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체 파이를 키우면서 분배 구조도 고쳐 동반성장을 이뤄야
초과이익공유,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등 정책과제를 실천해야
동반성장 위해 조속히 노동시장 정상화 추진하고 증세 논의해야
  •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17일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에서 '동반성장과 한국경제'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사진=김지수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편집자 주=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17일 오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총장 이동관)에서 '동반성장과 한국경제'라는 주제로 명사 초청 특강을 했습니다. 데일리한국은 주최 측의 동의를 얻어 특강 요지를 칼럼 형식으로 게재합니다. 정 전 총리는 이날 특강에서 "낙수효과와 분수효과를 결합한 동반성장만이 한국경제의 살 길"이라고 역설했습니다.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성장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분배 구조도 고치는 것이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뜻입니다. 정 전 총리는 동반성장을 위해 초과이익공유,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등 정책과제를 실천하는 한편 조속히 노동시장 정상화를 추진하고 증세 논의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데일리한국= 정운찬 전 총리 특강 요지/정리= 황혜진 기자]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면서 분배 구조도 고쳐 동반성장을 이루는 것이 한국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초과이익공유제와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통해 근로자와 협력업체들에게 성과가 합당하게 돌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한국의 자본주의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모습이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 결합 통해 한국경제 선순환시켜야

국민경제의 선순환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두 가지 흐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부자·대기업·성장산업 등 선도 부문의 성장 효과가 아래로 잘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낙수효과(top-down track)라고 부를 수 있다. 과거 반세기 동안 한국경제는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선(先)성장·후(後)분배의 불균형 성장전략을 지나치게 추구했다. 처음에 이 전략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지금은 낙수효과의 연결고리가 거의 끊어져 있다. 이 끊어진 고리를 다시 이어야 한다.

이제는 불법·편법을 근절하고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동반성장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중소기업 간의 하도급 거래에서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탈취 등과 같은 불공정거래 관행을 근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이러한 노력을 시장경제 원리를 파괴하는 과도한 규제라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아직도 남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불법과 편법, 그리고 경제력의 남용이야말로 시장경제를 파괴하는 요소이다. 따라서 만인이 법 앞에서 평등한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공정한 경쟁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 시장을 바로세우고 동반성장을 이끌어내는 길이다.

둘째로, 하도급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영세 자영업자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의식적 배려와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분수효과(bottom-up track)라고 부를 수 있다. 낙수효과의 정상화가 시급한 과제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것만으로 한국경제가 봉착하고 있는 양극화와 저성장 문제를 극복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시장이 아무리 공정하게 작동하더라도 능력이 부족해서 또는 운이 없어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극도의 불균형 성장전략을 추구한 결과 구조적 장벽이 너무 높게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다수 국민의 고용과 소득을 늘리는 데 정책적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서민층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직접적인 효과뿐 아니라 내수 확대를 통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고용과 투자를 자극함으로써 성장을 가속화하는 간접적인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낙수효과와 분수효과의 선순환적 결합이 이루어져야 하다. 우리 사회의 보수 진영에서는 낙수효과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시장만능주의를 맹신한 결과 오히려 공정한 시장경쟁을 파괴하고 기득권을 고착시키면서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하는 폐단을 낳았다. 반면 우리 사회의 진보 진영에서는 분수효과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반대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 개인의 ‘경제 하려는 의지’를 훼손하고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면서 복지정책을 통한 사후적 분배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문제가 없지 않았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 중 어느 하나의 경로(track)만으로는 동반성장을 달성할 수 없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를 결합하여 선순환의 효과를 낳아야 하다. 물론 개개인의 의식과 행동을 바꾸고 우리 사회의 법제도와 관행을 혁신해야 하는 지난한 과제이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를 결합하는 동반성장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초과이익공유,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등 정책과제 실천해야

동반성장을 위한 정책적 과제 중 당장 실천하기 쉬운 것들부터 따져보자. 우선, 초과이익공유(협력이익배분)를 실행해야 한다. 대기업이 목표한 것보다 높은 이익을 올리면 그것의 일부를 중소기업에 돌려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 해외 진출, 그리고 고용 안정을 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시혜적인 것이 아니다. 보상적인 것이다. 초과이익의 적지 않은 부분은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 거래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첫 작품이었는데 세상에 알려짐과 동시에 곳곳에서 거세게 반발했다. 초과이익공유제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대기업들이 협력중소기업들과의 관계를 '협력'관계가 아닌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화와 서비스를 주고받는 관계라고 해서 대기업-협력중소기업의 관계를 일반적인 판매자-소비자 관계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대기업과 협력중소기업은 판매자-소비자와 같은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상대하는 하나의 큰 공동주체인 것이다.

