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접기의 위력은 어디서… 아동기의 아름다운 추억 떠올리게 해

40대 시청자 앞에서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도 복고 콘텐츠는 계속된다… 인간이 과거를 추억하는 한"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데일리한국= 천영준 연세대 책임연구원 칼럼] 요즘 들어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은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을 실험해보는 수준을 넘어서서 주말 시간대의 대표적인 안방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기업인 백종원은 ‘마리텔’에서 연속 1등의 자리를 차지한 뒤 대한민국 방송가의 대표 ‘쿡방’ 주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패널 중 한 명인 김구라 역시 마리텔을 통해 ‘라디오스타’, ‘썰전’, ‘동상이몽’과 함께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사할 수 있는 진행자로 거듭나게 됐다. 그런데 최근 몇 주 동안 어느 전문가의 실시간 방송이 시청자와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었다. 1990년대 무렵 ‘만들어 볼까요’와 TV 유치원 ‘하나 둘 셋’의 인기 스타 김영만이다. ‘종이접기 아저씨’로도 알려진 그는 새로운 아동 콘텐츠의 카테고리를 개척한 사람이기도 하다.

복고의 따뜻함’이 갖는 위력… 눈물 흘린 시청자도

과연 종이접기 전문가 김영만의 출연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스마트폰의 확산 이후 10대가 즐길 수 있는 유희의 범위가 넓어진 상태에서 종이접기 자체는 너무나도 아날로그적인 놀이다. 그러나 소재 자체보다도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의 의미가 더 크다면 어떨까. 김영만 씨는 1951년생으로 6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원로다. 그러나 그는 1회 출연분부터 매우 소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한 분야의 선두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중후함이나 경험을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하나 둘 셋’이 1988년부터 방영을 시작했기에 40줄에 접어든 시청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중들을 ‘어린이 여러분’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인다.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가끔 환갑이 된 어머니에게 테이프 붙여 달라고 해보세요. 얼마나 좋아하시겠어’라며 과거화된 동심을 현재로 끌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실제로 방송 직후 눈물을 흘렸다는 시청자나, 옛날 생각이 난다는 의미의 멘션을 공유한 네티즌도 상당수였다. 김영만 식 ‘복고’는 절대로 가볍지 않지만,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다. 어른과 멘토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는 가끔 무조건적이었던 아동기의 추억을 떠올려보라는 부드러운 권유가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다. 이른바 ‘복고의 따뜻함’이다. 함께 ‘하나 둘 셋’에 출연했던 신세경과 뚝딱이의 우정 출연도 김영만식 복고의 의미를 생생하게 하는 데 한몫했다. 콘텐츠 자체가 자기 계발서적인 가치를 갖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영만의 종이접기가 갖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바로 ‘복고의 원류성’이다. 방송 상에서 그의 종이접기는 5-10분의 시간 동안 시청자들이 특정 주제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요즘처럼 멀티태스킹(Multitasking), 즉 한 번에 여러 가지 콘텐츠를 즐기는 행위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김영만의 단순한 콘텐츠는 반작용적인 힘을 발휘한다. 유희마저도 복잡화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짧은 시간 동안 종이접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다. ‘러쉬’(Rush)보다 '허쉬‘(Hush)를 갈망하는 사회상을 아주 잘 반영한 조치이기도 하다. 최근 1-2주 간 서점가에서는 종이접기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올해 초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컬러링 북‘, 즉 색칠공부 책이 인기였던 것과 유사한 대목이다. 단순하고 밀도 있는 행위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복잡하고 고단한 일상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매우 잘 건드린 것이다.

시련 속 복고의 기회 포착한 김영만

콘텐츠와 메시지의 풍부함, 메신저(Messenger)의 치명적인 매력 등은 하루아침에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기성 콘텐츠의 패턴과 구성에 대해 치밀하게 고민하고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도출이 가능한 결과인 것이다. 원래 김영만은 젊은 시절 디자인 광고 전문가였다. 그가 자기 나름의 기획 사무소를 차리기 위해 일본 여행을 하던 도중 만난 주제가 바로 ‘종이접기’, 즉 ‘오리가미’였다. 마침 그는 친구의 투자 실패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상태에 놓여 있었다. 각종 고생 끝에 그는 4-7세 아이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종이접기 교재를 개발하기로 결심하고 일로매진했다. 당시 아동용 공작 도구가 발달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는 동화적인 스토리가 있는 종이접기 소재들을 다수 개발했다. 강아지, 코끼리, 걸어가는 지네, 걸어 다니는 펭귄 등이 대표적인 주제였다. 종이접기의 핵심은 실제로 무엇을 만든다는 느낌과 함께 아동이 차례차례 과제(Quest)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자신감이다. 김영만은 너무 어렵지 않은 모델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창안함으로써 콘텐츠에 공감력을 불어넣었다.

그의 ‘복고’에서 또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가끔은 복고도 발칙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리텔’ 방송 과정에서 나오는 김영만의 멘트와 대중들의 피드백은 더 이상 어린이들의 대화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성인들이 보는 동화’ 내용에 더 적합하다. 노란색 눈 색깔을 보고 어느 네티즌이 ‘황달’이라는 이야기를 하자, 김영만은 ‘여러분이 어렸을 때에는 파란 색 눈을 붙이거나 빨간 코를 붙여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며 되받아친다. 그리고 ‘황달, 최고다. 재미있다. 그런 창의적인 시각으로 사회 생활을 하면 잘될 거예요’라며 의미심장한 대답을 내놓는다. 일상과 뻔한 습관 속에 매몰된 이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셈이다.

마침 김영만과 비슷한 방법으로 작업을 하는 미술 작가들이 떠오른다. 유명 브랜드 로고나 캐릭터 등을 번안하여 동양화로 되살려 내는 손동현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그는 슈렉이나 터미네이터, 맥도날드 캐릭터 등을 한국풍 초상화로 되살려 내는 데 능수능란하다. 그림 속 주인공의 제목마저도 한문으로 지어 실제로 읽었을 때의 유머러스함을 노리기도 한다. 요시모토 나라 같은 작가도 일본화의 무뚝뚝함과 어두운 표정을 동화 캐릭터로 살림으로써 메시지가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복고는 단순히 과거 회귀나 미화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익숙한 과거를 현재의 시선으로 되살려냄으로써, 그 의미를 되새기고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혁신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리텔’에 등장한 김영만의 종이접기가 더욱 위력을 갖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복고는 계속될 것… "인간이 과거를 추억하는 한"

앞으로도 복고 콘텐츠는 계속될 전망이다. 인간이 과거를 추억하는 한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가 그랬고, 19세기 중반의 프랑스 미술이 그랬다. 현재에서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할 때 사람들은 아름다웠던 옛날을 회고하며 그 안에서 또 다른 메시지를 이끌어내려고 한다. 그런데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는 작업이 구태의연해지지 않으려면 그 나름의 새로운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즘은 사그라들었지만 우리만의 한류 콘텐츠를 세계 시장에 수출하려던 기획자들의 시도가 생각난다. 그들이 조금 더 복고의 보편성에 대해 생각했더라면 성공적인 전략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김영만식 ‘복고’의 가치에 대해 음미해볼 것을 권하고자 한다.

■천영준 책임연구원 프로필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정보산업공학 석사, 기술경영협동과정 박사- 다음소프트 연구자문역- 합창단 Chantez a dieu, 오페라단 '청 ' 자문위원-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현)/저서 <직장인 4대 비극> <바흐, 혁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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