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두려워했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가장 강한 자"

세계 최초로 8,000m급 16좌 완등 이후 네팔에 16개 학교 짓는 프로젝트 추진

"14좌 완등 후 공포가 배로 커져"… 동료 시신 수습 과정 담은 영화 연말에 개봉

엄홍길 상임이사는 향후 계획에 대해 "남북 대학생 155명을 선정해 한라에서 백두까지 함께 종단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데일리한국 인터뷰=장성준 부국장/정리=황혜진 기자] '자승최강'(自勝最强),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가장 강한 자라는 뜻이다. 38번의 도전과 22번의 실패 끝에 2007년 세계 최초로 8,000m급 히말라야 16좌를 완등한 엄홍길(55)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가 좋아하는 말이다. 엄 상임이사는 "실패를 두려워했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려운 시간을 딛고 자기 자신을 이겨냈을 때 신념과 의지가 더 굳어졌다"는 얘기도 했다.

흔히 '엄홍길 대장' 불리는 그는 누구보다도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신의 영역이라 불리며 쉽게 정상을 내어주지 않는 히말라야를 22년이나 오르내리며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기 때문이리라. 그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혹독한 산 히말라야에서 희생된 동료들, 그리고 살아 돌아온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하고 네팔에 학교를 짓고 있다. 공언한 16개 학교 중 8개 학교가 설립됐고, 올해 말 2개 학교가 추가로 완공될 예정이다. 인생의 가장 큰 목표였던 히말라야 16좌 완등을 이뤄낸 그는 네팔에 학교를 세우는 것이 인생의 17좌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17좌 완등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그가 오를 18좌는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엄 상임이사는 향후 계획에 대해 "국내에서 세우고 있는 가장 큰 목표는 남북 대학생 155명을 선정해 한라에서 백두까지 함께 종단하는 것"이라며 "남과 북의 학생들과 함께 내 두 발로 백두산에서부터 내려와 한라산을 밟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지난 4월 네팔 대지진 당시 구호를 위해 네팔에 다녀왔다. 당시 심경이 어땠는가.

"네팔은 나에게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대한적십자사 재난구호팀과 함께 네팔로 향했는데 카트만두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다행히 도시는 말끔했다. 콘크리트 구조물들은 잘 버텼던 것이다. 대신 오래된 가옥들과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 산간 오지 마을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같이 산을 올랐던 셰르파들의 마을에도 피해가 많아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네팔 사람들의 초연한 표정이었다. 누구를 원망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자연적 현상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구호물자를 나눠주면 언제 그런 재난이 있었냐는 듯 평온하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줄을 서 있다가 자기 앞에서 물자가 떨어져도 다음에 받으면 되지 하고 아무런 불만 없이 돌아서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가슴을 더 아프게 하기도 했다."

- 16좌 완등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후배 6명과 셰르파 4명을 잃었다. 가슴에 묻어야 했던 동료들이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는데.

"1985년부터 시작해 20여 년 동안 히말라야 8,000m급 16좌 등반에 38번 도전하고 22번 실패했다. 14좌를 완등하고 도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산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배로 커지는 것을 느꼈다. 기량과 체력이 월등히 뛰어나졌지만 그만큼 산을 잘 알게 되고 위험 요소를 잘 파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는 신의 영역이라고 한다. 정상에 오르고 하산을 하면서 신께 빌었다. 살아남아 돌아가게 해달라고. 살아남은 자로서 산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으며 살겠다고 약속했다.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람이 보였다. 어린이들과 가난의 대물림이 눈에 자꾸 아른거렸다.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교육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함께 산에 올랐다가 운명을 달리한 셰르파들의 고향을 비롯해 네팔의 산간 오지 마을에 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재단을 설립했다."

엄홍길 상임이사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했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며 "실패는 앞으로 더 큰일을 하기 위해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겨내셨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재단에서 네팔 어린이는 물론 국내 청소년 교육 사업에도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청년 실업과 저출산 등 여러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청소년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다고 생각하는가.

"중2병이라는 말이 있더라. (웃음) 두려움도 없고 거침도 없는 물불 안 가리는 나이라고 하던데, 그 혈기왕성한 시기에 아이들을 작은 공간에 가둬놓고 주입식 교육만 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야외로 데리고 나가야 한다. 산에 오르며 마음껏 기운을 뻗치고 스트레스도 풀게 하는 것이다. 정상에 오르며 인내심을 갖게 되고 그 인내 끝에 오는 성취감도 맛볼 수 있다. 또 산에 혼자 가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과 함께 가기 때문에 차츰 옆사람을 동료로 생각하게 되고 배려와 희생 정신도 배우게 된다. 정신력과 체력이 함께 강화되는 것이다. 매달 서울 강북구 관내 중학생들과 함께 산에 오른다. 여름에는 '나라사랑 병영캠프'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들을 군부대에 보낸다. 유격 체험도 하고 전망대에 올라 분단 현실을 가슴으로 느껴 보게 한다. 안보 의식과 통일에 대한 생각을 키워주는 것이다. 2013년에는 정전 60주년을 맞아 전국 대학생들과 함께 휴전선 길 155마일을 함께 걷기도 했다."

