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큰 틀의 통일 이뤘으나 경제·사회 통일은 미완성..'완전 통일'에 한 세대 더 필요

남북, 교류·협력 강화로 경제력 격차 축소해야 '통일비용' 줄어..군사적 긴장 완화해야

김동명 독일문제연구소(RIGA) 소장
[데일리한국= 김동명 독일문제연구소장 칼럼] 동·서독은 분단된 지 45년 만인 1990년 10월 3일 통일되었다. 독일은 오는 10월 3일 통일 25주년을 맞는다. 올해 경축 행사는 10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 동안 헤쎈주 수도인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경축미사를 포함해 콘서트, 영화, 연극, 각종 학술 행사 그리고 '경계를 넘어서'(Grenzen ueberwinden))란 주제의 불빛축제 등이 계획되어 있다. 경축 행사에 초청된 1,600명의 하객 중에는 통일 총리를 지낸 헬무트 콜과 구소련 공산당서기장을 지낸 고르바초프도 포함돼 있다. 2유로 짜리 기념주화도 발행된다.

큰 틀에서 독일 통일은 이미 오래 전에 완성

25년이 지난 독일은 대부분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정치·행정·사법·경제·군사 분야에서의 외형적 통일은 이미 1990년대 초기에 마무리되었다.

독일 통일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동독 주민들이다. 이들은 공산정권의 정치적 억압과 감시로부터 해방되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총 맞을 위험 없이’ 언제, 어디로든지 이주할 수 있게 되었다.

동독 지역 주민들의 경제력이 현저히 향상된데다 동일한 사회보장 혜택이 주어짐으로써 동·서독 지역 주민 간의 삶의 질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소비생활환경, 교육, 문화, 과학 연구, 자녀 육아, 환경, 의료, 그리고 기대수명 분야에서는 동·서독 지역 주민들 간에는 더 이상 차이가 없다.

동독 지역은 엄청나게 변모되었다. 통일 직전 동독은 사회주의 국가 중 가장 경제력이 뛰어난 국가로 알려졌지만, 통일 직후 드러난 동독의 자화상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본이 부족하고 생산 시설은 노후했으며, 인프라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통일 후 동독 지역 5개 주의 재정 상태는 현저히 개선되었다. 동독 지역 주민들의 일인당 국민총생산(GNP)은 90년대 초보다 배 이상 뛰었다. 연방정부의 ‘동독 지역 재건 계획’(Aufbau Ost)에 힘입어 동독 지역의 인프라는 현대화되어 이미 오래 전에 서독 수준에 도달했다. 통일 후부터 진행된 17개 교통망 현대화 프로젝트는 거의 대부분 완료되어, 동독 지역의 도로 상태는 최상의 수준을 자랑한다. 과거 동독 시절 전화를 신청할 경우 10년이나 걸릴 정도로 열악했던 통신망은 유럽 내 최첨단 시스템으로 탈바꿈했다. 역사적인 옛 도시들도 폐허 직전에서 모두 살아났고, 많은 문화재도 복원되었다. 도시의 주택들도 개선되었고, 통일 전 심각했던 주택난은 모두 해소되었다. 구시대 잔재인 환경 오염이 제거되었고 생태계를 고려한 경제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통일 후 유럽과 국제무대에서 독일의 위상은 엄청나게 신장되었다. 독일 통일은 유럽의 동서냉전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 폴란드 등 동구 국가의 주권 회복과 이들의 ‘서(西)유럽화’를 촉진시키는 도화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통일 후 유럽의 중심국으로 부상한 독일은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중·동·남부 유럽으로 확대되는 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1995년 15개국이던 EU회원국은 2004년 10개국·2007년 3개국의 추가 가입으로 모두 28개국으로 늘어났다. 독일은 미국(22%), 일본(10.8%) 다음으로 유엔 예산의 7.1%(2013)을 담당하며, EU 내에서 제일 많은 분담금(21.3%: 2014)을 내고 있다. NATO의 ‘정치기구화’와 ‘유럽화’를 위한 독일의 노력에 힘입어 NATO 회원국도 총 28개국으로 늘었다. 독일은 나토에서도 미국(21.96%: 2012) 다음으로 많은 분담금(15.3%: 2012)을 내며, 해외파병 작전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2,820 명: 2015). 핵비확산(NPT) 체제를 신봉하는 독일은 ‘P+1’의 지위로 이란 핵협상 타결에도 기여했다. 독일은 최근 내전으로 고통받는 시리아와 이라크 등 중동 지역 출신 난민 2만 여명을 EU회원국 중 가장 먼저 수용했다. 독일 정부의 인도주의적 차원의 난민 수용 결정은 과거 나치 만행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의미를 담으면서, 동시에 EU 차원의 난민 공동 정책을 도출하기 위한 외교적 시도로 보인다.

