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에서 성공, 파나마 운하에선 실패… '성공의 함정'

증시 추락으로 '위기 전야'의 중국… 함정에 빠져 잘못된 대응

세계 대공황 없을 것… 성공·성장에 중독된 중국, 실패 겪을 것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데일리한국=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칼럼] 성공한 개인이나 조직은 자신만의 성공 방정식을 갖는다. 자신의 과거 성공 경험을 하나의 공식처럼 만든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마법을 찾아낸 것처럼 군다. 이로써 개인과 조직의 흥망성쇠가 설명된다. 도저히 잘못될 것 같지 않던 개인이 추락하고, 영원히 잘 나갈 것 같던 조직이 몰락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모두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성공의 함정' 유래… 수에즈 운하 성공과 파나마 운하 실패

지금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이 현상은 애초에 '성공의 함정'(success trap)이라고 알려졌다. 이 용어는 수에즈 운하를 파는 데 성공했지만 파나마 운하에 실패한 프랑스의 빼어난 건축가이자 외교관이었던 페르디낭 드 레셉스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그는 중동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중남미에서의 성공을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두 곳의 환경은 크게 달랐다. 중남미에는 풍토병이 있었고 일꾼을 구하기도 훨씬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파나마 운하가 잇는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에는 꽤 큰 수면 차도 있었다. 이를 고려하지 못한 레셉스는 참담한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었다.

거대 기업의 몰락도 같은 틀로 설명할 수 있다. 1970년대까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기업이었던 미국의 IBM은 자신의 성공을 이끈 기업용 대형 컴퓨터 사업에 집착했다. 그들은 각 가정에 컴퓨터가 한 대씩 보급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일찌감치 알아챈 마이크로소프트사는 개인용 컴퓨터 시대의 강자로 떠올랐다. 그 이면에 IBM의 몰락이 있었다. 이로써 성공의 함정은 침몰할 수 없는 기업의 실패와 신흥 강자의 부상이라는 현대 경영학의 근본적 의문을 보기 좋게 설명해준다. 모든 것은 환경적 합성(environmental fitness)에 달려 있는 것이다.

위기 전야의 중국, 잘못된 대응

중국 증시의 추락은 위기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외양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과거와 같은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느냐다. 위기 전야의 중국 지도부는 그렇다고 믿는 눈치다. 추락한 증시는 부양책으로 일으켜 세우려 든다. 수출이 나빠지면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춰 대응한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의 사실상 지배 하에 있는 은행들이 더 많은 대출을 하고, 이를 투자 회수 가능성이 낮은 분야에까지 투자하는 성장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35년 이상 이어져온 중국 경제의 성공 방정식이었다. 정부가 자본과 인력자원을 총동원하고, 필요하다면 수출과 증시도 부양하는 식이다. 문제는 중국이 세계 최대의 공장이자 세계 제2위의 시장이 되고 나서는 이런 성장 방식이 잘 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출과 투자 위주의 성장은 한계를 맞았고, 증시와 부동산 거품만 키웠다. 성장의 한계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자산시장 거품을 소비 원동력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과 부동산의 가격이 뛰면 소비를 늘리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후 중국 경제를 지탱해주던 부의 효과(wealth effect)는 이제 부메랑이 돼 돌아오려 하고 있다. 자산 시장의 거품이 꺼지자 경제는 더 빠른 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중국을 의식한 주요 경제대국들의 존재도 달라진 환경이다. 중국이 세계 경제의 큰 손이 된 후 이들 국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견제하려 든다. 설령 의도적으로 대응하지 않더라도 이 나라들은 중국 경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중국 증시가 침제하면 세계 증시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전세계가 금융 불안감에 휩싸이면 거꾸로 중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준다. 그렇다고 중국 정부가 영원히 증시를 떠받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수 진작 정책이 힘을 잃은 가운데 중국 정부는 전통적 수출 촉진 정책을 구사하려 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중국 정부의 공세에 맞서 다른 나라들도 공세적 환율 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다. 일종의 환율 전쟁이 벌어지면 세계 각국의 연쇄적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 경제 위기 전야에 뜬금없는 대공황 시나리오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은 경기 침체에 직면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과 잇단 상호 보복이 초래한 결과다.

대공황 시나리오보다는 중국 경제 위기 가능성

중국은 지금도 과거 성공 방정식을 고집스레 지속하고 있다. 대출과 투자를 통한 내수 부양과 환율 조작을 통한 수출 촉진, 그리고 집요한 증시 부양 등이 대표적인 정책이다. 이를 통해 현재 자신들이 맞은 성장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꺼내든 정책 카드들 모두 과거에 주로 써왔던 것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한 마디로 중국 정부는 성공의 함정에 단단히 빠져 있다.

반면 세계는 실패로부터 배웠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주요 경제국들은 상호 협력을 통해 환율 전쟁과 보호무역주의의 악순환을 막았다. 대공황의 경험에서 배운 덕이었다. 중국의 환율 정책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다시 대공황과 비슷한 상황을 맞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이 좋은 소식이다.

중국 경제와 관련해 나쁜 소식은 1978년 중국이 개혁과 개방을 시작한 이래 중국이 배울 만한 실패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반면 어느 상황에서든 통하는 성공 방정식을 자신들이 갖고 있다고 믿을 만큼 성장과 성공에 중독돼 있다. 비록 중국 경제의 위기로 경제 전문가들이 상정한 세계 경제 최악의 시나리오는 현실화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새로운 환경 하의 중국 경제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실패를 겪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프로필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대통령 직속 동아시아시대위원회 전문위원- 명지대 객원교수-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김방희입니다> 진행- KBS1 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진행- 생활경제연구소장(현) YTN 객원 해설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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