대기업이 만드는 제품의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는 그 대기업과 경쟁하는 업체가 아니며 협력중소기업들은 실질적으로 대기업의 수족이 되어 한 부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적어도 그 제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협력업체로서 대기업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초과이익이 발생했을 때 이를 위해 일한 임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은 반(反)시장경제적이기는커녕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대기업과 함께 협력하여 성과를 이룬 중소기업에게 그 기여도에 따라 초과이익을 공유하고 배분하는 것 또한 반시장경제적 행위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초과이익공유제는 경제주체 간의 공정한 이윤 분배를 가능하게 해 시장경제의 병폐를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둘째,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선정하여 대기업이 더 이상 지네발식 확장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들의 신규 참여 확대를 금지하는 업종을 선정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키워주자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물론 대기업의 참여 금지만으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 자체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자조적 노력과 정책적 지원이 결부되어야 한다. 셋째, 정부가 조달청을 통해 재화나 서비스를 조달할 때 일정 부분 이상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안들은 기존의 불공정한 게임 룰 아래에서라면 대기업으로만 흘러가 고여 있을 돈이 중소기업에 합리적으로 흘러들어가도록 유도하는 조치들이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중소기업 위주의 신산업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이다. 좋은 학생들을 중소기업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학자금 융자혜택을 준다거나 군복무 혜택을 줄 수도 있다. 또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해 국가기관, 예를 들면 KOTRA가 대학, 중소기업 등과 협력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연구·개발(R&D)자금 배분을 대기업 위주에서 중소기업 위주로 바꾸어야 한다.

동반성장 위해 조속히 노동시장 정상화 추진하고 증세 논의해야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노동시장 정상화를 위한 노력도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된다. 특히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향상·안정화시키면서 궁극적으로는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촉진하고, 최저임금을 꾸준히 인상함과 동시에 그 사각지대를 방지하기 위해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노동시장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나라에는 비정규직 등 불안정 고용계층이 아주 많다. 특히 청년층의 불안정 고용은 잦은 이직으로 숙련 형성을 저해해 미래 세대의 인적자본 축적에 결정적 장애가 된다. 나아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고용 관행은 한 나라 안에 두 개의 국민을 만드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하여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수립·집행하고, 민간 기업의 정규직 전환 노력에 대해서는 강력한 재정·세제상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중소기업에 비정규직이 많은 현실을 감안해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위한 기업정책과 노동시장 정상화를 위한 노동정책 사이의 유기적 보완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컨대, 원사업자의 공정거래 의무를 1차 협력업체만이 아니라 2·3차 협력업체로까지 확대 적용하도록 하도급법 체계를 개선하고, 초과이익공유(협력이익배분)도 2·3차 협력업체로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둘째, 평균임금 또는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을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2014년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5,210원이고, 금년의 최저임금은 5,580원으로 책정됐다. 솔직히 너무 낮다. 5년 정도의 시한을 정하여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일정 비율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200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시행한 빈곤 퇴치 및 사회통합 정책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이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소비 성향이 높은 계층의 임금소득 증가는 내수를 자극하여 중소기업은 물론 경제 전체의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실증 연구 결과가 많다. 최저임금 인상은 한계 중소기업의 고용을 줄임으로써 오히려 저소득층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있다. 단기적으로 충격을 받은 영세 기업에 대해서는 재정·세제상의 지원책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끝으로 증세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조속히 시작해야 한다. 사회복지 제도의 확충을 위해서는 물론 동반성장 시책의 충실한 집행을 위해서도 상당한 정도의 정부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현재의 조세 체계, 그리고 현 정부의 간접 증세 기조만으로는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 물론 증세를 좋아하는 국민은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인들은 증세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침묵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조세부담률 또는 사회보장세를 합한 국민부담률을 어느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릴 것인지, 간접 증세와 직접 증세는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 보편 증세와 부자 증세의 갈등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의 세목별 구성과 세율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등에 대해 국민적 논의와 공감대 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학계의 합리적 연구와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복지부동하는 여야 정치권을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해야 한다.

■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프로필
제23대 서울대 총장, 제40대 국무총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경제학 학사, 미국 마이애미대에서 경제학 석사,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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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5/09/17 18:34:25 수정시간 : 2020/02/07 1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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