양차 대전의 주역이었던 독일은 통일 후 줄곧 ‘독일의 유럽화’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 그리스 재정 위기와 난민 사태에서 보듯이 EU 내에서 정치·경제적 발언권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의 독일화’란 주변국들의 우려가 커져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스 경제 위기로 야기된 EU 분열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NATO 분열 등의 위기 상황을 장차 어떤 리더십으로 극복해나갈지, 통일 독일은 신냉전이 도래한 현시점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현재 동·서독 주민의 90% 이상은 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통일 후 생활에 대해 동독 출신 76%, 서독 출신 83%가 만족하고 있으며, 불만족을 표시한 주민들은 동·서독 출신 모두 5%이내뿐이다.

25년이 지났으나 경제·사회분야 통일은 아직도 미완성

25년이 지난 지금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통일 과정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여전히 상존한다. 아직도 경제·사회 분야에서의 통일은 진행 중이다. 동·서독 지역 간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부분은 경제력, 재산, 유산·상속, 임금, 그리고 인구 분야이다.

동독 지역의 GDP는 서독 지역 대비 67%(2013), 생산성은 76%(2013), 임금은 75%(2013) 수준이다. 통일 후 동독 지역 경제가 상대적으로 서독 지역보다 침체된 이유는 한마디로 지역경제를 견인할 동독 기업들이 없기 때문이다. 동독 국영 기업체의 민영화 과정에서 많은 기업들이 도산했다. 통일 협상 과정에서 실물경제보다 4-5배나 과대평가된 1:1 화폐 통합으로 인해 대부분의 동독 기업은 국제경쟁력을 상실하며 파산했다. 대기업 부재는 경제성장, 노동생산성 및 실업 구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역 경제의 침체는 세입 부족과 지방정부의 재정 부실을 초래하고 있다.

최근 통일 25주년을 맞아 ‘베를린 인구·발전 연구소’(Berlin Institut fuer Bevoelkerung und Entwicklung)는 25개 분야를 선정하여 동·서독 지역 간 실태를 분석했다. 주요 내용을 간추려 보자.

1) 서독 지역이 동독 지역보다 여전히 부유하다. 전체 독일 부유층 500명 중 대부분은 서독 지역에 거주한다. 동독 지역에 6명, 그리고 서베를린에 14명이 거주할 뿐이다. 인기 있는 차종은 동독 지역에서 체코산 Skoda인데 비해, 서독 지역에선 BMW이다.

2) 통일 후 독일 경제 성장을 주도한 것은 서독 기업이다. 2013년 독일은 중국에 이어 세계 제2위 수출대국으로 1조 1천억 유로를 수출했고, 이 가운데 93%가 서독 기업에 의한 성과이다. 30대 닥스(DAX) 상장 대기업은 모두 서독 지역에 있다.

3) 통일 후 노동시장 여건이 많이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서독 지역보다 배로 높다. 2014년 전체 독일 실업률이 6.9%인데 반해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10%이다. 반면 동독 지역 여성의 취업률(75%)은 서독 지역(70%)에 비해 다소 높은 편이다.

4) 동독 지역 주민들의 평균 월수입은 2,800 유로이다. 통일 직후 이들의 수입은 서독 주민들의 50%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75% 수준까지 올라 왔다. 동독 지역 주민들의 보유재산은 아직도 서독의 1/2 수준에 그치고 있다.

