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활성화·남북 관계·공공 개혁 성과가 다음 정권 향배 결정한다

세 메시지를 임기 반환점 앞둔 광복 70년 기념사에 담아 실천해야

레이건, 경제 성과·냉전 종식 등으로 가장 인기 있는 美 대통령으로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칼럼] 대통령 당선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거머쥐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내년 연말엔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결정된다. 8년 동안 절치부심한 미국 공화당의 노력은 눈물겹다. 다음 정권을 놓치게 되면 12년 동안 미국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되고, 당의 구심력 또한 약해지고 만다. 부시 전 대통령(아버지와 아들)의 아들이자 동생인 젭 부시 전 플라리다 주지사의 선전이 점쳐진다. 하지만 현재로선 보수적 성향을 지나칠 정도로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다른 후보들을 앞서가고 있다. 공화당 내부와 지지자들은 과연 트럼프같은 극단적인 이미지의 후보로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을지 걱정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추억'… 레이건 대통령의 성공

그래서 공화당 지지자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화려하게 공화당의 인기를 부활시켰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잊지 못하는 듯하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2차 대전이후 미국의 대통령 중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던 대통령이기도 하다. 첫 임기 때보다 재선하고 난 두 번째 임기에서 그의 지지율은 더 높았다. 그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에는 화려한 언변이나 친근한 이미지가 한몫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경제였다.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미국 경제는 엉망이었다. 1960년에서 80년까지 인플레는 14%로 치솟았고 실업율은 10%에 육박했다고 한다. 레이건은 8년 재임 기간 ‘레이거노믹스’를 통해 인플레를 5% 이내로 줄였고, 20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일각에서는 그의 경제적 성과가 부풀려졌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런 성과조차 올리지 못한 역대 대통령이 태반인 점을 감안하면 부인 못할 업적임에 틀림없다. 4%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도 이전 정부에서는 보기 힘든 결실이었다. 냉전 종식 역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볼 수 있다. 콘트라반군 지원과 포틀랜드 전쟁에서 영국 편을 든 것에 대한 비판은 있지만 그의 재임 기간에 소련은 무너졌다. '스타워즈'라고 불릴 정도로 미-소 간에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원칙적인 군사외교안보 정책을 견지하며 소련의 무릎을 꿇렸다. 박 대통령은 레이건처럼 ‘통일 대박’의 성과를 재임 중에 볼 수 있을까.

레이건 전 대통령이 더 많은 박수를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각종 공공 개혁을 통해 ‘작은 정부, 큰 시장’을 구현한 점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미국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를 완화 또는 철폐했다. 지금도 캘리포니아에 있는 레이건 전 대통령 기념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무기력해진 미국을 가장 번창한 국가로 도약시킨 대통령으로 국민들은 추억하고 있다.

8월이면 박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돈다. 광복 70년 기념사에 어떤 내용을 담는가에 박 대통령의 하반기 운명은 달라진다. 대통령의 지지율을 견인하는 변수는 3가지로 요약된다. 경제 활성화, 대북관계 개선, 공공 개혁 성과. 같은 보수 성향의 미국 레이건 전 대통령은 30년 전 자신의 8년 재임 기간에 걸쳐 성공적 모델을 보여주었다. 박 대통령의 기념사 바구니에는 어떤 카드를 반드시 담아야 할까.

박 대통령 후반기 최대 과제는 '경제 활성화'

기념사에서 첫 손가락에 꼽아야할 과제는 단언컨대 ‘경제 활성화’이다. 이것 없이는 박 대통령의 하반기 국정 수행뿐 아니라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 전략에 치명타가 될 것이다. 재선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두 번째 임기에 평균 지지율이 더 높았던 경우는 대부분 경제에 성공했을 때였다. 미국 갤럽의 역대 대통령 지지율 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 트루먼 대통령 이후 중임한 대통령 중 두 번째 임기에서 평균 지지율이 높았던 대통령은 레이건 전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 두 명에 그친다(그림1).

