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업들의 주요 화두는 '비상경영'… 명확한 목표·범위 등 원칙 있어야
리더의 솔선수범 자세 필요… 좌고우면하지 말고 결과에는 책임지려는 의지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데일리한국= 천영준 연세대 책임연구원 칼럼] 요즘 들어 기업마다 '비상경영'이 화두다. ‘위기’ 때가 되면 제일 먼저 임직원들의 출근 시간이 빨라지고 퇴근 시간이 늦어진다. 주말 출근은 필수다.

최근 기업들의 화두는 '비상경영'

필자의 지인인 어느 기업의 2년 차 상무는 "아들 얼굴이 기억이 안 난다"는 푸념을 토로하기도 했다. 토요일까지 야근을 하는 조직의 비상경영 체제 때문. CEO(최고경영자)가 부지런한 천성을 가진 인물이면 임원들은 더욱 피곤해진다. 최고경영자가 회사에 도착하기 1-2시간 전에 착석해 있어야 하는 건 필수이고, 예정보다 앞당겨 아침 회의를 시작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비상경영은 ‘철밥통’으로 통하는 공직자들도 피하지 못하는 숙명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일요일까지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느 수석비서관은 중요한 전화가 걸려올까봐 식사 도중에도 휴대 전화를 향한 시선을 내려놓지 못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이쯤 되면 비상경영은 과도한 긴장과 한국 특유의 군대식 조직 문화가 만들어 낸 산물인 것만 같다. 그런데 장점도 있다. 일단 내부적으로 조성된 위기를 통해 과거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더 ‘열심히’ 하려는 유인을 심어주는 것이다. 경영학자 제임스 마치는 ‘열망 수준’(Aspiration level) 이론을 통해 과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조직의 기억 성향이 혁신, 위험 감수, 실험을 필요로 하는 미래 전략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어느 기업 오너는 ‘10년 뒤를 생각하면 밤에 잠을 잘 수 없다’며 조직원들 사이에 긴장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 요지로만 보면 비상경영 체제는 조직이 극도의 한계를 체험하는 가운데 태평성대에는 좀처럼 떠올리기 힘든 솔루션을 찾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비상경영에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비상경영이 항상 긍정적 결과만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모 대기업의 ‘출근 시 커피 금지’ 조항이 일간지를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직원들이 회사에 들어오기 2-30분 전에 사먹는 커피가 업무 시의 긴장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른바 ‘군기잡기’다. 비상경영은 조직이 자원의 한계(Resource constraint)를 느끼는 상태에서 새로운 솔루션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 되어야지, 구성원들을 윤리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준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조금 지나면 나아 지겠지 뭐’, ‘다들 주말에도 근무하니까 눈치껏 행동하자’ 등의 방관적인 자세를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니까’라는 직장인들의 푸념 속에는 조직은 때때로 자신들이 정말 하기 싫어하는, 그리고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행위를 강요하는 기관이라는 생각이 숨어 있다. 그 불만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어떤 조직의 조치도 설득력과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그 때문에 비상경영은 때때로 경제 뉴스를 너무 자주 보는 CEO의 변덕스러운 행동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조직이 충분히 수익성을 확보하고 고비를 넘기면 ‘곧 풀릴 조치’라는 생각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리더십이 작동하지 못하는 순간인 것이다.