5) 동독 지역 주민들은 서독 지역 주민들보다 더 많은 연금을 수령한다. 이유는 연금 납입 기간이 더 길었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으로 동독 지역 남성 주민들의 연금 평균 납입 기간은 44.9년인 반면 서독 지역 남성 주민들의 납입 기간은 40.4년이다. 여성의 경우 동독 지역 주민의 납입 기간은 39.5년인데 비해 서독 지역 주민의 경우 육아로 인해 26.5년에 불과하다.

6) 통일 직후 1,450만 명에 달했던 동독 지역 인구는 2013년까지 집계로 약 2백만 명이 줄었다. 반면 서독 지역 인구는 250만 명이 늘었다. 동독 인구가 줄게 된 이유는 그간 180만 명의 동독 지역 주민들의 서독 이주와 동독 지역의 출생률 저하에 기인한다.

7) 통일 직후 동독 지역 여성들의 출산율(0.8명)은 현저히 낮아졌다. 사회 변혁에 따른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결혼을 기피하거나 미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동독 지역 여성들의 가임율은 상승하기 시작하여 2007년 이후부터 서독 지역을 추월하고 있다.

8) 외국인 이주민들은 서독 지역을 더 선호한다. 상대적으로 동독 지역 주민들이 외국이민자 수용 문제에서 더 완강한 태도와 극우주의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9) 1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도시 75개 중 65개 도시가 서독 지역에 있다.

10) 동독 지역은 통일 후 점차 노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동독에서 20세 이하 젊은층은 감소되고, 59세 이상 노인층은 증가하는 추세이다.

11) 분단 당시 동독은 종교를 탄압했고, 무신론자들을 장려했다. 이같은 영향으로 통일 후에도 동독 지역 주민들의 3/4은 어떤 종교도 갖고 있지 않다. 서독 지역에서도 교회를 이탈하는 수가 증가하고 있어서 통일 후 전체 독일에서 종교인 수는 줄고 있다.

‘새로운 장벽’이 머릿속에?: 여전히 차이를 보이는 정치이념

통일에 대한 장밋빛 환상에 젖어 있던 일부 동독 지역 주민들은 냉혹한 현실을 접하며, 과연 동·서독이 과거 정치인들이 내걸었던 구호처럼 공동으로 성장했는지, 옛 장벽 대신 새로운 장벽이 머릿속에 들어서지는 않았는지를 묻고 있다. 아직도 동독 지역 주민 중 2/3는 서독 주민들로부터 ‘2등국민’으로 취급당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일반적으로 서독 출신들이 동독 출신들(Ossis: 오씨)을 연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좌파주의자’(links)이다. 동독 출신들은 서독 출신들(Wessis: 베씨)에 대해 '부유하고(steinreich) 거만하다(arrogant)'고 연상한다.

경제·사회 분야에서의 차이와 맞물려 정치이념과 정치문화 분야에서도 양쪽 지역 주민들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통일 25년이 지난 지금 독일 전역에 사회주의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동독 체제 와해와 더불어 사회주의 정치이념이 사라질 것으로 예견되었으나, 구동독 집권당이었던 사회주의통일당(SED)과 그 후속 정당(민사당, 현재는 좌파당: die Linke)은 통일 후에도 여전히 독일 내에서 지지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동독 지역에서 좌파당은 지역 주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민정당(Volkspartei)으로 이미 자리매김했고(지지율 20%), 심지어는 서독 지역(함부르크, 브레멘, 헤쎈, 자르란트) 주의회에도 대표를 진출시키고 있다.