- 2005년 동료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휴먼원정대를 꾸려 에베레스트에 다녀왔다. 당시 다큐멘터리가 방영돼 화제가 됐는데, 이 이야기가 곧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들었다.

"당시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섰던 박무택, 백준호, 장민, 이 세 사람은 서로를 구하려다 히말라야에 영원히 잠들었다. 박무택의 시신은 정상 100m 아래인 해발 8,750m 지점에서 로프에 매달려 있었고, 나머지 두 사람의 시신은 8,400m 지점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땅에 떨어져 있는 시대다. 약속과 신의라는 것이 유명무실한 상황이 된 것 같다. 나는 그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또 한국 산악인의 시신이 거기 계속 매달려 있다고 생각해보라. 많은 원정대와 영상팀들이 '저기 매달려 있는 게 한국인이다. 어떻게 수습하지 않고 그대로 두느냐'고 했을 것이다.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영화(가제 '히말라야')는 오는 12월에 개봉한다. 이 영화를 통해 공동체와 신의, 희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배우 황정민이 내 역할을, 배우 정우가 박무택 역을 맡는다."

- 산악인과 사회공헌 활동가로 살아오는 동안 ‘멘토’로 가르침과 도움을 주신 분이 있었는지.

"처음 히말라야 14좌 등반이란 원대한 꿈을 품게 되었을 때 그 시작에 불을 당겨주신 분이 있다. 고인경 전 파고다교육그룹 회장이다. 꿈을 이루는 동안 늘 곁에서 그림자처럼 정신적·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부상을 입거나 동료를 잃었을 때 옆에서 함께 눈물을 흘려주신 분이다. 안나푸르나에서 발목이 부러져 한국으로 돌아와 수술을 받았을 때 모두가 다시는 산에 오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분은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주셨다. 다섯 번째 도전에 앞서 눈밭을 걸어보자고 함께 설산을 오르기도 하셨다. 결국 멀쩡한 다리로 네 번이나 실패한 안나푸르나 등정을 오른쪽 발목이 구부러지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도 다섯 번 만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고 전 회장이 도전 정신과 모험 정신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것 같다. 젊은이들에게 도전 정신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항상 말씀하신다."

- 사회 각계각층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8,000m급 16좌를 완등하기 위해 38번을 도전했다. 실패를 두려워했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위기가 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와도 그 순간이 1년 365일 영원한 것은 아니다. 시간은 가고 세월은 흐른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그 시간을 견뎌냈을 때 결국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면 신념과 의지는 더 굳어지게 마련이다. 앞으로 더 큰일을 하기 위해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겨내셨으면 좋겠다."

- 16좌 완등 이후 네팔에 16개 학교를 짓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현재 8개 학교가 설립됐고 3~4년 후면 나머지 학교도 완공된다고 들었다. 그러면 인생의 두 번째 목표도 이뤄내게 된다. 혹시 그 이후의 도전 과제도 세워놓았는가.

"학교는 완공이 끝이 아니다. 계속적인 보수와 관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운 학교들은 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인데 마지막 16번째 학교는 초·중·고, 전문대학까지 함께 세워 하나의 타운을 이루는 커다란 프로젝트로 기획하고 있다. 또 국내에서 세우고 있는 가장 큰 목표가 있다. 남북 대학생 155명을 선정해 한라에서 백두까지 함께 종단하는 것이다. 지구 곳곳을 다니며 세계가 하나라는 걸 몸소 체험했다. 한반도만 그렇지 못하다. 남과 북의 학생들과 함께 내 두 발로 백두산에서부터 내려와 한라산을 밟는 것이 나의 꿈이다."

■ 엄홍길 상임이사 프로필
1960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1985년 에베레스트 원정으로 고산 등반을 시작해 2000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8,000m급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했다. 2004년 얄룽캉(8,505m)과 2007년 로체샤르(8,400m)에 올라 세계 최초로 8,000m 16좌 완등에 성공한 산악인이다. 현재는 엄홍길휴먼재단을 차리고 네팔 오지마을에 16개의 학교를 짓는 '휴먼스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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