비상경영이 진정한 혁신 전략이 되려면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할까. 일단 그 목표와 범위가 분명해야 한다. 삼국지의 주인공 중 한명인 조조(曹操)라는 인물을 들여다 보면 비상경영의 실마리를 알 수 있다. 그는 위(魏)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숱한 기성 세력과 갈등해야 했다. 그는 중국 대륙의 한 복판인 하남성을 장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래서 196년 조조는 호북성(湖北省)에 해당하는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와 동맹을 맺고 완성(宛城)의 장수(張繡)를 치기 위해 남하했다. 그는 건안칠자(建安七子) 중 한 명으로 훗날 조조와 함께 한나라 말기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이름난 군벌이었다. 조조가 전쟁을 계획한 때는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이어서 군량이 금방 소진되고 군사들이 마실 물마저 떨어져가는 상태였다. 완성으로 진격하기도 전에 병사들이 지치자 조조는 묘안을 생각해냈다. “이 고개를 넘으면, 유명한 매림(梅林)이 있다. 최선을 다해 진군한 다음 우리 모두 매실로 목을 축이자”고 병사들을 설득한 것이다. 사실 조조의 말은 거짓이었다. 그러나 지쳤던 그의 부하들에게는 나름의 목표가 생겼다.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새로운 성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 발현된 것이다. 매실은 단순히 순간의 기갈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완성을 정복한 이후 얻게 될 보상을 특정 시점의 관점에서 할인해서 보여준 것이었다. 그 이전부터 조조는 병사들을 극도의 상태로 몰아 시간을 단축시켜 진군한 다음, 파괴적인 속도로 적의 성을 함락하는 전술을 종종 사용했다. 비상경영에 대한 조직원들의 시간 인지를 잘 노린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 일화는 훗날 ‘망매해갈’(望梅解渴)이라는 고사성어로도 남았다.

비상경영의 핵심은 리더의 솔선수범 자세

명확한 비상경영의 범위와 목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솔선수범하는 리더의 자세다. 조조의 책사였던 사마의(司馬懿)는 훗날 촉나라를 정벌하는 대군의 사령관이 됐다. 그런데 하루는 적군의 대장 제갈공명을 포위하기 위해 부대를 출전시켰다가 오히려 촉군에게 포위당하는 우를 범했다. 마침 위군이 주둔한 지역은 불길에 휩싸여 전군이 궤멸될 위험에 있었다. 그때 사마의가 제일 먼저 취한 전략은 ‘나는 죽지만, 너희들은 살아라’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몇몇 병사들은 도망갔지만, 대다수는 남았다. 사마의의 아들 사마소가 죽음을 각오하는 노래를 부르며 군사들을 독려한 탓이다. 그는 과거 진나라의 시황제를 독살하기 위해 북쪽의 역수(易水)를 건너던 형가(荊軻)의 시를 읊으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북돋웠다. 때마침 큰 비가 내려 위군 진영의 불길을 진작시키자, 사기가 충천했다. 천운과 사마의의 리더십이 합쳐져서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최근 들어 리더십 능력을 강조하는 교재들 중 상당수가 지도자들이 ‘함께 구를 것’을 주문한다. 경영의 최고위로 올라갈수록, 현장과 멀어지는 게 사실이다. 오죽하면 어느 최고경영자는 "조직에서 제일 무식한 게 CEO"라고 말했겠는가. 자신의 지적 한계와 적응력 부족을 권력을 통해 극복하는 게 리더라는 말까지 있다. 물론 리더가 모든 실무를 맡고 일일이 관리감독하는 관행은 그가 ‘주사 기질’이라고 비난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조직원 모두에게 한계를 극복하라고 주문하는 상태에서 뒷짐진 모습은, 비상경영을 ‘한때의 이슈’로 치부하기에 충분한 면이 있다.

눈치 보지 마라… 결과에는 책임져야

그러나 비상경영을 독려할 때 최고경영자들이 조심해야 할 게 있다. "눈치 보지 마라"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조직원들의 한계 극복을 권유하는 것은 그들의 권한이자 능력이다. 위기의 절실함을 강조하고, 그 이후의 성과에 대해서는 협상적인 관점을 취하되, 비상경영 자체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토론하지 않는 것이 좋다. 위기는 그 향배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백날 주말 출근을 하더라도 진정한 비상경영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차피 긴장이 풀릴 텐데 뭐’라는 안일한 기대감이 이미 조직의 뿌리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충분히 조직원에게 설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 결과와 방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최고경영자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천영준 책임연구원 프로필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정보산업공학 석사, 기술경영협동과정 박사- 다음소프트 연구자문역- 합창단 Chantez a dieu, 오페라단 '청 ' 자문위원-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현)/저서 <직장인 4대 비극> <바흐, 혁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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