정치이념 관련 여론조사에서도 동·서독 지역 주민들 간에는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가 최고 국가형태인지에 대해서 동·서독 지역 주민들은 차이를 보인다(동독 지역 72%, 서독 지역 80%). 통일 직후 1990년에 실시한 민주주의 만족도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는 동독 지역은 38%, 서독 지역은 85%를 나타냈다. 동·서독 지역 주민들은 동독의 구 정치체제가 독재국가였음에는 대부분 동의하나(동독 70%, 서독 82%), 불법국가였다는 인식에는 차이를 보인다(동독 46%, 서독 71%). 통일된 독일연방공화국(BRD)이 정치적으로 고향인가에 대한 질문에도 동·서독 지역 주민들의 인식에는 차이가 있다(동독 47%, 서독 73%). 그러나 19-29세 의 젊은 세대들은 지역 구분 없이 통일된 독일이 자기 고향이라고 응답(동독 64%, 서독 65%)한 점으로 볼 때 통일 이후 출생한 주민들 간에는 국가정체성과 관련해 인식의 차이가 거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독 지역 주민들의 선거 참여율은 서독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2013 총선시 서독 72.4%, 동독 67.6%). 그러나 통일 당시와 비교할 때 시간이 갈수록 모든 면에서 동·서독 지역 간 차이는 좁혀지고 있는 추세이다.

완전 통일로 나아가는 데는 또 한 세대가 더 필요

이번 연구를 맡은 클링홀츠 소장은 ‘통일은 어렵고 오랜 세월을 요하는 접근 과정’이라며, 양 독일 간 구조적 차이로 인해 아마도 완벽하게 통일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에 따르면 독일은 또 한 세대가 지난 2040년경에 가서야 비로소 완전한 통일을 이룰 것이다.

통일을 완성하기 위한 독일정부의 재정 지원 노력은 계속될 예정이다. 독일 정부는 지난 25년 간 동독 지역의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엄청난 재원을 투입했다. 베를린대 클라우스 슈뢰더 교수에 따르면 1991-2014년 동안 동독 재건을 위해 쏟아부은 통일비용이 약 2조 유로에 달한다. 매년 평균 약 1000억 유로가 동독 지역으로 유입되었고, 이는 독일 GDP의 4~5%에, 동독 지역 GDP의 약 30%에 해당되며, 한국 국가예산의 절반 정도에 달하는 금액이다. 오늘날 독일 정부는 통일비용 2조 유로 정도의 국가부채를 안고 있다.

1995년부터 2004년 동안 동독 지역 5개주의 재정 균형과 지역 재건을 위해 총 945억 유로가 지원되었고(연대협약: Solidarpakt I),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연대협약(Solidarpakt II)이란 이름으로 총 1,560억 유로가 지원될 예정이다. 독일 정부는 2020년부터 그간 동독 지역에 일방적으로 지원하던 체제에서 탈피해 연방 전체 중 구조적 취약 지역에 촉진·장려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남북한이 독일통일 25주년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