우리가 기억하기에도 두 대통령은 임기 중에 얼마나 빛난 리더십을 보여주었는가. 미국 국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현재까지 받고 있음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두 대통령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정권 재창출을 했거나 정권 재창출에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는 데 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빛나는 업적 덕에 조지 H 부시 대통령이 탄생했다.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앨 고어 전 부통령은 석패하긴 했지만 전국 득표는 오히려 당선자를 앞서는 초유의 상황을 만들었다. 당선이나 다름없는 아쉬운 패배였다. 부시와 고어 두 후보 모두 부통령 출신이라는 사실마저 일치한다. 현직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면 감히 가능한 일이었을까.

박 대통령은 임기 하반기에 실질 총생산이 늘어나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역대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 추이와 역대 대통령들의 지지율을 상관 분석해 보면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상승하면 어김없이 대통령 지지율에도 반응이 왔다(그림2). 국내 경기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국민들이 모를 리 없다. 박 대통령 임기 초반에 호조세의 지지율을 보였던 이유도 외교나 북한 문제 같은 긍정적인 원인도 있었겠지만 경제 사정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는 이유도 빠트릴 수 없다.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는 '창조 경제'와 관련 상징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실질적인 경제 활성화와 연결되어야 한다. 국민들은 더 이상 선언적이거나 구호적인 계획 발표에 공감하지 않는다. 경제 성과를 통해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에는 정권 재창출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 지지율 '30%의 법칙'

‘30%의 법칙’이라고 해서 임기 마지막 해 대통령의 지지율이 평균적으로 30%내외 지지율을 유지하면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미국에서도 임기 마지막 해 지지율이 30%를 평균적으로 상회하면 정권 유지가 가능한 편이었다. 정권 재창출을 이룬 레이건 전 대통령과 사실상 정권 재창출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지지율이 60%를 넘나들었다(미국 갤럽). 5년 대통령 단임제인 한국에서는 임기 마지막 해에 대통령 선거가 있으므로 불가피하게 레임덕이 온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직 대통령의 평가는 임기 4년 차 후반기와 임기 5년차 전반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4년 차 4분기 지지율은 각각 31%와 32%였다. ‘30%의 법칙’이 맞아 들어가는 대목이다. 임기 4년 차 4분기에 김영삼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각각 28%와 12%로 30%에 이르지 못했다(한국 갤럽).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4년 차 4분기 지지율은 어떻게 나올까. 30%의 법칙은 계속 유효할까. 박 대통령의 경제 성과에 달렸다.

박 대통령의 두 번째 카드는 남북 관계 개선

두 번째로 대통령의 기념사에 반드시 담아야 할 카드는 ‘대북관계’ 개선이다. 박 대통령은 임기 초반 ‘통일대박론’을 들고 나와 지지율 고공 행진을 한 바 있다. 그러나 통일대박의 장밋빛 청사진과는 달리 통일 가능성이 실질적으로 국민들에게 전달되지는 않고 있다. 통일준비위원회를 통한 야심찬 노력은 필요한 결정이었고 단기적인 성과를 요구하기에는 무리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가시적인 남북 관계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동력을 잃을 공산이 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전문가와 일반인 그리고 각종 모델 분석을 통해 ‘한반도 평화 지수’를 공개하고 있다. 임기 초반 낮았던 기대지수는 대통령의 남북 관계 진전 노력과 통일 대박론 발표와 함께 한껏 고무된 지표를 보여주었었다. 2013년 1분기 34.1에 그쳤던 기대지수는 통일대박론과 함께 4분기 61.6까지 높아졌으나 2015년 2분기 현재 35.3로 곤두박질쳤다. 같은 기간 대통령 지지율은 기대지수와 동반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그림3). 남북관계가 대통령 지지율에 가장 치명적인 변수는 아니지만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까지 구성한 마당에 남북 관계의 구체적인 진전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단순히 체면을 구기는 정도를 넘어 장기적으로 국정 수행 평가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민주당 계열의 정권에서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2000년과 2007년)을 통해 상징적인 관계 개선이라도 만들어냈던 상황과의 비교가 불가피해진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레이건 전 대통령은 단순한 군비 경쟁이 아니라 일관된 리더십으로 공산주의를 붕괴시키고 냉전을 종식시켰다. 결국 말보다는 행동이다. 백 마디 말보다도 통일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선제적으로 만들면 꿈은 이루어진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힘의 우위를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은 무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독재주의에 단호한 자유주의 리더십을 통해서였다. 레이건 전 대통령 취임 이전 냉전의 승리자는 미국이 아니라 오히려 소련으로 보는 시각이 많을 정도였다. ‘우리(미국)가 승리하고 그들(소련)이 패배해야 한다.’ 1981년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소련에 대해 비기기 작전이 아니라 승리를 쟁취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대소련 붕괴 전략은 최고의 전문가나 이론가가 아닌 전직 영화배우였던 한 대통령의 철학으로부터 비롯되었다(리 에드워즈 박사, 미국 해리티지재단).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 결과로 보나 국민들이 체감하는 남북 관계를 보나 북한의 상황만 기다리는 대북 정책은 통일대박론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산주의를 붕괴시킨 레이건 독트린의 내용이 무엇인지 곱씹어 기념사에 담아야 한다.

