년 추석은 9월 30일 일요일이었다. 추석 이전에 세 후보 모두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시간적으로 추석보다 더 늦어질 수도 없었겠지만 추석 밥상 위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선 추석 전의 활발한 행보가 필수적이다. 이른바 추석 민심이란 현상이 명절이 지나자마자 바로 찾아오기 보단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꾸어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2012년 대선 결과에 대한 분석 중에 세대와 관련해 주목했던 현상은 박근혜 후보에 대한 ‘50대의 절대적 지지’와 ‘20대의 보수화 경향’이었다. 지표상으로도 확인 가능하다. 리서치앤리서치가 2012년 실시한 대선후보 여론조사를 분석하면 추석 민심의 변화를 뚜렷하게 읽을 수 있다. 박근혜-안철수-문재인 3자 가상 대결 질문에서 추석 전인 9월 28일 조사(전국1000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박 후보의 세대별 지지율은 20대 21.3%였고 50대는 53%였다. 그러나 추석을 지난 후인 10월 20일 조사에서는 20대 31.8%, 50대는 61%로 나왔다(그림2). 추석 연휴 기간 가족들이 모이면서 세대 간 소통한 결과가 지표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관측될 수 있다. 실제로 박 후보가 당선시 득표한 세대별 득표율과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추석을 거치면서 20대와 50대의 박 후보 지지가 더 강화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지역 간 소통.."수도권·지방의 여론이 합쳐지는 용광로"

추석 명절의 또 하나의 코드는 지역 간 소통이다. 3천만 명 가까이 이동하고 500만대 가까운 차량이 움직이는 추석은 지역 간 소통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거의 유일한 최대 명절이다. 설날은 집안의 내력에 따라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 등에 따라 양력 1월 1일을 쇠거나 음력 설날을 쇠는 경우로 나눠지기도 하지만 추석은 그저 추석일 따름이다. 조상들에 대한 성묘 기간까지 포함하면 거의 보름 이상을 추석 명절과 관련해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게 우리의 생활양식이다. 수도권의 민심이 영남과 호남으로, 지방의 민심이 서울로 모아지고 흩어지는 용광로가 추석이다.

한국 대통령선거의 한 드라마를 엮어냈던 1997년 추석은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었다. 1997년 추석은 9월 16일 화요일이었다. 한국갤럽의 1997년 대통령선거 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를 분석하면 추석 전인 7월 21일 조사(전국1012~5260명 전화조사 표본오차 95%신뢰수준±1.3~3.1%P)에서 대세론을 형성했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37.9%였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25.5%로 이 후보에 비해 열세였다. 추석은 선거 판세를 뒤엎는다. 추석이 지난 후 9월 27일 실시된 조사(조사 개요는 7월 21일 조사와 동일)에서는 김 후보가 31.9%로 1위 자리에 오른다. 다음으로는 추석 민심의 호응을 받은 이인제 후보로 23.3%의 2위였다. 추석 전에 부동의 1위였던 이회창 후보는 명절 민심 역풍으로 10%대인 17.1%로 곤두박질쳐버린다. 명절 민심 역풍을 막지 못함으로써 같은 당의 이인제 후보에게까지 추월당한다. 결국 이인제 후보의 탈당과 한나라당의 대선 패배로 마감된 선거 결과를 안다면 추석 민심은 더욱 중요해진다. 특히 이인제 후보가 한나라당의 텃발이자 이회창 후보의 요충지인 PK지역의 추석 민심을 잡았다면 말이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도 추석을 거치면서 박근혜 후보의 지역별 지지율은 요동쳤다. 수도권 지역에서 고향을 다녀온 유권자들의 마음에 변화가 생겨난 것이었다. 박 후보는 2012년 추석(9월30일 일요일) 이전인 9월 28일 실시된 리서치앤리서치 조사(박근혜-안철수-문재인 3자 대결)에서 인천·경기 35.8%, 대구·경북 63%, 부산·울산·경남 47.7%로 나타났다. 추석이 지난 후인 10월 20일 조사에서 인천·경기 48%, 대구·경북 66.9%, 부산·울산·경남 50.4%였다(그림3). 가장 많은 유권자가 살고 있는 인천·경기 지역의 표심은 추석을 거쳐 변화를 보였다. 전통적인 지지 기반인 영남 지역에선 추석을 거치며 결집이 더욱 공고해졌다. 고향의 표심을 거꾸로 영향받는 대대적인 지역간 소통이 추석 명절을 지나며 이뤄졌기 때문이다.

직업 간 소통의 자리..주요 정책·이슈 둘러싼 대화 진행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추석 민심의 특징 코드는 직업 간 소통이다. 직업 내의 소통은 평소 직장 생활이나 사회 생활을 통해서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나 대선후보들의 공약 또는 정당의 총선 공약 등을 평가하고 싶어도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이해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추석에는 온갖 직업에 종사하는 친지, 친척 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둘도 없는 기회가 된다. 평소 노동개혁, 통상임금, 창조경제, 정치개혁, 재신임, 혁신위, 중견국 외교, 대북 협상 등 알기 힘들었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자유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다른 때 같으면 수줍기도 하고 낯을 가리기도 해서 묻기 힘들었던 궁금증들이 풀어지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어떤 정당이 더 경쟁력이 있는지, 어떤 후보가 더 대통령감에 가까운지, 현 정부와 대통령은 정말 잘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피게 된다. 노동개혁같은 어려운 주제라도 공장에서 일하는 친척과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촌들에게 물어보면 이해는 빨라진다. 2006년 추석을 지나면서 이명박 전 시장이 당내 경선의 승기를 잡았던 데에는 화이트칼라층의 역할이 컸었다. 온가족이 모이는 추석 밥상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대화 주제 1순위였다. 대통령후보에 대한 비교 평가를 하면서 ‘경제를 잘 할 대통령후보가 누구인지’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음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을 게다. 재임시의 평가와는 별개로 2006년 당시 이 전 시장은 대기업 CEO(최고경영자) 출신에다 청계천의 기적과 서울시 대중교통 통합시스템으로 ‘능력 있는’ 후보로 통하는 때였다. 다양한 직업의 가족들이 모여 공통적으로 나눈 주제가 경제 이슈였고, 이 전 시장은 추석 밥상머리부터 선점하는 정치적 이익을 가득 누렸다.

추석이 총선·대선 운명 결정..야권 중 어느 쪽이 한가위 민심 잡을까?

추석이 총선과 대선을 운명 짓는다. 역대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뒤돌아보면 결코 허튼소리가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정책 협상을 가급적이면 추석 전에 마무리짓고 국회의원들도 추석 전 국정감사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려고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는 이유이다. 많은 가족들 즉 유권자들의 추석 밥상에서 무엇보다 관심을 끌고 누구보다 주목받기 위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당내 갈등을 최대한 빨리 봉합하고 재신임 정국을 일단락시키려는 것은 추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 움직임도 추석 밥상에서부터 관심을 끌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올해 추석은 9월 27일 일요일이다. 총선을 앞둔 마지막 추석이기도 하다. 보름달처럼 풍성한 국민의 마음을 어느 정당이, 어떤 정치인이 사로잡을까.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길리서치 팀장-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이사,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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