독일통일 25주년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시사한다. 장차 남북한이 지난 25년 간 독일에서 나타난 여러 현상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분단 기간을 어떻게 활용하며 통일로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통일 25년을 되돌아볼 때 그간 동독 지역에서 일어난 현상들이 통일 후 북한 지역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통일 직후 많은 북한 주민들이 남하할 것이다. 통일 초기에 북한 주민들은 바나나를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하며, 한국산 중고차나 가전제품을 소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눈에 보이는 생활 환경 개선 문제는 통일 후 초기 몇 년 동안만 북한 주민들의 관심사일 것이다. 국영 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대량 실업이 발생하고, 북한 지역 경제를 견인할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 지역 재정은 전적으로 한국 정부의 지원에 의존할 것이다. 북한 내 사회적 네트워크가 와해되고 사회적·직업적 경험과 성과, 그리고 자격증 등이 모두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통일 후 4~5년이 지나면 북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실망과 체념은 커져갈 것이다. 남한 출신 관료엘리트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남한 사람들과 같은 복지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북한 주민들의 희망은 점차 사라지는 대신 2등 국민으로 전락한 ‘우리’라는 동질감은 점차 커질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체제 변화에 따른 그들의 불안과 불만을 대변하고 해결해줄 수 있는 정치 세력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이들은 민주주의보다는 평등사회와 복지국가를 더 중시하고, 서서히 맹목적인 통일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사회정의와 실업 문제 해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한국 사회의 이방인으로 인식하며 북한 체제에 대한 향수를 보이는 북한 주민들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북한에 재현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통일 시 북한 지역 경제가 안정된 가운데 주민들에게 확실한 일자리가 보장되며, 그들의 내면세계를 동시에 만족시켜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2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경우 경제 분야와 사회 분야 통일은 완성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통일의 기회가 오면서 정치가들은 경제적 논리보다는 정치적 논리로 ‘화폐·경제·사회연합’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지도자들이 통일을 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았을 경우 동·서독 간 경제적 격차는 훨씬 줄어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남북한은 다행스럽게도 경제적 관점에서 통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남북한은 분단 기간을 잘 활용할 경우 현재 독일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분단 기간을 통해 접촉과 교류·협력을 강화하여 북한의 경제력을 최대한 향상시킬 경우 남북한은 경제적 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고, 이는 결국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는 첩경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교류·협력 강화는 북한 사회의 민주화와 북한 주민의 친(親)한국화에 기여할 것이다. 이는 점진적으로 남북한 주민들 간 동질성이 회복되고 통일 후 내적 통일이 더욱 촉진될 수 있을 것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25주년을 맞는 독일통일이 현시점에서 한반도에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남북한이 접촉과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점진적 방식으로 통일에 접근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남북 교류·협력 수준은 1945년 분단 당시의 동·서독 교류·협력 수준보다도 질적·양적인 면에서 훨씬 열악하다. 분단 직후 1945년부터 동·서독 간에는 교통·우편·통신 왕래가 가능했다. 동·서독은 기본합의서 체결(1972) 이후 꾸준한 접촉과 교류·협력을 제도화하여, 분단으로 야기되는 양 체제 간의 이질성을 하나씩 제거해 왔다. 그러나 25주년을 맞는 독일통일은 40년 간의 분단 격차가 25년 안에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하물며 남북한의 경우 국가형태의 차이, 엄청난 경제적 격차, 첨예한 군사적 대치,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인해 과거 동·서독보다 훨씬 더 많은 이질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역설적으로 동·서독보다 ‘훨씬 더 많은 교류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은 70년째 분단을 이어가며 교류·협력에서 첫 발자국도 제대로 떼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통일의 길이 얼마나 지난하며, 설사 통일이 되더라도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 얼마나 오랜 기간이 소요될지, 생각할수록 참으로 암담하다.

동·서독 간의 교류·협력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안보 문제가 양 독일 간의 교류·협력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서독 간에는 동족상잔의 비극도 없었을 뿐 아니라 분단 당시 동독은 서독에 대해 군사적 도발을 자행하거나 국제사회를 상대로 안보 위협을 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남북 교류·협력 관계는 6.25전쟁, 이후 지속되고 있는 군사적 긴장과 북한 핵 문제 등으로 인해 전 분야에 걸쳐 경색되어 있다. 안보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 간의 교류·협력 분야에서 그 어떤 본질적인 진전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북한 지도부는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난, 식량난, 에너지난, 그리고 대외지불능력 상실 및 열악한 인프라 문제 등이 공산 계획경제체제의 문제점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국가는 한국뿐이다.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군사 도발을 중단하며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핵 문제 등으로 전혀 이행되지 못한 채 사문화된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로의 복귀를 서둘러야 한다. 만약 김정은 정권이 이와 같은 민족사적 과제에 끝내 동참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고르바초프나 덩샤오핑과 같은 ‘신사고’(新思考)를 하는 새로운 지도자가 평양에 출현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손잡고 통일 환경을 조성해나가야 한다. 한반도 분단을 이른 시간 내에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김동명 독일문제연구소 소장 프로필
육군사관학교, 서울대 독어독문과, 독일 콘스탄츠대 국제정치학·독문학 석사, 콘스탄츠대 국제정치학 박사- 국방부 군비통제관실 북한 핵문제 담당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국방정책 담당관- 주독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국방부 군비통제관실 대북정책과장- 국제기구 포괄적 핵실험 금지기구(CTBTO) 국제협력과장- 독일문제연구소 소장(현)/저서 <독일 통일 그리고 한반도의 선택>(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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