8·15 기념사 마지막 카드는 '공공 개혁'

기념사에 빠트리지 말아야 할 마지막 카드는 공공 개혁의 성과이다.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이야기했고 4대 개혁을 부르짖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를 비롯해 연설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창조경제와 4대 개혁을 강조해왔다. 대통령은 열정적이고 때로는 강한 결기를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결정적인 아쉬움은 구체적인 성과가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여전히 기업들은 창조적인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경제성장률은 지지부진하다. 공무원 개혁과 노동 구조 개혁을 한다고 하지만 개혁 수준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하지만 번번이 충돌과 갈등으로 귀결되고 있다. 대통령은 대통합을 내세우지만 개혁에 대한 피로감으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임기 반환점을 돌고난 이후에도 개혁을 독려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국민들의 기대는 좌절과 실망으로 전락하고 만다.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2900여일에 달하는 재선의 미국 대통령도 할 일을 다 못하고 물러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박 대통령에겐 불과 900여일 정도 남았다. 4대 개혁 중 하나만 제대로 해도 기립박수를 받을 일이다. 선택과 집중을 더 지체해서는 안 될 법하다. 특히 4대 개혁 과제 중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있는 노동, 금융, 교육 개혁은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공공 개혁은 남아있는 임기 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실업률을 낮추고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혁혁한 업적을 남긴 데는 규제 철폐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많은 부패와 공공 정책의 비효율성이 규제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은 어제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인 규제는 그야말로 국민들의 왕성한 경제 활동에 방해가 되었을 뿐 아니라 부정부패의 원흉이 되어 왔다. 규제를 역이용하여 자기 잇속을 챙기는 각종 협회의 무분별한 작태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개조되고 불법적으로 과적된 세월호가 출항했고 전대미문의 참사가 벌어지지 않았던가. 많은 국민들이 박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역대 대통령이 추진하려고 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던 이 공공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데 있다. 임기 3년차와 4년 차에 대통령이 공공 개혁 성과만 보여주어도 지지율은 상승 가능성이 높아진다. 박 대통령의 강력한 공공 개혁 의지 표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할리우드의 무명 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에게 미국 국민들은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퇴임 직후 가장 강력한 미국을 만들어준 백전노장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국민들은 기립박수와 함께 경의를 표했다. 배우 시절은 미약했지만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은 창대했다. 배우로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받지 못했지만 대통령으로서 그의 명성과 업적은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2011년 미국 갤럽의 조사에서 미국인이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대통령은 링컨도 워싱턴도 아닌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박 대통령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경제 활성화, 대북관계 개선, 공공 개혁 성과에 모든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단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과 대한민국을 위해서 말이다. 공화당 출신인 레이건 전 대통령은 반대 시위자가 유리잔을 던지며 연설을 방해했을 때 환하게 웃으며 재치 있게 대응했다고 한다. ‘혹시 민주당원이십니까.’ 임기 후반기, 박 대통령의 담대한 소통을 기대한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길리서치 팀장-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이사,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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